단야를 앞에 두고 차분하다면 차분한 반응이었다. 단야는 눈을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쥐 상이라는 것이 딱 맞는 놈이었다. 체구는 오히려 지금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도 작았다. 하나 작은 눈 속에서 번들거리는 광기는 상당했다.
역시나 벗은 상의 사이로 어지럽게 낙서해 놓은 몸이 보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얇은 팔다리가 보였다.
살집이 없이 매끈한 느낌이었다. 양 팔목에 두툼한 천이 둘러싸여 있는데다 살짝살짝 손끌을 떠는 것을 볼 때 무엇을 무기로 쓰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비도를 쓰는 자일 터이다. 단야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네놈이 마두(馬頭)인가?”
단야의 목소리에 쥐 상의 사내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여전히 양손을 살짝 떨며 입을 열었다.
“마두라……. 참 오랜만에 듣는 건방진 소리구만.”
그는 빙글빙글 웃으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유야 뻔하다. 비도를 던지려면 거리가 필요하니.
“그 야차 같은 낯짝에서 요녕성의 오구(烏口)님이라는 말이 나오도록 만들어주마.”
시링.
슬쩍 양팔을 흔들자 오구의 양손엔 섬뜩하게 빛나는 비수가 들려 있었다. 손을 들어 혀로 비수를 할짝거리며 오구는 말했다.
“쳐라.”
스스스슷.
차분한 그의 목소리에 여기저기서 살기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 대상은 단야 한 사람을 향하고 있었다.
단야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 착각이었을까? 그의 얼굴이 한층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등 쪽에서 투명한 날개 같은 것이 나타나는 듯했다.
제 4 장. 요녕성, 서벽의 홍루 2
문파에 소속되어 무공을 익히면서 양소은은 어느 정도 못 볼 꼴을 봐왔다고 생각했다.
빌어먹을 꼴도 몇 번인가 봤다. 물론 경험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살풍경은 절로 가슴 한쪽이 메스꺼워졌다. 그만큼 단야라는 자의 손속은 잔인했다.
투투투투툭!
천장과 이층 난간에서는 아직도 피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일층 바닥은 피로 흥건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도 피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말이다.
이건 무공 대결이 아니었다. 이런 것은 일방적인 학살. 오히려 무공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적어도 그녀가 배운 것이 정(正)을 지향하는 무공이라면 말이다.
“도저히 두고 봐줄 수가 없군요. 이건 무공이 아니라 학살입니다. 단야라는 저 친구, 왠지 마음에 안 드는군요.”
양소은의 입에서 살짝 감정이 섞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한쪽 입술을 질끈 깨물며 앞으로 나가려 했는데, 그때였다.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거라. 지금은 네가 나설 때가 아니야.”
그녀의 앞에 누군가의 손이 쭉 뻗쳐 있었다. 앞으로 나서지 말라는 말. 마유조의 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사형? 그럼 사형은 이 상황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요? 이 살육을요?”
“그렇습니다, 마 사형. 이건 무공을 하는 사람의 대결이라 볼 수가 없군요. 또한 정종 무공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됩니다. 이건 협의에…….”
“자네들은 이게 무공 대결로 보이나? 이곳이 무공을 겨루는 곳으로 보여?”
혁리의 목소리였다. 그의 말투는 묘한 꼬임이 들어가 있어 양소은과 묘안은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혁리는 그들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정석대로 하자면 이럴 수는 없겠지. 포쾌이긴 하나 나 역시 관원. 하찮은 말머리꾼이라도 함부로 죽이는 저 단야라는 친구를 막아야겠지. 하지만 말이다.”
혁리의 눈은 단야를 보고 있었다. 단야는 이층에서 부서진 난간에 기댄 채 상대를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저 친구가 지켜야 할 마을은 어떨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죽은 그 마을을 본 나로서는 저 친구를 말릴 생각이 없다.”
혁리의 말은 그저 담담히 쏟아졌지만 그 말이 가지는 의미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말은 이 순간만큼은 단야를 묵인한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혁 형님. 그런 식이라면 이 세상은 무법천지지요. 게다가 저건 정파의 무공이 아닐 것입니다. 사악한 무공이 세상을 뒤덮게 하실 것입니까, 사형?”
모안의 목소리에 마유조의 눈길이 돌려졌다. 물론 구구절절 옳은 소리였다. 모안의 입장에서 본다면 말이다.
그러나 단야나 혁리, 자신이 보는 입장이라면 조금 달랐다.
단야가 손을 쓰는 저 말머리꾼에게 인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단야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손을 봐주고 싶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건 아닐 거예요.”
“응?”
문득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양소은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가녀린 목소리의 주인공은 월홍이었다.
