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번에는 제법 간단한 규칙이고 그래도 못미더워하는 내게 누나가 책을 보여 주었기에 어느 정도 규칙과 펀치 날리는 방법, 주먹 쥐는 방법 등을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물론 인간의 경우에나 해당되기 때문에 해츨링인 나와 누나로서는 약간 수정을 해야 했지만….
“자, 그럼 꼬리만 같이 사용하기다. 머리나 다리를 사용하면 안 돼.”
“응, 누나 각오해.”
“호호호, 제법 귀여운 소리도 하네. 그건 내가 할 말이란다. 테이야.”
난 이번 기회를 복수혈전으로 삼을 생각에 정말로 힘 조절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서 덤벼들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누나 역시 힘 조절 따위는 생각 안한 것 같다.
아니 전에 레슬링 사건 때문에 엄마한테 혼났던(?) 경험 때문이었는지 그래도 그날은 날 기절시킬 때까지 패지는 않았다는 것이 유일한 행운이랄까?
아니지 기절도 못하고, 그 고통으로 밤새워서 끙끙대야 했으니 불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테이야, 테이야! 이번에는 격투기 책을 찾아냈어.”
격투기라기보다는 무식하게 휘두르는 꼬리와 발차기에 나가떨어졌고, 그리고 다시 며칠 후….
“테이야, 테이야! 이것 봐 검술에 관한 책이야!”
진짜 검은 위험했기에 기다란 몽둥이를 사용하긴 했지만 검술이라기보다는 그냥 매타작에 가까운 누나의 몽둥이에 다시 쓰러졌고, 그리고 다시 며칠 후….
“테이야, 테이야! 이건 동방이라는 나라의 격투기인데 태권도래!”
누나의 화려하다고 전혀 볼 수 없는 무식한 발차기에 나는 레어 바닥을 굴러다녀야 했고, 그리고 다시 며칠 후….
“테이야, 테이야!”
“우와앙~~~, 누나, 제발 나 좀 살려줘!!”
도대체 엄마 레어엔 무슨 놈의 격투에 관한 책이 그렇게 많은 건지. 난 이제 누나가 책만 들고 뛰어오면 경기를 일으킬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누나 덕분에(?) 우리가 날 수 있게 되는 열 살까지 심심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정말 심심하지는 않았다.
며칠에 한 번씩 정확하게는 엄마의 외박 날마다 생사의 기로를 체험했는데 심심할 틈이 어디 있었겠는가? 심심한 거 하나는 확실히 없어졌으니 그거 하나는 누나에게 고마워해야 될까?
누나에게 잡혀 살기(2)
십년 째 되는 날 엄마가 이제 날 수 있으니 연습하자면서 우리를 지상에서 꽤 높은 곳으로 끌고 올라갔다.
다른 점(?)에서는 절벽에서 떨어트리기 등 꽤 강도 높은 스파르타식 훈련을 시킨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이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티아와 테이 전용(?) 팔불출 삼룡방 중 한 명이라는 사실 때문에 스파르타식 훈련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궁중에 띄워 놓고 열심히 날갯짓을 시키면서 조금 되었을까 싶으면 슬쩍 힘을 없애서 떨어지면 얼른 공중에 다시 띄워서 다시 날갯짓을 하도록 만들었다.
“아직 멀었냐?”
지금 나는 열심히 날갯짓을 하느라 대꾸를 못했고, 엄마는 그 크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해 대꾸를 하지 않으셨다.
누나는 어떻게 된 게 엄마가 마법을 거두는 그 순간부터 자유롭게 날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는 누나만 멍하니 쳐다보는 엄마 덕분에 내 눈앞에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지상을 보면서 기절 직전까지 갔었다.
누나는 이리저리 엄마와 내 주위를 날아다니면서 간간이 나를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느림보.”
“크아악! 단번에 날아다니는 누나가 괴물이잖아!”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나는 그간의 행적(?) 등을 생각해서 꾹 참고 날갯짓만 열심히 했다.
그날 반나절이 지나서야 나는 간신히 비틀거리면서 날아다닐 수 있었지만, 기쁜 마음보다는 참담한 기분에 울분을 삼켜야 했다.
내 눈앞에서는 누나가 8자 날기, 고속 비행, 직선으로 떨어지다가 다시 날기 등 온갖 묘기를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역시 내 딸이다.’라며 자랑스러워해야 할 엄마도 참담한 기분에 자살이라도 할 것 같은 내 얼굴에 누나 칭찬은 하지 못하고 날 위로하고 계셨다.
