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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남매
작가 : 강명운
작품등록일 : 20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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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화
작성일 : 16-07-07     조회 : 430     추천 : 0     분량 : 7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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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에게 잡혀 살기(6)

 

 

 

 해가 지고 있었다. 엄마의 레어 앞 공터에서 피처럼 붉은 일몰을 보면서 난 옛 생각에 빠져 있었다.

 처음으로 가출한 날 누나가 구하러 왔을 때의 일이었다.

 가끔 그때 일을 떠올릴 때면 누나가 날 껴안고 걱정했었다고 울던 모습이 생각났다. 꿈이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가슴 뭉클하게 누나의 사랑이 느껴지…….

 “야, 테이야.”

 퍽~! 데굴데굴, 쿵~~!

 “자식이 허약하기는! 기껏 그 정도 찼다고 구르냐?”

 ‘느껴지긴 개뿔이 느껴져, 크아악, 역시 그때 내가 무슨 착각을 했던 걸 거야!!’

 “우씨, 왜 그래?”

 난 땅에 부딪친 머리를 만지면서 투덜거렸다. 이제 제법 머리가 길어진 성룡의 모습을 갖춘 나는 아래로 내리고 손을 어느덧 머리를 더듬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스무 살 가출 미수 사건 이후로 시간은 흘러 이백 년이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누나의 심한 괴롭힘에 다시 한 번 가출을 생각한 때도 있었지만 결국 그날 이후로는 실행에 옮겨 본 적이 없었다.

 현실적으로도 내가 가출을 해 봐야 어디 갈 데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서였을까?

 아무튼 이제는 제법 커진 내 몸과 누나 몸, 덤으로 누나는 커지면 커질수록 그 무식한 힘이 점점 배가 되더니 이제는 근처 몬스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정도로 힘이 세졌다.

 아마도 이 근처 몬스터들은 엄마보다도 누나를 더 무서워할 것이다. 일단 화가 나면 1차로 내게 화풀이를 하고 2차로 근처 몬스터들을 몰살하는 누나니깐.

 “엄마가 오늘 늦을 거라고 저녁 알아서 챙겨 먹으래.”

 “엄마는 어디 갔는데?”

 “아빠 레어에…, 외박이시지, 뭐!”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누나와는 달리 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게 무슨 말 뜻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어릴 때야 뭔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커 가면서 이런저런 남녀간의 일들을 책에서 읽었고 결정적으로 할머니가 가끔가다가 엄마 대신 우리에게 성교육을 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미 알 거 다 안다는 뜻이다. 누나는 얼굴을 화끈거리고 있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내가 말이 없자 다시 한 번 발을 날렸다.

 퍽~! 데굴데굴, 데굴데굴, 쿵~~!

 “우~~~씨, 왜 그러냐고!!!”

 “이게 감히 누나가 말씀하시는 데 딴 짓을 해 놓고 도리어 큰 소리냐!!”

 “…….”

 찍~! 이렇게 나오는 데 내가 뭔 할 말이 있겠는가? 저 자세로 나갈 수밖에! 만약 여기서 더 겁 없이 굴었다가는 누나의 무시무시한 다연발 아이스 미사일이 날아오기 때문이다.

 난 반항을 포기하고 아픈 머리를 만지면서 다시 물었다.

 “그러니깐 왜 불렀는데?”

 누나는 ‘이제야 정신 좀 차렸구나’ 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따가 저녁 먹어야지.”

 “그래서? 엄마가 잡아 놓은 거 있잖아.”

 “에이, 보존 마법 걸린 거 말고, 이왕이면 우리 싱싱한 걸로 먹자, 응? 너도 좋지?”

 생각을 해 보니 나 역시 반대할 일이 아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그럼 지금 빨리 사냥 갔다 와야 되겠네.”

 난 이제 서서히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면서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말했다.

 “그래, 그러니깐 빨리 갔다 와.”

 “…….”

 “아, 그리고 우리 오랜만에 통구이 해먹자. 사슴이나 멧돼지로 잡아 와. 알았지?”

 “…….”

 ‘결국 나 혼자 갔다 오란 소리잖아…. 불공평해’ 라고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을 때 누나 주위에서 특대 아이스 미사일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누나, 그럼 얼른 갔다 올게. 통구이 할 준비하고 있어, 에헤헤!”

