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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언
작가 : 사이딘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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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화
작성일 : 16-07-08     조회 : 1,015     추천 : 0     분량 : 4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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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파괴의 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강과 바다는 사람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고, 땅 위에는 사람들의 시신이 넘쳐났도다. 그 순간 세상을 구원하는 빛이 있었으니, 홀로 어둠에 맞선 그는 파괴의 신을 봉인하여 세상에 다시 빛이 흐르도록 하였도다. 허나, 그 후 그의 모습 역시 사라졌으니…….>

 -무르게티아 대륙 역사서 제5장 멸망 편에서 발췌-

 

 “어쩌면 좋을까.”

 “뭐가?”

 “제멋대로인 널 홀로 두고 떠나려니 참 걱정이야.”

 “나보다 더 제멋대로인 녀석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니군.”

 바람조차 깊게 잠이 든 듯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공간.

 잠시 후, 그런 침묵을 깨뜨리며 조용한 여자의 음성과 그에 못지않게 나직한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곳에서는 신비로워 보일 정도로 길게 기른 은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한 여자가 힘없이 남자의 품에 기대 안겨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말에 언제나처럼 무심하게 대답하는 남자의 모습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여자는 그저 남자의 어깨에 힘없이 머리를 기댈 뿐이었다.

 그런 두 사람은 누가 보더라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을 본다면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붉은 세상.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시신과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피의 향기였다.

 또한 지옥의 한 장면을 연출하듯 한 발자국 내디딜 공간도 없이 잘리거나 터져 나간 시신들의 조각들이 땅 위에 가득 널려 있었다.

 그런 공간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두 사람의 모습을 살펴보면 남자의 손에 들린 검이 여자의 가슴을 찌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잊지 마.”

 “…….”

 “넌 날 영원히 기억해야 해. 그게 너에 대한 나의 벌이야.”

 “내가 그따위 것을 지킬 거라 생각하나.”

 여자는 남자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애써 가벼운 음성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나를 검으로 찌른 녀석에게 내리는 벌치곤 너무 가벼운 것 아닌가. 그것조차 지키지 않으려 하다니 너무하네.”

 “…….”

 남자는 대답 대신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그녀를 느끼며 더욱 힘주어 감싸 안았다.

 “일리언.”

 여자는 그런 남자의 마음을 아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그의 얼굴을 보며 마지막으로 이름을 불렀다.

 그러다 천천히 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며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그 행동을 끝으로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대로 남자의 품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

 모든 것이 멈춘 듯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던 남자는 잠시 후 여자의 심장에 꽂은 검을 뽑아 바닥에 힘없이 던져 버렸다.

 두 번 다시 검을 잡을 생각이 없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조심스럽게 두 팔로 감싸 안아 올리고는 또다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더 이상 작은 숨결조차 느껴지지 않는 여자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화아아악!

 그러다 잠시 후, 여자의 몸은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을 정도로 환한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자는 조금도 눈이 부시지 않는 듯 처음 모습 그대로 여자를 조용히 응시할 뿐이었다.

 다만, 조금 전까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던 남자의 눈빛이 그녀가 빛에 휩싸이는 순간 떨리기 시작했다.

 안타까움과 슬픔을 가득 담은 채 말이다.

 툭-

 “…….”

 빛에 휩싸였던 여자는 이내 모습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여자가 사라진 후, 남자의 발밑으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남자는 방금까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던 여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한참 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곧 천천히 고개를 숙인 남자는 발밑으로 떨어진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아주 단순한 모양의 검은 반지였다. 조금 전에 사라져 버린 여자의 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

 남자는 허리를 굽혀 그 반지를 집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반지 역시 환한 빛에 휩싸이며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 모습에 남자는 허무한 듯 작게 웃음을 터뜨리다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모든 것이 멈춰 보였던 공간에 작은 바람이 불어오며 남자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이내 남자 역시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사라진 공간에는 다시 한 번 바람이 불어와 조용히 그 자리를 맴돌다가 사라져 갈 뿐이었다.

 

 

 제1장 만남

 

 

 

 “히잉! 아버지…… 흑……!”

 무르게티아 대륙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알리티마 왕국.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알리티마 왕국은 대륙에서도 그리 크지 않은 작은 왕국이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왕국임에도 주변의 강대국이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왕국들과 제국들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알리티마 왕국 4대 가문.