혹, 엄마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더 위축되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그렇게 처음으로 하늘을 날게 된 날이 저물어 갔다.
날게 된 이후에도 누나의 내 몸을 이용한 여러 가지 실험(?) 등은 계속되었고, 어느새 난 반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반항해봤자 소용이 없고 한 대 맞을 거 열 대 더 맞는데 무슨 반항인가?
결국 그 후 내 상황은….
“야, 테이야.”
“응? 왜 누나?”
“우, 잠을 잘못 잤나 부다. 어깨 좀 주물러.”
“…….”
“맞을래?”
“무슨 농담을! 누나, 어디가 제일 아파?”
주물 주물.
“아, 좀더 위에 그래 거기 아 시원하다.”
이게 현재 내 상황이다. 정말이지 수도 없이 몇십 몇백 번씩이나 창조신을 원망하면서 살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렇게 살던 중 어느 날 난 드디어 중대한 결심 하나를 하게 됐으니….
‘도망치자!’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건 내 나이 스무 살 되던 해였다.
드래곤에게 스무 살은 정말 어린 나이다. 인간으로 치면 이제 돌 지난 아이 정도라고나 할까?
물론 인간 아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지식과 지성을 겸비하고 있지만 드래곤 입장에서 보면 정말로 갓난아기 취급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가출을 생각할 정도니 얼마나 당하고 살았는지는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다들 눈치 챘을 거라 생각한다.
난 실행의 그날 새벽에 몰래 일어나서 엄마 보물 창고로 가서 검 한 자루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엄마와 누나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바닥에 편지를 쓰고 곧바로 나와 버렸다. 편지 내용? 내용은…….
절 찾지 말아 주세요. 테이.
뭔가 근사한 내용을 쓰고 싶었지만, 당시 시간상 길게 못쓰겠기에…. 그래, 솔직히 말해서 이실직고하자면 당시 머리 상황으로는 저 글이 내 한계였다!!
아무튼 밖으로 나온 나는 무작정 걸었다. 날아가면 좀 더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아마도 마음 한구석에 엄마가 나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남아 있었는지 그냥 무작정 걷기만 했다.
역시 당시의 나는 애는 애였던 것이다.
엄마의 레어 앞에는 자그마한 공터가 있고, 공터 앞에는 역시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시냇물 건너편부터 숲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난 바로 그 숲으로 들어가서 정처 없이 헤매 다녔다.
날아다니게 된 뒤부터는 가끔 엄마가 사냥하는 걸 따라 나서곤 했었지만 항상 숲 위만 날아다녔지 숲 안으로 들어가 본적이 없었다.
이제 막 새벽의 이슬을 머금은 상쾌한 숲의 느낌이 조금은 무거워진 내 마음을 달래 주었다.
빽빽한 침엽수 아래 수풀을 헤치고 지나가면서 어느덧 난 가출이라기보다는 산책 나온 듯한 느긋한 느낌을 받으면서 즐겁게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내 눈에 다섯 마리의 오크가 눈에 띠었다. 사냥 중이었는지 새끼 사슴을 등에 짊어지고 가던 오크와 내가 딱 마주쳐 버린 것이었다.
당시 내 크기는 오크의 두 배 정도로 큰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게 크다 해도 내 정신연령이 인간에 비해 빠르더라도, 어디까지나 난 갓난 해츨링이라는 걸 부인 안 하겠다.
그래서 오크들을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겁먹고 흠칫했다.
그러나 오크들은 나보다 몇 배는 더 겁을 집어먹고 사슴도 팽개치면서 잽싸게 튀는 것이었다.
다행인 것이 오크들은 몬스터라기보다는 하나의 종족이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 솔직히 문화라고 불러 줘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 가지고 있는 종족들이었다.
무식하면 장땡이라는 말이 있듯이 만약 이들이 무식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내게 덤벼 들었을테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 무장한 오크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기에 나로서는 정말 다행인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무식하게 덤벼들었다면…, 아마도 해츨링 슬레이어가 된 최초의 오크들이 되지 않았을까?
“휴우, 깜짝 놀랐네. 다행이긴 하지만 혹시라도 쟤네들이 패거리를 끌고 올지도 모르니깐 도망이다.”
난 도망치면서도 그들이 버리고 간 새끼 사슴을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쯧쯧, 기껏 스무 살 먹은 해츨링을 보고 식량을 버리고 가다니 아깝게 시리…! 뭐 내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지만…….
