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월도 끝나가는 건가...?”
설화가 학교가 끝난후 서현과 함께 하교하고 있었다. 어느새 여름이 되어 설화와 서현의 옷도 꽤나 가벼워 졌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설화의 귓가에 핀 꽃은 사라지거나 하지 않았다.
“그러게요 시험기간때는 공부하느라, 시험끝나고나서는 동아리 활동 하느라 바빴네요. 중간고사때도 그렇고 이번 기말고사 때도 그랬고.”
“그래도 5일뒤면 방학이고, 방학되면 우리 여행가니… 콜록...콜록… 여행가니까.”
“여행 말이죠…”
1주일 전 학교로 돌아가서, 설화와 서현은 동아리 교실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몇분동안 아무 대화없이 책을읽자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동아리 교실의 문이 열리고 부장과 한지윤, 그리고 동아리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설화와 서현이 동시에 인사했다.
“어 그래. 너희는 꽤 일찍 왔네? 희연이랑 현서는 아직 안 온거니?”
“네, 곧 올 것 같아요.”
“그러면 공지할게 있었는데, 너희한테 먼저 말해줄게.”
이 소설창작동아리의 담당 교사이자 국어 교사인 ‘유지연’이 칠판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2박 3일 여행… 바다... ?”
한지윤이 칠판에 써진 글씨를 소리내어 읽고는 의문을 품은 표정으로 유지연을 쳐다보자. 유지연은 가방속에서 프린트물을 꺼내 모두에게 나누어 준 후 말했다.
“말그대로 여행을 가는거야. 바다로. 날짜나 일정은 프린트물에 전부 적어놨고, 여행가는 이유는 뭐 주목적은 소설을 쓰는데는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니까 취재겸, 너무 많이 남은 동아리 활동비를 처리하는겸 가는거야.”
그리고 다시 1주일 후인 지금.
“뭐 그렇게 해서 가게 된거죠… 그런데 선배 몸상태 안 좋아보이는데 괜찮나요?”
“...어, 조금 감기 걸린 것 같은데… 조금 독하게...콜록… 콜록… 좀 심하게 걸렸나봐... 며칠전부터 약도 먹고 있었는데 잘 안낫고 점점더 심해지네... ”
“그러면 어서 집에가서 푹 쉬어요.”
“그래야 될것같네… 그럼 가볼게...”
어느새 도착한 설화의 집 앞에서, 서현이 손을 흔들며 기침을 하는 입을 막고 다시 걸어갔다. 그 후 설화가 현관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괜찮아야 할텐데 말이죠…”
설화는 걱정하고 있었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설화의 머리위에서 피어난 꽃은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살랑살랑 흔들거렸다.
한편, 박현서는 아무도 없는 동아리 교실에서 노트에 글을 쓰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펜을 들고 노트에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서 그냥 멍하니 앉아있었던 것이여였지만.
박현서의 머릿속 여러 생각들과 감정들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이어폰처럼 꼬인채 풀리지 않고있었다.
“하…”
박현서가 그 꼬여진 생각들과 감정들을 한숨에 담아 내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박현서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나희연의 고백을 쉽게 받아들일수 없는,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 박현서의 발목을 죄여왔다.
“왜 한숨을 쉬고 그래?”
드르륵 소리가 나는 교실 문을열며 부장이 박현서에게 말을 걸었다.
“아아… 별거 아니야. 그런데 부장형은 오늘 왜 왔어? 오늘은 동아리 안하는 날이잖아.”
“노트북 여기 놓고가서 찾으러 왔어.”
“......아아… 그런데 부장형, 아까 보니까 노트북 꺼져있던 것 같은데 어제 저장했어?”
“......?”
부장이 다급하게 빠진 노트북 충전기를 끼우고는 노트북을 켜본다. 잠시후 부장은 아무것도 저장되어 있지 않은 빈 폴더를 바라보며 노트북을 다시 껐다.
“… 망했네… 어제 노트북 안 가져온 걸 알았을 때 바로 왔었어야 했는데. 젠장”
“몇장 날라갔는데?”
“12장….”
“......”
“에휴…… 빨리 집 가서 다시 써야지. 나갈때 문잠그고 가.”
“응”
부장이 허탈한 표정을 짓고 노트북을 가방에 챙겨서 나가자, 박현서는 다시 멍하게 펜을 들고 노트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고개를 들어 창가를 바라본다. 창가에는 붙어있는 두 화분에
예쁘게 핀 꽃이 있었다.
박현서는 원래 말수가 적은 성격이라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전부터 계속 나희연을 불편해 했다. 대화도 많이 하고 같은 동아리에도 들어갔지만 그 와중에도 항상 나희연을 불편해 했다.
이유는 박현서 자신도 모르고 있지만.
박현서가 교실문을 잠그고 돌아갔을때는 이미 해가 져있었다. 또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설화는 등교길에서 서현과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들뜬 표정과 걱정되는 감정이 서로 맞물려 설화는 불안해져서 계속 머리위 꽃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선배 오늘 학교 오실 수 있어요?]
[아니, 오늘 열이 조금 올라서 조금 힘들것같아 이따 동아리활동할때 애들한테도 전해줘]
[네 알겠어요, 열은 몇도정도에요?]