 거듭 마하지만 내가 무슨 힘이 있겠나? 아이스 미사일들이 날 노리기 전에 얼른 날아오를 수밖에……. 흑! 힘 약한 게 죄지….

 “그래 테이야, 조심해야 된다. 그리고 빨리 갔다 와~~~.”

 분명히 사이좋은 오누이의 사랑스러운(?) 대화이긴 하다. 누나 주위에 저 특대 아이스 미사일들만 없다면 말이다.

 한숨을 푹 쉰 다음 사냥터인 숲을 날아가다가 어느 정도 날았다 싶을 때 난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폴리모프를 실행했다.

 조그마한 사슴이나 멧돼지들은 숲 위에선 잘 안 보이고, 아직 드래곤 피어를 잘 못 쓰는 나로서는 사냥감들이 알아서 기어 나오게(?) 만드는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숨어 있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게 만들 뿐이지….

 평소 변하는 짧은 은발에 연한 갈색 바지, 그리고 하얀 셔츠 차림으로 변한 다음 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직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으니 빨리 찾아야 하는데….

 “실프.”

 난 엄마가 가르쳐 준 정령 마법 중 실프를 불러내서 주위에 사슴이나 멧돼지가 있는 지 찾아보게 했다.

 실프는 잠시 사라지는가 싶더니 얼마 후 다시 내 앞에 나타나서 날 어딘가로 안내 했다.

 실프의 뒤를 따라 어느 정도 가자 커다란 사슴 한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게 보였다. 내 사냥 방식은 간단했다.

 “실프, 저 녀석 이리 가져와.”

 실프 하나를 더 불러서 사슴을 번쩍 들게 하고는 내 쪽으로 가져오게 만들었다.

 사슴은 갑작스레 공중에 몸이 뜨자 당황했는지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버둥댔다.

 툭!

 난 그런 사슴의 목을 간단히 쳐서 기절시켰다.

 누나와 내가 아빠 레어에 놀러 갔을 때 아빠가 통구이를 먹게 해 주겠다면서 사슴을 잡아 와서 모닥불에 구워 준 적이 있었다.

 그때도 우리는 폴리모프한 상태로 놀러 갔기 때문에 아빠께서 여행을 하게 되면 자주 먹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에게 통구이를 해 주셨던 것이다.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상태라 입맛도 인간으로 변해 있던 우리에게는 처음 먹어 보는 통구이가 굉장히 맛있었다.

 그래서 가끔 우리끼리 사냥할 때 이 통구이를 해 먹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누나가 모닥불을 만들어 뒀겠지, 얼른 가야겠다.”

 난 곧 레어 앞의 공터로 공간 이동했다. 그곳에서는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누나가 모닥불을 피워 놓고 있었다.

 사슴을 - 실프가 - 들고 누나에게 가자 누나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내 동생이야! 빨리 왔네.”

 “그럼, 내가 누군데.”

 “걸음마도 느린 느림보 해츨링.”

 “…누~우~나~아!”

 “아, 미안! 가고일에게 몰매 맞던 허약 체질 해츨링이었지.“

 ”우~~씨!!”

 “뭐야, 그 도끼눈은? 누나랑 한 번 해 보겠다는 거야?”

 “…아니, 빨리 밥이나 먹자.”

 ‘하아…, 약점 몇 개 잡힌 게 이렇게도 괴로울 줄이야…!’

 그러고 보니 아빠도, 할아버지도, 누나한테는 꼼짝도 못 하고 오냐 오냐 하신다. 내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난 누나가 건네주는 단검으로 사슴의 목을 단숨에 베었다. 실프에게 미리 귀띔을 해뒀기에 실프는 내게 피가 튀지 않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배우고, 몇 번 해 봐서 이제는 능숙해진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는 것과 가죽을 벗기는 작업을 했다.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누나와 내가 둘이서만 밥을 챙겨 먹어야 할 때는 가끔 통구이를 해먹는다.

 그러나 그때마다 누나는 불만 피울 뿐 나머지 잡다한 것은 다 내가 해야 했다.

 뭐 내가 누나에게 한 번도 시킨 적이 없어서 이기도 했지만 만약 누나에게 시켰다가는 뭐가 날아올지 모른다는 것을 본능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랄까?

 그리고 더욱 슬픈 현실은 이제는 이렇게 하는 것을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 부부로 치면 공처가라고 부른다지. 현재 누나와 나의 상황을……. 흑! 슬픈 현실이여…….’

