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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화에 빠지다
작가 : 미소짓기
작품등록일 : 20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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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기억의 조각
작성일 : 17-07-26     조회 : 367     추천 : 0     분량 : 6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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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그락 달그락

 

 춘화는 지금 서방님... 해랑의 따뜻한 등 뒤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여전히 따뜻하시구나... 서방님께서는.’

 

 사실 해랑의 등 뒤에 몸을 맡기고 말을 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서방님은 항상 어딜 가더라도 춘화를 꼭 데리고 갔다.

 

 ‘이제는 말을 잘 타시는 구나. 예전에는 말을 잘 안 타시려고 했는데.’

 

 해랑이 춘화에게 말을 타는 법을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그 때 춘화는 해랑이 가르쳐준 대로 말을 곧잘 잘 탔지만 순간 방심하여 떨어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 푹신한 짚더미에 떨어져 다치지 않았던 춘화.

 

 ‘그때 나보다 서방님이 더 놀라셔서... 난 다시는 말을 탈 수 없었지. 그리고 서방님께서도 말을 타지 않으셨어.’

 

 - 춘화 그대도 말을 탈 수 없으니 나도 말을 타지 않겠소.

 

 ‘멀리 나가실 일이 있을 땐 어찌 하냐며 서방님은 타시라고 말씀드렸지만...’

 

 - 말을 타지 않아도, 오히려 먼 거리를 걷는 것이 좋소. 그럼 그대와 더 오래 함께 걸을 수 있으니까.

 

 춘화는 지금이라도 서방님이 자신을 돌아보고 똑같은 말씀을 해주실 것만 같아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하지만 모든 상황은 변했다. 그리고 서방님도...

 

 - 아무튼 말은 위험하니 절대로 앞으로 탈 수 없소. 그대를 절대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하지 않겠소.

 

 과거 서방님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춘화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약해지는 것 같아 춘화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어. 어떻게든 서방님을 살려야...’

 

 - 히이잉

 

 이 때 갑자기 멈추는 적토. 그 바람에 춘화는 해랑의 등 쪽으로 더 밀착되었다. 해랑은 적토의 고삐를 앞으로 당기면서 춘화를 뒤돌아보았다.

 

 뭔가를 놓친 듯한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는 해랑.

 

 “괜찮습니까?”

 

 “네?”

 

 “말을 타도 괜찮은 지 여쭙지도 못했습니다. 말을 타는 걸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

 

 “급한 마음에 제 마음대로 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걸어가는 것이...”

 “소녀가 말을 무서워 한다는 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네? 그것은...”

 

 해랑 자신도 춘화가 말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어찌 알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원래 알고 있었던 사실인 듯, 한참을 말을 타고 달리다 불현듯 떠올랐던 것인데.

 

 해랑은 우선 말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디디었다. 그리고 말 위에 홀로 서 있는 춘화를 올려다보았다.

 

 새하얀 달빛을 역광 삼아 더욱 은은한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는 그녀. 선녀가 진정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

 

 춘화는 웃는 듯 우는 듯 복잡한 표정으로 해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해랑은 왠지 모르게 또다시 가슴이 아파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왜 이러지?’

 

 “혹시 기억...나셨습니까?”

 

 “기억....?”

 

 기억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뿌연 안개로 싸인 듯한 그의 머릿속에 번쩍 뇌뢰 하나가 내리꽂혔다. 해랑의 눈앞에 어떤 장면이 그려졌다.

 

 너른 벌판 위로 고삐가 풀려 미친 듯이 달리는 말...

 그 말 위에서 붕 떴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꽃잎..

 아니, 어떤 여인...

 

 ‘춘화?!’

 

 환영은 잠시 해랑의 눈을 현혹시키다 금세 사라졌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듯 그의 눈앞에는 다시 적토와 그녀...춘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심장의 극심한 고통.

 

 “...윽!”

 

 “서...서방님!”

 

 또다시 자신을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저 여인은 급하게 말에서 내려와 그에게 다가섰다. 해랑은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의 왼쪽 가슴을 부여잡았다. 혼미해져가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를 쓰지만 소용이 없었다.

 

  해랑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춘화의 손을 잡았다.

