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는 저런 인간들 왜 끌고 가냐고 투덜대던 누나 맞아? 처음에는 누나의 호기심이려니 했는데, 저 정도까지 제크 아저씨를 두둔해 주는 걸 보니 나도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여관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지만 바깥의 가로등에는 마법 불빛이 반짝였고, 사람들이 시끌시끌 거리면서 다니는 게 낮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도 누나도 엄마도 거의 하루 종일 마차 안에 멍하니 있어서인지 피곤하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아 간단히 저녁을 시켜 먹고는 곧 잠자리에 들었다.
어차피 축제는 내일부터이니, 오늘 축제 전야제는 빼먹어도 상관없겠지……?
다음날 아침, 전날 일찍 잔 덕분에 일찍 일어난 우리는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난 뒤 건너편 여관으로 갔다.
용병들 중에서 몇몇은 아직 자고 있는지, 여관 안의 식당에는 대여섯 명 정도만 아침 식사 중이었다. 그나마 우리 용병들은 세 사람뿐이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제크 씨?”
“안녕하세요, 아가씨? 구경하러 나가기 좋은 날씨죠.”
누나의 화사한 미소에 역시 미소로 답하면서 세 명의 용병 중 제크가 일어나서 우리를 맞았다.
덕분에 제크 아저씨는 엄마와 누나에게 눈길을 보내던 다른 남자들에게서 바로 분노와 부러움, 저주가 함께 섞인 눈빛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제크 아저씨는 그 눈길을 전부 다 무시하고 당당하게 우리를 맞았다.
“벌써 식사를 마치신 모양이죠?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저희도 곧 식사를 마치고 바로 안내를 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호위도 겸해 주시는 거겠죠?”
“하하하! 당연한 거 아닙니까?”
하아! 이제 누나와 제크 아저씨의 저 다정한(?) 대화를 들어도 혼돈 상태에 빠지지는 않지만, 심히 걱정이 된다는 엄마의 한숨 소리가 내 한숨 소리와 함께 섞여 나왔다.
제크 아저씨는 주위의 동료들을 닦달해서 얼른 식사를 마치고 곧 일어섰다.
그동안 우리는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음료를 마시면서 주위의 시선을 계속 느껴야 했다.
참다 참다 못 참겠는지 누나의 살벌한 눈빛이 쏟아지고 나서야 겨우 주위의 시선이 거둬졌다.
“오래 기다리셨죠? 자, 이제 즐거운 관광을 시작해 볼까요?”
제크 아저씨는 두 명의 용병들 중 한 명을 데리고 우리에게 왔다.
남은 한 명에게는 아직 자고 있는 사람이 일어나면 저녁까지 자유시간이라는 말을 전해 주라고 시켰단다.
하긴 이런 축제 거리를 용병 십여 명을 끌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리고 우리와 함께 갈 남자를 소개 시켜 주었다.
“라이크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녀석은 제가 처음 용병 할 때부터 같이 해 온 특별한 동료죠.”
“아, 예. 제크 녀석 말대로 특별하게 악·연으로 묶인 불행한 동료 사이죠.”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해야겠냐?”
“사실이잖아, 너의 그 여자 갈아치우는 버릇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이, 이봐. 라이크….”
헉! 엄마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왜 그 뒤처리(?)를 내가 다 떠맡아야 되냐고?”
앗! 이번에는 얼굴이 새하얘지셨다.
“어, 어이 누가 들으면 정말인줄 알겠다.”
“그럼 거짓말로 들으라고 이 말 하는 줄 알아? 하여튼 여자라면 귀족부터 노예까지 안 건드린 여자가 없으면서…!”
어? 이제는 부들부들 떠시네…. 어‥, 엄마 왜 손에 마력을 모으는 거야?
“티아루아 아가씨라고 하셨죠? 부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울고불고하는 아가씨 뒤처리 임무를 다시 맞게 되는 건 절대 사양입니다.”
