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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화에 빠지다
작가 : 미소짓기
작품등록일 : 20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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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몸 넘어 몸
작성일 : 17-07-18     조회 : 357     추천 : 0     분량 : 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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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무슨!!!”

 

 넘어진 궤에서 확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

 

 몸 너머 몸…

 서로 엉키어 땀에 완전히 젖어버린 해랑과 춘화는 궤 밖으로 튀어나와 방바닥에 완전히 뻗어있었다.

 

 놈이 얼른 다가가 해랑을 일으켜 세웠다. 같이 누워있는 기녀 따위 놈이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해랑!”

 

 놈이가 해랑을 잡고 흔들자 그제서야 막힌 숨을 한꺼번에 내뱉는 해랑. 그의 눈에 흐릿하게 놈이의 얼굴이 들어왔다.

 

 “...놈?”

 

 “정신이 들어? 도대체 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제야 놈이의 눈에 들어온 기녀, 옷이 땀으로 다 젖어 속이 다 비치는 저고리에 옷고름까지 풀려있었다. 물론 해랑의 저고리 역시 풀어진 상태.

 

 역시 요망한 기녀...이 좁은 궤짝에서 사내를 잡아먹으려고 안달이 난, 나쁜 기녀.

 

 놈이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춘화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네 이 년! 우리 해랑한테 무슨 짓을...어?"

 

 기녀의 멱살을 잡은 채 흔들던 놈이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갑자기 놈이의 머릿속에 천둥 번개가 치듯 번쩍, 비 오던 그 날이 떠올랐다.

 

 -도와줘...

 

 놈이의 앞에 세찬 비를 그대로 다 맞고 서 있던 한 사람...길게 풀어헤친 머리조차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빛났던 여인.

 

 -서방님이..서방님이...이상해.

 

 “설마 너... 그때 그 미친년?”

 

 분명 동네 미친 년...

 게다가 임자까지 있다던 여인이 요망한 기녀였다고?!

 

 놈이가 화를 내듯 큰소리로 물었지만 춘화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죽은 거야?”

 

  계속 흔들던 멱살을 놓고 가만히 춘화의 가슴에 귀를 대보는 놈이.

 

 “쿨...”

 

 쿨? 놈이의 걱정과 달리 코까지 골면서 태평스레 자고 있는 춘화.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물건이야? 잠을 자? 이 상황에서?”

 

 쿨쿨 자고 있는 춘화의 모습에 어이없어하며 놈이.

 

 하긴 그때도 행랑할멈의 방에서 잘도 자긴 했었지. 그러고 보니 그때 고맙다는 말도 안하고 튀었던 나쁜 미친...여자.

 

 ‘그런데 아무리 봐도 기녀는 아닌 거 같은데. 미친년이면 몰라도. 그런데 왜 매번 쓰러지고 난리야. 설마 이러다가...’

 

 여기서 죽기라도 하면 미친년이든 기녀든 간에 사단이 날 일이었다. 놈이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혹시나 한 번 더 심장소리를 들어보려 그녀의 가슴 쪽으로 귀를 가져다 대는데...

 

 이때 뒤에서 해랑이 힘겹게 상체를 일으키며 놈이의 어깨를 잡았다. 바로 해랑에게 바짝 다가서는 놈이.

 

 “해랑아, 괜찮아?”

 

 “떨...”

 

 “응? 뭐라고?”

 

 아직 숨이 찬 해랑. 무언가를 말하는 데 정확하지 않았다. 놈이는 재빨리 상체를 구부려 해랑의 입 가까이 자신의 귀를 가져갔다.

 

 “다시 말해봐, 해랑. 잘 안 들려서...”

 

 “....떨어져!”

 

 해랑이 힘겹게 놈이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더니 놈이를 확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놈이가 해랑의 몸 위로 발라당 넘어졌다.

 

 결국 해랑 위에 포개진 놈이는 자신의 밑에 깔려 씩씩대는 해랑을 보며 어리둥절 할 뿐이었다.

 

 해랑...

 기녀...아니 미친년한테 도대체 무슨일을 당한거야?

 

 *

 

 “놈아... 그럼 아버님은 눈치 못 채셨다는 거지?”

 

 이제 제대로 정신이 돌아온 듯한 해랑이 자리에 앉아 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춘화는 여전히 쌔근쌔근 자고 있고 놈이는 팔짱을 낀 채 해랑에게 단단히 삐친 듯 몸을 돌려 앉아 있었다.

 

 “글쎄요, 도련님아? 쳇!”

 

 “...아직 화가 안 풀린 게냐?”

 

 “됐어! 이제 여인 앞에선 벗이고 뭐고 없지? 갓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고 하더니. 저 기녀랑... 그게(?) 그렇게 좋았어? 벗을 의심할 만큼? 설마 내가 저 미친...아니 저 기녀를 건들릴까봐 말이지.”

 

 "저 여인은 기녀가 아니고...”

 

 “그만! 더 이상 변명하지 마. 대감마님한테 안 들키려고 내가 얼마나 맘을 졸였는지 알아? 이 죽마고우의 순수한 마음을 그렇게 매도하다니... 참. 그러고 보니 난 네 벗이 아니라 종이지. 내가 분수를 잊고... 아이고, 쇤네가 죽을죄를 졌습니다요, 도련님!”