 

 “그..그렇게 내리면...위험하대도...”

 

 해랑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른 채 그대로 그 자리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서방님!!!”

 

 아무도 없는 숲 한 가운데서 춘화의 목소리만 외롭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

 

 춘화는 모닥불 옆 풀섶 위에 누워 있는 해랑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해랑이 쓰러진 뒤 겨우 그를 풀섶으로 끌어다 눕히고 그 옆에다 모닥불을 피웠다. 모닥불을 피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도 전부 서방님이 가르쳐주신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서방님도 기억이 돌아오시는 건가?’

 

 춘화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해랑의 해사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억이 점점 돌아오시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야. 내가 너무 욕심을 내서 이런 사단이...’

 

 눈물을 글썽이던 춘화는 이내 해랑의 볼 위로 눈물을 툭 떨어뜨렸다. 움찔하는 해랑은 잠에서 깨어날 듯 하다가 다시 고른 숨소리를 냈다. 춘화는 서둘러 눈물을 닦고 억지로 눈에 힘을 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동굴에서의 일을...잊으면 안 돼. 약해지지 마.’

 

 춘화는 동굴에서 호야가 가죽만 남긴 채 사라진 이후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 이후 행랑할멈의 처소로 옮겨지기 전까지 꿈속에서 헤맸던 그녀.

 

 혹시나 다시 춘화야사 서책으로 빨려 들어갈까 전전긍긍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호야...’

 

 꿈속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호야를 다시 만났다. 호야는 예전 춘화가 알고 있었던 다정하고 착한... 약초를 너무나 좋아하는 귀여운 호랑이 그대로였다. 춘화의 옆에 다가와 온몸을 비비던 호야. 그 보드랍고 따뜻한 털의 감촉이 꿈이라지만 너무 생생했다.

 

 한참을 춘화 옆에서 재롱을 피우던 호야가 갑자기 그녀를 떠나 앞으로 달려 나가더니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호야가 뭔가를 물고 있었다.

 

 ‘저것은...!’

 

 푸른 구슬, 아니 푸른 종이였다.

 

 동굴에서 호야가 사라지기 전 입에 물고 있었던 푸른 종이를 또다시 물고 있는 호야. 저걸 뺀 낸 순간 호야가 사라졌는데. 춘화는 호야가 그 종이를 뱉어내지 않도록 손을 뻗었지만 이미 뱉어버린 호야.

 

 그리고 호야는 또다시 사라졌다. 이번엔 가죽도 남기지 않고 아무런 흔적 없이 공기 중에 녹아버린 듯 사라진 호야.

 

 그리고 남은 푸른 종이.

 

 ‘호야가 꿈속에 또 나타난 거라면... 저 푸른 종이는 분명 호야가 일부러 나에게 주려고 한 것일 터.’

 

 춘화는 조심스럽게 푸른 종이를 펼쳤다. 펼치고 나니 동굴에서 서방님과 보았던 똑같은 문양이 나타났다.

 

 세 개의 원.

 

 다른 점이 있다면 세 개의 원 중 제일 큰 원이 다른 한 개의 작은 원을 삼키며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밑으로 작은 글씨들이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글씨를 읽던 춘화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양옆으로 도리질 쳤다.

 

 너무나도 익숙한 글씨.

 

 그것은 서방님... 해랑의 글씨체였다.

 

 ‘궁... 궁으로 가게 해 주십시오. 나를.’

 

 흡사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똑같은.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어쩌면...

 

 미래에서 온 서방님의 전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분명 서방님의 전언이 맞아. 반드시 궁에 가야 해. 그 뒤에 일은...’

 

 춘화는 저고리 안쪽에 숨겨놓았던 푸른 종이를 꺼내어 한참을 쳐다보았다. 빨간 모닥불이 춘화의 얼굴과 푸른 종이를 비추고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때 가서 생각하자. 푸른 구슬의 전언보다 서방님의 전언이 더 급해.’

 

 푸른 구슬의 전언.

 

 춘화가 서책에서 나왔을 때 그녀가 해야 할 일.

