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하늘이 붉게 뒤덮여 있는 세상 아래에서, 거지가 입을 법한 헤지고 더러운 천을 걸친 남성이 앞에 있는 괴수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괴수는 허기졌었는지 남성을 발견하자마자 군침을 잔뜩 흘리며 입맛을 다셨다. 스스로 걸어오는 남성을 반갑게 맞이하는 뜻으로 커다란 입을 하마처럼 크게 벌렸다.
만약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있다면 경악했을 것이다. 정의로운 품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남자를 구하기 위해서 달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주변에는 남성을 위해 경악할 사람도, 구해줄 정의로운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인간들은 패배하였기에.
이곳에 있는 움직이는 것은, 커다란 괴수와 남성. 그리고 약간의 먼지와 모레였다. 이 약간의 먼지와 모레는 남성의 발걸음과 괴수의 움직임을 조금도 저지하지 못하였다.
드디어 괴수의 앞에 남성이 가까이 다가왔다. 괴수는 감사한 마음으로 남성을 한입에 삼켜버리려고 하였다.
바로 그때, 남성의 더러운 천속에서 무언가가 반짝이였다.
—타앙!
한 발의 총성이 울림과 동시에 더러운 천이 펄럭 거렸다.
동시에 괴수의 움직임 역시 멈추었다.
“……꾸엑?”
괴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총성에 의문을 가졌다.
툭.
그때 괴수의 시야가 이상하게 바뀌었다. 갑자기 하늘이 세로로 세워진 것이다.
알 수 없는 현상에 괴수는 당황하여 다시 일어서려 하였지만 몸이 말을 따르지 않았다. 이상한 의문을 잔뜩 품을 때에, 남성이 괴수의 눈앞에 섰다.
“…….”
남성의 손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를 검이 들려져 있었다. 그 검은 면이 넓지 않고 길었다. 석양이 녹아드는 주홍색의 빛이 물들어 있는 정체불명의 검 주위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착각이 들었다.
검의 도면은, 녹색의 피로 더럽혀져 있었다. 괴수는 그 피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다.
이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목이 잘려나갔음을.
“……!…………!!”
괴수의 입이 꼼지락거렸다. 목이 날아갔어도 아직까지 움직이는 징그러운 모습에 토악질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으려만 남성은 이미 익숙한지 무심히 괴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먹어라. 밥이다.”
그 말이, 괴수의 판결을 내려쳤다. 남성의 검이 기괴하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아름다운 붉은 도면에서 비늘이 돋아나고 파충류의 눈동자가 떠지면서 깜빡거렸다. 눈동자가 목이 잘려나간 괴수를 발견하자, 눈웃음을 지으며 검의 크기가 순식간에 자라났다.
그리고, 입을 벌렸다.
검의 끝이 위아래로 이등분되며 상어처럼 뾰족하고 사람의 얼굴보다 더 커다란 이빨들이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었다. 그 끔찍스러운 모습에 괴수의 안색은 창백하게 바뀌었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목이 잘려나가 몸과 따로 놀기 때문이 아니다.
몸이 붙여져 있어도 원초적인 공포감에 도망칠 수 없을 것이 틀림없다.
검의 입은 괴수를 향해 다가와 혀로 괴수의 얼굴을 핥았다. 과즙이 흘러나온 달콤한 사과의 겉을 핥는 모습이었다. 만족스러워진 괴수는 혀를 거두고 괴수에게 이빨을 들이밀었다.
괴수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빨의 무리들.
그리고 머리를 깨무는 차가운 감촉. 그것을 마지막으로 괴수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와그작, 와그작.
게걸스럽게 괴수의 머리를 먹고 있는 검을 놔두고 남성은 하늘을 올려 보았다. 더 이상 푸른 하늘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세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하핫.”
지금까지 아무런 말이 없던 남성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괴수를 먹어치우고 있던 검이 씹는 것을 멈추었다.
“아하하하하!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곧이어 남성은 실성을 한 것처럼 미친 듯이 웃었다. 얼굴을 감싸던 더러운 천이 걷어지며 남성의 얼굴이 생생이 들어났다.
