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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화에 빠지다
작가 : 미소짓기
작품등록일 : 20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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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닿을 수 없어
작성일 : 17-06-11     조회 : 341     추천 : 0     분량 : 6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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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책이 무어냐?”

 

 돌쇠가 신속배달(?)한 서책을 집어든 연판서는 천천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한 장 두 장 넘길 때마다 해랑의 살갗도 한 겹 두 겹 벗겨지는 것 같았다. 수치심과 걱정에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까맣게 변해버린 해랑.

 

 춘화야사 앞 장에 나오는 남녀상열지사...

 군자의 도리에 어긋나도 한참을 어긋나는 것.

 

 아니나 다를까.

 연판서의 한쪽 눈썹이 신경질적으로 위로 휙 올라갔다. 책을 더 넘겨보는 연판서.

 

 “이 서책은 군자의 도리에...”

 

 아버님의 불호령만 남았구나 싶은 해랑. 그런데.

 

 “군자의 도리에 딱 맞는, 훌륭한 책이구나.”

 

 이게 무슨...?

 연판서는 만족의 미소와 함께 해랑에게 서책을 건넸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책을 받아든 해랑.

 이때 그의 눈에 들어온 서책의 제목.

 

 『春秋左氏 (춘추좌씨)』

 

 노나라의 역사서로 공자가 쓴 춘추의 주석본이었다.

 공맹을 공부하는 선비라면 꼭 봐야하는 진정한 교재.

 어찌 저 책을 돌쇠가...?

 

 “춘추좌씨전은 한 번 읽어선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진정 이해가 될 때까지 수십 번 수백 번을 읽어야 할 것이다. 밖으로 나돌아 다닐 때가 아니란 소리다.”

 

 “소자...명심하겠사옵니다.”

 

 “특히 박고서사. 말하지 않아도 네가 더 잘 알겠지,”

 

 “...!”

 

 “앞으로 지켜보겠다. 네가 어찌 처신을 하는지.”

 

 드디어 연판서가 떠나자 이제야 한숨을 돌리는 놈이.

 

 “들키는 줄 알고 심장 터질 뻔 했네. 돌쇠 너!”

 

 “왜..왜? 난 시...시키는 대로 춘..춘화를...”

 

 “이거 다시 읽어봐.”

 

 해랑의 손에 쥐여져 있는 서책의 표지를 가리키는 놈이. 돌쇠는 놈이의 위압적인 태도에 괜히 움찔거렸다.

 

 “그거 춘...춘화...뭐시기잖아.”

 

 “푸하하! 춘화 뭐시기?”

 

 “혹...혹시 내가 잘못 들고 온 거야?”

 

 “아냐, 아냐. 아~주 잘 들고 왔어. 우리 무식한 돌쇠~오구오구.”

 

 “나 안 무식해!”

 

 사실 돌쇠는 까막눈이었다. 놈이가 춘화 뭐시기 책을 찾아오라고 했을 때 자신을 무시하며 ‘참, 너 글 모르지?’ 라고 말한 것에 발끈했다. ‘입춘대길’이라는 글자는 많이 봐 왔으니 비슷한 제목을 찾아 서재를 뒤졌던 것.

 

 “돌쇠 그만 놀리고... 이제 다시 시작하자.”

 

 “응? 뭘 시작?”

 

 “...찾아야겠다. 진짜 춘화를.”

 

 *

 

 까마득한 어둠 속을 작은 돛단배처럼 둥둥 떠다니는 춘화.

 

 이곳은 현실과 다른 이계(異界)

 

 시간의 흐름이 멈춘 곳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꼼짝않고 누워 있었다. 어디서 비를 또 맞았는지 옷에서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진 춘화.

 

 “춘화야, 움직이면 안 돼~”

 

 이때 어디선가 들리는 그리운 목소리...

 

 해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린아이였던 해랑이 춘화를 부르는 그 목소리.

 

 춘화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 애틋한.

 

 계곡가 너럭바위 위에서 어린 해랑이 화선지 위에 열심히 붓을 놀리고 있었다. 그런 해랑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소녀... 역시 어린 춘화다.

 

 “도련님...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해요? 힘들어요.”

