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이들의 말을 조합해 보면 블랙 일족의 해츨링이 인간 세상의 모험을 동경해서 가출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흔한(?) 해츨링의 가출에 이렇게 각 일족의 로드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만약 아직껏 가출한 해츨링이 안 잡힌 것이라면 지금 전 종족이 이 아이를 찾아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용감무쌍한 해츨링은 이미 잡혀 와서 엄마에게 반 죽도록 맞아서 레어에 갇혀서 외출 금지령을 받은 상태였다.
그럼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걸 설명하자면 현재 이 드래곤들이 사는 대륙부터 설명해야 한다. 그리노 대륙이라 칭하는 이 대륙에는 큰 제국격인 나라가 여섯이 있다.
그리고 기타 작은 나라가 있는데, 이 작은 나라는 제쳐 두고 제국격인 다섯 나라 중에서 아주 특이한 나라가 하나 있다.
대륙 서쪽 끝에 위치한 프론트 연합국이라는 나라인데 이 나라는 말 그대로 여섯 개의 작은 나라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인 면에서 협력해서 세운 연합국이었다.
여기까지는 별다르게 특이한 연합국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런데 정말 특이한 점은 이 나라를 연합하게 만들고, 다른 제국에 비해서 작은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은 여섯 명의 신적인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일명 카이저 드래곤이라고 불리는 드래곤들 중에서는 돌연변이적 존재인 가장 신에 가까운 힘을 가진, 보통 드래곤들보다 몇십 배는 더 살아간다는 특이한 드래곤들이 각 나라의 수호신으로 떠받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드래곤들은 인간들에게 수호신 대접을 극진히 받으면서 그들의 나라를 도와준다.
그리고 오랜 연륜에서 나온 경험으로 그 나라의 정치적·경제적인 문제와 가끔 일어나는 각 나라들의 작은 분쟁을 중립적인 위치에서 해결해 주기도 하기 때문에 프론트 연합국은 다른 네 개의 제국들과 비교해서 가장 작은 국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장 번성한 나라이기도 했다.
더구나 드래곤들은 자국 내 분쟁은 말로 해결해 주지만 타국의 침략에는 손수 힘을 빌려 주기도 했기에 다른 나라들이 프론트를 넘보지 못하는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다른 드래곤들도 지금 자신들의 로드보다 몇 배는 더 살아왔다는 그 드래곤들을 ‘신에 가장 가까운 자’ 라는 뜻으로 그들을 신룡이라고 부르면서 칭송해 왔었다.
그런데 어찌 보면 그 신룡들의 나라라고 할 수도 있는 프론트 연합국의 나라 중 황금용 골드 드래곤 세이고든이 있는 나라인 세인트의 한 작은 마을이 말 그대로 개 박살이 난 것이었다.
더구나 마을을 개 박살 낸 장본인이 바로 가출했던 그 블랙 드래곤의 해츨링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엄마의 감시망을 피해 인간들 마을에 놀러 나간 것까지는 좋았지만, 책만 보고 인간들의 생활상을 배워 왔던 초보 드래곤이 뭘 알겠는가?
결국 노예 상인에게 납치당해서 - 납치당했는지조차 모르고 - 돈 많은 변태 귀족에게 팔려 갔다가 귀족이 덤비니깐(?) 놀라서 이성을 잃고 그 지역을 완전히 개 박살 내버린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드래곤들에게는 인간들 마을 한두 개 파괴되건 말건 하등 상관이 없었지만, 문제는 그 파괴된 마을이 황금용 세이고든의 관할지인 세인트라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세이고든에게 가출 해츨링은 잡혔지만 아무 죄도 없는 다른 마을 사람들까지 휘말려 죽은 것에 기분이 언짢았는지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해결 방안을 세우지 않을 거라면 당분간 유희는 나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기에 귀찮은 일들은 질색인 드래곤들이 이렇게 회의까지 열게 된 것이다.
“에휴! 차라리 부수려면 옆 나라인 가이라가나 다이러스나 부숴버릴 것이지, 왜 하필이면 프론트를 건드려 가지고 이 고생이람…….”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해결 방법이 나오지 않자 결국 그레아드는 고개를 쳐 박고 분개했다.
