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무섭지 않을 리가 없다. 10년 전의 전쟁에서 가족을 눈앞에서 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괴수들의 눈동자를 생각하면 지금도 두려웠다.
그런 주제에 레이더로서 자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땐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란 걱정부터 앞섰다. 레이더가 된다면 괴수와 싸울 일들이 많아지는데 괴수들과 제대로 맞설 각오가 없었다.
적어도, 백하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지금은 괴수와 마주한다는 것 보다, 그녀와 헤어진다는 것이 더 무서웠다.
“뭐야, 딱 봐도 겁먹은 얼굴인데.”
장난스럽게 내 코끝을 손가락으로 꾹 찌르는 백하나의 장난스러운 행동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말이야. 내가 너보다 훨씬 더 강하니깐. 그런 걱정은 필요 없다고?”
가슴을 쭉 펴면서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의 주장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백하나의 말대로 나는 그녀보다 약하였다.
백하나의 잠재능력은 S급. 현재 레이더 등급은 A급. 세계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그녀를 사람들은 신동이라고 칭찬하였다. 그에 반해 나의 레이더 등급은 B급이다.
나의 잠재능력이 C급이란 것을 생각하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이게 한계였다. 더 이상 노력을 하여도 백하나를 뛰어넘을 정도로 강한 레이더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유니온의 사람들이나 정부의 관계자들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본인은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레이더 강대국인 미국에선 레이더들을 강제적으로 한 단계 강해지게 만드는 시술이 있다고 알려졌지만 그건 미국 레이더들에게 한정되어 있었다.
지금 당장 미국으로 이민신청을 한다면 레이더들을 원하는 미국은 얼마든지 환영하며 과할 정도로 여러 혜택을 약속하여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이 보장될 테지만.
“아, 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하늘의 일부분이 일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열기에 피어오른 아지랑이처럼 소용돌이 형태로 뒤섞이기 시작하였다. 게이트가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그것을 본 나는 긴장하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머리 위로 헬기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 광경을 뉴스로 내보내기 위해 파견된 기자일 것이다. 이번에 등장한 게이트는 고작해야 낭(浪)급. C급 레벨의 레이더 3명 혹은 사단 한 부대면 충분히 격퇴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A급 레벨의 레이더가 서 있었다. 낭(浪)급의 게이트에 튀어나오는 몬스터라고 해봤자 그녀에게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백하나는 여유롭게 검을 돌리면서 게이트를 주시하였다. 헬기 위에서 무어라 떠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적당히 무시하며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 나오길 2분.
아직 미완성한 게이트를 비집고 무언가가 모습을 나타냈다. 온 몸은 털로 뒤덮여 있고 커다란 이빨이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모습은 남들이 보면 공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오래전, 로스앤젤레스에서 대 학살극을 벌였던 괴수와 같은 계열의 늑대인간 괴수였다. 괴수의 몸통은 완전히 빠져나와 떨어졌다. 가급적이면 그대로 목부터 떨어져 착지에 실패해 목뼈가 부러지길 원하였지만,
쿵!
늑대인간형의 괴수는 나의 기대를 산산이 부수면서 다리부터 착지하였다. 괴수가 떨어진 높이는 다리가 부서질 정도의 높이였지만 저 괴수의 신체는 일반인보다 몇 십 배는 더욱 강하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늑대인간형 괴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우리를 발견하고서 이빨을 들이밀었다.
“아우우우우우우!!”
나는 손목에 채워진 기계를 작동시켰다. 기계는 손목시계처럼 작아서 전투할 때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잠시 동안 무언가를 측정하던 기계는 숫자 1을 나타냈다.
“제한시간은 1시간이야.”
“1분이면 충분해!”
백하나가 두 손에 검을 쥐었다.
“잠깐만 기다려줘.”
달려드는 늑대인간형 괴수를 단칼에 해치우려는 백하나를 제지하였다. 그녀는 “왜?”라는 물음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잔뜩 각오하였던 한마디를 백하나에게 말하였다.
