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방에는 오늘도 커다랗고 날카로운 알람소리가 울려퍼졌다.
“흐으으… 오늘은 왠지 학교 가기 싫어…”
설화가 알람을 끈후 다시 침대에 엎드렸다. 보통 여러 만화나 소설 또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이런 장면 뒤에는 꼭 약속이라도 한듯이 부모님이 와서 주인공을 깨우는 장면이 나온다. 설화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일어나야겠지.”
설화가 옷걸이에서 교복을 집어 침대위에 올려놓고 화장실에 갔다. 세수를 하려고 물을 틀어놓자, 설화의 머리 위 핀 꽃이 거울에 비쳤다.
“이 꽃은 이름이 뭐지...? 이따가 학교 갔다와서 찾아봐야겠다.”
설화는 식탁에 앉아 간단히 아침을 먹고,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했다.
그후 종례시간까지는 별일 없었다.
종례시간, 선생님이 들어오시가 전, 수다를 떨고 있는 여자아이들의 대화가 설화의 귀를 통해서 들려왔다.
“쟤말이야? 저 말없는 애?”
“응 쟤가 2학년 선배랑 연애하고 있는데, 어제 그 선배 집에 갔데.”
“진짜?”
그 후로는 “어머어머!”와 같은 여자아이들의 약간 가식적인 리액션이 들려왔다. 설화는 그런 아이들과 말을 섞고 싶지않아 계속 엎드려 있었다. 그래도 그런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오히려 더 활발해졌다.
‘시끄러워… 그걸 니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라고 설화는 마음속에서 소리쳤다.
“그 선배는 왜 쟤랑 사귄데? 취향인가?”
“그러게, 만나도 아무말도 안하고 조용히 있을거같은데”
“에이~설마 인사는 하겠지~”
“그래서 둘이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데?”
“자자~, 앉아 앉아.”
“”””네””””
아이들의 대화가 설화의 한계점을 지나기 바로 직전, 때마침 선생님이 들어와 종례를 하였다.
설화는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자마자, 누구의 소리도 듣지 않고 묵묵히 동아리 교실로 걸어갔다.
교실에 들어서자 뭔가에 지친듯한 표정의 기운없는 서현이 설화에게 손을 들어 인사한다.
“안녕…”
“안녕하세요…”
서현이 이렇게 지친 이유는 아마 설화와 비슷한 이유인 것일까. 창가에 화분은 아무도 물을 주지 않은 이유로 시들어가고 있었다.뒤늦게 화분이 시들어있다는 것을 본 한지윤이 분무기에 물을 받으러 가자, 부장도 어디론가 나갔다. 박현서와 나희연, 그리고 교사인 유지연은 아직 오지 않았기에 교실에는 설화와 서현 이렇게 단 둘만이 남았다.
“되게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
서현이 설화의 살짝 어두운 표정을 보고 물었다.
“별로 피곤하지는 않아요.”
“그럼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안 좋은 일이라면…... 별일 아니기는 한데, 들어주실래요?”
“당연하지, 1시간이라도 들어줄수 있어.”
“그정도까지는 제가 말을 못해요… 어쨌든 어제 제가 선배 병문안 갔잖아요? 그게 지금 되게 이상하게 소문이 퍼져서 조금 기분이 안 좋아진것 같아요. 뭐 그건 의심 받을만한짓을 한 제 잘못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평소에는 별로 신경도 안쓰면서, 이럴때만 이상한 소문 때문에 대화의 화제로 올리는거 그런게 진짜 기분이 나쁘거든요. 저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제가 선배랑 만나면 아무 얘기도 안할거라는 둥 뭐라뭐라하는게 불쾌했어요. 사귀는게 뭐라고 그렇게 난리들을 피는지… 불쾌하게..진짜로.”
“그 소문 너희 학년에도 퍼졌구나. 미안.”
“선배가 미안할건 없잖아요. 잘못한건 그런 소문은 퍼뜨린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그 소문 퍼뜨린거 내 친구녀석이니까… 일단 말은 해뒀긴했는데. 한번 퍼진 소문은 쉽게 안 사라지잖아.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지울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새삼스럽지만 소문이라는건 되게 무섭네요. 진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말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면서 진실로 만들어버리니까요.”
설화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설화의 표정과 목소리는 서현이 보기에도 날이 서있었다. 서현은 그런 설화를 달래주고싶다는 생각으로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힘내 그냥 소문일뿐이야. 금방 가라앉을거야.”
…...갑자기 교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새벽에 아무도 없는 조용한 거리의 정적보다, 더 조용하고 뭔가 추운듯한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서현은 갑자기 든 불안함에 설화에게 말을 걸어본다.
“설화야...?”
“......금방 가라앉는다고요…?”
“......”
설화의 귓가의 꽃이 뭔가 말로 형용할수 없는, 뭔가 회색과 짙은 초록색의 사이정도의 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빛때문인지 다른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선배의 말대로라면 유치원 1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다 합하면 10년인데 그 10년이 금방 가라앉는거라고요? 그런 작은 진실도 아닌 소문때문에 저는 10년을 이상한 병에 걸린 아이로 불렸어요. 사람들은 병 옮는다고 아무도 제 옆으로 오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그게… 그게 금방 가라앉을 일이라고요?!”
“미안…”
“...심지어 부모라는 사람들 조차… 저를 여기에 버렸다고요…”
서현은 금방이라도 울것같은 설화에게 해줄 말을 머릿속으로 찾으려 햇다. 하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색해진 분위기에 서현은 누군가 교실에 들어와서 설화를 달래주기만을 바랬다.
“......”
결국 서현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고, 아무도 교실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 미안해요. 잠깐 어릴때 안 좋은 일이 떠올라서… 오늘 조금 예민했나봐요...”