솔직히 나이가 많아서 각 일족의 로드가 된 거지, 게으른 드래곤들에게 이런 따분한 회의는 곤욕이다 못해 고문이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골드 드래곤 로드, 카알로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방법은 어떨까요?”
그러자 모든 이들의 눈이 ‘이 회의를 빨리 끝낼 수 있는 아이디어라면 뭐든지 좋아요’ 라는 눈빛을 강하게 담아서 쳐다보았다.
약간의 긴장을 느낀 카알로드는 헛기침을 몇 번하고는 입을 열었다.
첫 외출(2)
“예?”
“엄마, 방금 말 농담 아니지? 나중에 물리기 없기야!!”
나는 놀라서 입을 딱 벌렸고, 누나는 농담이 아니지를 계속 반복했다. 그만큼 엄마가 가져온 소식은 우리 남매에게 충격이었다.
“그래! 농담도 아니고, 거짓말은 더더욱 아니란다.”
드래곤은 가족들에게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종족이다. 물론 아직 어린 해츨링들은 완전한 성룡이 아니니 조금 허술하다는 사실은 넘어가더라도 분명히 엄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와!! 만세, 만세!!”
“와! 와! 엄마, 언제 가? 응! 언제 출발할 건데?”
이번 블랙 해츨링 가출 사건 이외에도 과거 수많은 가출 사건들은 물론이거니와 오랜만에 해츨링 풍년을 맞은 각 드래곤 일족에게는 우리 남매 이외에도 여덟의 해츨링들이 더 있었다.
오랜만에 수많은 해츨링들이 태어난 것은 분명 신의 축복이었지만, 이 수많은 해츨링들이 모두 엄마 아빠를 닮아서 가출을 일삼아보라! 그 혼란은 불 보듯 뻔한 것 아닌가?
더구나, 이번 블랙 해츨링은 전에 없이 신룡이 수호신으로 있는 나라에서 사고치기라는 초유의 수완을 발휘해 그 게으른 드래곤들에게 대책 마련을 하고 만들었고, 그 결과는 ‘해츨링들은 인간들이 축제를 열 때면 십 년에 한번씩 부모 동반 하에 놀러 갈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오직 축제 구경만 할 수 있고, 그 이외에 여행을 다닌다든지 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레어 밖을 벗어난다는 게 어디인가?
“뭐, 우리 티아와 테이는 워낙에 착해서 300살 될 때까지 가출 한번 안 하고 착하게 커 주기 때문에 안 가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다른 애들도 다 가는데 우리 귀염둥이들만 안 간다면 서운하겠지?”
“네~~~.”
누나는 시원스레 대답했지만 난 엄마의 가출 한 번 안 하고, 라는 대목에서 속으로 찔끔해서 조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과거 엄마에게 안 들켜서 - 누나가 숨겨 줬다 - 그렇지, 이미 스무 살 때 가출 미수 사건을 일으킨 경험이 있었지 않은가.
엄마를 속이는 결과가 됐지만, 뭐 어떤가? 가출이라고 해 봤자 겨우 아침 나절 조금 돌아다니다가 가고일에서 쫓겨 누나에게 도움 받고 집에 돌아온, 가출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시간이었으니 그냥 모른 척 넘어갈 수밖에….
“마침 가까운 다이러스 왕국에서 추수제가 열린다고 하니까 거기로 놀러 가자꾸나. 음! 일주일 후라고 했지, 아마….”
“와아! 와아! 와아!”
“일주일 후? 지금 가면 안 돼? 응응, 엄마.”
“안 돼요, 엄마도 너희들 여행 준비도 해야 하고 로드님에게 보고도 해야 하지…. 뭐, 하지만 보통 인간들의 축제 때는 여관 잡기가 힘드니깐 축제 이틀 전에는 가 봐야 되고…, 그래, 나흘 후에 출발하자꾸나, 알겠지?”
“네!”
“네!!”
“그러니깐 그동안 인간들 역사서라든지 예절 같은 책 좀 읽고 너희 나름대로 준비하렴.”
“네!”
