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자연스럽게 내 머리 속에서는 배고픈 게 뭔지, 그리고 배고플 때는 무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무언가를 맛있게 뜯어먹는 누나를 보자 배고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아마도 생존의 법칙상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응, 나도 배고파.”
그러자 내 앞에는 나보다 조금 큰, 털이 듬성듬성 나 있는 음식(?)이 놓여졌다.
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새로운 지식 하나를 익힌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음식의 팔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난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 걷지를 못했기에 엄마는 음식 이곳저곳을 뜯어서 내 앞에 내려 놔 주셨다.
뭐 처음에는 엄마가 찢어 주셨다는 것을 몰랐다.
그냥 음식의 곳곳이 이리저리 공중에 떠서 내 앞에 척척 내려오기에 난 처음에 먹는 거는 다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누나가 언제 왔는지 내 옆에 와서 내가 먹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우~씨, 뭐야? 아까는 자기를 쳐다본다고 발로 차더니, 왜 누나는 날 쳐다보는 거야? 밥 먹는 거 첨 보나?’
만약 내가 그때 이 말을 했다면 누나는 틀림없이 처음 봤다고 말하면서 누나한테 대들었다는 이유로 날 두들겨 팼을 것이다.
뭐,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누나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남이 밥 먹는 걸 처음 보는 게 맞긴 맞는 말이다.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고, 가만히 내가 먹는 걸 쳐다보던 누나가 아무 말도 없이 내 앞에 놓인 음식 중에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가슴살 - 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을 가져가더니 먹어 버린 것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의 몫을 먹듯이 내 밥을 먹어 버리는 누나를 난 그저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 틈에 누나는 남은 가슴살 하나를 마저 먹어치워 버렸다.
“우…”
난 또다시 울분을 느꼈지만, 다시 한번 설명하자면 난 현재 걷기는커녕 일어날 수도 없었기에 맨 처음 배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중 하나인 울면서 엄마 찾기를 다시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앙, 엄마. 누나가 내 거 뺏어 먹어!”
그러고 보니 이때 처음 누나를 불렀던 것 같다. 밉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내 누나라는 걸 인정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아가야, 동생 걸 뺏어 먹다니! 그러면 안 돼.”
“하지만 배가 아직 고프단 말이야.”
“그렇다고 동생 걸 뺏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럴 때는 엄마한테 더 달라고 하렴.”
“응, 알았어. 앞으로는 그렇게 할게.”
설마, 그걸로 끝? 만약 그걸로 끝내고 말았다면 난 더 울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엄마가 새로 음식을 더 내주면서 나눠 먹으라고 하셔서 덤으로 누나보고 나한테 ‘미안해’ 라는 말을 시키게 했기에 그만 울기로 했다.
“미안해 동생아.”
‘……근데, 전혀 미안해하는 것 같지 않은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새로 나온 음식 중에 맛있어 보이는 부분만 뜯어먹는 누나의 말을 믿어야 되나?’
그날 나는 제일 맛있어 보이는 부분은 결국 먹어 보지도 못한 채 울분을 삼키며 걸음마 연습에 들어갔다.
먹을 거 다 먹고 쭉 뻗어 자는 누나를 살기 어린 눈으로 봐주고는 나도 누나를 찰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죽을힘을 다해 걸음마 연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하긴 했는데 이게 또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지…!
그러나 그 후 걸을 수 있게 돼서도 난 누나를 결코 이길 수가 없었다.
항상 내가 먼저 당하게 되고, 또 뭔 놈의 여자가 나보다 무식하게 힘이 센지….
그런 사실을 그때까지 모르던 당시의 나는 두 걸음 힘들게 걷고는 힘에 겨워 그대로 엎어져 자 버렸다.
꿈속에서의 나는 누나를 뻥뻥 차 버리는 기분 좋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닥쳐오는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한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꿈만큼은 내 기분을 즐겁게 해 주었다.
탄생, 그리고 만남(2)
툭툭…! 누군가가 내 뺨을 살며시 쳤다.
툭툭……!! 아마 일어나라고 하는 것 같은데, 난 좀 더 자고 싶단 말이야…. 어제 누나를 차기 위해서 걸음마 연습을 너무 심하게 했는지 아직 졸려…. 그러니 건드리지 마, 따위의 말을 웅얼웅얼 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뻥!
갑자기 누군가가 내 등을 무식하게 후려치는 바람에 난 몇 바퀴 구르다가 벽에 부딪쳤다.
덕분에 잠은 확실히 깨 버렸다.
“우~씨, 누구야?”
“나야.”
그러면서 누나는 기분 나쁘다는 투로 날 쳐다보았다, 그러나 단잠을 방해받은 난 기분이 더 나빴기에 째려보면서 말했다.
