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판타지/SF
일리언
작가 : 사이딘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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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화
작성일 : 16-07-12     조회 : 753     추천 : 0     분량 : 5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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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미 소년의 존재 자체를 잊은 채 집중해서 책을 읽고 있던 일리언은, 어느 순간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어 정확히 그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만났던 소년이 자신과 조금 떨어진 책상에서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과 시선이 마주치자 쪼르륵 자신이 있는 책상 쪽으로 다가와 맞은편 자리에 앉더니, 다시 빤히 자신을 보기 시작했다.

 “뭐냐?”

 “…….”

 일리언의 물음에 소년은 계속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불쑥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

 의아한 눈빛으로 그런 소년의 행동을 지켜보던 일리언은 손을 내밀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소년의 내밀어진 손 밑으로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위로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일리언은 고개를 내려 손 위에 놓인 그것을 바라보았다.

 “……사탕?”

 예쁜 포장지에 싸여 있는 작은 사탕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나 먹으라고?”

 끄덕.

 “조금 전의 보답이냐?”

 끄덕.

 일리언의 물음에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일리언은 손 위에 놓인 사탕과 소년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잘 먹으마.”

 끄덕.

 

 “헉! 저, 저 인간이 웃잖아!”

 한편,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멀리서 몰래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일리언을 따라 도서관에 막 도착한 카르젠 일행이었다.

 “그러게.”

 “이, 일리언이 웃는 거 처음 봐요.”

 언제나 자신들에게 인상만 쓰는 일리언이 소년 앞에서 웃음을 보이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완전 싸가지에.”

 “자기밖에 모르고.”

 “매번 인상만 쓰며.”

 “잘난 척만 일삼던 인간이.”

 “고작 사탕에 넘어가냐.”

 “……그래서 불만이냐.”

 “……!”

 “……!”

 일리언에 대해 번갈아가며 한 마디씩 내뱉던 류네아와 카르젠은,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나직한 음성에 움찔하며 떨리는 눈빛으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헉! 일리언!”

 “다, 다 들은 거야?”

 “설마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언제 온 것인지 일리언이 팔짱을 낀 채 자신들을 싸늘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하하! 그게…… 일리언…… 도주!”

 “뭐? 도주? 꺅! 리아, 뛰어!”

 “저,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치사하게 혼자만 살겠다 이거냐!”

 “이 배신자! 그래도 일단 뛰어!”

 잠시 후, 세 사람은 일리언을 피해 빛처럼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바보들 아냐?”

 그런 그들의 모습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보던 일리언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지들이 뛰어봤자 이곳 안이지.”

 도망쳐 봤자 저녁때는 기숙사로 돌아와야 할 녀석들이 죽자고 도망치는 모습이 한심해 고개를 내젓던 일리언은, 이내 그들을 무시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응?”

 그러다 방금까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던 소년이 보이지 않자 의아해하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도서관 어디서에서도 소년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

 자신의 자리에 놓여 있는 작은 사탕만이 소년이 방금까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었다.

 

 ***

 

 “뭐라고?”

 “세티르 윌로우. 도서관에서 만난 그 소년이 바로 이 학년에 재학 중인 윌로우가의 막내라고.”

 그날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기숙사로 돌아온 세 사람을 향해 미뤄두었던 살기 어린 눈빛을 내뿜던 일리언은, 방패를 내밀듯 윌로우가의 사람에 대한 정보를 꺼내는 류네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녀석이?”

 “응. 엘브란스 아카데미 최연소 입학자라고 들었어.”

 세티르 윌로우. 바로 오늘 낮에 도서관에서 일리언이 만난 소년의 이름이었다.

 윌로우가의 사람으로, 현재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게다가 작년에 수석으로 입학한 자이기도 하고 말이야.”

 “수석 입학?”

 “응.”

 게다가 작년 입학자 중 제일 높은 점수로 이곳에 들어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정확한 나이는 알려진 게 없지만, 척 보아도 십대 초반으로 보이잖아. 다들 난리가 났었다고 하더라고. 머리 좋고, 집안 좋고, 여자들이 끔뻑 넘어갈 정도의 미소년!”

 “…….”

 일리언은 류네아의 설명을 들으며 오늘 낮에 만났던 소년, 세티르의 모습을 떠올렸다.

 “별로 닮지 않았군.”

 “누구? 블레드 선배와 밀드란 선배?”

 “오히려 저 녀석과 닮았는데.”

 “네? 저요?”

 칠흑처럼 검은 머리는 블레드와 닮긴 했지만, 그 밖에 전혀 닮은 구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조용히 앉아 있는 리아와 좀 더 많이 닮았다고나 할까. 외모를 떠나 전체적으로 작고, 조용한 분위기가 많이 닮아 있었다.

 “흐음…… 그러고 보니 윌로우가 모든 사람들을 별로 닮지는 않았네. 다들 친형제라고 들었는데.”

 류네아는 일리언의 말에 그들의 외모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그리 그들에게 관심이 많은 거야?”

 “기억력이 제로냐.”

 “뭐!”

 “알 것 없다고 했을 텐데.”

 “쳇!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러는 나야말로 묻고 싶군.”

 “뭘!”

 “너야말로 왜 그리 윌로우가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건지 말이야.”

 “나도 저번에 말하지 않았나.”

 “들었지, 스토커.”