“네!!”
이 뜻하지 않은 행운…. 그러나 그 행운이 내게는 평생 잊지 못할 불행한 추억이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아아, 창조신이시여! 저의 누나를 만든 것도 모자라서 꼭 이렇게 나를 고생시켜야 속이 시원하십니까?!!!
그리고 대륙, 나중에 다른 대륙을 발견하게 되기 전까지 꽤나 큰 대륙으로 꼽히고 있고, 여섯 강국이 있는 곳이 현재 나와 누나가 살고 있는 대륙이다.
그 여섯 나라 중에서 우리 가족이 사는 인간들의 나라는 다이러스 제국이라는, 이 대륙에서 두 번째로 강한 군사 강국이다.
다이러스 제국 북쪽에는 가이라가 왕국이 있고, 서쪽으로 이 두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연합국가가 프론트 연합이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이 대륙에서 가장 큰 산맥인 나이르 산맥이 대륙을 양분하고 있고, 그 산맥 너머 동쪽 끝에는 이 대륙 최대 강국인 데스타 제국이 이 대륙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스스로를 천년 제국이라 칭하고 있다 - 정말 역사가 천년인지는 모르겠다 -
그리고 어찌 보면 이 대륙에서 가장 약소국이라 할 수 있는 레이아스 왕국과 오리하곤 왕국이 남은 땅을 양분하여 북쪽과 남쪽에 각각 자리하고 있다.
이 두 왕국보다 더 작은 약소국이 있긴 하지만 이 약소국들은 대부분 왕권만 겉으로 내세울 뿐이지, 속사정은 데스타 제국의 휘하 소국인 면이 더 크다.
그러나 레이아스와 오리하곤은 적극적으로 이들 나라의 정통성을 인정해 주면서 서로 동맹을 맺었다.
바로 천년 제국인 데스타 제국의 방패막이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결과는 데스타가 레이아스와 오리하곤 중 아무 나라와라도 전쟁을 일으키려면 이 약소국들의 나라를 필연적으로 지나쳐야 하고, 그렇게 되면 레이아스 오리하곤뿐 아니라 기타 약소국들과의 전면전을 불사해야 한다는 점을 이점으로 위태위태한 정세 속에서 몇백 년이 흘러 왔다고 한다.
약소국들은 데스타의 막강한 무력 앞에 금방이라도 그들 밑으로 들어가도 할 말 없는 처지였기에 레이아스와 오리하곤이 비록 자신들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 자기들의 왕권을 인정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왕권을 유지시켜야 된다는 자존심에 이런 유리 길을 걷는 듯한 정세를 잘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였다.
나이르 산맥으로 양분된 가이라가, 다이러스와 레이아스, 오리하곤은 산맥에 길을 내어 서로 무역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동맹을 맺거나 할 여유가 없었다.
가이라가와 다이러스는 과거 몇 차례의 크고 작은 전쟁으로 완전히 앙숙 상태였기에 어느 한쪽과 군사적 동맹을 맺을 수도 없었다.
비록 지금은 휴전 상태라지만 만약 전쟁이 터지면 어느 한쪽을 도와야 하지만 데스타를 눈앞에 두고 후방으로 병력을 돌릴 여유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이라가와 다이러스는 오랜 싸움에 지쳐 자연스레 휴전 상태였지만 그래도 서로 앙숙인 건 변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서로 견제 상태였다.
이렇게 복잡한 나라 중 가장 작은 국가 연합인 프론트가 그 사이에 끼어 당당하게 중립국을 표방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그들이 신처럼 떠받들고 있는 여섯의 드래곤 덕택이었다.
한 나라를 가볍게 멸망시킬 수 있다는 고룡보다 더 강한 존재라는 뜻으로 신룡이라 불리 우는 드래곤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섯이나 있는 이 나라는 어찌 보면 그리노 대륙에서 가장 강한 나라이나 함부로 인간들의 전쟁에 관여하지 않고, 오직 외세의 침략에만 힘을 빌려 주는 신룡 덕분에 대륙에서 떵떵거릴 수 있는 힘은 없었지만,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강력한 방어막으로 인해 중립국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해룡 블루 드래곤 바슈티어의 도움으로 다른 대륙과의 안전한 해상로를 확보하여 무역 강국으로 떠오르게 된 작지만 매운 나라가 바로 프론트 연합이었다.