 실프에게 근처 나뭇가지 큰 걸 하나 꺾어 오게 만들고, 그 나무에 사슴 고기를 끼워서 누나가 구해 놓은 Y자 막대에 걸쳐 놓았다.

 이제는 엄마가 구해 놓았던 인간들의 조미료 중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서 굽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고기가 구워지는 향긋한 냄새를 맡으면서 난 문득 누나를 쳐다보았다.

 모닥불 빛을 받은 누나의 은색 머리칼은 약간 붉게 보이면서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절로 예쁘다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예쁘면 뭐하나? 속이 시커먼데…! 그런데 정말 속이 시커멓다면 왜 그때 나를 안고 그렇게 엉엉 울었던 것일까?

 그때의 누나는 정말 진심으로 날 걱정하며 울어 줬었다.

 그러나 그때뿐! 그 이후에 보여 준 누나의 더러운 성질은 정말 그때 누나와 동일 인물인지 믿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에? 아, 아니 그냥….”

 난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너, 나한테 반했니?”

 “쿠헥!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그럼, 왜 그렇게 날 쳐다봤는데?”

 “우우…, 그건 그냥…….”

 “그냥?”

 얼라? 누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한테 다가온다. 헉! 또 때리려고? 맞다, 누나는 이유 없이 째려보는 걸 싫어하지….

 근데 방금 전 누나를 보던 내 눈빛이 째려보는 눈빛이었나? 아니었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누나는 내 바로 앞에 쭈그리고 앉더니 내 눈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뭐, 뭐야?”

 “아니! 그냥 내 동생이 참 귀엽구나 하고….”

 “무, 무슨…….”

 “정말 왜 쳐다본 거야?”

 “……그냥이라고 했잖아.”

 “또! 또, 그런다. 자, 내 눈을 쳐다보고 말해 봐. 얼라? 눈 쳐다보랬지, 고개 돌리라고 안 했다.”

 누나는 강제로 내 얼굴을 붙잡고 자신의 눈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윽! 도저히 거짓말 못 하게 만드는 저 눈매….

 “자! 사실대로 말해 봐. 누나를 왜 쳐다봤어?”

 “…그‥ 그게… 불에 비친 누나 머리 결이….”

 “머리 결이?”

 “반짝반짝 빛나는 게….”

 “빛나는 게….”

 “예…, 예….”

 “예…, 뭐?”

 “예쁘구나… 해서….”

 “참, 내!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되지, 그 말하기가 그렇게 힘드니….”

 “아니…, 그냥…….”

 “킥킥킥! 하여튼 요 순진 덩어리….”

 ‘흡! 바‥방금 뭐야?’

 누나가 갑자기 눈을 감고 그리고…, 내 눈에는 눈을 감은 누나의 눈이 바로 앞에 보였고, 그리고는 입술에는 누나의 입술이?!!

 난 반항 따위는 생각도 못 해 보고 그대로 당해(?) 버렸다.

 “누나를 예쁘다고 해 준 내 귀여운 동생에게 답례야. 흠, 아직 어린애한테 조금 심했나?”

 “…….”

 “아, 고기 탄다. 얼른 먹자.”

 누나는 방금 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슴 통구이의 다리를 하나 뜯어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게도 다리 하나를 뜯어 주었다. 난 고기를 먹을 생각도 못 하고, 그저 멍하니 허공만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그게 뭐지? 귀여운 동생에게 답례? 누나가? 나를! 귀엽다고 말한 건가? 그 누나가?’

 난 방금 전 입맞춤에 대해서는 가급적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하면서 누나가 했던 말만 계속 되뇌었다. 그러고 보니 누나에게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귀여운 동생이라는 말…….

 “아, 잘 먹었다. 뭐야, 아직도 안 먹은 거야? 얼른 먹고 자리 치워라. 이 누나는 먼저 잘게.”

 동생의 식욕을 단숨에 뺏어 가 놓고 누나는 자기 배만 채우고는 레어로 들어가 버렸다.

 누나가 없어지고 나서야 난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첫 키스를 누나에게 뺏겨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첫 외출(1)

 

 

 

 적당한 온도, 그리고 널찍한 공간, 빛이 없어도 마법구에 의해 눈이 아프지 않을 정도의 밝기가 있는 커다란 드래곤의 레어 중앙에 드래곤과는 하등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둥그런 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그 탁자에는 붉은색, 검은색, 하얀색, 은발, 금발, 녹색, 푸른색을 가진 각각의 남녀들이 탁자에 앉아서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의논 중이었다.