“왜 때리는 데?!”
“깨워도 안 일어난 게 누군데.”
“난 더 자고 싶단 말이야!!”
“……너 더 맞을래?”
흠칫!
난 누나의 무시무시한 협박에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 상황에서 날 구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엄마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엄마는 먹을 거 사냥하고 오겠다고 아까 나갔어. 그러니깐 이제 어떡할 거야?”
“…….”
내 유일한 구원자가 없다는 데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는가? 그저….
“힝! 누나, 때리지 마.”
라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울먹일 수밖에… - 아, 내 자존심이여‥! - 다행히도 내 동정 어린 시선이 통했는지, 아니면 내가 울던 말던 관심이 아예 없는 건지 - 아마 후자 쪽 같다 - 누나는 바로 내게 용건을 말해 주었다.
“심심해, 같이 놀자.”
“…….”
자신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곤하게 자고 있는 동생을 무식하게 발로 차서 깨우는 이 드래곤이 바로 내 누나라는 사실이 내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불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을 바로 그때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 난 애꿎은 창조신만 씹기 시작했던 것이다.
실제로도 그 후부터 누나는 내 사정 따위는 알바 없다는 듯이 자신의 이익만으로 날 부려먹거나 괴롭혀 댔다.
아무튼 지금 상황은 누나가 심심해하는 상황이었고, 난 잠을 다 깨 버렸고 누나 말대로 같이 놀든지 어쩌든지 해야 되는 상황인데……, 문제점이 하나 생겨 버렸다.
“뭐하면서 놀건데?”
이제 태어난 지 만 하루인 해츨링, 더구나 난 아직 걸음마도 못하는 해츨링이건만 둘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뭐, 인간들의 놀이 중엔 꼬맹이 둘이 앉아서 하는 놀이도 꽤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후에 책을 보거나 아니면 유희 중에 배우게 된 한마디로 먼 훗날의 일이고, 지금 당장은 둘 다 할 게 없었다.
그러나 누나는 천부적으로 무언가 저지르는 - 즉, 말썽 - 방법을 터득하고 태어났는지 항상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날 데리고 놀았다.
- 근데 문제는 날 데리고 노는 게 날 괴롭혀 대는 것이다 - 지금도 누나는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씩 웃으며 말했다.
“웅, 아까 엄마한테 물어 본 게 있어, 허락도 받아 놓았고.”
“응?”
“내가 일어나서 엄마한테 저기 동굴이 뭐냐고 물어 봤거든….”
누나가 손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니 누나 말대로 웬 시커먼 구멍이 그것도 아주 큰 게 떡 하니 있었다.
그제야 엄마 레어를 구석구석 둘러보니 방금 누나가 말한 구멍 이외에도 반대쪽에도 구멍이 있었는데 그쪽은 약하지만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그쪽이 출구 같았다. 그런데…….
“근데 저기에 뭐가 있는데….”
저기 뭐가 있기에 누나가 날 깨웠을까 하는 궁금증에 물어 보았다. 그러자 누나는 마치 큰일을 가르쳐 준다는 것처럼 과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응, 저기에 엄마 보물 창고가 있대.”
“보물 창고? 그게 뭔데?”
“응, 뭐라더라? 아,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을 모아 둔 곳이래.”
“반짝반짝 빛나는 거?”
그 말과 동시에 아마 그때 내 눈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리라….
드래곤의 레어를 뒤지면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인간들에게 퍼져 있는데 그 말은 사실이다.
드래곤은 유난히 반짝거리는 보석이나 보물들을 좋아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뭐 습성이 아닌가 하는 것을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고, 누나에게 그렇게 말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철학적인 생각은 ‘뭐 하러 그런데 머리를 쓰냐? 그냥 좋으니깐, 많이 모아 놓으면 장땡이지’ 라는 말로 멍청이 취급을 당한 적도 있었다.
뭐 어찌 됐건 그때는 나도 본능적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갈 거지?”
“갈게, 갈게.”
누나의 확인 사살 투의 말에 난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고 싶었다. - 이 말 어제도 쓴 거 같은데… - 하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 털썩 쓰러져 버린 나…….
누나는 그런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야, 너 아직도 못 걷는 거야? 바보 아니야, 걷는 게 뭐가 어렵다고.”
난 그때는 내가 아직 못나서 못 걷는 줄 알고 누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울먹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야 해츨링들은 태어난 지 하루나 이틀 정도가 지나서야 걸음마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그때 그 말이 그렇게도 억울할 수가 없었다.
태어난 지 한 시간 만에 걸어 다닌 누나가 훨씬 이상한 거란 말이다!