그러나 혹시나 하는 나의 생각은 맞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어린 해츨링인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지식과 경험으로 미루어 어린 해츨링 근처에는 무시무시한 어미 드래곤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급히 도망쳤다는 사실을 난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모르기는 그들도 매한가지! 설마 여기 있는 바로 내가 누나 등살에 기가 질려 가출한 해츨링이라는 사실을 저들이 어찌 알겠는가?
“어째 저쪽이 시끄러운데…, 역시 날 쫓아오는 건가? 그렇다면 큰일인데……!”
이것 역시 내가 잘못 안 거다.
오크들이 도망친 곳에서 시끌벅적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마을을 버리고, 도망치느라 그랬던 것이다. 그걸 알 리 없는 나는 급히 도망쳤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자존심 상하는 행동이었다. 최강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래곤이 고작 오크들에게 겁을 먹고 도망쳤다니….
그래도 당시 나는 세상을 모르는 어린 해츨링이었기에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본능에 따라 행동해서 그렇게 됐다고, 자위하는 수밖에….
“어디 보자, 이쯤이면 못 오겠지.”
그렇게 한참을 도망치던 나는 계곡 쪽으로 가게 되었고, 바로 그 자리에서 날아 계곡 반대편에 가서야 안심하고 아까 오크들이 놓고 간 사슴을 느긋하게 뜯어먹었다.
‘지금쯤 엄마는 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눈치 채셨을까? 채시고도 남았겠지. 틀림없이 걱정하면서 나를 찾아 헤매고 계실지도…. 훌쩍! 죄송해요, 엄마.’
혼자서 사슴 고기를 먹다 보니 왠지 처량한 기분에 그런 생각이 들자 눈에 절로 눈물이 맺혔다.
정말 엄마 생각만 했다면 당장에 되돌아갔을 거다. 그러나….
‘지금쯤 누나는…? 그래, 누나는 틀림없이 밥이나 배부르게 먹으면서, 가출한 내게 바보 멍청이라고 욕이나 하고 있겠지. 으으으, 대체 누구 때문에 내가 이 나이에 가출했는데!!!’
거의 멋대로 줄거리를 지어서 혼자 그렇게 생각한 나는 다시금 안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굳히고, 남은 사슴 고기를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약간 양이 모자라긴 했지만 그래도 허기를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난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부터 어쩌지! 어디로 가지?’
해답 없는 질문을 내게 하면서 난 그냥 그렇게 푸른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렇게 하늘을 보고 있었을까? 나는 문득 얼마 전에 읽었던 용사 소설이 하나 생각났다.
산 속에서 어머니와 살던 한 소년의 이야기였다.
어느 날 소년이 사냥을 나간 사이 아름다운 어머니는 나쁜 국왕에게 사로잡혔고, 어머니를 구하러 여행을 떠난 소년이 여러 동료를 만나고, 강해지다가 결국 나쁜 국왕을 물리치고, 왕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스치는 엉뚱한 생각 하나….
“그래! 나도 여행을 떠나는 거야. 그리고 여러 동료들과 만나고, 점점 강해지다가 나중에 한 나라의 왕이 되는 거야!”
난 현재 내 모습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결정하자 캄캄하기만했던 앞날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 그러나 실상은 아직도 캄캄하기만 했다는 것을 당시의 나는 몰랐다 -
“자, 그럼 출발이다!”
아직 어디로 갈지도 정해 놓지 않고, 무책임하게 일어선 탓일까? 난 하늘에서 나를 노리는 겁 없는 녀석들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키이이익!”
난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하고 둘러보기도 전에 등에 화끈한 통증을 느끼며 땅에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뭐, 뭐야?! 가, 가고일?”
그렇다. 여섯 마리의 가고일들이 어느새 하늘을 날아다니며 나를 노리고 있었다.
옛날 사악한 마법사들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가고일은 보통 때는 석상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정도로 피부는 단단한 바위 같은 모양이었고, 실제로도 피부가 아주 단단한 몬스터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매우 머리가 좋고, 교활하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놈들은 내가 숲에서 헤맬 때부터 몰래 따라다니다가 내 주위에 엄마 드래곤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습격했던 것 같다.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내가 책을 읽어서 얻은 지식이 맞다면 저 녀석들이 노리는 것은 오직 살육뿐….
더구나 최강이라고 불리는 종족, 비록 지금의 나는 해츨링이지만 어쨌든 드래곤은 드래곤이니…. 그런 최강의 종족을 죽일 수 있다는 흥분 때문인지 그것들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끼에에에엑!! 엄마!!”
난 급히 엄마의 레어 쪽으로 날갯짓을 하면서 날아올랐다. 방금 전까지 용사 어쩌고 했던 생각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 간단히 사라졌다.