남성의 얼굴은 말 그대로 병자 그 자체였다. 얼굴가죽이 뼈에 들러붙은 것처럼 살이 보이지 않았고 주름이 잔뜩 껴있었다. 주름 하나하나에 세월의 잔재가 섞여 있는 것처럼 자잘하거나 큰 상처들 역시 불규칙하게 나있었고 색소가 전부 빠져 새하얀 머리카락은 푸석하였다.
“난 해냈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괴수를 죽였다! 이곳에 넘어온 괴수는 물론, 저쪽의 괴수 역시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모습은 극장의 배우처럼 과장되었다. 그렇지만 그 모습에는 광기만이 있을 뿐, 그는 웃고 있지만 긍정적인 모습은 한 줌 찾아볼 수 없었다.
“난 이미 최강이다! 제일 강력해졌는데!!”
이내 남성의 얼굴은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가 일그러지며 눈물이 생겨났다.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어째서……지킬 것이 하나도 없냔 말이다.”
남성은 늘 혼자였다. 괴수들을 죽이기 위한 피의 길에서도, 그의 곁에 함께 걷는 이는 없었다. 그는 홀로 존재하고 홀로 나아갔다.
무엇을 위해?
“……이젠 됐어.”
일관 무표정하던 남성은 오늘 하루 세 번에나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감정이 메말랐던 남성은 괴수를 먹어치우다 말고 남성을 바라보고 있는 검을 바라보았다. 도면에 깜빡이는 눈동자가 남성을 걱정스럽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발록.”
이름이 불린 검은 그저 눈을 깜빡인다.
“이 세상이 미련 따윈 없다. 이젠 나를……”
안 돼. 그러지마.
검은 필사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남성은 끝내 말을 하고야 말았다.
“……날 먹어라.”
그 말을 끝으로, 검은 남성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조금 전까지 괴수의 머리를 먹고 있었기 때문에 입은 녹색의 피와 진득한 피의 향기가 그윽하였다.
다가오는 사신을 앞두고 남성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검은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최후의 최후에 남아 생존하였던 인간은, 이렇게……
딸랑.
이변이 찾아온 것은, 작은 은색의 종소리의 울림소리였다.
남성은 이 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워낙 익숙하였던 소리였기에 금방 기억해냈다. 그는 눈을 뜨고 무심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제 와서 무슨……어?”
남성의 눈앞에 깜빡이는 반투명한 화면. 그것에 적혀있는 하나의 문장.
그것을 확인한 남성의 두 눈은 튀어나올 정도로 번쩍 뜨고 있었다. 검은 이 남성이 매우 놀라고 있단 것을 알아차렸다.
남성의 눈앞에 적혀있는 단어는——
1장
어느 날, 세계와 인류는 하나의 분기점을 맞이하게 된다. 늘 이어 질거라 생각하였던 평화로운 나날과 일상이 한순간에 깨져버린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란 전쟁이다. 단, 그 전쟁의 상대는 같은 인간이 아닌,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괴수’들이었다.
맨 처음 괴수가 등장한 곳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남부에 위치한, 면적 1290.6 평방킬로미터인 커다란 넓이의 도시에 기거하고 있던 4백만 명의 인구들 중에서 1백 5십만 명이 사망해버린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커다란 사건이었다.
이 대 학살극을 벌인 범인은 바로 커다란 늑대들이었다. 그러나 백만 단위의 사람들을 학살할 정도로 많은 늑대들은 로스앤젤레스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거주하고 있었고 늑대들이 대륙횡단을 하는 모습 또한 보이지 않았다.
당시 로스앤젤레스를 침략하였던 늑대 섬멸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 중 한명이 말하길.
‘하늘을 구멍 낸 빛의 기둥에서 늑대가 튀어나왔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건이 일본 오사카에 커다란 인명피해가 일어나면서 상황이 심각함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괴수들은 차원문, 통칭 게이트라 불리게 되는 것이 열리면서 습격을 하였다. 게이트는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알 수 없어서 어디에 숨든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도, 괴수들이 출현되면 사단 한 병대로 괴수들을 퇴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조차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게이트의 출현빈도는 날이 갈수록 늘어지고 나타나는 괴수들 역시 점점 강해졌다. 그리고 결국, 인류의 병장기들이 전혀 통하지 않는 수준의 괴수가 출현하고 말았다.