 그들이 드래곤이라는 것은 새삼스레 설명 안 해도 얼 것이고, 다만 부연 설명을 하자면 그들은 각 일족을 대표하는 로드들이라는 것이다.

 “하아, 해츨링들이 많아진 것은 종족에게는 기쁜 일이지만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이 될 줄은 몰랐군요.”

 그렇게 말을 꺼낸 이는 삼십대의 인자한 얼굴을 가진 긴 은발 머리의 남자 실버 일족의 로드, 샤드락이었다.

 샤드락의 말에 다른 일족의 로드들도 동감을 표현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는데 딱 한 사람…이 아니라 한 드래곤, 블랙 드래곤의 로드라고 추정되는 남자만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설마 그 녀석이 이렇게 크게 사고를 칠 줄은 몰랐습니다.”

 블랙 일족의 로드 다므로는 연신 식은땀을 훔치면서 변명을 해댔다.

 그 역시 삼십대의 남자로 샤드락과는 반대로 근엄한 얼굴이었건만, 그 근엄한 얼굴은 지금 식은땀과 주름살로 불쌍하게 보일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에구구, 너무 불쌍해 보이니 그만두세요. 그게 어디 다므로 님 잘못이에요? 자식 관리 제대로 못한 어미 잘못이지.”

 다므로의 모습이 너무 안돼 보였는지 옆에서 위로를 해 주는 자는 이십대 중반의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초록색의 머리를 단정하게 단발머리로 다듬어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미소를 지닌 그린 일족의 로드, 레이니루였다.

 “레이니루 말씀이 맞습니다. 문제는 지금 지나간 일로 계속 사죄를 하기 보다는 그 시간에 대책을 세워 두는 게 훨씬 급한 일입니다.”

 새하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전부 다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드래곤들 틈에서 유일하게 엘프로 폴리모프한 화이트의 로드, 텐인시야는 엘프들이 봐도 가슴앓이를 할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는 모습이었다.

 “어이구! 로드가 오죽이나 못났으면 그 밑에 일족이 제대로 돼 있겠나? 무슨 애들 관리가 어렵다고 이런 일을 벌려 놔? 이 일을 어떻게 책임질 거야?”

 성질 급한 말투, 굳이 설명 안 해도 알 것이다.

 레드 일족의 로드 그레아드는 불타는 붉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고집과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회의에 다시금 찬물을 끼얹는 대사를 내뱉었다.

 다므로의 고개는 다시금 숙여졌다.

 다른 로드의 얼굴은 ‘이 양반이 기껏 가라앉았던 분위기 풀어놓으니깐 왜 다시 가라앉히고 난리야’ 라는 표정을 눈에 가득 담은 채 그레아드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런 눈빛에 기죽을 레드 일족이 아니었으니 그들의 눈빛을 ‘흥’ 이라는 코웃음 한방으로 외면했다.

 잠시 후 허리까지 오는 푸른 머리를 곱게 하나로 따서 묶은 이지적인 미녀의 모습을 한 블루 일족의 로드 다이넬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확실히 이번 일로 비상사태가 걸렸고, 덕분에 우리 종족의 최대 즐거움인 유희를 한동안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번 블랙 해츨링 가출 사건 전에도 수많은 가출 사건이 있었으니, 어찌 보면 이번 일도 예상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언제 어떤 종족에게서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사건이었는데도, 우리가 대비를 너무 게을리 했던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이고 또박또박한 그녀의 말을 텐인시야가 이어받았다.

 “맞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이번 일은 블랙 일족에서 재수 없게 걸렸다고는 하지만, 원래 이번 일이 터질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일족은 레드 일족이었잖습니까?”

 그 말에 일동은 고개를 끄덕였고, 당연히 레드 일족의 로드의 얼굴은 열 받아서 벌겋게 변했다. 씩씩거리긴 했지만 반문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가장 높은 가출률을 자랑하는 레드 일족은 해츨링이 태어날 때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일족 전체가 어쩌다가는 종족 전체가 가출한 해츨링을 찾아 나선 적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의 레드 일족 로드인 그레아드 역시 일 년 동안 인간 세상으로의 가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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