일단 살고 봐야 용사 놀이를 하던지 말던지 할 것 아닌가.
그러나 하늘로 날아올라간 것은 실수였다. 이놈들이 무척 빨랐던 것이다.
아니 내가 느렸을지도 모르겠다. 난 본격적으로 날기도 전에 놈들의 공격에 추락했다.
쿵~~!
묵직한 소리가 나면서 내 머리 위에서 별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느끼면서도 겨우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들은 뛰어서 도망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이리저리 공격을 당해서 내 몸에는 상처만 늘어갔고, 결국 난 울음을 터트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끼에에엑, 엄마! 엄마! 우왕!! 누나 살려줘!!!”
“으이그, 이 멍청아!”
“어~라?!”
난 혹시 내가 벌써 죽은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분명 지금쯤 레어에서 밥이나 배불리 먹고 가출한 나를 멍청이라 욕하면서 편안하게 잠이나 자고 있을 위인이라 생각했었으니까…! 그렇다, 바로 누나였던 것이다.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누나……. 그러면서도 난 왜 막판에 누나를 찾으면서 울었을까?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내 옆에 공중에서 누나와 싸우던 한 마리의 가고일이 만신창이가 된 채 내 옆에 떨어졌고, 그제야 위를 올려다 본 내 입은 절로 쩍하고 벌어졌다. 누나는 힘이 무식하게 센 해츨링이었다.
누나는 지금 막 가고일 한 녀석의 꼬리를 붙잡아서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고, 그 원심력에 의한 파워로 주위의 가고일이 동료와 부딪치면서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태어난 지 20년 만에 저런 공중전이 가능한 것이 누나였기에 난 무의식중에 누나에게 도움을 청한 게 아니었을까?
어느새 마지막 한 마리 남은 가고일까지 누나가 무시무시하게 흔드는 무기(?)인 동료 가고일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는 중이었다.
남은 한 놈이 너무 날쌔게 도망 다니자 누나가 열 받았는지 손에 들고 있던 가고일을 그놈한테로 냅다 던져 버렸다.
그러나 그 공격을 능숙하게 피하는 가고일….
하지만 그것은 속임수일 뿐이었다. 가고일이 동료를 피하는 곳으로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날아가서 그대로 머리를 박아 버린 누나….
바위같이 단단한 피부를 가진 가고일은 단말마의 비명만 남긴 채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가고일들이 다 처리되자 난 새로 등장한 누나에게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흑, 반죽음일까? 아니면 초죽음일까? 그래도 동생인데 완전히 죽이지는 않겠지.
이대로 확 도망갈까 생각도 해 봤지만 부상당한 몸으로 누나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괜히 도망가다가 잡혔다가는 매만 늘 것 같아서 그저 훌쩍이면서 동정표를 사는 방법밖에 없었다. - 누나에게 통할지는 미지수지만… -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누나는 어느새 내 앞에 와서 서 있었다.
‘흑, 무서버….’
“이, 이, 이…….”
“훌쩍, 누나! 힝 미안!! 미안 누나!! 잉잉잉.”
“이 멍청아! 죽을 뻔했던 거 알아? 몰라? 그러기에 마법도 쓸 줄 모르는 놈이 무슨 가출이야! 내가 너 비명 소리를 못 들어다던지 이 근처를 안 지나쳤다면 어쩔 뻔했어? 바보짓도 이만저만이어야지, 이 초특급 멍청아!!!”
“흐에엥, 누나, 미안. 때리지 마!”
그러나 누나는 날 때리지 않았다. 그저 날 조용히 껴안아 주었다.
“누, 누나?”
“이 바보야 얼마나 걱정했다고…. 정말 걱정했단 말이야…. 멍청이, 바보…….”
“누‥나.”
“말미잘, 해삼, 약골, 늦둥이”
“누……나?”
“꼴뚜기, 멍게, 해삼, 말미잘, 오크 대가리, 고블린 대가리, 슬라임 지능, 가고일한테도 쩔쩔매는 지능아, 내 동생은 저능아 해츨링….”
“히잉, 너무 심하잖아….”
“바보, 심하긴 뭐가 심해! 난 네가 죽는 줄 알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알아? 이런 말 들어도 넌 아직 모자라! 이 바보 동생아… 흑! 이 바보…. 바보 동생…….”
‘어라? 어라?! 어라라라라!!! 누나가, 누나가!!! 분명 잘못 봤을거야? 이건 꿈이야…. 그래, 눈을 뜨면 여기는 엄마 레어고, 난 엄마 옆에서 막 잠을 깬 상태로 두리번두리번 누나를 찾을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