“하하하! 라이크….”
‘하하하! 이거 저기서 한마디만 더한다면 위에서 당장 메테오라도 떨어질 분위긴데……? 아악! 라이크 아저씨 제발 그만하세요! 천신만고 끝에 구경 나온 인간 세계인데, 하루 만에 도시 하나 박살내고 돌아가 버리는 허망한 여행은 싫다고요!!’
그러나 여기서 구원자는 항상 등장하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내가 본 수많은 소설에서도 그랬듯이 지금 상황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살벌해지는 분위기를 잠재우는 구원자 등장이시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이크 씨. 그러나 걱정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전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굳이 말을 하자면 만만한 일반 귀족 딸로 보시면 큰 코 다치실걸요.”
자신만만한 누나의 말투와 위풍당당한 저 태도…! 동료의 험담을 늘어놓고, 그 말에 쩔쩔매던 두 남자의 입을 한순간 다물게 하기에 충분한 박력이었다.
덕분에 엄마의 살기를 가라앉히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은 적은 것만도 못하리니….
“그러니 제크 씨는 저를 어찌해 보려고 생각하셨다면 지금까지 다른 여자에게 해 오셨던 것 같은 방법 말고 색다른 방법으로 도전해 주세요. 혹시 알아요? 제가 거기에 넘어갈지도….”
‘자신이 진정시켜 놓은 분위기를 꼭 그렇게 망가트려야 속이 시원한 거야, 누나? 쩝! 두 남자의 표정이 가관이구만….’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약간의 살기를 아직 품고 있던 - 마법으로 치자면 파이어 볼 대 여섯 방 날릴 분위기라고나 할까? - 엄마의 살기를 한순간에 흐트려 놓았다는 정도일까?
엄마가 지금 막 자신들의 목숨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두 용병 아저씨는 아마 지금까지 이런 귀족 아가씨는 처음 본다라는 얼굴로 한동안 누나를 응시하다가 제크 아저씨가 먼저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특이한 아가씨라는 생각을 했지만, 귀족치고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귀족 따님은 처음 보는군요.”
당연하지! 나와 누나는 드래곤이니깐…. 더구나 귀족 생활상 같은 건 책으로만 봤지, 실제로 겪어 본 적이 없으니 그들의 윤리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을 어찌 체험해 보았겠는가?
그러니 지금 누나가 한 말은 일반적인 귀족 아가씨가 한 말이라고 하기보다는 누나 드래곤 본체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말이니…!
용병 아저씨들 눈에 비치는 이런 귀족 아가씨 첨 본다는 표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약간의 썰렁한 분위기가 지나간 뒤 제크 아저씨는 곧 정신을 추스르고, 즐겁게 웃으면서 우리를 안내했다.
일단 아침 일찍 왕궁 앞 광장에서 열린다는 추수 기원제를 구경하기로 했다.
이곳 추수 기원제는 신에게 이번 추수가 풍년인 것을 감사하면서 가장 잘된 곡물을 바치면서 내년 추수를 부탁드린다는 기원을 하는 행사로, 이 나라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종교인 다이리 여신 신전의 대신관이 직접 나와서 집전을 한다.
이때 거의 자주 볼 수 없다는 교황과 황제가 참석하고 덤(?)으로 왕자님, 공주님 등 왕실 식구들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했다.
특히 교황을 보기 위해서 다이리 신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다시피 하기 때문에 빨리 안가면 자리를 못 잡는다는 말에 최대한 서둘러서 마차를 타고 왔는데도 자리는 거의 남아 있질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민에게나 해당되는 말.
귀족들이 앉는 특별석으로 가니 자리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리고 덤으로 특별석이니 만치 전망도 좋았다.