남자가 쫀쫀하게 뭐 그런 까마득한 옛날 일로 억울해 하느냐고 물어 본다면…. 나도 할 말은 있다.
천년이다! 자그마치 천년 동안 누나는 틈만 나면 걸음마도 늦은 늦둥이라고 놀려댔는데 당신 같으면 쫀쫀한 걸 따질 수가 있겠는가?! 아무튼 난 꼭 그 반짝반짝 빛나는 물건을 보고 싶었지만 어쩌랴, 기어서 갈 수도 없는 걸….
“힝…, 누나 미안…. 누나 혼자 갔다 와.”
그저 아쉬운 마음에 울먹이며 누나나 챙겨 줄 수밖에….
“에고, 울지 마! 누나가 데려가 줄게.”
“어?”
‘지금 내 귀가 잘못된 건가?’
“누나가 데려가 준다고.”
우와, 누나. 이제 보니 동생 챙길 줄도 아는구나. 역시 누나가 최고야, 라고 혹시나 생각하는 당신? 그래, 나도 솔직히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동생을 업고 가는 따뜻한 누나의 사랑 따위와는 애초부터 거리가 먼 방법이란 게 문제였다.
“자, 가자.”
“응, 응. 헤헤! 누나, 고마……. 어? 누나, 뭐 하는… 우꺄갸갸!!”
누나는 내 꼬리를 잡더니 그대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뭐, 해츨링의 몸을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그 짧은 손과 다리, 그리고 머리와 몸의 1대 1 비율의 크기, 더구나 등에는 날개, 이런 몸으로 어부바 같은 방법은 애초에 무리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그러나 태어난 지 하루인 해츨링이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누나의 어부바를 기대한 나는 그저 비명을 지르며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악악! 누나, 아파! 우악, 돌이! 악, 턱에! 악 배가! 우아앙, 아파!”
“아, 거 되게 시끄럽네. 데려가 주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조용히 따라 오기나 해.”
“우아아앙! 누나, 너무해!!”
그리고 그 순간 또 하나 느낀 사실은 우리 누나가 역시 힘 하나는 엄청 세다는 것이었다.
엄마 보물 창고까지 해츨링의 걸음으로는 꽤 먼 거리를 같은 해츨링을 끌고 논스톱으로 갈 수 있는 체력이 과연 태어난 지 만 하루밖에 안된 해츨링의 몸으로 가능하다는 말인가?
창조신이여, 도대체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누나를 만든 것입니까? 아니, 왜 하필 나를 그녀의 동생으로 만드신 거란 말입니까?!!
그렇게 한참을 가던 누나가 멈춰 섰다.
“흑! 다 온 거야? 훌쩍.”
“아니, 길이 세 갈래야. 웅, 이런 말은 못 들었는데…. 뭐, 아무데나 가보지.”
그러면서 날 다시 질질 끌고 가는 것이었다.
어, 잠깐! 만약 그 길이 아니라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싹한 기분을 느낄 때 누나가 멈춰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그 방에는 천장에 빛의 구가 빛나고 있었고, 주위에는 책이 그득했다. - 물론 그게 책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
“잘못 왔나 보다. 다른 곳으로 가자.”
누나는 그렇게 내뱉더니 다시 날 질질 끌고 그곳을 빠져 나갔다.
분명 길이 세 갈래라고 했지! 근데 만약 또 엉뚱한 데로 가 버리면…? 누나는 그런 나의 예상을 훌륭하게 맞게 만들어 주었다. 젠장!
“여긴 또 뭐야?”
그곳은 아까 서재보다 절반이나 더 작은 곳이었고, 생전 처음 보는 - 아, 우리가 태어난 지 아직 하루밖에 안됐으니 모든 게 처음 보는 거지 - 물건들뿐이었다.
나중에야 그곳이 인간들이 쓰는 여러 물품들을 놔두는 곳이라는 걸 알았지만 어찌 됐건 우리의 목적지는 아닌 게 분명했고, 난 다시 누나에게 끌려서 다른 곳으로 가야 했다.
그때의 나는 이미 울기도 포기했고, - 목이 너무 아파서 - 그저 이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흑! 불쌍한 내 뱃가죽, 그리고 내 턱, 흑흑흑!!”
세 번째에서야 제대로 길을 찾은 - 당연하지, 남은 길은 하나뿐인데 - 누나는 멈춰 서서 감탄사부터 뱉었다.
“우와!”
난 누나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아픈 배와 턱부터 만져 보느라 조금 후에야 누나가 신나게 보물들을 만지는 걸 구경할 수 있었다. 그곳은 산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들의 산…! 그리고 가장 많은 건 역시 누런 금들이었고, 형형색색의 보석들과 각종 명검들과 무기들, 왕관과 목걸이, 팔찌, 기타 등등…. 정말로 눈물나도록 멋진 광경이었다.