월홍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양소은의 다리춤을 꽉 잡고 있었다. 월홍의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단야 아저씨가 사악한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거…….”
“아, 그래?”
양소은은 무슨 소리인가 했다. 월홍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만했다. 적어도 월홍에게 단야는 하나뿐인 보호자.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하나 이어진 월홍의 말에 모두 두 눈을 둥그렇게 뜰 수밖에 없었다.
“단야 아저씨도 모르거든요, 그 자신의 과거는. 그런데 사악한지 아닌지 어찌 알겠어요.”
“…….”
쭈욱 뻗은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방이 늘어져 있는 형태였다. 양측으로 보이는 방의 개수는 약 이십여 개. 꽤나 큰 유곽이었다.
이 안에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더 있는지 모르나 노리는 것은 단 한 명. 저 어릿한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오구라는 자였다.
왼손에 든 궁과 오른손에 든 기형 단도, 이것이 그가 가진 전부였다. 단야는 왼손에 든 대궁을 등 뒤에 멘 화살통과 같이 쓰도록 고안된 활집으로 돌렸다.
스읏.
허리 뒤춤으로 왼손을 돌린 채 오른손에 든 도를 가슴께로 들어 올리는 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문득 그의 귓가에 오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이거, 그냥 활만 잘 쏘는 것이 아니라는 거야? 훗, 좋아. 그 서역도(西域刀) 한번 제대로 쓰는 걸 볼까?”
파파팡!
오구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빠른 일격이 단야에게 쏟아졌다. 여섯 명의 사내. 모두 다 박도를 든 채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병기만 따지자면 박도가 훨씬 무서운 병기였다. 단야가 들고 있는 서역도는 박도보다 길이가 짧으니 말이다. 선공을 당한다면 피할 수밖에 없었다.
여섯 명의 사내도 그 점을 잘 아는 듯 일단 출수하자 가장 빠른 속력을 내며 단야에게 덮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이 서역도의 특징을 잘 아는 듯했다.
피피피핏!
삽시간에 단야의 눈앞에선 하얀 도광이 난무했고, 단야의 몸 이곳저곳에서는 작은 핏줄기가 솟구쳤다.
하나 단야는 그저 한 걸음 뒤로 물러날 따름이었다.
턱.
뒤로 물러나고 싶어도 더 이상 갈 수가 없게 되었다. 난간에 허리가 살짝 걸린 것인데, 순간 단야의 오른손이 뒤로 젖혀졌다.
슷, 파아앙!
오른발에 힘을 준 채 단야는 한껏 젖혀진 오른손을 앞으로 휘둘렀다.
목표는 제일 왼편에 있는 자. 그러자 그의 박도가 허공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서역도의 길이가 작다는 것 외에는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보이자 단야는 팔꿈치를 쫙 폈다.
그러자 가속이 된 서역도가 사내의 박도 위에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사내는 서역도와 박도와가 차이가 크기뿐인 줄 아는 듯싶었다.
비록 길이는 짧을지 몰라도 그 두께는 세 배가 넘는 것이 단야가 들고 있는 서역도였다.
더욱이 도신이 유려하고 뒤로 쏠리는 여타의 도와는 달리 도의 무게중심이 앞쪽으로 쏠려 있어 위력이 배가되는 형태였던 것이다.
그저 베는 힘이 강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달리는 말에서 치는 것만큼 엄청난 관통력이 생기는 것이다. 특히나 이렇게 치는 순간 팔목과 팔꿈치의 회전을 크게 돌린다면 놀라운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쩌어어어엉!
“크아악!”
사내의 입에서 커다란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단야의 손에 들린 서역도는 박도를 반으로 가르며 그 뒤에 있는 사람까지 같이 갈랐던 것이다.
철로 만든 갑주까지도 갈라 버리는 강렬한 힘. 당연히 칼로는 막을 수 없었던 것인데, 단야는 이를 잘 아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허리를 휘돌렸다.
휘이잇, 따라라랑!
회오리가 치듯 강렬한 일격에 반 토막 난 박도의 조각이 허공에 치떠 오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세 명의 장정이 피를 토하며 뒤로 튕겨 나갔던 것이다.
이어 단야는 나머지 세 사람도 같이 쳐내려 했다. 한데 어디선가 강렬한 기운이 그를 향해 뻗어왔다.
“…….”
틀림없이 그를 향해 무언가 날아오고 있었다.
세 개의 박도가 그를 향해 날아오지만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단야는 신형을 모로 세운 채 양 무릎을 꿇었다.
쉬쉬쉿! 피이이잇!
왼 어깨에 조금 깊은 상흔이 남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정도라면 어떻게 움직여 볼 만했다. 하나 이어진 공격은 절대 맞아선 안 되는 것이었다.