 그 전언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언제 푸른 구슬이 춘화를 다시 서책에 가둘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서책 속에 있을 때의 푸른 구슬이 춘화에게 주었던 다른 전언은 잠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궁으로 왜 가야 하는 지는 춘화 역시 알 수 없었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나도 기억의 조각을 다 찾은 것은 아니라 확실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으니.’

 

 무엇보다 춘화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푸른 종이의 문양 때문이었다.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이 세 개의 원.

 

 하지만 이상하게 기억이 날 듯 나지 않았다. 그저 불길한 예감만이 그녀를 휘감을 뿐. 게다가 그 문양 밑으로 서방님의 전언이 담긴 글들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으으.”

 

 이때 해랑이 정신이 드는 지 신음소리를 냈다. 춘화는 얼른 푸른 종이를 자신의 가슴팍으로 다시 집어넣고는 해랑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정신이 드십니까?”

 

 힘겹게 눈을 뜬 해랑은 춘화를 보고는 안도의 미소를 짓다가 이내 머리가 아픈 지 미간을 찌푸렸다. 해랑은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여전히 비몽사몽.

 

 “으...”

 

 아마도 기억이 조각이 하나 떠올라 해랑의 몸을 괴롭힌 것이 분명했다.

 

 춘화 역시 서책에서 나와 기억이 하나 둘씩 떠오를 때마다 정신을 잃을 만큼의 아찔함과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기에.

 

 “목이 마르십니까? 물... 근처에 계곡이 있는 듯 합니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어서 가서 물을...”

 

 춘화가 자리에서 일어나려하자 해랑은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 쪽으로 훅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해랑의 품에 쏙 안긴 춘화.

 

 “도..도련님.”

 

 춘화가 자신의 품에 들어오자 해랑은 그제야 찌푸렸던 미간을 펴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까무룩 잠속에 빠져들었다.

 

 마치 어디에도 가지 말라는 듯 어미에게 매달리는 아이처럼...

 

 사랑하는 정인을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는 한 사내가 정신을 잃는 와중에도 절대 놓치지 않는 것.

 

 바로 춘화였다.

 

 “서방님...”

 

 춘화는 해랑의 품에 안겨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숨죽여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본능적으로 그녀를 찾아 헤매는 서방님의 간절함을 춘화는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느낄 수가 있었기에.

 

 *

 

 “내 이럴 줄 알았다! 둘 다 잘들 한다!”

 

 놈이는 씩씩거리며 거칠게 말에서 내렸다. 코 평수가 두 배는 늘어난 듯 계속 해서 씩씩거리는 놈이.

 

 “누가 야외에서 이런 짓(?) 하래! 야! 안 일어나? 요망아?!”

 

 풀섶 위에 엉킨 채로 누워 있는 춘화와 해랑은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들어 있었다. 해랑이 갑자기 출발하고 나서 놈이도 그 뒤를 바로 따라가려 했으나 갑자기 해연 아씨를 맞닥뜨린 바람에 출발이 늦었다.

 

 - 놈이 넌 이 밤중에 어딜 가느냐?

 

 놈이는 해연아씨에게 대충 대감마님께서 시키신 일을 하러 간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호락호락 넘어갈 해연이 아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꼬치꼬치 캐묻던 해연은 계속 둘러대는 놈이를 의심하면서도 결국 자신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을 물었다.

 

 -오라버니는... 침소에 드셨느냐?

 

 해랑이 없어진 것을 해연 아씨가 알면...

 

 그리고 자신이 이 밤중에 말을 몰고 나간다는 것을 안다면 해연 아씨가 해랑 역시 말을 타고 나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 도련님께서는 너무 곤하시다며 지금 막 침소에 드셨습니다. 그리고 절대 자신이 깨어날 때까지 누구도 들이지 마시라고 하시며 쇤네까지 물리치셨습니다...

 

 완전히 거짓말을 아니었다.

 

 해랑이 자신을 매정하게 물리친 것은 맞으니까.

 

 침소 대신 궁으로 드시고자 한다는 것이 다를 뿐.

 

 놈이의 임기응변에 해연은 뒤돌아 설 수 밖에 없었고 놈이 역시 겨우 집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궁으로 가는 지름길로 향했지만 한참을 달려도 해랑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샛길로 들어섰더니 역시나 우려했던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던 것.

 

 “빨랑 우리 해랑한테서 떨어지라고!”