 군사적인 힘이나 그 자본에 있어 알리티마 왕국 자체라 할 수 있는 이들.

 그 가문에 속해 있는 이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알리티마 왕국에서뿐만 아니라, 무르게티아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게 존경과 선망을 받고 있었다.

 바로 이들이 알리티마 왕국을 지탱하고 있는 강한 힘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가문인 프레피스 공작가.

 알리티마 왕국이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왕국과 함께 한 가문인 프레피스 공작가는, 그 역사에서나 모든 면에서 최고의 가문으로 통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평소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나라의 크고 작은 공식 행사부터 시작해, 다른 여러 가문들의 초대에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반면, 왕국에 중요한 문제가 있거나 위험한 일이 닥쳤을 때는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내, 가장 앞장서서 일을 해결하는 이들이 바로 프레피스 공작가였다.

 그러나 그 일이 해결된 이후에는 모든 보상과 감사 인사를 뒤로 한 채,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이들처럼 소리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욱 프레피스 공작가에 대한 선망과 존경심이 높아졌고,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은 더욱 신비로운 가문으로 통하고 있었다.

 더불어 알리티마 왕가가 생겨났을 때부터 프레피스 공작가에 한해서는 반역 외에 모든 법적인 일에 대해서는 처벌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4대 가문 중에서도 유독 왜 그리 프레피스 공작가에 한해 많은 특혜를 주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니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화아악!

 “우아아아!”

 “저쪽이다! 잡아라!”

 그런데 지금, 그런 프레피스 공작가가 어둠을 가르며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불길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오랜 세월 아무도 건드릴 수 없을 것 같았던 프레피스 공작가가 불속에서 그 모습을 점점 잃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그곳을 뒤로 한 채 빠르게 어딘가를 향해 은밀히 움직이고 있는 이가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기사.

 소리 없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그의 민첩한 움직임은, 결코 나이에 비해 그 실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더구나 그의 품에는 어린 남자아이까지 안겨 있었다.

 비록 나이가 어려 무겁지 않다고 해도 아이까지 안고서 저토록 빠른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흑! 아버지…….”

 7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남자의 품에서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우는 건 좋은데 눈물, 콧물은 제 옷이 아닌 다른 곳에 닦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카르젠 도련님.”

 “으아아앙!”

 “…….”

 아이는 남자의 말에 더욱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쉰 남자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를 안고 달리면서도 남자의 호흡은 조금도 거칠어지지 않았다.

 그것만 보아도 그의 실력을 결코 나이로 판가름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뉴마, 카르젠을 일리언 님에게…….’

 

 “…….”

 기사 뉴마는 자신이 모시는 프레피스 공작의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걸음을 더욱 빨리 했다.

 

 ***

 

 “흐음… 성공인가.”

 프레피스 영지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성.

 그 주위는 산속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울창한 나무들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성은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푸른 이끼들로 잔뜩 뒤덮여 있었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매우 낡은 상태였다.

 이곳에 대해 아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저 오랜 세월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자 위험 지역으로 인식되어 있을 뿐이었다.

 언제부터 이곳에 이런 성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에게 그곳에 대한 여러 가지 무서운 얘기를 들었을 뿐이고, 할아버지 역시 오래 전에 돌아가신 자신의 할아버지에게서 똑같은 얘기를 듣고 손자와 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듯 그 얘기를 전해 줄 뿐이었다.

 마왕이 사는 곳이니 절대 가지 말라며 아이들을 달래는 이들도 있었고, 드래곤이 휴식을 취하는 곳이니 근처도 가면 안 된다고 아이들에게 겁을 주며 호기심을 막기도 했다.

 그렇게 정확한 정보도, 사실로 전해진 문서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북쪽성이라고 부르는 그곳에 절대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된다고 여기고는, 위험지역으로 도장을 쾅쾅 찍어놓은 채 오랜 세월을 보냈다.

 가끔씩 그곳에서 큰 폭발음이 들려오기도 하고, 소름 끼치는 동물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와 사람들을 공포에 빠져들게 만들었지만,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기에 다들 북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뭐야! 정말로 성공했잖아!”

 그렇게 프레피스 공작가보다 더욱 비밀에 휩싸인 북쪽 성안에서 생각보다 젊은 남자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많이 봐줘야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매우 이지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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