[아까 쟀을때 38도였어]
[꽤 높네요 병원 가봐야겠네요]
[지금 병원가는 길!]
[그럼 내일은 학교올 수 있게 푹 쉬세요]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내일보자~]
설화는 휴대폰을 끄고 학교를 향해 걸었다. 서현을 만나기 전에는 항상 혼자 걸었던 길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학교 수업이 끝난후 동아리 교실, 한지윤이 설화를 반기며 인사한다.
“어서와 이서현은 같이 안 왔어?”
“서현 선배는 오늘 감기 걸려서 학교 안 왔어요.”
“한여름에 감기에 걸린다고?”
“그런가봐요.”
“오늘은 결석생이 많네.”
드르륵 하고 동아리 교실의 미닫이 문이 열리고 교사인 유지연이 교실에 들어오며 말했다.
“이서현은 감기랬나? 그럼 박현서랑 나희연은 어디갔어?”
“걔네는 모르겠어요”
부장이 유지연에 질문에 답했고 설화와 한지윤도 그에 동의하는듯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오늘은 자유롭게 활동하기로 하고, 교실 문단속 잘하고 어지럽힌 물건은 치우자”
“”“네”””
유지연이 교실을 나가자 한지윤이 말을 꺼냈다.
“이서현 감기걸렸다고 했지? 그러면 병문안 가보는거 어때?”
“병문안이요? 그렇게까지 아파보이지는 않던데요?”
“많이 아프지않았다면 학교는 왔을거야.”
부장이 말했다.
“왜요?”
“걘 그런 애니까.”
“.......?”
“신경쓰지마, 중학교때부터 중2병이였거든.”
한지윤이 부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설화는 작게 입을 가리고 웃었다.
“흠흠… 어쨌든 병문안은 한번 가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번… 가볼게요”
학교가 끝난후 집에 돌아온 설화는 옷을 갈아입고 분무기로 머리위 꽃에 물을 뿌린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일단 간다고는 했는데, 연락은 해봐야 겠죠...?”
[선배 지금 집에 있나요?]
[응 집이야, 그런데 왜?]
[병문안 가보려고 하는데 가도 괜찮을지 물어보려고 연락했어요]
[와도 괜찮기는 한데 집에 아무도 없기도 하고 또 와서 감기 옮으면 안 되니까... ]
[마스크하고 갈게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고마워]
[금방 갈게요]
설화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후 밖으로 향했다.
“아… 나 선배 집 어딘지 모르지…”
[선배 집 어디에요?]
[음… 너희 집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있을거야]
[네?]
[아… 미안 정신이 없어서, 그냥 내가 밖에 나와 있을게 너희집에서 왼쪽으로 쭉 와봐!]
[네 밖에 나오게 해서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 꽤 몸상태ㄷㅎ 조ㅎ아진것 같으니ㄲ]
[몸상태도 좋아진 것 같으니까]
서현이 오타를 정정하기 위해 연이어 문자를 보냈다.
[빨리 갈게요!]
설화가 문자를 보내고는 마스크를 주머니에 넣은채 걸었다. 한 4분정도 걷자 서현과 서현의 뒤에 있는 서현의 집으로 보이는 주택이 하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와… 콜록”
“몸상태 되게 안 좋아보여요. 어서 들어가요.”
“그래.”
서현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설화도 따라들어갔다. 현관에는 서현과 설화의 신발만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집에 마실게 없는데 물이라도 마실래?”
“괜찮아요, 병문안 온거니까 푹 쉬세요. 필요한게 있다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마음은 고맙지만… 아니다 잘부탁해.”
“저녁은 죽이라도 드실래요?”
“죽 끓여주려고?”
“병 간호 같은거 해줄때 보통 죽을 끓여주더라고요.”
“그래? 고마워. 야채죽 끓이는거라면 아마 재료는 다 있을거야. 야채는 냉장고에 있고, 쌀은 저쪽에 통 보이지? 저기에 있어.”
“네 맛있게 해드릴테니까 이제 푹 쉬고계세요.”
“그래 잘부탁할게.”
서현이 두번째로 잘부탁한다는 말을 하고서는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설화는 서현이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는것까지 보고나서,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한편, 방에 들어간 서현은 쉽게 잠들지 못하고 멀뚱멀뚱 눈만 뜨고있다.
‘지금 나가면 분명 다시 들어가서 쉬라고 하겠지...? 낮에 하루종일 자서 이제 잠도 안오는데… 게임이나… 게임은 됐고 책이나 볼까’
서현이 몸을 일으켜 책장쪽을 바라보았다.
‘음 책은 읽기 귀찮다. 그냥 누워 있자.’
“......”
‘꽤 오래동안 사귀었네… 아직도 설화한테 고백했을 때가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누워있으니 꽤나 많은 기억들과 생각들이 떠올랐다. 창문밖으로는 벌써 해가 지고 있엇다.
‘그러고보니까 아직 설화에게 좋아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네.’
그런 생각들을 하던 서현도 어느새 잠들고, 땅거미 진 거리에서 하나둘씩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문틈 사이로는 흰빛이 새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