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판타지/SF
일리언
작가 : 사이딘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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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화
작성일 : 16-07-08     조회 : 578     추천 : 0     분량 : 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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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리언은 어젯밤 자신의 주변에 소리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마법진을 그리고 잤던 것이다.

 이왕 그럴 생각이었으면 카르젠의 주변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는 마법진을 그려 주었으면 모두가 편하지 않았겠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일리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왜? 난 푹 잤다.’

 자신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기본 철칙인 일리언은 남들이 잠을 자든, 못 자든 상관이 없었다.

 “분명히 후회할 거라고 했잖아.”

 그리고 자신은 분명 친절하게도 카르젠에게 술을 먹이지 못하게 말렸었다.

 그것을 거절하고 일을 만든 이들이 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 자신이 애써 소리를 막아 그들을 편하게 해줄 이유가 없었다.

 “어! 베히너 선배!”

 “안녕.”

 “네, 안녕하세요. 어제는 잘 주무셨어요?”

 잠시 후, 식사를 챙겨 들고 일리언이 있는 곳으로 온 카르젠은 베히너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마주 인사를 건네던 베히너는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잘 잔 걸로 보이니?”

 “아뇨. 어제 무슨 일 있으셨어요?”

 “글쎄.”

 “다들 좀비 같아요. 푸하하하!”

 “으악!”

 “제발 좀 닥쳐 줘!”

 “넌 웃지 마!”

 다크서클이 진한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신나게 웃던 카르젠은, 순간 학생들이 동시에 자신을 향해 소리치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들 저래요?”

 “글쎄.”

 “…….”

 카르젠의 의문 섞인 말에 베히너는 다시 한 번 난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시선을 피했고, 일리언은 그저 식사에 열중할 뿐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카르젠 역시 배고픔을 느끼며 자신이 들고 온 음식을 빠르게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엘브란스 아카데미의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

 

 “자네들의 경영 수업을 책임질 마르코라고 한다.”

 엘브란스 아카데미는 1학년 때 기본적인 모든 수업을 듣고, 2학년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전공 부분을 선택해 수업을 받게 되어 있었다.

 20명씩 A에서 E반까지 총 다섯 반으로 나누어진 1학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서 1학년 때 그 분야에 대한 좋은 점수를 받아야 했다.

 점수가 나쁘면 본인이 아무리 원하더라도 그 전공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1학년 때의 수업이 앞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로에 선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첫 수업부터 다들 꼴이 말이 아니군.”

 첫 수업을 하기 위해 A반의 교실로 들어선 경영 수업 교수, 마르코는 죽을상을 하고 앉아 있는 학생들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하하! 그러고 보니 어제가 신입생들이 처음 들어온 날이었군 그래.”

 그러다 그들이 그토록 죽을상인 이유가 어젯밤 신입생 환영 행사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 챈 마르코는 피식 웃으며 수업을 이어나갔다.

 신입생 환영 행사야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기에, 웬만한 교수들도 다 알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언제나 첫 수업 시간에는 다들 밤에 마신 독한 술로 인해 속이 쓰린 표정을 짓고 있으니,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번 신입생들은 술들이 더 약한가 본데? 다들 몰골이 더 엉망인 것 같군.”

 마르코의 이어지는 말에 A반 학생들은 동시에 한 사람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멀쩡하게 웃으며 수업을 듣고 있는 카르젠을 말이다.

 “응? 일리언,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알면 닦아.”

 그렇게 피곤함이 가득한 학생들의 눈빛으로 시작된 첫날 수업은 그래도 무사히 막을 내렸다.

 이곳에 들어올 정도의 실력이 거짓은 아닌 듯 다들 피곤한 와중에도 교수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응?”

 수업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카르젠은 시선을 돌리다가 창가 한쪽에 앉아 있는 한 여학생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동양인?”

 검은색 단발머리에, 크고 검은 눈. 그녀는 동양인 특유의 외모였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뒤로 밀려날 것처럼 작고 여린 몸을 가진 그녀는 카르젠의 시선을 느꼈는지 책을 정리하던 손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

 카르젠은 그녀의 시선에 웃으며 손을 흔들었지만, 그녀는 그런 그의 행동에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처럼 빨개진 채 빠르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에?”

 카르젠은 손을 흔들던 자세 그대로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일리언을 바라보았다.

 “뭐 어쩌라고.”

 “저, 지금 무시당한 거죠?”

 “어.”

 “헉!”

 일리언은 충격을 받은 듯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져 버린 카르젠을 내버려 둔 채 교실을 나섰다.

 

 “흐음…… 생각보다 넓군.”

 교실을 나온 일리언은 엘브란스 아카데미 건물을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일단 건물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두는 것이 무엇을 하든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엘브란스 아카데미가 생각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이었다.

 바닷가 주변 전체를 이용해 건물을 지어서 그런지, 건물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하루 종일은 걸릴 듯했다.

 또한 그만큼 모든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운동기구가 있는 공간부터 시작해,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영화관까지 갖추어진 시설을 보며 일리언은 감탄 어린 한마디를 내뱉었다.