“내가 쓰러뜨리고 싶어.”
“으음, 상대는 낭(浪)급 괴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겠어?”
백하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백하나에게 낭(浪)급 괴수를 맡기면 1분이 아니라 10초 이내에 낭(浪)급 괴수를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전혀 성장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작지만 원대할 지도 모를 목표가 있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내가 용기를 내면서 달려오는 낭(浪)급 괴수를 주시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하나는 검을 집어넣었다.
“너 말이야, 내 앞이라고 멋진 척 하는 건 아니지?”
“그런 거 아니야!”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낭(浪)급 괴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괴수는 이빨을 들이밀며 나를 적으로 인식하였다.
눈앞의 낭(浪)급 괴수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늑대인간처럼 생겼었다. 놈의 이빨은 목을 뚫어버릴 정도로 크고 발톱은 강철을 찢어발길 정도로 튼튼하다. B급 레이더인 나라도 잘못 걸리면 생채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승부에 임하자.
선공을 휘두른 것은 낭(浪)급 괴수였다. 우악스러운 손가락 끝에 자란 억세고 날카로운 무기가 나의 얼굴에 커다란 상처를 내기 위해서 다가왔다. 나는 머리를 옆으로 숙이면서 그것을 피해냈다.
낭(浪)급 괴수의 커다란 움직임 덕분에 나는 녀석의 품 안으로 깊숙이 들어올 수 있었다. 어린아이시절 공포의 대상이었던 괴수가 눈앞에 있었지만 이상하게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래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숨을 간추리고, 아직 뽑지 않은 검의 손잡이를 왼손으로 꽉 쥐었다.
그리고 칼집에 장착되어있는 방아쇠를 오른손 검지로 당겨서—
—타앙!
한 발의 총성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칼집의 끝부분이 불티가 튀었다. 그 반발력으로 칼집에 꽂혀있던 검이 총처럼 뽑혀진다. 검을 쥔 왼손은 검이 튀어나가지 않도록 꽉 쥐는 것과 동시에 이 반발력이 다른 곳에 흐르지 않도록 부드럽게 휘둘렀다.
수천 수백 번은 반복하였던 동작은 총탄의 힘을 잡아 휘두를 수 있도록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 힘은, 낭(浪)급 괴수의 허리를 단 일격에 양단할 수 있을 충분한 힘이 되어 주었다.
낭(浪)급 괴수의 상체가 허공을 빙그르르 돌았다. 허리의 단면에서 많은 양의 녹색 피와 내장들이 흘러내렸다.
말 그대로 한 수의 승부.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낭(浪)급 괴수의 마지막 표정은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허공에 검을 휘둘러 검에 묻은 녹색 피를 흩뿌리고 검을 칼집에 꽂아 넣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자 하늘 위에서 이상한 울림이 들려왔다. 하늘 위에 존재하던 게이트는 일렁거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작아지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구멍이 났던 하늘에 다시 하늘색이 메꿔지며 신서울은 위기에 벗어났다.
낭(浪)급 게이트 사건이 완전히 종결된 것으로 판단이 섰을 때 뒤에서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역시 할 땐 하잖아? 조금은 다시 봤을지도?”
“……정말로?”
백하나가 빙그레 웃어주었다. 천사같이 사랑스러운 웃음에 나 역시 웃음을 지을 것 만 같았다.
“으음, 그래. 점수를 주자면, 5점 플러스라고 해줄까나?”
“그럼 지금까지 합쳐진 점수는 60점이네?”
백하나가 다시 내 코끝을 찌르면서 장난스럽게 말하였다.
“그래. 앞으로 40점 남았다고? 열심히 해야 나랑 같이 데이트할 수 있겠지?”
“……여, 열심히 할 테니깐! 잠시만 좀 떨어지자!”
백하나가 거리를 좁혀온다는 것은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처음 만났던 5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녀에 대한 마음은 더욱 두근거리고 내 안의 그녀의 존재는 이미 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컸다.