 

 복숭아꽃을 양쪽 귀 뒤로 다 꽂은 채 한 쪽 팔을 하늘로 뻗고 있는 춘화. 다른 한 쪽 팔은 땅을 향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 쪽 다리를 살짝 구부려 발끝으로 땅 짚기까지. 흡사 곡예를 하는 곰...아니 토끼 같았다. 그렇게 고난도의 자세를 유지하던 춘화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손사래 치는 해랑.

 

 “어...어? 안 돼! 지금 내 일곱 인생 최고의 걸작이 완성되는 순간이야. 다시 고개 하늘로.”

 “하아... 도련님. 진짜 약속은 지키셔야 해요.”

 

 얼마나 지났을까?

 춘화는 힘든 자세를 유지하느라 온몸이 부들부들.

 해랑의 엄명(?)에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그 자세를 계속 유지하는 데.

 

 “풋.”

 

 풋?

 

 “도련님, 저 고개 돌려도...”

 

 “춘화야 미안...그림은 아까 다 완성했어.”

 

 “도련님!!!”

 

 해랑에게 속은 걸 알게 된 춘화는 이제야 자세를 풀고 바닥에 풀썩 앉았다. 토라진 채 몸을 옆으로 획 돌리는 춘화. 그 바람에 귀 뒤에 꽂고 있던 복숭아꽃들이 툭 떨어졌다.

 

 “네가 너무 귀여워서 그만... 진짜 미안, 미안. 대신...”

 

 입이 부루퉁하게 튀어나온 춘화의 앞에 그림을 수줍게 건네는 해랑. 화선지 속에는 귀여운 춘화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었다. 그림을 받아든 춘화의 얼굴이 말간 해님보다 더 환해졌다.

 

 “우와... 진짜 이게 저예요?”

 

 “응...근데 잘 못 그린 것 같아.”

 

 “아니에요. 진짜 잘 그리셨어요!”

 

 “아니야, 못 그렸어. 왜냐하면...”

 

 해랑은 아까 춘화가 떨어뜨린 복숭아꽃을 다시 그녀의 귀에 다정하게 꽂아주었다.

 화르륵 얼굴에 분홍 꽃물이 드는 춘화.

 

 “넌... 너무 고우니까.”

 

 해랑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녀의 하얀 볼에 입술을 가져갔다.

 

 - 쪽

 

 춘화의 볼에 해랑의 입술이 살짝 닿는 순간. 해랑 역시 얼굴에 분홍 꽃물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흩날리는 분홍빛의 복숭아 꽃잎들.

 

 "또 그려 줄게. 담엔 진짜 진짜 잘 그려 줄 거야."

 

 서방님...

 

 "시간이 벌써 이리 됐네? 춘화야 이제 집에 가자. "

 

 집에 가자…

 어린 해랑은 춘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춘화는 울고 있었다.

 먹먹한 어둠 속에서 꿈속의 해랑에게 손을 뻗는 춘화. 하지만 잡을 수 없는 해랑의 손. 꿈이라는 것을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그리고 결코 돌아가서는 안 되는 꿈.

 

 - ...일어나거라.

 

 단꿈을 깨우는 날카로운 목소리. 춘화가 눈을 뜨자 익숙한 어둠만이 그녀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또... 책 속에 들어온 건가?

 어둠 저 편에서 푸른 점 하나가 깜박 점멸하더니 이윽고 빠른 속도로 춘화에게 달려들었다. 쏟아지는 빛 속에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그녀.

 

 - 왜... 일을 그르치려하느냐.

 

 서늘한 푸른빛을 발하는 구슬이 춘화의 앞에 멈춰 섰다.

 

 - 왜 일을 그르치냐 일렀다.

 

 푸른 구슬에서 엄청난 양의 빛이 한꺼번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를 꾸짖듯이 빛을 쏘아대는 구슬.

 

 “...송구합니다.”

 

 춘화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고 싶은 말도 따지고 싶은 말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시 책 속에 들어온 이상 그 분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 내가 너를 다시 여기로 부른 이유를 네가 무엇보다 잘 알 것이다.

 

 ‘책 속에서 나가지 못하면...영영 서방님을 볼 수 없다.’

 

 - 그토록 너에게 경계하지 않았느냐?

