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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화에 빠지다
작가 : 미소짓기
작품등록일 : 20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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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세 개의 원
작성일 : 17-07-26     조회 : 360     추천 : 0     분량 : 6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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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순식간에 담을 넘어 비명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간 해랑과 놈이.

 

 담 너머 모여 있는 민가에서는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범...범이다! 사람 살려!!!”

 

 산도 아닌 민가에, 그것도 백주대낮에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호랑이뿐만이 아니었다. 하늘에는 웬 꾀꼬리가 날고 땅에는 노루와 토끼까지. 조금 전 해랑이 그린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짐승들을 보며 놈이는 입이 쩍 벌어졌다.

 

 “어떻게...이런 일이...”

 

 이때 해랑을 발견한 호랑이가 갑자기 으르렁거렸다. 곧 해랑을 덮칠 듯 두 눈을 희득거리며 해랑 주변을 돌기 시작하는데.

 

 놈이는 이 상황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지만 퍼득 정신을 차렸다. 책에서 튀어나온 저 호랑이가 눈알을 희번뜩 굴리며 해랑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

 

 해랑 역시 이 상황이 믿기질 않았다. 하지만 그가 그린 호랑이가 눈앞에서 실제로 으르렁대고 있었다. 이때 해랑의 발에 툭 걸리는 춘화야사.

 

 ‘역시...내가 예상한 그대로인가? 그렇다면 저 책에..’

 

 해랑이 몸을 굽혀 책을 잡으려하자 더 크게 으르렁대는 호랑이.

 

 책에 좀 더 가까이 손을 뻗치자 호랑이는 포효하며 한 발을 내딛었다. 책을 집기만 하면 바로 덮쳐버리겠다는 듯이 날카로운 이와 발톱을 드러냈다.

 

 해랑은 우선 동작을 멈추고는 놈이에게 살짝 손신호를 보냈다.

 

 “놈아, 우선 이 곳을 벗어나자. 그리고 저 책...”

 

 “알겠어.”

 

 해랑이 뒤를 돌면서 몸을 굽혀 춘화야사를 집어놈이에게 바로 던졌다. 이에 공중에 붕 뜬 춘화야사.

 

 그 책을 향해 동시에 몸을 날리는 놈과 호랑이.

 

 *

 

 새하얀 빛의 소용돌이 속.

 춘화는 또다시 서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계(異界)로 넘어가는 과정은 늘 큰 육체적 고통이 따랐다. 순간 정신을 잃을 만큼.

 

 ‘그래도 정신 차려야 해. 또 정신을 잃었다간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몰라.’

 

 춘화는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내쉬었다. 극심한 통증에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도 하나만 생각했다.

 

 ‘서방님만...서방님만 생각하자.’

 

 잠시 후 잠잠해진 주위.

 노력 덕분일까. 춘화는 다행히 정신을 잃지 않았다.

 

 ‘다시 나가는 방법을 찾아야 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던 춘화는 조심스럽게 손가락 사이로 바깥 풍경을 엿보았다.

 

 “여긴...!”

 

 청명하게 펼쳐진 하늘을 나는 꾀꼬리 한 쌍과 싱그러운 풀밭을 뛰어노는 노루 한 쌍, 그리고 하얀 토끼들이 춘화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또한 깎아지를 듯 반공에 떠 있는 절벽까지.

 

 “예전과...똑같아.”

 

 이때 절벽 밑에서 뭔가가 빠른 속도로 춘화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춘화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이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수 천만 번의 잔붓질로 그려낸 듯 윤기 나는 노란 터럭, 그 위에 물결치는 까만 얼룩무늬. 이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저것은...

 

 “!”

 

 성인 남자 두세 명쯤은 거뜬히 해칠 울 엄청난 크기의 호랑이가 눈 깜짝할 새에 춘화를 확 덮쳐버렸다. 그녀는 비명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훅 쓰러졌다.

 

 “호야! 너 호야 맞지?”

 

 춘화가 누운 채로 호랑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러자 선홍빛 혀를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크게 한 번 핥아주는 호야. 게다가 고양이인양 갸르릉 대기까지.

 

 “맙소사...정말 호야구나...”

 

 춘화의 눈자위가 뜨겁게 부풀어 올랐다. 촉촉하게 젖은 흐릿한 눈으로 호랑이를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호랑이의 목을 끌어당겼다. 이미 눈물이 그녀의 얼굴 가득 흘러내리고 있었다.