“아냐…..”
서현이 해야될 말은 ‘아냐’라는 말이 아니었다. 서현은 아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이 어색한 상황이 어떻게든 해결됬으면 하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서현은 겉치레로라도 설화를 위로해주지 못했다. 그때,
“아야!”
설화가 갑자기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무슨일이야? 괜찮아!?”
“...먼저 가봐야 될것같아요.”
“...”
설화가 교실 밖으로 나갔다. 교실에 홀로 남은 서현은 창문앞에서 가만히 서있다가 창밖에서 설화가 학교정문을 지나가자 그제서야 ‘잘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고, 서현은 침울한 표정으로 시들어서 초록빛은 보이지 않는 두 화분을 쳐다보았다. 화분은 서현처럼 아무 말도 하지못했다.
“뭐하고 있어? 거기서”
교실에 들어온 박현서가 서현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생각”
“조설화랑 싸웠어?”
“싸운건 아닌것같은데… 아냐 별일없었어.”
“드르륵!”
교실문이 열리며 나희연과 유지연이 들어왔다.
“자… 부장이랑 지윤이는 심부름 시켜놓았고, 설화는 몸상태 안 좋다고 집에 갔고, 나머지는... 다 왔네, 그러면 오늘도 자유활동하자.”
한편, 설화는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거울너머로 이상한 색으로 변해버린 꽃을 바라보았다.
“이젠 안 그럴줄 알았는데… 꽃마저 어렸을때처럼 변하고, 두통도 다시...”
어릴적부터 설화는 몸에서 꽃이 피어나는 병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와 다르게 설화가 초등학생일때는 지금처럼 꽃이 밝고 아름답고 예쁘지 않았다. 오히려 어두우면서 이상한 빛깔을 띄고, 향긋한 향기도 나지 않고, 모양은 꽃으로 보기도 힘들고 가을에 시들어가는 꽃보다도 더 추악한 모습이었다. 그때문에 현재의 설화의 모습만 봤던 서현은 설화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아채지 못한것이었다. 설화가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꽃을 꺾은건, ‘사람들의 시선이 이상해서’ 같은 가벼운 이유가 아니었다. 그런 꽃이라고 부르기도 힘든게 머리위에서 자라고 있는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사람들이 말했기 때문이다.
“엄마! 저 누나 머리위에 저건 뭐야?”
“저거? (어머! 저게 뭐야...) 음… 너도 엄마아빠 말 잘 안들으면 저렇게 괴물이 되는거야~.”
“그럼 저 누나는 괴물이야?”
“어… 응, 그럼 괴물이 쫓아오기전에 빨리 가자~.”
이런 말도 안되는 대화를 설화는 10년간 들어왔다. 중학교 때부터는 먼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고, 꽃이 점점 정상적인 형태로 자리잡아서 그래도 그렇게 심한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그전에 설화가 받은 상처들은 아무에게도 위로 받지 못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을 위로해주고, 좋아해줄것만 같던 서현도 오늘은 아무말도 해주지 않았다.
설화는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은 이제는 흐르지도 않았다.
“내일이면 다시… 아무일 없다는 듯이…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설화는 그렇게 내일에 모든것을 맡기고 잠에 들었다. 밤이 되자 그 이상한 빛깔의 꽃도 시들어 가루가 되어 버렸다.
만약에 설화가 평범하게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서현을 만나지는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삶은 그 삶대로 행복하지 않았을까? 설화가 상처를 입지 않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설화의 곁에 있어주지 않았을까? 그건 아무도 알지 못 하겠지만.
아침이 되고 설화의 방에는 오늘도 알람이 울려퍼졌다.
“오늘은 주말이잖아 더 잘거야…… 후아암… 알람 지워놔야지…”
설화가 알람이 울리며 진동되고 있는 휴대폰을 집어들어 알람을 끄고, 주말에는 울리지 않게 설정한후 휴대폰을 내려놓으려고 하자 휴대폰이 진동하면서 알림이 떴다.
“서현선배인가…? 뭘보낸거지?”
설화는 다급하게 다시 휴대폰을 집어들어 알림을 확인했다. 그러나 김칫국 한사발 들이킨 설화의 기대와는 다르게 휴대폰에 온 알림은 그냥 광고문자가 온것이었다.
“나중에 연락하갰지…”
라는 말과 함께 설화는 휴대폰을 덮어두고, 한동안 신경안쓰던 먼지 쌓인 책꽂이에서 시간을 때우면서 읽을만한 책을 찾는 도중 굉장히 눈에 띄는 흰표지의 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서는 책을 펼쳐서 빠르게 한장한장씩 넘겼다. 한 반정도 넘겼을떄 책에 꽂혀 있던 책갈피가 빠져 바닥에 떨어졌다.
“......이건”
설화는 떨어진 책갈피를 보고 잠시 놀란듯이 눈을 크게 뜨고는 그것을 묵묵히 쳐다보았다. 투명한 책갈피에는 말린꽃잎이 코팅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꽃이 예뻤던 날, 처음으로 형체도 색깔도 추하지 않은 꽃이 피어난 날, 그 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 설화는 머리에 피었던 꽃의 꽃잎을 코팅지로 코팅해 책갈피로 만들어 이 책에 꽂아놓았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찾게 되었다.
“그 사람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얼굴이라도 기억난다면 좋을텐데...”
설화가 책갈피 속에 살짝 색이 바래진 꽃잎을 보며 중얼거렸다. 서현보다 먼저 자신을 구해주었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를 떠올리며 설화는 책갈피를 다시 책에 끼워놓고 책을 원래자리에 돌려놓았다. 휴대폰에서 다시 알림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