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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언
작가 : 사이딘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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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화
작성일 : 16-07-12     조회 : 872     추천 : 0     분량 : 5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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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똑같은 꿈. 카르젠은 알고 있을까. 그가 매번 똑같은 꿈을 꾸며 밤마다 괴로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잠꼬대처럼 내뱉는 그의 말에 그날의 일을, 그의 가문이 불에 타 없어지는 꿈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꾸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때의 충격이 제법 깊게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때 나이 고작 7살. 어린 나이에 자신의 가문이 불에 타고, 아버지가 누군가의 검에 베인 후 쓰러진 모습을 본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그 사건으로 이렇게 가족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하니, 알게 모르게 그날의 일이 깊은 상처로 남아 있을 테지.

 “바보 녀석.”

 일리언은 그런 생각을 하고는 신음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카르젠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일. 그렇다고 아픔이 있는 녀석이니 성격에 맞지 않게 따뜻하게 대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

 일리언은 끙끙거리며 괴로워하는 일리언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의 옆에 흘러내려 있는 이불을 집어 툭 던지듯 덮어주었다.

 “그만 조용히 자라.”

 그리고 가볍게 그의 가슴을 다독이듯 두드려 주고는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으…… 음…….”

 그러자 신기하게도 방금까지 괴로워하던 카르젠의 표정이 편안해지며, 이내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를 냈다.

 일리언은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인지 별다른 말없이 몸을 일으켜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우웅! 일리언…… 바보…… 못된 인간…… 나쁜 놈!”

 “…….”

 그러다 다시 들려오는 카르젠의 음성에 침대로 향하던 걸음을 뚝 멈추고는, 천천히 다시 그를 향해 돌아섰다.

 “음냐! 일리언…… 구두쇠…… 히히!”

 히죽거리며 잠꼬대를 내뱉는 카르젠.

 일리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꿈속에서 실컷 하는 것이 행복한지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

 딱!

 그 모습을 잠시 말없이 응시하던 일리언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활활 타오르는 불꽃 하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르젠은 알고 있을까. 매번 아침마다 일리언이 살기 어린 마법으로 그를 깨우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바로 지금처럼 똑같은 잠꼬대를 내뱉어 일리언의 살기 어린 마법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말이다.

 화아악!

 “응? 뜨거…… 뜨거? 헉! 으악! 실드!”

 “시끄러! 당장 일어나서 씻어!”

 그렇게 오늘도 평범한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

 

 “어머! 치사하게 우리만 빼고 자기들끼리 먹고 있는 것 좀 봐.”

 “우리가 언제부터 같이 식사하던 사이였지.”

 “오늘부터.”

 “…….”

 카르젠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일리언은 당당하게 자신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류네아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또한 그녀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와 자신의 눈치를 보며 그녀의 옆에 앉는 리아를 보고는, 신경을 끄고 싶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며 그녀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아! 그 반찬 나 줘!”

 “죽을래.”

 “무서운 인간. 고작 반찬 하나 가지고 살인을 하려고 하냐.”

 물론 그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일리언의 음식을 뺏어 먹으려고까지 하는 류네아였지만 말이다.

 “쳇! 역시 치사한 녀석들. 안 뺏어 먹는다, 안 뺏어 먹어.”

 류네아는 반찬 하나 안 뺏기려고 살기까지 내뿜으며 노려보는 일리언과, 미리 자신의 공격을 차단하는 듯 바짝 식판을 끌어당겨 팔로 음식을 가리고 먹는 카르젠을 보며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벌써 함께 식사할 정도로 친한 친구가 생긴 건가.”

 “아, 베히너 선배!”

 “같이 식사해도 될까?”

 “네, 이쪽에 앉으세요.”

 잠시 후, 베히너가 다가와 일리언 일행과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여긴 저희와 같은 반인 류네아와 리아, 이쪽은 3학년 베히너 선배.”

 “류네아예요.”

 “리, 리아입니다.”

 “베히너다. 만나서 반갑다.”

 카르젠의 소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눈 일리언 일행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다들 둔한 거냐, 모른 척하는 거냐?”

 “네?”

 “다른 이들의 시선이 안 느껴지나 보지?”

 “시선이요?”

 “모르면 됐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 식당 안에서 가장 많은 시선을 받고 있는 이들이 바로 일리언 일행이었다.

 저절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이들.

 수석으로 입학해 여자처럼 고운 외모로 이미 아카데미 안에 소문이 나 있는 카르젠을 시작해, 첫날부터 남자 선배들이 따라올 정도로 귀여운 외모를 가진 리아, 화려한 외모로 사람들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류네아가 한자리에 있으니 어찌 눈에 띄지 않겠는가. 게다가 은근히 여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일리언이었다.

 “자네, 그 머리, 염색이지?”

 “알 것 없어.”

 안경으로 가려지지 않는 잘난 외모에, 신비해 보일 정도로 긴 은보라 빛 머리를 가볍게 묶어 늘어뜨린 모습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전혀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 차가운 분위기는 여자들의 시선을 묘하게 끌어당겼다.

 “자네가 말한 소원은 언제 써먹을 생각이지?”

 “필요할 때. 까먹지나 마.”

 “하하! 물론.”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대표 주자인 일리언을 향해 베히너는 신입생 환영 행사 때 약속했던 소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기로 약속했던 베히너는 여전히 아무런 부탁도 하지 않는 일리언을 보며 피식 웃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이 머문 곳에는 리아와 웃으며 식사를 하고 있는 류네아가 있었다.