 

 “놈아, 그게 아니라...”

 

 *

 

 시간을 거슬러 해랑과 춘화가 궤에서 튀어나와 들키기 일보 직전.

 

 연판서는 이상한 소리가 나는 뒤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몸을 날려 병풍 앞을 막아선 놈이. 연판서의 눈이 날카롭게 놈이를 노려보았다.

 

 “...뭐하는 것이냐?”

 

 “그..그것이...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놈이는 또다시 넙죽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오늘만 도대체 몇 번째 조아림인가.

 

 “...숨기는 것이 있구나.”

 

 “네? 아...네! 그렇사옵니다. 쇤네 숨겼습니다. 그러니 저를 죽여주소서.”

 

 “허, 또? 죽여달라?”

 

 “그것이 사실...”

 

 놈이가 고개를 살짝 들더니 연판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쥐...쥐이옵니다. 제가 쥐약을 놓고 치운 다는 것을 또 깜박했습니다.”

 

 “쥐?”

 

 연판서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사실...오늘 아침에도 도련님의 방에서 쥐가 나와 도련님께서 크게 호통을 치셨습니다. 집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쇤네가 부랴부랴 쥐약과 쥐덫을 놓는 동안 도련님께서는 화원에 나가셨고. 그 사이 대감마님이 들어오신 겁니다.”

 

 “흠...”

 

 “ 쥐가 나왔다고 사실대로 고하면 대감마님께서도 크게 노하실까봐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아까도 막 한 마리 잡아서 버리고 오는 길에 대감마님을 뵈었던 것인데... 쇤네가 당황하여 고하지 못했습니다.”

 

 “쥐라...”

 

 “예, 아직도 잡지 못한 쥐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저 병풍 뒤에도 몇 마리가...송구합니다. 그래서 감히 말씀드리옵사온데...”

 

 연판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놈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연판서와 시선이 마주친 놈이는 순간 흠칫, 거짓부렁에 양심이 찔렸지만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병풍 뒤에 쥐들이 언제 방안을 휘젓고 다닐지 모르옵니다. 부디 그 더러운 것들을 만나시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러자 연판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병풍 앞으로 다가갔다. 병풍 모서리를 잡는 연판서를 보며 침을 꼴깍 넘기는 놈이. 병풍 뒤를 보시면 아니 되는데.

 

 “쥐는...”

 

 병풍 모서리를 꽉 잡은 채로 고개를 뒤로 홱 돌리는 연판서.

 

 “딱 질색이다. 어서 치우거라.”

 

 연판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병풍을 잡던 손을 스르르 떼고는 뒷짐을 졌다. 그리고 바로 밖으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가슴을 한 손으로 쓸어내리는 놈이. 바로 연판서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뒤따라 나온 놈이를 본 연판서가 손을 내저었다.

 

 “나오지 말고 어서 그 병풍 뒤 쥐나 없애거라. 혼자 할 수 있겠느냐? 아니면 행랑채에 일러...”

 

 “아닙니다, 대감마님. 저 혼자 충분히 그 병풍 뒤 음탕한(?) 쥐들을 소탕할 수 있습니다.”

 

 음탕한? 연판서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해랑의 처소를 빠져나갔다. 그러다 문득 걸음을 멈추는 연판서. 뒤를 돌아보니 놈이가 부리나케 서재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놈이가 우리 집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던가...’

 

 연판서는 어린 시절 놈이를 잠시 떠올려보았다.

 

 특히 과거의 그날…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기 힘든 그날. 쓰러진 해랑을 품에 안고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던 살기등등했던 놈이를 연판서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앞으로 별 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해랑에게도, 놈이에게도.'

 

 

 

 *

 

 연판서가 빠져나간 해랑의 처소.

 

 해랑은 여전히 삐져 있는 놈이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숨 막혔던 궤짝 안에서 탈출하면서 해랑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놈이가 그녀를 만지는 것이 그때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싫었다. 그래서 놈이를 잡아 넘어뜨렸던 것.

 

 ‘아마 궤짝 안에서 숨을 제대로 못 쉬고...그래서 정신이 잠깐 나간 것일 뿐. 절대 그 여인 때문이 아니라...!’

 

 “놈아... 암튼 고맙다. 네가 아니었음 큰일 날 뻔 했다.”

 

 “알긴 아냐? 그나저나 저 기녀는 어떻게 할 건데? 깨워서 빨랑 내보내지?”

 

 “기녀?”

 

 “너 자꾸 왜 나한테 숨기는 건데? 그때 비 오던 날 찾던 여인이...저 기녀 아니야? 사내가 기녀를 불러 놀 수도 있지, 뭘 숨기고 그래?”

 

 “.....”

 

 “그리고 기녀 따위가 뭐가 좋다고 그림까지 그려주고...그렇게 찾아다녔어? 기녀라고 하는 것은 한 번 스치는 바람 같은 거야. 그렇게 정을 줘선...”