그 뒤로, 인류는 주요 도시들이 유린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들에게 어떤 공격 수단도 통하지 않았다. 몇몇의 국가에선 눈물을 머금고 핵폭탄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잦은 게이트의 출연은 악영향만 끼치지 않았었다.
매우 적은 인류들이 게이트에 의해 생성된 미지의 에너지원에 노출되어 각성되었기 때문이다.
세계는 이들을 각성자라 이름을 붙이고 그들의 협조를 구하여 괴수들을 제압과 퇴치를 진행하였다.
결국 막대한 피해와 약간의 소득을 얻어버린, 승리 없는 전쟁에서 인류는 괴수들로부터 지구를 지켜내는 대에 성공하고 이후 괴수를 퇴치할 수 있는 유일한 특공대란 뜻에서 각성자는 ‘레이더(Raider)'라는 명칭을, 괴수들과의 전쟁을 신화에 따내어 ’라그나로크‘라 붙이게 된다.
이후, 무너진 도시들은 신도시로 새롭게 재건되었다. 또한 이 위험성은 매우 중대하기 때문에 UN에 새로운 산하 조직인 유니온(Union)이 창설되며 게이트와 새로운 미지의 에너지원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윽고 유니온의 연구원들은 게이트가 반대쪽의 세계에서 일방적으로 여는 것이며, 그것을 예측하는 방법은 미지의 에너지원이 특이점에 도달하면 발생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레이더들의 능력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는 것, 반대쪽 세계에서 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저지할 방법은 없지만 장소와 규모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유니온은 레이더들을 유니온의 지휘 아래에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 하지만 레이더들의 초월적인 강력함을 남에게 뺏기기 싫은 각국의 수장들은 유니온의 목표에 반발하게 되고 결국 각각의 나라에서 레이더들을 양성하는 것으로 결정이 난다.
그리하여 유니온은 미지의 에너지원을 연구하는 단체가 되고, 각각의 나라는 자국의 안전을 위해 더 많은 레이더들을 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특히 미국은 레이더들에게 매우 파격적인 우대조건을 내세워서 타국의 레이더들이 이민을 요청할 정도까지 다다르게 되고, 미국은 레이더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
3시 32분. 한창 사람들이 붐빌 시간대인 신서울의 거리에는 놀랍게도 곤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 일대만큼은 붐비여야 정상인 자동차 역시 보이지 않았다.
신서울은 대한민국의 특별시이다. 가장 많은 회사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장소에 자동차와 사람들이 코빼기 보이지 않는 모습은 어쩐지 으스스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지만은,
“흐음, 난 이런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
이 소녀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도시의 적적함이란 어울리지 않는 조화 속에서 괴수의 근섬유로 만든 옷과 괴수의 뼈로 만든 검을 허리에 차고서 텅 비어있는 도로 한 가운데를 걷는 소녀는 긴장감 없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소녀는 동양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큰 키에 늘씬한 몸매를 한 이목구비가 뛰어나 뒤돌아 볼 정도로 뛰어난 미인이었다.
그녀가 뒤돌아 볼 때면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긴장하였다. 아무리 건장한 남성이라도 뛰어난 미녀인 백하나의 앞에 서게 되면 아무런 말도 못할 것이다.
나는 일부러 헛기침을 몇 번 날리고서 백하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긴장 푼 거 아니야? 이제 10분 뒷면은 게이트가 출현 할 텐데.”
특별시에 있을 수 없는 한적함을 만든 원인. 대략 7시간 전 한국 유니온 지부에서 신서울에 게이트가 열릴 것을 예측하였고 그동안 비상대피훈련을 열심히 하였던 시민들은 빠른 시간 안에 대피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곳 반경 1킬로미터 내외로는 사람들이 전혀 오가지 않았다. 경찰과 군대가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라? 무서워? 혹시 겁먹었으면 말해. 꼬옥 안아줄게.”
“무, 무섭다니! 그런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