귀족석 건너편 자리는 황실 식구 및 교황과 대신관들이 있는 자리였고, 왼쪽으로는 신관 전사들이, 오른쪽으로는 기사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 덤으로 그곳은 더욱 전망이 좋았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평민들이 구경하는 곳은 의식장의 정면이긴 하지만 의자도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자리는 제일 넓지만 사람이 많아서 무척이나 북적거려 보였다.
- 덤으로 소란스러웠다 - 마차에서 내려 귀족들의 자리 입구로 가자 그곳을 경비 중인 경비병들이 한동안 헤헤거리면서 우리 가족, 정확히는 엄마와 누나를 쳐다보았다.
‘이거 가는 데마다 시선 집중이군! 하긴 그만큼 엄마와 누나가 예쁘니깐 쳐다보는 거겠지…. 더구나 오늘은 다른 귀족들도 만날 수 있으니 엄마는 절대 뒤처지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누나와 내게 엄청난 정성을 들여 치장해 주었고, 엄마도 자신의 미모를 한껏 과시하는 스타일로 꾸미고 왔으니 남자들이라면 눈을 떼지 못하겠지!’
“일찍 온다고 오긴 왔는데, 남아 있는 자리가 있나요.”
우리가 가까이 갈 때까지 여전히 입을 벌리고 바라만 보던 경비병이 엄마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직 자리는 많이 남아 있습니다. 세 분이신가요?”
‘이런! 우리 뒤의 용병 아저씨들은 보이지도 않는가 보군?’
“아뇨, 우리를 호위하는 두 분 포함해서 다섯입니다.”
“아, 예. 그럼 호위하시는 분들이 같이 동석할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경비병은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했다.
언뜻 보니 주위 경비병들이 우리를 안내하는 경비병에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냄과 동시에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를 안내하는 경비병의 어깨에 왠지 모르게 힘이 들어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곳입니다. 이 뒤쪽 의자가 호위병님들이 앉으시는 자리입니다.”
경비병이 안내한 자리는 고급스러운 의자가 쭉 늘어서 있는 자리 중에서 제법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앞쪽에도 의자들이 놓여 있었는데, 아무래도 귀족들 자리와 호위병들 및 호위 기사들의 자리는 따로 뒤쪽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가 안내해 준 자리는 그런 호위병들과 가장 가깝고 전망 또한 좋은 한마디로 특석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아무도 자리에 앉은 사람이 없었다. 저쪽 평민 자리는 아직 바글바글한데 말이다.
“일찍 못 오면 자리를 못 잡는다고 들어서 서둘렀는데 의외군요.”
엄마의 말에 경비병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여튼 이 아저씨는 아까부터 엄마가 한마디 할 때마다 얼굴이 펴지는군.
저러다가 더 펴질 얼굴이 없으면 찢어지겠다.
“그런 말은 평민들에게 해당되는 말이죠. 대부분 멀리서 오시는 귀족 분들이라 이제야 슬슬 오실 시간입니다. 이곳에 사시는 다른 귀족들은 좀 더 늦게들 오십니다.”
“네, 그렇군요. 친절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다는 뜻으로 엄마가 환한 미소를 지어 주자 우리 남매도 덩달아 살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줄곧 무표정으로 따라왔던 누나가 미소 지어 주자, 이 아저씨 더 입이 벌어진다.
“아, 아뇨.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경비병은 곧 돌아서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느려 보였다. 그리고 힐끔힐끔 뒤돌아보는 것이었다.
엄마와 누나는 경비병의 인사를 받고, 곧 앞을 바라봤지만 나는 재미있다는 생각에 경비병을 계속 쳐다보고 있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경비병은 얼굴을 붉히고 허겁지겁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난 킥킥대면서 곧 의식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제야 뒤에 앉아 있던 제크 아저씨가 설명을 시작했다.
“저기 의식장으로 만들어진 큰 무대는 이후 일주일간의 축제 동안 무대라든지 여러 용도로 사용됩니다. 보통 그날에 무엇을 하는지는 입구에 공표하거나 마을 곳곳에 전단을 붙이기 때문에 흥미가 있으신 것은 미리 체크해 두셔야 합니다. 아, 그리고 빠지지 않고 하는 행사 중에서 아가씨께서 마음에 들어 할만한 게 보석 경매라고 생각 되는군요….”
