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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화에 빠지다
작가 : 미소짓기
작품등록일 : 20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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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19금 소꿉놀이
작성일 : 17-07-08     조회 : 379     추천 : 0     분량 : 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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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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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딜 만지신다 하십니까? ”

 

 춘화는 다가오는 해랑의 손을 보며 심장 박동이 격해지는 것을 강하게 의식했다. 체온은 상승하고 팔과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어찌나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가벼운 통증까지 있을 정도.

 

 하지만 아무리 서방님이라도 이건 아니지 않는가. 칼까지 들고 위협까지... 자신이 서책에 갇혀 있는 동안 서방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원래 이렇게 거친 분이 아니었는데.

 

 “...잠깐이면 됩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원래... 이렇게 거친 분이셨나?

 저고리 고름이 풀려 드러난 탄탄한 해랑의 상체가 춘화의 눈앞에서 으르렁대고 있었다. 또 저 이글거리는 눈빛... 여인들을 털썩 주저앉게 만들 색기 마저 풍기고 있었다.

 

 ‘침착해...어떻게 빠져 나갈 지?'

 

 하지만 생각할 틈도 없이 해랑은 춘화의 손목을 확 낚아채 벽으로 몰아 붙였다. 마치 만세를 하고 있는 듯한 자세로 그에게 포박(?) 당하고 만 춘화. 가까이 다가오는 해랑의 베일 듯 날카로운 콧날. 그리고 살짝 떨리고 있는 붉은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서방님의 거친 숨결... 위험해.

 

 “아..아니 된다 하였습니다!!!”

 

 “잠깐이면 된다고 하지 않았..!"

 

 본능적으로 해랑을 향해 뻗은 튼튼한 두 다리. 쭉 곧게 11자로 펴진 춘화의 두 다리는 쓰러지는 나무를 받치는 버팀목처럼 해랑을 밀어내는 동시에 떠받쳤다. 해랑의 복부 쪽에 두 발을 올려놓은 춘화.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그 위치가 좀 애매한 것이... 헉.

 

 “꺅!”

 

 순간 다리에 맥이 풀려버린 춘화. 그대로 해랑의 몸이 춘화의 몸 위로 훅하고 떨어졌다.

 

 “윽!!!”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서로 껴안는 자세로 포개진 두 남녀. 진짜로 해랑이 춘화를 덮치는 꼴이 되었다. 두 손은 여전히 꼭 잡고 있는 채로.

 

 이번엔 해랑의 입술이 춘화의 하얀 목덜미에 닿았다. 사내의 입술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드럽고 짜릿한 입술. 춘화는 그 아찔함에 온 몸의 촉각이 바짝 서면서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낭..낭자. 괜찮소?”

 

 칼집도 떨어뜨린 채 춘화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해랑. 춘화가 알던 다정했던 서방님의 그 눈빛이었다. 마음속으로 해랑을 애틋하게 불러보는 춘화.

 

 ‘서방님...’

 

 살짝 정신이 나간 춘화는 자신도 모르게 해랑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부드럽게 떨어지는 그의 턱 선에 춘화의 손이 닿자 해랑 역시 얼굴이 화르륵 붉어졌다. 하지만 그동안 그를 괴롭혀왔던 열꽃이 아니었다. 통증은 없었다. 오히려 편안하고 온 몸의 감각이 다 열리는 느낌.

 

 해랑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그녀의 얼굴로 다가갔다. 붉고 탐스러운 저 입술. 꿈속에서 가지고 싶었던 그 입술이 눈앞에 있었다.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살포시...

 

 “해랑! 이거 무슨 소리야? 괜찮아?”

 

 해랑은 화들짝 놀라며 입술을 거두었다.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놈이는 엉켜있는 두 남녀를 보며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믿겨지지 않는 놈이. 여자는 벽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놈이는 주먹을 입에다 넣은 채 다른 한 손으로 해랑을 가리키며 파르르 떨었다.

 

 “해...해랑...너...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절.대. 맞는 것 같은데?

 

 놈이는 해랑의 풀어헤친 저고리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눈꺼풀을 빠르게 껌뻑거렸다.

 

 “아니라니까!”

 

 해랑은 놈이의 시선을 느끼고 저고리를 다시 여미었지만 이미 늦었다. 눈의 깜박거림이 현저히 줄어든 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열어젖혔던 문을 조용히 닫기 시작했다.

 

 “흐흐흐... 해랑, 하던 거 마저 계속해.”

 

 놈이는 배시시 새어 나오는 미소를 손으로 애써 가렸다.