 “류네아라고 했던가?”

 “네.”

 “낯이 익어.”

 “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거든. 우리 다른 곳에서 만난 적이 있었나?”

 “……아뇨.”

 “흐음…… 그래. 그런데 왜 이리 낯이 익지.”

 베히너는 류네아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가 어디선가 본 듯 낯설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자에게 관심을 끄는 방법치곤 너무 옛날 방식인데요, 선배님.”

 베히너의 말에 잠시 표정이 굳어 있던 류네아는 이내 웃으며 그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쳤다.

 “하하! 그런가. 내가 착각했나 보군.”

 베히너 역시 가볍게 넘어가며, 더 이상 류네아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일리언은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류네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알면 닦아.”

 “진짜?”

 자신의 시선에 당황하며 손으로 입가를 닦는 류네아를 보며 일리언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놈의 아카데미는 왜 이리 비밀이 많은 것들만 있는지.”

 “……!”

 그러다 이어진 일리언의 말에 류네아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지만,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을 끊은 채 식사에 열중할 뿐이었다.

 

 ***

 

 “아, 일리언, 어디 가?”

 “신경 끊어.”

 수업이 끝나고 책을 챙기던 류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빠져나가는 일리언을 큰 소리로 불렀지만, 그는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은 후 총총 사라져 갈 뿐이었다.

 “매번 수업이 끝나면 어디를 저리 급히 가는 거야?”

 어느새 일리언의 차가운 어투에도 익숙해진 류네아는 그저 그가 어디를 가는 것인지 궁금함을 느끼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도서관.”

 “응?”

 그런 그녀의 궁금증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온 카르젠이 대신 풀어 주었다.

 “도서관? 안 어울리게 웬 도서관?”

 “응. 세상에 자신이 모르는 게 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아마 또 뭔가 알고 싶은 게 생긴 거겠지.”

 카르젠은 오랜 세월 일리언과 살면서 자신보다 먼저 잠이 드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잠결에 일어났을 때도 그는 책을 읽고 있었고, 또한 언제나 새로운 책이 들려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지낸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흡수하기라도 하듯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어 나갔다.

 처음에는 카르젠 역시 일리언을 따라 그가 읽는 책들을 함께 파고들었지만, 도저히 그가 익혀 나가는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지식은 덩달아 쌓이긴 했다.

 일리언의 머리를 따라가지 못할 뿐, 카르젠 역시 남들보다 떨어지는 머리는 아니었으니깐. 그 덕에 별다른 준비 없이 엘브란스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입학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저, 저도 도서관에 볼일이 있는데요.”

 “그래? 그럼 우리도 가지, 뭐.”

 “그래. 우리도 가 보자.”

 “저기…… 반납할 책은 지금 기숙사에 있는데…….”

 “그럼 기숙사에 들렀다 가면 되지, 뭐.”

 그때, 조심스럽게 도서관에 돌려줄 책이 있다며 말을 꺼내는 리아로 인해, 류네아와 카르젠은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갔다.

 귀찮게 뭐하러 따라오느냐고 화를 낼 일리언에게 핑계 거리 하나 생겼다는 것이 즐거운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말이다.

 

 ***

 

 엘브란스 도서관은 최고 인재들을 양성하는 곳답게 수많은 책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만큼 모든 분야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 모아놓은 도서관은 세계 최대 규모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규모에 비해 도서관 안에서 학생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어렵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본 수업을 따라가기에도 벅찰 지경이었고, 원하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려고 해도 다른 경쟁자들에게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 학생들은 다들 자신의 방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 있군.”

 물론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일리언은 오늘도 당당하게 원하는 책들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리며 도서관을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응?’

 원하던 책을 찾아 뽑아들던 일리언은 자신과 조금 떨어진 책장 앞에서 까치발로 선 채, 책을 빼기 위해 팔을 뻗고 있는 한 사람을, 아니 한 아이를 바라보았다.

 나이는 많이 봐줘야 12살에서 13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은 리아처럼 칠흑 같은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백옥처럼 하얀 피부에 여자처럼 붉은 입술, 여자들이 흔히 말하는 미소년이라 불릴 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힘들게 팔을 뻗어 책을 뽑으려는 상황에서도 소년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밀랍 인형처럼 얼굴에서 그 어떤 감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대체로 이런 경우 힘이 든다는 듯이 끙끙거리는 것이 당연할 텐데, 소년은 마치 석상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팔을 뻗어 손끝만 까딱거릴 뿐이었다.

 “……!”

 그렇게 잠시 똑같은 포즈로 책을 뽑기 위해 서 있던 소년은 순간 머리 위로 손 하나가 뻗어 나와 자신이 원하는 책을 뽑아가자, 그대로 뒤돌아 상대를 바라보았다.

 “…….”

 보통 또래의 소년이라면 자신이 먼저 찜한 책이라고 소리를 치든지, 인상이라도 찌푸릴 텐데 눈앞의 소년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도서관에 사다리가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모르는 이가 있을 정도로 비밀이었던가.”

 일리언은 소년의 머리에 대신 뽑은 책을 올려 주며, 다음부터는 도서관에 구비된 사다리를 이용하라는 충고를 빗대어 말한 후, 뒤돌아 소년에게서 멀어졌다.

 “…….”

 소년은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진 책이 떨어지려 하자 그것을 빠르게 잡고는, 사라져 가는 일리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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