“보석 경매요?”
보석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누나가 눈을 번쩍이며 물었다. 제이크 아저씨는 그 모습을 보고는 그럴 줄 알았다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역시 좋아하시는군요.”
제이크 아저씨의 말에 누나의 고개는 크게 위 아래로 움직였다.
누나는 보물 중에서 보석을 가장 좋아하는데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레어에 놀러 가게 되면 보물 창고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꼭 하나씩 달라고 졸대면서 가져왔었다.
그러니 보석 경매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을 것이다.
“보석 경매는 마지막 날에 하는 행사인데 저쪽에 보이시는 큰 건물에서 보석 세공품 전시회가 열립니다. 전시회가 끝나면 마지막 날에 전시하던 보석들을 경매로 파는 거죠.”
“아아, 멋질 것 같아…, 엄~마!!”
“알았다. 이따가 구경하자꾸나.”
“피이, 구경만…?”
“어이구, 알았어. 구경하면서 사고 싶은 거 몇 개 골라 보렴. 경매할 때 사 줄게.”
“와~아, 역시 울 엄마가 최고!”
“테이도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봐 두어라.”
“아니, 난 별로….”
이상하게 난 보석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남자라서 그런 건가 했었지만 보통 드래곤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보석이나 보물에 환장을 하는데, 난 좀 특이 취향인 것 같다.
뭐 그렇다고 보물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도 할아버지, 아빠에게 얻어 온 게 꽤 있다.
주로 책이나 무기라는 게 누나와 다른 점이긴 하지만…….
난 슬쩍 라이크 아저씨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크 아저씨(?). 이 아저씨는 여전히 누나와 대화를 나누는 데 정신없다.
“여기에 큰 무기점 있나요? 제법 좋은 무기들만 파는 데요.”
“있습니다. 검을 사시게요?”
난 엄마를 돌아보면서 애원의 눈길을 보냈다.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흔드셨다.
“이따가 저녁 때 라이크 씨랑 갔다 와.”
“와~아! 엄마, 감사합니다!”
“너 집에 얻어 온 검도 꽤 되잖아? 그 중에는 마법검도 있었을 텐데….”
누나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하며 물었다.
“그것 가지고는 아직 모자라. 세상에는 신기한 검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르잖아. 멋있는 검들도 아직 있을테고…!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이상한 검 마니아.”
“칫, 누나는 보석 마니아면서….”
“보석이 뭐 어때서! 예쁘기만 한데!”
“예쁘면 뭐해, 쓸모가 없잖아!”
“왜 쓸모가 없냐? 장식하는데 쓰잖아!”
“고작 그것뿐이잖아!”
“죽을래?”
“헉! 아, 아니…. 미안, 누나…!”
윽! 뒤에서 두 용병 아저씨가 보는데 쪽팔리게…, 흑! 하지만 어쩌겠어? 쪽팔리는 것보다 맞아 죽는 게 더 싫으니….
제크 아저씨 왈~!
“하하하 역시…, 사이가 좋으시군요.”
라이크 아저씨 왈~~!!
“아아! 옆에서 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사이가 좋군.”
엄마 왈~~~!!!
“이제는 매일 행사가 되어버렸구나. 어떻게 하루도 안 거르는 날이 없니.”
미아가 된 테이(2)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안내되어서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들어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 가족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덤으로 이제는 여자들의 뜨거운 눈길도 감수해야 했다. 물론 그 눈길은 내게 향했다는 것은 말 안 해도 될 것이다.
아! 가끔 제크 아저씨에게도 향해졌다.
내 옆자리에는 내 또래로 보이는 귀족 아가씨가 앉게 되었는데, 간간이 날 살짝 훔쳐보기만 할뿐, 빨개진 얼굴을 내내 숙이고만 있었다.