 

 ‘그런데 유곽의 기녀는 언제 부른 거야. 내가 전에 불렀을 때는 호통을 치며 돌려보냈는데. 암튼 해랑...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이제야, 드디어 올라가는 거?’

 

 “놈아!”

 

 닫힌 문을 향해 목을 앞으로 쭉 빼고 애타게 손을 뻗는 해랑. 하지만 이미 닫혀버린 문.

 

 -드르륵.

 

 

 “그런데 해랑!”

 

 다시 열린 문으로 놈이가 빠끔히 얼굴만 쏙 내밀었다.

 

 “그런 거 할 때는 문은 꼭 잠그는 거야. 그리고...”

 

 해랑은 이제 손을 뻗은 상태 그대로 굳어버렸다. 슬슬 닫히던 문이 또다시 열렸다.이번에 놈이는 문틈사이로 한 쪽 눈만 내 놓고선 해랑을 대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열심히... 알지?”

 

 마지막으로 문이 닫히자 바닥으로 힘없이 툭 떨어지는 해랑의 손.

 

 *

 

 정신없이 몰아친 놈이라는 태풍(?)이 지나가자 방안에는 적막만이 흘렀다. 사위가 조용해지자 해랑은 그제야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로서 분명해진 하나는...’

 

 놈이가 오해를 하고 떠나긴 했지만 그이의 눈에도 그녀가 보였다는 것. 그렇다면 자신의 품안에 있는 여인은 환영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그 말은 그녀가 책 속의 춘화가 아니라는 것도.

 

 “저기...언제까지 이러고 계실 겁니까, 숨 막힙니다, 도련님.”

 

 “아...!”

 

 여전히 춘화를 덮친 상태로 누워있었던 해랑은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몸을 뗐다. 이제야 숨을 크게 내쉬며 몸을 일으키는 춘화. 얼굴이 하얗게 지리다 못해 사색이 되어 있었다.

 

 “큰 무례를... 용서하시오.”

 

 “한 번만 더 무례를 저지르시면 사람도 죽이시겠습니다. 그리고 ‘용서하시오’가 아니라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아닙니까? 용서를 할지 말지는 제 의사입니다. 서...아니 도련님께서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실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입술을 꽉 오므린 채로 아무렇게나 눈을 흘기는 춘화. 사실 춘화 그녀 자신도 놀랄 만큼 해랑에게 화가 난 척, 연기는 완벽했다. 우선 화를 내는 척 하면서 여기를 빠져 나가야지.

 

 ‘맞다, 책!’

 

 헉.

 

 발끝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몸을 옆으로 돌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바람에 춘화야사를 끌고 오지 못했다. 당황한 춘화는 좀 더 다리를 뻗어 발끝으로 더듬더듬 책을 찾기 시작했다.

 

 몸은 옆으로 돌린 채 하얀 버선발만 치맛단 끝에서 들락날락.

 

 “찾는 것이... 이것 아니오?”

 

 고개를 한 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인 채 한 손으로 춘화야사를 들고 앞뒤로 흔드는 해랑. 언제 책이 저리로 간 거야?

 

 “아이 씨...”

 

 춘화는 해랑의 손에 들린 춘화야사를 보고는 속말이 툭 튀어나왔다. 바로 두 손으로 입을 가리는 춘화.

 

 “찾는 것이 맞나 보구려. 그렇다면.”

 

 하지만 이미 늦어버리고 말았다. 해랑은 다시 따뜻했던 눈빛을 거두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보기 시작했으니.

 

 “자... 이제 더 이상 장난은 그만 하고. 이 서책에 대해 말씀해 보시지요.”

 

 “아하..하.. 도련님이 무슨 말씀 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서책인데...”

 

 “처음 보는 책이라. 그렇다면...”

 

 해랑은 날렵하고 기민한 움직임으로 그녀 뒤에 있던 촛대를 가져왔다. 그리고 촛대에 불을 붙이는 해랑. 나비 촛대에 불이 아롱아롱 피어올랐다.

 

 “...태워 버려도 상관이 없겠군.”

 

 활활 타오르는 촛불 끝에 서책의 모서리를 대는 해랑. 이에 춘화는 안색이 잿빛으로 변하다 이내 하얗게 질렸다.

 

 “멈..멈추세요!!!”

