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길에서 그를 만나다>
“도대체 아는 게 뭐야?” 그 놈이 말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살면서 그런 되먹지 못한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네가 나를 본 지 지금 딱 삼분 됐는데? 딱 봐도 나보다 어려보이는 게 대학생 같았다. 시커먼 선글라스를 쓰고 키는 멀대 같이 큰 주제에 피부는 까만 데다 검은 색 나시티를 입고 검은 바지를 입은 것이 꼭 생 양아치다. 평소 난 성질이 못돼 먹어서 할 말은 반드시 해야 하는 성격이라 참지 못하고 화를 버럭 냈다. “초면에 너무 무례한 것 아니에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오늘은 내가 방학을 맞이하고 유럽여행을 온 지 딱 열흘 째 되는 날이었다. 2014년 7월 28일. 올해 삼월 달에 그 족제비 같은 허부장이 나에게 똑같은 일을 열한 번째 시켜서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에서 터키 그리스행 비행기표를 일시불로 질러버렸다. 허부장은 일을 허술하게 해 종종 교장과 교감에게 불려가 한바탕 욕을 먹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일은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김선아 선생. 이 것 좀 해봐.하고. 겨우 이 직장 들어온 지 이년차라 허부장에게 대놓고 싫은 내색은 할 수 없어서 꾸역꾸역 그가 시킨 일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래. 내가 지금 욕 먹고 기분 나쁜 건 다 여행비를 벌기 위해서다’며 꾹 참았다. 그렇게 거지같은 직장 생활 사 개월을 버티니 터키,그리스 여행 가는 날이 온 것이다.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와 같이 교사로 근무하던 내 친구 민정이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민정이는 교사 임용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할 만큼 머리가 좋은지만, 어리버리하고 뭐든 잘 까먹으며 헤헤 웃기를 잘하는 귀여운 친구다. 교사 임용고사를 준비할 때, 나는 성질이 급해서 공부 계획을 미리 다 짠 후 그대로 하지 못하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곤 했는데, 민정이는 언제나 우리의 공부 계획의 반 정도만 공부해 오고도 공부양이 많았다는 불평 하나 없이 나와 같이 공부해서 행복하다며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 했다. 이런 친구라, 민정이는 내가 유럽 여행 가자고 전화하자 유럽 어디냐고 , 날짜는 언젠지도 묻지 않고,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해맑게 말했던 것이다.
민정이와 둘이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무지개색 에드벌룬을 타고, 사막에서 지프 투어도 했다. 터키 페티예에서 파란 하늘과 더 푸른 바다 사이에서 패러글라이딩도 했다. 저녁이면 그 관광지에서 가장 높은 레스토랑에 가서 노을을 보며 파스타를 먹고 와인을 마셨다. 우리 둘은 서로와 함께 와서 너무 좋다고, 열심히 공부도 같이 했는데, 여행도 같이 하게 되니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내가 살면서 평생 꿈꿔왔던 그곳, 임용고사 공부를 할 때 벽에 사진을 붙여 놓고 시험에 붙으면 꼭 가겠다고 마음 먹었던 그곳, 어렸을 때 포카리스웨트 광고에서 본 하얀 벽에 파란 지붕이 있는 집들이 해안 절벽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바로 그 곳에 가는 날이 온 것이다.
아침 여섯시부터 눈을 떴다. “민정아, 얼른 일어나! 오늘 산토리니 가는 날이야!” 나와 민정이는 여행 오기 전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준비한 긴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민정이는 어깨끈이 달린 긴 파란 원피스, 나는 흰 바탕에 검은색 꽃무늬가 그려진 나시 원피스를 입고 페티예 선착장으로 향했다. 산토리니로 가려면 페티예에서 두 시간 가량 페리를 타고 로도스에 가서 큰 크루즈 선을 타고 9시간 정도 가야한다.
아침 여덟시, 레이밴 베이직 선글라스를 끼고 로도스행 페리에 올랐다. 중,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배운 영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회화의 전부인 주제에 우린 열흘 동안 유럽에 돌아다니면서 기도 안 죽고 오히려 뻔뻔하게 길도 묻고, 물건 값도 깎고, 만나는 서양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예쁘고 잘 생겼다고 말도 걸었다. 페리에서 파아란 바다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다 옆에 외국인들한테 어디서 왔냐고, 어디 가는 길이냐고, 우리는 산토리니 간다고 어줍잖은 영어로 자랑도 하면서 두 시간을 보내니, 로도스에 도착했다.
로도스는 내가 생각하던 작은 섬이 아니었다. 중간에 산이 있고 끝에서 다른 쪽 끝이 보이지 않는 큰 섬이었다. 산토리니 행 크루즈 배는 여섯 시간 뒤에 출발한다고 로도스 선착장 산토리니행 티켓 판매원이 말했다. 나와 민정이는 허리까지 오는 케리어를 어디에다 맡기고 점심을 먹으러가나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때. 그 놈이 나타난 것이다. 친구처럼 보이는 남자 동행과 함께.
“한국 분이시죠?” 하고 그 놈이 물어왔다. “ 네, 맞는데요?”하니
“산토리니행 배는 어디서 타는지 알아요?”라고 또 묻는다. 우리도 거기 가려는데 방금 막 도착해서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니 또 묻는다. “ 이 짐은 어디에 맡길 수 있을까요?” 덥기도 한데, 자꾸 내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니 짜증이 확 올라왔지만 난 교양인이니 애써 꾹 참고 말했다. “몰라요.”
그러니 그 자식이 혼잣말로 중얼거린 것이다.
“도대체 아는 게 뭐야?” 생 양아치같이 생긴 것이 자기도 모르면서 저 따위로 말하니 나도 곱게 말이 안 튀어나갔다. “초면에 너무 무례한 것 아니에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옆에 그 놈의 동행자와 내 친구 민정이는 우리 둘 사이의 기류가 이상했는지 우리 두 사람 눈치를 보고 어쩔 줄 모른다. 그때, 그 놈이 말했다.
“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같이 짐 보관소 찾아서 캐리어 맡기고 이 섬에서 유명하다는 관광 열차 타고 섬이나 한 바퀴 돌죠.” 뭐야? 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