 “돈지랄을 떨었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휴식 공간 중 하나인 공원 근처를 막 지나쳐 갈 때, 그다지 유쾌하다고 할 수 없는 소음이 들려왔다.

 “이, 이거 놔요!”

 “얘기 좀 하자는데 뭘 빼고 그래?”

 “우리가 잡아먹기라도 하냐고!”

 일리언이 그곳에 시선을 돌렸을 때, 낯선 이들 중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였다.

 ‘동양인?’

 바로 조금 전 카르젠을 무시하고 교실을 빠져나갔던 동양인 여자가 몇몇의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남자들은 자신들을 피해 도망치려는 그녀를 놀리듯 막아서며 웃음을 흘렸다.

 규율이 엄격한 이곳에서 저러는 것을 보면 장난을 치고 있는 듯했지만, 그것도 사람을 봐 가면서 해야지, 이미 안색이 파래진 채 겁을 잔뜩 먹은 그녀에게는 더 이상 그것이 장난이 아니었다.

 “…….”

 일리언은 그 모습을 잠시 한심하다는 듯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리고 지나쳐 갔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 끼어드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신조로 사는 일리언에게는 그저 공원의 한 풍경일 뿐이었다.

 쿵!

 “……쿵?”

 하지만 잠시 후, 뒤에서 들려오는 의외의 소리에 일리언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커헉!”

 “윽!”

 방금까지만 해도 동양인 여자를 둘러싼 채 놀리고 있던 남자들이 그녀의 손에 이끌려 바닥에 내리꽂힘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보다 2배는 더 커 보이는 남자들을 너무도 간단히 바닥으로 엎어치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 일리언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녀는 카르젠을 보며 얼굴을 붉혔던 그녀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싸늘한 표정을 지은 채,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들을 보았다.

 그 후, 주변을 살피듯 고개를 돌리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일리언과 눈이 마주치고는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언제 싸늘한 표정을 지었느냐는 듯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나갔다.

 “……쟤 뭐냐.”

 일리언은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

 

 “으윽! 크윽!”

 어둠이 깊게 깔린 지하 공간.

 작은 빛조차 존재하지 않는 지하 공간에서 남자로 추정되는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파앗!

 “윽!”

 잠시 후, 남자는 눈을 멀게 할 정도로 밝은 빛이 자신이 묶여 있는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눈살을 찌푸리며 신음성을 토해냈다.

 철컥!

 “……!”

 그러다 자신의 손과 발을 벽에 묶어 붙잡아두고 있던 것이 기계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크윽!”

 이어,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남자는 빛이 들어오는 문을 향해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그곳을 향해 달리는 것만이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도 되는 듯,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을 향해 달릴 뿐이었다.

 

 “이번에는 좀 오래 버티려나.”

 “삼십 분에 백만 달러.”

 “난 한 시간.”

 “이십 분에 이백만 걸지.”

 한편, 남자가 있던 지하 공간만큼 어둠이 깊게 내려 앉아 있는 한 공간. 그곳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의자에 당당하게 기대 앉아, 앞에 놓여 있는 모니터를 보며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방금 지하에서 탈출해 죽자 살자 어딘가를 항해 달려가다가 넘어지고 구르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온몸이 무언가에 갈굼을 당한 듯 옷이 다 찢어지고, 그 사이로 흘러내린 핏자국도 보였다.

 쿠워어어!

 [으악!]

 탕! 탕!

 남자는 어디서 구한 것인지 손에 들고 있던 총을 자신을 쫓아오는 정체 모를 무언가를 향해 정신없이 난사했다.

 크아악!

 [……!]

 그러나 전혀 타격을 받지 않은 듯 더욱 큰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괴물로 인해, 남자는 총을 던져 버리고는 더욱 빨리 도망쳤다.

 “앞으로 5분. 1000만.”

 그런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보던 이들은 순간 침묵을 깨며 들려오는 나직한 음성에 놀란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모니터에는 관심이 없는 듯 뒤를 돌아 앉아 있는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다들 이미 음성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는 듯 별다른 말없이 다시 모니터에 관심을 두었다.

 [우아아악!]

 정확히 5분 후, 모니터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커다란 비명 소리와 함께 모든 게임이 끝난 듯 모니터의 불빛 또한 하나 둘 꺼져 갔다.

 

 ***

 

 “그게 말이 됩니까!”

 “조용히 해라, 세반!”

 “테리오가 사라졌단 말입니다!”

 “닥치라고 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 아니 평소와 다름없이 일리언의 살기 어린 공격으로 잠에서 깨어나는 평범한 아침을 맞이한 후 밖으로 나오던 카르젠과 일리언은 어제와 다른 아침 풍경을 보았다.

 “무슨 일이지?”

 “…….”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하던 일리언과 카르젠은 누군가의 방문 앞에서 큰 소리로 싸움을 하고 있는 기숙사장인 라이너와, 2학년 선배로 보이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주위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다른 재학생들의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일리언,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죠?”

 “신경 꺼.”

 궁금한 눈빛이 가득한 카르젠과 달리 일리언은 귀찮음이 가득한 음성으로 한 마디 내뱉은 뒤, 원래의 목적지인 식당으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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