반면 누나 쪽에는 백작이라는 잘생긴 청년이 앉아 있었는데, 끊임없이 누나에게 말을 걸어댔다.
그러다가 화가 난 누나에게 ‘난 당신에게 관심 없으니 말 걸지 말아요’ 라는 말을 듣고는 충격을 받고 자리를 퇴장했지만……!
뒤이어 자리에 앉은 사람은 점잖게 생긴 아저씨였는데, 그 아저씨는 엄마에게 관심을 보였다.
다행히 생긴 것답게 점잖게만 앉아 있어서 누나와 엄마에게 한 소리를 안 듣게 되었지만….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교황과 황제가 참석하고, 곧 의식이 시작됐다. 황제라는 인간은 몸이 안 좋은지 안색이 나빠 보였다.
그래도 직책이 직책인지라 내내 근엄한 척하고 있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의식은 기다린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짧고 간결하게 끝났다.
수확물을 바치고 내년에도 풍년을 기원한다는 기도를 드리고 끝이었으니……? 하지만 곧 이어 황제의 축하 연설과 ‘마음껏 즐깁시다’라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법사들이 하늘에 화려한 마법들을 터트렸고, 많은 꽃잎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사람들의 함성이 도시를 흔들었다.
축제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설마, 이게 끝?”
“농담이겠지?”
“이게 끝 맞습니다.”
나와 누나의 허망한 말에 제이크 아저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해 주었다.
누나와 나의 평가를 합치면 그냥 축제 시작될 때까지 여관에서 시간 때우다 나올 걸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왜 이것이 이 도시의 축제 명물 중 하나라는 건지…….
제크 아저씨 말로는 이때가 아니면 같은 신전에서도 얼굴 보기 힘든 교황과 늙어 버린 황제는 둘째치고라도, 젊은 황태자와 어여쁜 공주님들을 볼 수 있는 일년에 단 한번뿐인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우리 드래곤 가족의 관심사 밖이었다.
더구나 멋있는 왕자에 어여쁘다는 공주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지금 국왕에게 자식 없어서라고 했던가?
우리는 천천히 자리를 빠져 나가 우리들을 기다리는 마차로 돌아왔다.
“엄·마, 헤헤헤!”
최대한 귀엽게 엄마를 부르면서 무언가를 원하는 아이의 똘망똘망한 눈빛의 누나를 보고는 엄마는 알겠다는 듯 씩 웃으셨다.
“그래그래, 보석 전시회장부터 먼저 가자꾸나.”
“지금 벌써부터 가시게요?”
“왜 안 돼요?”
걱정 섞인 라이크 아저씨의 말에 누나가 안 되는 이유를 말해 보라고 했다.
“굳이 안 될 건 없지만 첫날에는 사람이 북적대서 혼잡하거든요.”
엄마는 그 말을 듣고는 굳이 오늘 가야 되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누나는 단호했다.
“사람 좀 많으면 어때서요. 응 엄마, 엄마~ 나 또 어머니라고 부른다.”
“으이그! 알았다. 알았어. 요 떼쟁이야!”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표현을 해 보이고는 마부에게 보석 전시회장으로 가자고 했고, 축제 첫날의 구경은 보석 전시회장으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수없는 불만이 쌓였다.
“테이야, 무슨 불만 있냐?”
“별로….”
하여튼 누나는 눈치 빠른 거 빼면 시체라니깐…!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누나의 한바탕 하기 위한 꼬투리 잡기 시선을 받으면서 빨리 전시회장에 도착하기를 빌어야만 했다.
전시회장은 입구부터 사람이 줄을 서서 내 기를 꺾어 놓았다. 옆에 있던 누나도 기가 질린 표정이었지만….
“이익, 이런다고 내가 포기할 줄 알고! 엄마 줄 서요. 오늘 반드시 구경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