 

 “호야... 고마워, 이렇게 살아 있어줘서...”

 

 - 갸르릉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춘화를 바라보던 호랑이는 이내 큰 앞발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쳐주기까지 했다.

 

 춘화는 이 상황이, 그리고 호야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분명 호야는 그 때…

 

 ‘아마 이건 꿈이겠지. 달콤하지만 잔인한 환몽.’

 

 꿈이래도 좋았다. 춘화가 언젠가는 다시 꼭 만나고 싶었던 호야... 그녀는 호랑이의 목을 끌어안은 채로 눈을 감았다. 쉬지 않고 흘러내리는 눈물들. 이에 계속 어리둥절했던 호야가 갑자기 꼬리를 양 옆으로 세차게 흔들며 바동거리기 시작했다.

 

 “응? 호야, 왜 그...”

 

 “춘화낭자. 여기서 무얼 하고 있소?”

 

 “!”

 

 눈부신 햇살을 등에 지고 서 있는 한 사내가 푸른 도포자락을 날리며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내는 이내 춘화의 앞에 서더니 그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빛을 가려주었다. 춘화가 찌푸렸던 눈을 바로 뜨자 확실하게 드러나는 사내의 정체...

 

 해사한 미소를 머금고 춘화와 호야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는 해랑.

 

 “호야가 또 춘화 그대 뒤에 숨었군. 안 그래도 절벽 위 약초밭이 다 망가져있던데.”

 

 “서..서방님?”

 

 “아무리 그대가 감싼다하여도 이번에는 아니 됩니다. 호야, 이리 오너라. 내가 누누이 약초밭에 들어가지 말라고 일렀거늘!”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해랑의 목소리에 호야는 갸릉 소리를 내며 춘화 뒤로 숨었다. 그 큰 덩치가 가려지지도 않는데 어떻게든 해랑의 시선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고개만 계속 휙휙 돌리며 회피 중.

 

 “이...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저도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무슨 범이 약초를 그리 챙겨먹는지. 게다가 키우기 힘든, 제일 귀한 약재는 귀신처럼 알아가지곤 쏙쏙... 어? 호야 너!”

 

 해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야는 입 옆으로 삐죽 튀어나온 산삼 뿌리를 호로록, 꿀꺽 삼켰다.

 

 “이 녀석이! 그거는 범이 먹을 약초가 아니래두! 어서 뱉어라.”

 

 해랑은 호야의 목을 한 팔로 감고는 꽉 다문 그 입을 열려고 하고 반대로 호야는 끝까지 버티느라 아웅다웅. 춘화는 그 모습을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늘 춘화가 그리워했던 행복했던 순간들이 분명 맞는데...

 

 “이것은... 역시 꿈입니까?”

 

 춘화는 해랑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넓게 벌어진 어깨의 단단함. 그리고 따뜻한 체온. 너무나 실제와 같아 소스라치며 손을 거두는 춘화. 그러자 해랑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뒤돌아보았다.

 

 “꿈? 낮잠이라도 잔 것이오?”

 

 “그럼 이 모든 것이 정녕 꿈이... 아니란 말이십니까?”

 

 “당연히 꿈이 아니지요. 꿈은 나중에 밤이 되면 나랑 함께 꿉시다.”

 

 호야의 목덜미를 꼭 안은 채로 춘화를 향해 싱긋 웃어주는 해랑. 그의 예전과 다름없는 다정한 눈빛, 따뜻한 미소에 춘화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또다시 춘화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 슬픔의 눈물이 아닌 안도의 눈물이었다.

 

 ‘그래... 그동안 내가 지독한 악몽을 꾼 것이야. 그때 그 일도, 춘화야사 속에 갇혀 서방님과 헤어진 일 모두.’

 

 “응? 낭자... 갑자기 왜 우시는 거요?”

 

 “아..아닙니다.”

 

 “음...그래도 이번엔 안 됩니다.”

 

 “네? 무슨..”

 

 “그렇게 우셔도 이번엔 호야는 봐 줄 수 없습니다. 요 녀석이 먹은 약초만 세워도 저 절벽을 넘어설 것입니다. 호야, 이 녀석 그렇게 약초를 먹어도 넌 신선이 될 수 없다니까. 그니까 입!”

 

 “어흐흥.”