 너는 해랑 곁에 있어서도, 떠나서도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엔 실수 없이 잘 하겠습니다.”

 

 다시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린 춘화는 소매로 가려진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마지막 기회다. 명심하거라.

 

 “네...처사님.”

 

 춘화가 대답하자 구슬이 이번에는 작열하는 태양보다 더 눈부신 빛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얗게 어둠을 살라먹는 빛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춘화.

 

 *

 

 “하아...난 더 이상은 못해... 제발 그만해, 해랑... ”

 

 땀에 완전히 절은 채 거친 숨을 헐떡거리는 놈이. 해랑의 손을 붙잡고는 이제 무릎까지 꿇었다.

 

 "내가 더 죽여주는 거...해주게."

 

 "...그런 걸 원하는 것이 아니다."

 

 "아씨! 그냥 내가 준.비. 해주면 되잖아! 춘화야사랑 비슷한 교재로! 하루종일 찾았지만 그 책은 어디에도 없으니."

 

 놈이는 해랑과 함께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춘화야사를 찾기 위해 집안을 샅샅이 뒤진 것은 물론 박고서가까지 찾아가봤지만 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꿈을 꾼 걸까?”

 

 “꿈? 그래. 꿈 꾼 거 맞아. 차라리 꿈에서 다시 찾고! 나는 이제 한발자국도 못 걷겠다, 해랑.”

 

 박고서사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해랑은 좀처럼 처소에 들지 않으려 했다. 그 놈의 교재가 얼마나 좋았기에 이런 안 하던 행동을 하는 건지.

 

 “놈이 넌 먼저 들어가 보거라. 난 박고서사에 다시 한 번 가 봐야...”

 

 “안 돼! 날 죽일 셈이야? 대감님이 찾으실 때 됐단 말이야. 너 없는 걸 아시면...”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난 놈이는 해랑의 등을 떠밀며 그를 끌고 들어갔다. 해랑은 여전히 미련이 남아 대문 밖을 흘끔거렸지만 놈이의 ‘도련님아 그 문지방을 넘지 마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간절히 말하고 있었다.

 

 “...알겠다. 그럼 내일 다시.”

 

 그런데.

 내일 뭘 다시 찾아야하는 걸까. 해랑 자신조차도 뭘 찾아야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책을 찾는 것인가, 아님 그녀를 찾는 것인가.

 

 “해랑!”

 

 “...어?”

 

 “자꾸 뭔 생각을 그리 골똘하게 해? 진짜 왜 그렇게 그 책에 집착해?”

 

 “...”

 

 “너 정말 이상한 거 알지? 어제 박고서사에서 자객들이 들이닥친 것도 영 찜찜하고...”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야사에 빠졌다고 해랑을 놀려대긴 했지만 평소의 해랑 답지 않았다. 책에 관련된 일들도 다 석연치가 않은 놈이. 하지만 해랑은 거기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계속 되는 놈이의 추궁에도 해랑은 깊은 생각에 빠져 여전히 묵묵부답.

 

 ‘또 저 버릇 나왔네. 집중할 땐 누가 업어 가도 모르는.’

 

 해랑이 집중할 때는 주변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 행동했다. 역시나 그대로 직진만 하는 해랑. 저러다 넘어지기 십상이었다. 놈이는 해랑보다 반 발자국 먼저 나가 문도 먼저 열어주고 신발도 대신 벗겨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생각에 빠져 직진만 하는 해랑.

 

 “해랑 넌 언제나 언행일치, 심행일치라 좋겠다!”

 

 말도 마음도 언제나 곧은 해랑. 그래서 무슨 일이든 직진만 한다. 에둘러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이 험한 세상 어느 정도 타협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저러니까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둥이라고 하지. 나 없음 어쩌려고 저래?’

 

 어느새 해랑의 처소까지 당도했다. 또 놈이가 먼저 방문을 열어주자 해랑은 푸른 도포자락을 날리며 또다시 직진하다 갑자기 멈춰 섰다. 그는 놈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힘없이 손을 내밀었다.

 

 “놈아...”

 

 헉.

 쟤 또 왜 저래?