 

 몹시 고통스러운 듯 숨을 몰아쉬는 춘화. 입술과 턱까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책이 태워지면 이제 모든 것이 끝이었다. 힘겹게 서책에서 탈출한 것도, 서방님을 만난 것도.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허사가 될 수 있었다.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울부짖는 목소리로 해랑에게 애원하는 춘화. 눈가에 맺힌 이슬 때문에 눈이 지나치게 맑고...슬퍼보였다. 춘화가 울고 있었다. 해랑은 서둘러 촛대의 불을 끄고 책을 내려놓았다.

 

 “진정하시오. 내 아무것도 하지 않겠소이다. 그러니...”

 

 좌불안석, 해랑은 춘화의 눈물을 보자 갑자기 가슴을 후벼 패이는 듯 아파왔다. 그러니 제발...

 

 “울...울지 마시오. 제발.”

 

 순식간에 전세 역전. 해랑은 여전히 울고 있는 춘화를 어찌할지 모르고 허둥대고 있었다. 그러자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잘게 흔들던 그녀가 잠시 울음을 그쳤다.

 

 “내가 지나쳤소. 단지 이 책에 대해 궁금했을 뿐이오. 그러니 울지 말고...”

 

 “울지 않으면... 제가 하자는 대로 하실 겁니까?”

 

 “?”

 

 해랑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다시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엉엉 울기 시작하는 춘화.

 

 “알..알겠소. 내 시키는 대로 하리다.”

 

 “뭐든?”

 

 “뭐든!”

 

 그제야 얼굴을 드는 춘화. 한참 울어 빨개진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잔잔하게 어리었다.

 

 *

 

 “낭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오?”

 

 “조금만 기다리시어요. 이제 다 됐습니다. 아얏!”

 

 춘화는 자개 화장대 앞에서 엉키어 있는 자신의 머리를 힘겹게 빗어 내리고 있었다. 빨갛게 부은 눈으로 거울을 주시하며 머리를 묶기 시작하는 그녀.

 

 “정말... 이.것.만 있으면 되는 것이오?”

 

 조금 전 해랑은 그녀에게서 ‘화장대’라는 말을 들은 것을 의심했다. 뭐든 해주겠다고 했는데 고작 화장대?

 

 해랑이 화장대를 건네자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던 춘화. 순진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 아무튼 화장대를 받은 춘화는 그때부터 저렇게 열심히 머리를 빗고 있는 중이었다.

 

 윤기가 흐르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이었지만 고약한 잠버릇(?)으로 완전히 엉켜 풀어내느라 낑낑대는 춘화. 게다가 그 단순한 동작도 무척이나 어설퍼 보였다. 해랑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지만 계속 보고 있자니 귀엽기도 했다. 하지만 벌써 시간이...

 

 “낭자... 진정 여인이 맞소? 여인이라며 쉽게 할 머리를 그렇게 못할 수가...차라리 내가 해도 그보단 빠르겠소.”

 

 춘화는 해랑의 말에 머리를 빗던 손길을 딱 멈추었다. 그리고 팔자로 휘어지는 눈썹,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안 돼, 울면.

 

 “낭자가 힘들어 보여서... 아닙니다. 하시던 거 계속 하십시오.”

 

 “머리 빗는 것이 쉬워 보여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엉킨 것도 잘 풀어내야 하고...”

 

 “그렇지요. 그 엉킨 것쯤이야 잘 풀어내면 될 것을....”

 

 아차.

 해랑은 순간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게 제가 하는 것이 못마땅하시면.”

 

 춘화는 부루퉁해진 입술을 얇게 오므리고는 빗을 해랑에게 건넸다.

 

 “도련님께서 한 번 직접 해 보시지요."

 

 “무..무슨 소리 하시는 게요?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군자 된 도리로 아녀자의 머리를...!”

 

 “아까 약조하지 않으셨습니까? 뭐든 해 주시겠다고. 남아일언중천금, 약조를 이렇게 쉽게 져버리신다면... 정녕 군자라 할 수 있는지요?”

 

 춘화는 손가락 마디에 핏기가 가실 정도로 꽉 쥔 빗을 해랑에게 건넸다. 그녀의 도발적인 말투에 쉬이 넘어날 차도남 해랑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아까 놈이가 갑자기 들어와서 제대로 확인해 보지 못했던 것.’

 

 순순히 춘화가 건네는 빗을 받아든 해랑.

 

 ‘그녀의 머리를 만져보면 확실히 알겠지. 왜 몸에서 열꽃이 피어나질 않는 지를.’

 

 해랑은 잠시 망설이다 그녀의 뒤에 다가가 앉았다. 조심스럽게 빗을 들어 올리는 해랑.

 

 어른들만의 은밀한 소꿉놀이가...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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