 

 놈이는 앞뒤 가리지 않고 해랑을 덮치고(?) 있는 춘화를 한 손으로 들어올렸다. 워낙이 가벼워 마치 새털을 잡아 올리는 착각이 드는 놈이.

 

 “왜 이렇게 가벼워? 으씨 짜증나!”

 

 놈이는 춘화의 모든 것이 다 짜증이 나고 싫었다.

 

 곱상한 얼굴도, 아리따운 자태도, 자신을 새침하게 째려보는 그 눈빛도.

 

 놈이가 갑자기 춘화를 떼어낸 덕분에 그녀는 퍼득 정신이 들었다. 자신의 저고리 뒤쪽을 잡아당겨 들고 있는 놈이란 녀석이 눈에 들어온 춘화.

 

 “정말 무례하구나. 이거 놓지 못해?”

 

 “무례한 건 너지. 어디서 또 음흉하게 우리 해랑을 이런 으슥한 곳에서...”

 

 “이거 놓으라고!”

 

 “하? 좋을 대로.”

 

 놈이는 자신의 손아귀에서 바둥대는 춘화를 바로 놓아버렸다.

 

 그대로 땅에 퍽 고꾸라지는 춘화.

 

 “...윽!”

 

 “꼴좋다!”

 

 “이 산적 같은 놈이 보자보자 하니까?!”

 

 “왜? 네가 놓아달라고 했잖아? 그나저나 해랑은 왜 저래? 요망이 너 이상한 거 먹인 거 아냐? 해랑! 일어나 봐!”

 

 놈이가 해랑을 흔들어 깨우지만 해랑은 고른 숨소리만 낼 뿐 깨어나지 않았다. 편안한 표정으로 깊은 잠에 빠진 해랑을 보며 놈이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

 

 “...잠이 드신 것뿐 깨우지 마. 곤하셨던 하루였지 않느냐.”

 

 “않느냐? 요망이 너 나한테 말이 짧다? 기녀 주제에.”

 

 “그러는 너도 만만치 않지. 사환 주제에.”

 

 “이게 말 한 마디를 안 지네! 오늘 너 때문에 해랑과 내가 얼마나 큰 곤란을 겪었...”

 

 “그보다 도련님께서 깨어나시면 물을 드려야 한다. 이 근처에 계곡이 있다.”

 

 “뭐야? 나보고 물 떠오라고? 내가 왜 네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데? 그리고 나 없는 동안 네가 해랑한테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아?”

 

 “네가 여기 있거라. 내가 다녀오겠다.”

 

 춘화는 옷에 묻은 마른 풀들을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놈이는 모닥불 옆 쪽에 누워있는 해랑과 춘화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 어두운 숲속을 저 기녀 혼자 보내기엔...’

 

 춘화는 익숙한 듯 말의 안장에 걸려 있던 수통 하나를 꺼내어 몸에 지녔다.

 

 ‘해랑이 깨어나 기녀 혼자 보낸 걸 알면...’

 

 “도련님을 잘 지키고 있어라. 금세 다녀 올 테니.”

 

 “그러든가 말든가!”

 

 놈이는 해랑 쪽으로 몸으로 완전히 돌려 춘화에게 등을 돌렸다. 그런 놈이의 모습에 춘화는 어이가 없으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덩치는 진짜 산적 같은 것이... 아이 같기는.’

 

 그래도 동굴에서 놈이를 보았을 때 몸동작이 예사가 아님을, 특히 해랑을 지키고자 호야에게 덤벼들었을 때의 모습을 그녀는 잊지 않고 있었다.

 

 ‘저 산적 같은 놈도 있으니...안심하고 계곡에 다녀올 수 있겠어. 안 그래도 혼자 알아 볼 것도 있었는데 잘 됐다.’

 

 “그럼 다녀올게.”

 

 “흥!”

 

 떠나는 자신을 뒤돌아보지도 않는 놈이와 여전히 잠에 빠진 해랑.

 

 춘화는 그들을 뒤로 한 채 사내의 복장을 한 것이 처음 아닌 듯, 또한 이 숲길이 처음이 아닌 듯 익숙하게 어두운 숲 안으로 거침없이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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