 놈이는 덜컥 심장이 땅으로 꺼지는 것 같았다. 또 저 눈빛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듯 텅 빈 눈동자. 자꾸 예전 그 날 일을 생각나게 만드는. 놈이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싹 사라지며 눈가에 고통스런 기색이 어렸다.

 

 “응, 나 여기 있어. 해랑.”

 

 해랑이 내민 손을 꽉 잡아주는 놈이. 해랑 이녀석.. 말은 하지 않지만 분명 무슨 일이 있다. 뭔지 몰라도 심지가 올곧은 해랑을 한 번에 꺾어버릴 큰 사건이...

 

 순간 놈이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여자. 세찬 장대비 속에 나타난 그 미친 여자를 해랑이 찾았던 것이 갑자기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혹시 그 여자가 해랑에게 무슨 해코지라도?

 

 “해랑, 그 그림말이야... 그 미친 년.”

 

 놈이의 말에 순간 움찔하는 해랑. 역시 뭐가 있긴 있구나.

 

 “너 혹시... 당한 거야?”

 

 “...”

 

 사실 해랑의 인기는 장안에서도 유명했다. 놈이야 만만한 신분이기에 여자들이 대놓고 접근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해랑은 달랐다. 조선 최고 가문의 장자 연해랑이지 않은가.

 

 저잣거리의 여인들은 물론 양반가의 규수들조차 몰래 해랑에게 연서를 보내왔다. 수북이 쌓여만 가는 연서를 단 한 통도 뜯지 않았던 해랑. 여인들에게는 도통 관심이 없는 그였다.

 

 “너 저번에도 그 최참판댁 막내 여식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양반가의 규수도 연정 앞에선 법도와 체통도 없는 모양이었다. 얼마 전 최참판댁의 막내 아씨가 몰래 해랑의 뒤를 밟은 적이 있었다. 그동안 여종에게 전달시켰던 연서가 답장이 없자 직접 찾아온 것.

 

 - 해랑 도련님... 좋..좋...아해요!

 

 연서만 전해준다는 것이 해랑의 아리따운 뒤태를 보고 저도 모르게 뒤에서 와락 껴안으려 달려든 아씨.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였다.

 

 평소 날렵하기가 비호와 같던 해랑은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휙 피했던 것. 그 바람에 맨땅에 그대로 머리를 박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최참판댁 아씨. 더 처참했던 것은 해랑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갈 길을 갔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였다.

 

 만약 해랑이 그런 여인네들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면 충분히 당할 만도 한 상황. 게다가 상대는 미친 여자.

 

 “당한 거지? 그런 거지? 내 이 미친년을 잡아다 혼쭐을...”

 

 “하...”

 

 한숨과 동시에 고개를 양옆으로 젓는 해랑.

 그럼... 안 당했어? 그런데 왜?

 놈이가 다시 뭔가 입을 떼려하자 해랑은 놈이를 잡은 손을 힘없이 놓았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더니 이내 놈이를 똑바로 쳐다보는 해랑.

 

 “...내일 보자.”

 

 말을 마치자마자 그대로 방안으로 들어가는 해랑. 놈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방안으로 들어온 해랑은 불도 켜지 않고 어둠 속에서 갓을 벗어 내려놓았다. 그리고 차례차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도포를 감싸던 술띠도 바닥에 툭, 이어 푸른 도포자락도 사라락 떨어졌다. 하루 종일 뛰어다니느라 땀에 젖은 저고리도 풀어 헤치는데.

 

 푸르스름한 달빛 속 빛나는 조각 같은 나신(裸身)

 직선으로 딱 벌어진 어깨부터 딱 보기 좋은 잔근육으로 이뤄진 등까지. 이를 잇는 선은 조물주가 무척이나 섬세하게 그려놓은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달빛까지 받으니 묘한 신비함까지 더해져 더욱더 빛을 내고 있었다.

 

 ‘오늘 하루...’

 

 쓰러지듯 펼쳐진 이부자리로 몸을 툭 맡기는 해랑.

 

 ‘너무 길었어.’

 

 해랑은 그대로 눈을 감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옆으로 몸을 돌려 이불을 덮은 상태 그대로.

 

 -반짝

 

 해랑은 자신의 등 뒤에서 푸른빛이 새어져 나온 것을 까마득 모른 채 심연의 잠 속으로 자꾸만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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