이런 인간들의 나라 중에서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은 아까 전에도 말했듯이 다이러스 제국이었다.
그리고 다이러스 제국의 이번 추수제에 나와 누나가 놀러 가게 됐던 것이다.
‘아아!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정말 고마워요. 블랙 해츨링 누나! 누나 덕분에 저희들이 성룡이 되기도 전에 이렇게 인간 세상을 구경하게 됐습니다. 블랙 누나, 누나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을게요.’
만약 그 블랙 해츨링 누나가 내 옆에 있고, 그 누나의 성격이 티아 누나의 성격과 판박이라면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게 될 발언을 서슴없이 - 마음속으로지만 - 하면서도 난 진정으로 감사했다.
이번에는 해츨링 붐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해츨링이 태어났다.
지난 이천년 간 해츨링이 단 한 마리도 태어나지 않다가 갑자기 무려 다섯 마리의 해츨링이 태어났다고 한다.
게다가 우리 실버 일족에서는 누나와 나, 즉 쌍둥이라는 드래곤 역사상 첫 쌍둥이 남매라는 쾌거(?)를 이룩하는가 싶더니 레드·골드·화이트 일족에서 각각 해츨링 한 마리씩이 더 태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열 마리의 해츨링이 한꺼번에 태어난 것도 드래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큰 경사라고 어른들이 떠드는 이유도, 보통 해츨링이 태어나면 그 해츨링이 성룡이 되기까지 한두 마리 해츨링이 더 태어나면 많은 것이요, 그 해츨링이 성룡이 된 뒤 한 마리 태어나면 보통이란다.
그러니 이번 열 마리의 해츨링이 얼마나 많은지는 새삼스레 설명 안 해도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경사라 칭하던 어른들도 해츨링들의 대가리가 어느 정도 커지자 골치를 썩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는 연례 행사(?)가 되어 버린 해츨링들의 가출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지는데, 금방 잡히면 다행이건만 이번 블랙 누나처럼 사고치고 잡힌 횟수가 꽤 된다고 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딴 나라 도시들이 박살났다는 소식만 전해 졌는데, 요번 블랙 누나는 신룡님의 도시 날려 먹기를 실행하는 바람에 신룡에게 꾸지람을 들은 로드님들이 대책 회의를 열어서 해츨링들의 호기심을 어느 정도 풀어 주기 위해 이번 ‘엄마 따라 인간 세상 놀러 가기’ 라는 기획을 세웠다고 한다.
이것은 해츨링들은 인간 세상에 나갈 수 없다는 전례를 깬 해츨링에게 있어서는 또 다른 경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찌 그 블랙 누나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튼 엄마는 로드에게 언제 출발하며 어디로 가는 지 보고하고 오셨고, 잠시 인간 세계에 내려가셔서 우리가 입을 새 옷까지 사다 주셨다.
뭐 폴리모프 하면 옷이야 생기긴 하지만 우리는 엄마나 아빠가 입었던 옷만 보고 따라 한 거라서 좀 더 많은 치장과 - 누나의 경우 - 세련돼 보이는 요즘 옷 - 이건 나의 경우, 아! 누나도 포함해서 - 을 모르기 때문에 엄마가 아예 사오신 것이다.
음음, 엄마의 사랑은 역시 깊고 넓으시다.
뭐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기 자식인만큼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게 보이게 하겠다는 욕망이 더 앞서 있으시지만….
드래곤이나 인간이나 자기 자식을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이야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 아닐까?
엄마는 폴리모프한 우리에게 - 특히, 여자인 누나를 - 사 오신 옷으로 몇 번이나 패션쇼를 시키고, 이것저것 달아 보고, 채워 주고, 머리 손질로 만 하루를 거의 소비하다시피 하고 난 후에야 겨우 마음에 드셨는지 흡족한 미소를 지으셨다.
“자, 어디 보자. 어이구! 우리 아들·딸 이만하면 어느 왕국의 왕자·공주라고 해도 믿겠구나.”