 “야! 우씨! 이렇게 예쁜 스토커 봤냐!”

 “지금 보고 있잖아.”

 “뭐야! 누굴 자꾸 스토…… 잠깐! 지금 그 말은 내가 예쁘다는 걸 인정하는 거? 어머나!”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헛소리 집어치우고 가서 잠이나 자.”

 일리언은 자신의 말에 금세 환한 미소를 짓는 류네아를 못마땅하게 본 뒤,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쳇! 그만 가자, 리아.”

 “응? 아, 응.”

 그런 그의 모습에 류네아는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리아와 함께 방을 나섰다.

 “일리언.”

 “왜.”

 그녀들을 배웅하고 일리언의 곁으로 돌아온 카르젠은 조용한 음성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이 목걸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라도 한 거예요?”

 “……아니.”

 카르젠은 유난히 윌로우가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일리언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래서 혹시나 목걸이에 대한 단서라도 찾은 것인가 싶어 물었지만, 그것도 아니라고 하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그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카르젠이 류네아와 똑같은 질문을 하자 일리언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위험한 향기가 나거든.”

 “네? 누구요?”

 “네가 사람 좋아 보인다고 했던 녀석.”

 “블레드 선배요?”

 무시로 대답을 대신했던 류네아 때와는 달리, 일리언은 카르젠의 물음에 처음으로 대답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일리언의 대답에도 카르젠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위험한 향기라니. 그게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카르젠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신입생 환영 행사 때 친절하게 길까지 가르쳐 준 좋은 선배가 바로 블레드였지 않은가.

 “좋은 사람인데…….”

 “너한테 안 좋은 사람이 있기는 하냐.”

 “있어요!”

 “누구?”

 “매번 제가 숨겨 놓은 간식을 찾아서 훔쳐 먹는 인간이요!”

 “…….”

 “그러면서 아주 뻔뻔하게 맛있는 것 좀 숨겨 놓으라고 오히려 타박을 하는 인간이 있죠.”

 “…….”

 “그래서 숨기는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것도 또 죽자고 찾아 뺏어 먹는 인간!”

 “…….”

 “뭐 찔리는 거 없으세요?”

 “너무 찔려서 네 얼굴 보기가 힘들다. 자라, 자!”

 침대에 다리를 꼬고 앉아 경찰이 범인을 심문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카르젠의 얼굴을 일리언은 손으로 꾹꾹 눌러 주었다.

 “아앗! 그것도 뻔뻔하게 자신의 죄도 모르고 사람을 패기까지 하는 인간! 각성하라! 각성하라!”

 “시끄러워!”

 

 

 

 제7장 체육대회

 

 

 

 “일리언.”

 “응?”

 “안 자요?”

 “먼저 자.”

 “싫어요.”

 “…….”

 책상에 앉아 작은 불빛에 의지한 채 책을 읽고 있던 일리언은 늦은 시간임에도 평소와는 달리 잠들지 않은 카르젠의 음성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똑같은 시간에 어김없이 잠이 들던 녀석이 오늘따라 자지 않고 귀찮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일리언.”

 “왜?”

 “목걸이, 찾을 수 있을까요?”

 “찾아야지.”

 “흐음.”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한참 불만 어린 표정을 짓던 카르젠은 다시 일리언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일리언은 왜 그렇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거예요?”

 “넌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냐?”

 “아뇨, 돌아가고 싶죠. 하지만 뭐, 지금 생활도 별로 불만은 없어요.”

 “당연히 없어야지. 내가 좀 잘 보살폈냐.”

 “설마 진심으로 그 말을 하시는 거 아니죠?”

 “진심인데.”

 “아, 진짜! 보살피긴 뭘 잘 보살펴요! 누가 보면 진짜인 줄 알겠네.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면서!”

 “5분 남겨 놓은 24일 월요일. 날씨 흐림.”

 “우씨! 누가 그런 거 말이에요!”

 “그리고 현재 응석을 부리고 있는 녀석의 생일이기도 하지.”

 “……!”

 투덜거리며 볼멘소리를 내뱉던 카르젠은 일리언의 이어지는 말에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알고 계셨어요?”

 “매번 이맘때 생일이라고 노래를 부르던 녀석이 할 말은 아닌데.”

 “칫! 그럼 뭐해요? 그냥 지나가 놓고는.”

 “아직 2분 남았다.”

 “장난해요! 2분 남았는데 어쩌……!”

 휙!

 “……!”

 일리언의 말에 더욱 투덜거리며 울상을 짓던 카르젠은 순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잡아챘다.

 “이게 뭐예요?”

 “보면 모르냐.”

 하늘색 투명한 보석이 달려 있는 목걸이였다.

 “목걸이?”

 “‘티어’라는 보석이지.”

 “티어?”

 “듣기론, 그 보석이 사람들의 슬픔을 대신 받아들인다고 하더군.”

 오래 전 인간들 대신 아파하고 슬퍼하던 요정이 결국 죽어서 보석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티어’라는 보석이라는 설이 있었다. 그 후, 그 보석을 가진 자는 행복해진다고 하던가.

 슬픈 일이 있어도 그 슬픔을 이겨 내는 힘을 준다는 말이 전해져, 한때 무르게티아 대륙에 사는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보석 중 하나였다.

 물론 원한다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보석은 절대 아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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