 

 춘화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듯 입술에 댔다. 이 행복한 풍경에 그녀는 예전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눈빛이 맑아졌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이 꿈이 아니라고... 아니 이제 꿈이든 현실이든 상관없었다. 이렇게 그녀를 잊지 않고 바라봐주던 춘화만의 해랑이 눈앞에 있지 않는가. 춘화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 서방님과 계속 함께 하는 거야. 절대로 헤어지지 말고.’

 

 “그나저나 낭자. 우리... 전에 했던 것을 마저 합시다.”

 

 “네? 무엇을?”

 

 “하하...내 입으로 말하기 뭣하긴 하지만. 아주...은밀한 것을 말이오.”

 

 “은...은밀한 것이요?”

 

 해랑은 대답 대신 다소 수줍은 표정으로 춘화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버둥대는 호야의 목을 꽉 감싸 안은 채로.

 

 *

 

 “해랑! 이쪽이야.”

 

 다시 현재.

 해랑과 놈이는 책 속에 나온 호랑이를 피해 민가 지붕으로 휙 올라갔다. 지붕과 지붕 사이를 붕붕 날며 호랑이를 유인하던 해랑은 놈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산쪽으로 달려 나갔다.

 

 ‘곧 민가를 벗어나게 된다. 절벽 쪽으로 유인해야해.’

 

 어린 시절 놈이와 함께 뛰놀던 산이라 그 지세에 대해선 누구보다 능통했다. 마지막 지붕에서 훅 뛰어내리자 그들과 함께 뛰어내리는 호랑이.

 

 “놈아!”

 

 “알아!”

 

 말하지 않아도 이미 해랑과 놈이는 한마음이 되어 가파른 절벽을 요리조리 가뿐하게 뛰어넘고 있었다. 이에 비해 호랑이는 지형이 낯설어서인지 잘 따라오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절벽을 오르는 것을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절벽 중간쯤 올라온 해랑과 놈이도 잠시 멈추고 절벽 아래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해랑, 저 호랑이 좀 이상하지 않아? 호랑이가 무슨 절벽 하나쯤 못 올라와? 아무리 가파르다 해도...”

 

 해랑 역시 놈이와 같은 생각이었다. 아무리 해랑과 놈이가 산에 익숙하다하더라도 산신이라 불리는 호랑이보단 익숙할 수 없었다.

 

 ‘역시 책 속에서 나온 호랑이라...다른 것인가.’

 

 한 쪽 무릎을 꿇은 채로 아래 있는 호랑이를 유심히 관찰하는 해랑. 절벽 아래 호랑이는 이제는 같은 자리에서 뱅뱅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호랑이...

 

 “저 호랑이 갑자기 왜 저래? 빙빙 돌기만 하고... 암튼 잘 됐어. 여기서 처리하자. 검 들고 왔지?”

 

 놈이가 해랑이 가지고 있던 검을 빼앗아 손에 쥐었다. 그러자 해랑이 놈이의 손을 잡고 제지했다.

 

 “왜?”

 

 “범의 목덜미...”

 

 “목덜미가 뭐?”

 

 해랑은 가지고 있던 검을 칼집에서 뽑아내 놈이의 눈앞에 들이댔다. 순간 한쪽 눈썹이 위로 휙 올라가는 놈이. 칼끝을 한 번, 호랑이를 한 번 번갈아 바라보았다.

 

 “해랑... 이 문양들은 대체 뭐야?”

 

 세 개의 원.

 해랑의 칼끝과 호랑이의 목덜미. 그리고 자객단의 칼 문양까지. 크기는 달랐지만 모양은 똑같았다.

 

 ‘또... 하나 더 있지. 춘화야사 속에 그려져 있던 칼.’

 

 해랑은 한 손을 소매 자락 안으로 깊숙이 넣어 춘화야사를 잡았다. 그러자 절벽 밑에서 절규하듯 울부짖는 호랑이.

 

 *

 

 “왜?”

 

 다시 춘화야사 안.

 해랑은 절벽 아래로 춘화와 호야를 데리고 왔다. 물론 호야는 거의 질질 끌려와서는 절규하듯 절벽 밑에서 울어대기 시작했다.

 

 “어흐흥...”

 

 “호야 너 왜 그래? 범이 절벽을 못 타면 되겠어? 저기 있는 토끼, 노루가 막 비웃어도 좋아?”

 

 “어흐흐흥...”

 

 “그게 아니라면서 왜 이래? 이러면 발전이 없어.”

 

 고개를 좌우로 젓는 호야는 이내 그 자리에서 빙빙 맴돌기 시작했다.