라고 하실 정도로 당시 우리 모습은 정말로 가관이었다.
누나는 하늘거리는 실크 드레스를 입었는데 어깨가 파인 옷으로 하얗고 긴 팔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팔꿈치까지 오는 기다란 실크 장갑을 끼고 있었다.
드레스는 누나 머리색과 같은 은색, 그리고 장갑은 흰색이었다.
그리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은 틀어 묶어서 드워프들이 만들었다는 눈부시게 빛나는 별의 보석들이 박혀 있는 황금의 머리 장식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가슴까지 파여 있는 드레스라서 화려한 진자 목걸이를 목에 걸고, 엄마와 닮은 얼굴인 누나는 정말 일국의 공주라고 해도 아무도 의심을 안 할 정도로 미인이었다.
단지 열다섯 살 정도로 폴리모프 했기에 아직 여자로서의 성숙함은 없고, 소녀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나? 나는 귀족들이 즐겨 입는다는 요즘 잘 나가는 디자이너가 만들었다는 옷을 입고 있다.
푸른색 바지에 - 이것도 실크다 - 역시 푸른색 자켓을 걸치고, 속에는 하얀 실크 셔츠를 입고 머리는 언제나처럼 단정한 짧은 은색 머리, 이게 전부였다.
실은 엄마도 내게 서클릿이다, 뭐다, 마구 달아 주고 싶어 했지만 내가 끝까지 싫다고 우겨대서 겨우 넘어갔다. 그런 액세서리는 너무 갑갑해서이다.
그래도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서 무늬가 없는 단순한 은색 팔찌 하나를 차긴 했지만…! 이 팔찌에는 마력 증가 역할을 하는 붉은 보석 하나가 박혀 있다.
누나 역시 나와 같은 한 쌍을 차게 되었다. 아직 마력이 약한 해츨링인 우리에게 무슨 위험이 닥칠 때를 대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도 따라 가는데 뭐 별일 있을라구…?
그렇게 준비를 끝낸 우리는 드디어 인간 세상으로 떠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산은 나이르 산맥에서 다이러스 쪽으로 뻗어 나온 산맥 중의 하나인 산이다.
그리고 우리 산 아래에는 제법 큰 도시인 슈워즈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이 날 마을 근처로 워프한 우리는 엄마를 따라서 바로 마차 대여점으로 향했다.
이미 엄마가 하루 전에 나가서 모든 준비를 끝내고 오셨다고 하셨는데, 과연 엄마가 한 인간에게 가서 뭐라고 말하자 그 인간이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는 으리으리한 마차 한 대를 가져왔던 것이다. 엄마 왈…!
“이 도시에서 열리는 추수제도 제법 크지만 이 나라의 수도에서 열리는 추수제와는 비교도 못할 정도라서 수도로 가기로 하자꾸나.”
“응, 근데 차라리 수도로 워프하면 더 빠르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수도로 워프하는 게 더 빠르고 간편할 것 같은데…? 그러자 옆에 있던 누나의 주먹이 날아왔다.
“우~~~쒸, 왜 때려?”
난 머리를 만지면서 혹시 혹이 나지 않았는지 확인해 보았다.
“멍청아! 바로 수도로 가면 무슨 여행이냐? 천천히 인간 세상을 보여 주고 구경시켜 주려는 엄마의 깊은 뜻을 모르겠냐?”
“저기 티아야, 네 말이 맞는데 꼭 그렇게 동생을 때려야겠니? 말로 설명을 해도…….”
“테이는 멍청이라서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나 멍청이 아니야!”
“가고일에게 몰매 맞던 멍청이가 누구였더라?”
“윽!”
내 수많은 약점 중 하나를 들먹이자 난 아무 소리도 못했다.
지금은 가고일 정도야 우습게 가지고 놀 실력이라고 생각하지만 - 전에 그 일이 있은 후 엄마 레어 근처에서는 가고일을 볼 수가 없었다 - 그때는 어렸고, 마법도 못 쓰는 해츨링이 몰매 좀 맞은 거 가지고 너무 괴롭힌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