나중에 인간 세상을 여행하면서 이런 보물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 것인지 알게 된 후에야 왜 그렇게 인간들이 우리들의 레어를 목숨 걸고 찾으려는지 알게 되었다.
인간들 입장에서는 잘 찾은 드래곤 레어 하나면 평생은커녕 대대손손 놀면서 먹고도 다 못 쓸 돈을 얻게 되는 것이니, 목숨 걸고 찾아다니는 거겠지.
“우와, 멋지다! 이야, 이건 뭘까? 아, 머리에 쓰는 건가 보네. 이야, 이건 뭐 어떻게 하는 거지?”
누나는 보물의 산더미를 헤치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부러웠던 나는 나도 어떻게 하든 하나 주워서 가지고 놀려고 노력을 했지만….
어쩌랴! 가뜩이나 힘도 없는데, 방금 전까지 끌려 다니느라 아파서 더 힘이 안 나는데….
“누나!”
“와와, 이건 또 뭘까?”
“누나!!”
“응, 동생아. 이것 봐, 멋있지?”
“힝, 누나~~~!!”
“아, 귀 아파.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누나, 히잉. 나도 나도.”
난 손을 마구 흔들어 지금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면서 최대한 애처롭게 누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절반은 포기한 채였다.
어제부터 누나의 행적을 생각하면 과연 나한테 잘 해 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에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손만 흔들어 댄 것이었다.
그러나 내 자포자기식의 손 흔들기가 통했는지 누나는 뭔가를 주섬주섬 챙겨서 내게 오더니 보석과 왕관으로 치장해 주는 것이었다.
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내게 누나가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
“응, 응.”
난 정말로 마음에 든다는 표현으로 최대한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덕분에 머리에 씌워 놓은 왕관이 댕그랑 소리를 내면서 바닥을 굴렀고, 미소가 머물던 내 얼굴에서 급속도로 핏기가 가셨다.
‘우왕, 난 이제 죽었다.’
‘감히 누나가 치장해 주는 게 마음에 안 든다고 내동댕이치냐!’ 라는 불호령과 발길질을 예상하고 미리 겁을 집어먹은 내게, 뜻밖에도 ‘조심해야지’ 라는 누나 말과 함께 떨어진 왕관을 손수 집어서 내 머리에 다시 씌워 주는 누나의 모습에 난 너무나 감동해 버렸다.
누가 말했는지 모르지만 ‘불행을 많이 맛본 사람은 조그마한 행복에도 엄청나게 감동 한다’라는 말은 정말 제격인 말이었다.
이런 누나의 조그만 친절이 지금껏 누나에게 갖고 있던 악감정을 모조리 녹여 주었고,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누나가 내게 천사처럼 보였다.
“얘들아, 어디 있니? 밥 먹어야지…. 애들이 보물 창고에 갔나?”
위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리자 누나는 그 즉시 ‘네’ 라고 대답하고는 날 쳐다보았다.
“동생아, 지금 나는 너 데리고 가기에는 힘에 좀 부치는 것 같거든. 그러니깐 엄마한테 가서 너 데려와 달라고 부탁할 테니깐 여기서 잠시만 이거 가지고 놀고 있어”
라고 하면서 동생이 귀엽다는 듯이 쓰다듬어 주기까지 했다.
‘흑흑, 누나. 지금까지 누나를 잘못 봤나 봐. 이렇게 착하고 좋은 누나였는데, 난 누나 동생이어서 정말 행복해’ 라는 눈빛을 보내 주자, 누나는 후후후 웃으면서 빠르게 아장아장 걸어서 - 이런 표현이 맞으려나? - 올라가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 엄마가 날 데리러 오실 때까지 난 누나가 놓고 간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아유, 우리 귀여운 막내. 재미있게 놀고 있었어?”
반가운 엄마 얼굴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날 내려다보자 가뜩이나 기분 좋은 상황에서 더욱 더 기분이 좋아진 나도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마 이거 봐. 누나가 이거 전부 다 나 가지고 놀라고 갖다 줬다.”
“어머나, 누나가 벌써 동생을 챙겨? 우리 막내 기분 좋았겠네.”
“응, 기분 좋아. 에헤헤! 나 엄마도 좋고, 누나도 좋아.”
“그래, 그래. 자, 그만 놀고 가서 밥 먹자. 우리 막내는 이따가 걸음마 연습도 해야지.”
“네.”
대답이 끝남과 동시에 내 몸은 허공에 떴다. 아마도 엄마가 띄운 것 같았다. 난 무섭다기보다 신기하다는 기분에 마냥 즐겁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