 

 “무서워할 필요 없다니까. 토끼 노루 쟤네들 잠시 다른 데로 보냈어. 그러니 이제... 춘화! 이 녀석 다리 한 짝 좀 잡아 주십시오.”

 

 “네? 다리를요?”

 

 “호야에게 절벽타기를 가르칠 것입니다. 아주 은밀하게.”

 

 “그럼 은밀하게 하신다는 일이...”

 

 “바로 이 일이지요. 호야가 명색에 호랑이라고 절벽 못타는 걸 다른 동물들에게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답니다. 그러니까 은밀하게 가르쳐야지요.”

 

 그러고 보니 춘화의 기억 속에 아기 호랑이때부터 절벽을 무서워했던 호야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정말 이건 꿈이 아닌 건가.

 

 “설마 무슨 생각을...? 곧 부부의 연을 맺게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직 남녀가 유별한 시기인데.”

 

 “네?! 그게 아니라...”

 

 “농입니다. 농. 그럼 이제 시작해 봅시다. 낭자는 그 왼쪽 앞발을 하나 잡으시고. 호야! 눈 딱 감고 올라가 보...윽!”

 

 -꽝

 

 해랑과 춘화의 노력이 무색하게 호야는 발라당 뒤로 누워버렸다. 그 바람에 함께 풀숲 위로 대자로 뻗은 해랑 그리고 춘화. 자칫 잘못하며 머리까지 다칠 뻔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게 무슨...하하하.”

 

 당연히 화를 낼 줄 알았던 해랑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다 결국 웃음보가 터졌다. 청명한 해랑의 웃음소리에 춘화는 물론 호야까지 웃음이 전염되고 말았다. 경쾌하게 공기 속에 춤추는 그들의 웃음소리.

 

 한참을 웃던 춘화는 마음 한 켠이 따스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역시 이건 꿈이 아니었어. 그녀는 간만에 활짝 얼굴을 피고 웃었다.

 

 잠시 후 호야는 해랑의 가르침을 받아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디디며 절벽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이를 대견한 듯 지켜보고 있는 해랑.

 

 “호야! 잘 한다, 그렇지 그렇게 올라가는 거야.”

 

 호야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는 그를 춘화는 뒤에서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 춘화.

 

 ‘그런데 호야 목덜미에... 못 보던 문양이 있네?’

 

 세 개의 원.

 익숙한

 

 

 

 낯선 듯 익숙한 문양이었다. 원래 호야의 목덜미에 저런 것이 있었던가?

 

 “춘화, 이제 우리도 갑시다.”

 

 “어딜...?”

 

 “이제 절벽을 내려오는 것을 가르쳐야하지 않겠습니까? 자, 손잡으시지요.”

 

 춘화가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해랑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춘화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해랑이 손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그의 손을 따라갔다. 그 바람에 그녀의 머릿속에 까맣게 잊혀진 문양들. 세 개의 원.

 

 *

 

 “해랑, 저거 왜 갑자기 절벽을 잘 타? 그리고 그 문양들은 뭐야?”

 

 “...지금은 얘기할 시간이 없겠구나.”

 

 해랑은 소매에서 춘화야사를 채 꺼내지도 않았는데 호랑이는 바로 반응하며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더니 이내 적응을 했는지 이제 성큼성큼 절벽을 오르기까지.

 

 “저 호랑이 새끼는 아까 처리했어야 하는데. 해랑, 우선 거기서 만나자.”

 

 해랑은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아는 두 사람은 절벽을 올라 곧 절벽 끝 너럭바위에 도착했다. 그들을 쫓던 호랑이도 바짝 따라오더니 이내 너럭바위 위에 도착.

 

 해랑과 놈, 그리고 호랑이와 팽팽한 대치 상황.

 

 호랑이는 포효하며 한 발을 내딛었다.

 이에 뒤로 물러서는 해랑과 놈이. 하지만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순 없었다. 뒤는 떨어지면 잡을 풀 한 포기 없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뒤를 보던 놈이가 현기증에 순간 휘청했다.

 

 “아이고... 여긴 여전히 살벌하네. 그치, 해랑?”

 

 “그렇구나. 예전처럼.”

 

 계속 앞으로 나오던 호랑이는 이제 끝을 내겠다는 듯 한 번 크르릉, 포효하더니 탁탁 뒷발에 시동을 걸었다.

 

 이에 해랑과 놈이는 서로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몸을 완전히 뒤로 눕히더니 빠른 속도로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몸을 날리는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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