백하나도 알고 있을까? 나에게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아아, 유니온의 차량은 언제 온대. 괴수 시체랑 같이 있는 일은 즐겁지 않은데.”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올 거야. 괴수를 쓰러뜨렸다는 소식은 조금 전에 알려졌을 테니깐.”
헬기 안에서 이쪽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것을 발견한 백하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은 생생하게 찍히면서 TV에 생방송으로 출연하게 될 것이다.
때 마침 그 방송을 보기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었다.
“기다리기 심심하면 같이 뉴스보고 있지 않을래?”
“에엑? 뉴스를 왜 봐? 그런 건 시시한 어른들이나 보라고 해.”
김 샌 표정으로 손으로 저리 치우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백하나를 보고서 나는 아쉽듯,
“그래? 아쉬운걸. 우리 TV에 출연했을지도 모르는데.”
“응? 정말로? 같이 봐봐.”
흥밋거리를 발견한 아이처럼 백하나는 태세를 바로 전환하였다. 그 모습이 마냥 좋은 나는 스마트폰을 조작하여 TV를 켰다. 스마트폰의 화면은 보도국을 비춰주고 있었다.
[바로 조금 전 신서울을 습격하였던 괴수는 소탕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은 안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TV속의 예쁜 아나운서는 정말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TV의 화면은 빠르게 바뀌어 바깥의 거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는 괴수의 사체와 그 주변을 지키고 있는 두 남녀의 모습.
두 남녀는 무언가를 빤히 바라보고 있어서 뒷머리가 훤히 들어나 있었다.
“이거 우리잖아.”
“응. 우리네.”
백하나는 곧바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흔들었다. 그 모습이 TV화면에 생생하게 잡혔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 우리들의 영웅들이 이쪽을 보고 손을 흔들어주고 있습니다. 신서울의 여제님과 기사님은……]
기사님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 백하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기사님! 푸하하하핫! 기사님이래!”
“…….”
“아아, 기사님. 소녀를 한번 봐 주세요.”
“……………….”
“부디 전장에 나설 때에 소녀의 손수건을 꼭 챙겨 가시길.”
애처롭고 가련한 소녀의 모습을 흉내 내는데 열심인 백하나의 행동에 내 얼굴은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익어버렸다. 그렇지만 기침을 하며 재빠르게 냉정함을 되찾고 백하나에게 반격을 시작하였다.
“그러는 백하나는 여제님이라고 불리는데?”
“응. 나한테 굉장히 어울리는 단어잖아.”
“…….”
그 압도적인 자신감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나보다 여제라는 명칭이 어울리는 여성이 이 대한민국에 어디 있겠어? 내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의원이시고 어머니는 라그나로크를 종결시킨 살아있는 전설의 레이더이지. 게다가 난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재능이 충분하고 실제로도 강하잖아?”
“으음, 인정합니다.”
“막말로, 대한민국 내에서 나보다 더 쌘 사람은 없을 걸?”
백하나의 마지막 말은 커다란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이번만큼은 장난기가 없는 여성의 웃음이 나의 심장을 강타하였다.
이 밝은 모습이, 너무 좋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암울했던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것은 백하나 덕분이었다. 나를 한 사람의 레이더로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오고갔지만, 백하나가 나의 곁에서 긍정적으로 함께 해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그런 그녀는 언제나 밝았고 나를 바꾸고 나의 삶에 암운을 걷어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더도 없는 은인이며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었다.
백하나의 슬픈 표정은 상상이 되지 않았고 상상하는 것도 싫었다. 그녀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녀의 곁에서, 그녀와 함께 레이더로 활동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좋다.
그렇지만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한계까지 단련한 나와는 다르게.
백하나는 언젠간 한국이라는 좁은 나라가 아닌 세계로 나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와는 헤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내가 방해가 된다면 나는 나 스스로 포기할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