 

 “...아니야.”

 

 “뭐?”

 

 해랑은 의아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놈이의 시선을 외면한 채 잠들어 있는 춘화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여인은 기녀가 아니다, 놈아.”

 

 “나도 알아.”

 

 놈이의 말에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한 해랑. 설마 놈이도 알고 있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춘화야사를 제일 먼저 건넨 것은 놈이였다.

 

 “놈이 너도 안다고?”

 

 “그래, 알아. 저 여자가 기녀가 아니라는 것.”

 

 어쩌면 놈이가 해랑에게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을 수도 있었다. 저 여인이 기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놈이가 안다면.

 

 “그럼 저 여인이 춘화야사에서...”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갑자기 웬 춘화야사? 나는 저 미친년이 너를 홀렸다는 소린데.”

 

 “미친년? 춘화야사가 아니라?”

 

 “자꾸 춘화야사, 춘화야사! 너 자꾸 왜 그래? 네가 순진해 빠져서 자꾸 여인을 멀리하니까 그래서 내가 준 화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저... 화첩일 뿐이다?”

 

 “박고서사 그 밀실엔 다 그런 책이야. 남녀상열지사. 남녀간의 정사, 그리고 여인네들의 은밀한...”

 

 “알았다. 더 이상 설명 안 해도 된다.”

 

 놈이의 표정을 보니 놈이는 춘화야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럼 이 책은 도대체 정체가 뭐란 말인가. 그리고 저 여인은?’

 

 이때 해랑의 눈에 들어온 책상 위 분홍빛 나비 떨잠.

 

 “이것은…!”

 

 “아~떨잠? 아까 그것 때문에 대감마님께 들킬 뻔 했잖아. 그나저나 진짜 이거 웬 떨잠이야? 저 미친년꺼는 아닐테고…”

 

 “... 놈아.”

 

 “응?”

 

 “먹 좀 갈아라.”

 

 “갑자기 왜 그래? 먹은 왜?”

 

 “어서.”

 

 평소와 달리 박력이 넘치는 해랑의 모습에 놈이 아무 소리 못하고 먹을 갈기 시작했다. 이윽고 먹을 묻힌 붓을 춘화야사에 대는 해랑. 춘화의 초상화가 있던 부분이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해랑은 잠시 심호흡을 한 뒤 거침없이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춘화야사 빈 화선지에 그려지는 한 폭의 풍경화.

 

 하늘을 나는 꾀꼬리 한 쌍과 풀밭을 뛰어노는 노루 한 쌍과 토끼들. 풀밭 위로 깎아지를 듯 반공에 떠 있는 절벽. 그 절벽 위에서 그것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물의 왕, 호랑이까지.

 

 '이것 역시...반복됐던 꿈속의 한 장면들...'

 

 춘화 그녀와 만나는 꿈 이전에 자주 꾸었던 꿈들 중 하나였다. 워낙 그녀와의 만남이 강렬해 이전 꿈은 그렇게 생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그려놓고 보니 전부 기억나는 듯 했다.

 

 “와…진짜 살아있는 것 같다. 그림 솜씨하나는 죽여준다, 해랑.”

 

 "그림 뿐이더냐. 놈이 네가 몰라서 그렇지 다른 것들도 죽여준다."

 

 "거사(?)를 치르더니 사람이 달라졌네. 역시 사내란 자고로 여인의 손길이 스쳐야…"

 

 "지금부터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

 

 "엥? 갑자기 무슨 소리야?"

 

 말을 마치자마자 춘화야사를 덮는 해랑은 책을 바닥에 놓고 표지 위에 손을 올렸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두 눈까지 꽉 감는다.

 

 하지만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놈이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연해랑, 지금 뭐하는 거? 정신은 내가 아니라 네가 차려야겠다."

 

 "…왜 반응이 없지?"

 

 "반응? 책 속에서 뭐라도 튀어나오길 기다리냐?”

 

 “...아마도.”

 

 “뭐? 야! 너 진짜! 자꾸 왜 이래? 이 책을 없애든가 해야지!”

 

 놈이가 씩씩거리면서 해랑에게서 책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멀리 책을 밖으로 던져버리는 놈이. 책은 담을 넘어 처소 바깥으로 날아가 버렸다. 해랑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놈이가 이를 제지한다.

 

 “이 손 놓거라! 저 책은 함부로 다루면 안 되는 것인데..!”

 

 “정신 좀 차려, 해랑! 지금 책이 문제가 아니라고. 대감 마님 아시기 전에 우선 저 미친년부터 처리... 어?”

 

 놈이가 가리킨 자리에 자고 있던 춘화가 없다. 감쪽같이 사라진 그녀.

 

 “그새 튄 거야?”

 

 - 꺄아아악

 - 으악

 

 이때 밖에서 울려퍼지는 비명소리들.

 동시에 밖으로 고개를 돌린 해랑과 놈이는 다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설마?”

 

 해랑이 먼저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나갔다. 자객의 검까지 손에 쥔 채. 놈이 역시 해랑의 뒤를 따랐다.

 

 밖으로 나가자 더 크고 선명하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사...사람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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