파파파팟!
“크악!”
“커어억!”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다름 아닌 지금까지 단야를 향해 덤벼들던 사람들. 그런데 단야가 손을 쓴 것이 아니었다.
손을 쓴 것은 저 뒤에 있는 자. 오구였다. 그의 손에서 발출된 암기가 그들을 꿰뚫은 것이다.
따라랑!
오른손을 빠르게 휘둘러 정면으로 날아오는 암기를 쳐낸 후 단야는 허리를 뒤로 젖혔다.
지면과 수평으로 될 정도로 크게 눕히자 그의 눈앞에 무언가 스치듯 지나갔다.
터어엉!
난간 위에 꽂힌 것은 작은 강침이었다. 약 삼 촌 정도의 강침. 오구는 수하고 뭐고 개념이 없는 자였다.
“이것참, 볼수록 재미있는데? 큭큭.”
오구의 목소리엔 비웃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단야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신형을 바로 세웠다.
“설마하니 이 한 수를 피할 줄이야. 하나 이로써 네 실력을 알았으니 그 녀석들도 편히 눈을 감겠지.”
오구는 가운데 복도의 제일 끝에 서 있었다. 약 삼 장여가 살짝 넘는 거리. 암기를 날리기에 가장 좋은 거리를 찾았던 것이다.
어느새 그의 양손엔 각기 세 개, 총 여섯 개의 강침이 들려 있었다. 오구는 진한 웃음과 함께 양손을 들어 올렸다.
이 정도면 될 터였다. 상대가 조금 강해 보이는 듯하지만 이 거리라면 충분했다. 자신의 수하들과 자신은 같은 수준이 아니니 말이다.
비록 당문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사람에게 사사해 정식으로 무공을 배웠다.
비록 비도 대신 강침으로 대신하여 시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력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강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터였다. 더욱더 빠른 속력에 은형(隱形) 조건도 좋아 그에게는 딱 맞는 무기였던 것이다.
이제 이 강침을 떨쳐 내면 이 싸움은 그의 승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단 시작하면 소매에 장착한 수백 개의 강침이 연속으로 발출하게 되니까 말이다. 한데,
터어엉!
“크아악!”
오른 어깨를 불에 지진 것 같은 감각에 오구가 비명을 질렀다.
그와 함께 몸이 뒤로 확 밀려 벽에 부딪쳤지만 그런 고통은 어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게…….”
놀란 오구는 눈을 돌렸다. 그리고는 두 눈을 부릅떴는데, 그곳엔 기다란 화살 하나가 박혀 있었다.
“비, 빌어먹을!”
그는 후회했다.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상대의 원거리 무기 실력 역시 대단함을 말이다.
어느 틈에 단야의 손에 대궁이 쥐어져 있었던 것이다. 득의의 순간 잠시 마음을 놓은 것이 실수였다.
터어엉!
“크아아악!”
단야는 오른 어깨에 이어 왼 어깨까지 꿰뚫어 벽에 박아버리곤 시위를 내렸다. 두 개의 화살이 자신을 벽에 매달아놓은 꼴이라 오구는 버둥거렸다.
“비, 빌어먹을 화살 따위! 이야아압!”
끼긱.
오구는 한순간 내력을 끌어올리며 어깨를 떨었다. 단숨에 부러뜨리고 일단 몸을 숨겨야 할 터였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이내 바꾸어야만 했다.
“무슨……!”
양어깨에 박혀 있는 시커먼 화살. 그것은 내력을 끌어올렸음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제야 저 활에서 나오는 화살이 근거리에서도 왜 이리 강력한지 잘 알 수 있었다.
전체가 쇠로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양손이 자유로운 상황이면 모르나 지금처럼 벽에 붙게 되면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다.
부러뜨린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야, 이 자식들아! 지금 뭐……!”
터터텅!
“…….”
오구는 목울대를 꿀꺽 삼켰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순 세 개의 화살이 그의 머리 주변에 와 꽂혔던 것이다.
양쪽 귀를 스치며 두 발이 꽂혀 있었고, 백회혈을 스치며 한 발이 머리 위에 꽂혀 있었다.
이번에 박힌 화살은 검은색이 아닌 회색의 일반적인 화살이었다.
실로 귀신같은 궁술이 아닐 수가 없었다. 도무지 이 화살은 언제 날아왔는지 기척조차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궁술에 질렸는지 좌, 우측에서 수하들이 나오지도 않고 있었다. 오구는 질끈 입술을 깨물며 빠르게 머리를 회전했다.
일단 그의 몸은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양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수하들이라도 싸워줘야 했다. 그러나 이도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