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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스토리 인 그리스 산토리니
작가 : 꽃수옐키
작품등록일 : 20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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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스토리 인 그리스 산토리니 <3화>
작성일 : 17-06-07     조회 : 299     추천 : 0     분량 : 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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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뜨거운 지중해의 태양이 우리 머리 위에.

 

 한 여름의 지중해는 푸르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로 파아랗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 크루즈의 후미에는 관광객들이 앉아서 와인이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간이 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손님들이 누워서 쉴 수 있는 선배드가 한 쌍씩 파라솔을 가운데 두고 있었고, 그리고 바로 가슴 높이의 난간 앞에는 흰 의자가 여러개 놓여 있었다. 은규는 의자에 먼저 앉은 후 자기 옆자리에 흰 의자 한 개를 끌어다 놓고 나를 물끄러미 보다 말했다.

 

 “누나, 여기 앉아.”

 

 “바다가 너무 파래요. 이렇게 바다를 보고 있으니까, 한국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일했던 게 꿈 같아요.”

 

 그는 두 번째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리키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여기 앉아요.”

 

 나는 거절할 수 없어서 그 자리에 앉았다.

 

 “이제 우리 존댓말 하지 말고 편하게 말 하면 안돼요?”

 

 “처음 본 사이인데 어떻게 그래요.”

 

 “에이 누나, 우리 몇 시간 다녀서 친해졌잖아요. 나 말 놓을 게요. 놓는다. 지금부터”

 

 “....”

 

 “누나는 남자친구 없어?”

 

 “혼자 지낸지 좀 됐어요”

 

 “에이 나만 놓으면 버릇 없어 보이잖아. 누나도 말 편하게 해 줘.”

 

 “그래요. 아니, 그래.”

 

 “그봐. 우리 친해진 거 같잖아. 그런데, 인기 많을 거 같은데, 왜?”

 

 “그렇게 됐어요.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요. 은규는?”

 

 “ 아 누나 요 빼고.”

 

 “알았어”

 

 “나도 없어. 작년에 만나던 친구가 있었는데... 비 오는 날, 별것도 아닌 일로 싸우고는 나를 밖에 다섯 시간이나 세워 두더라구. 그래서 내가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나 싶어서 그 길로 헤어졌어.”

 

 “그 여자애가 다시 만나자고 안 했어?”

 

 “하긴 했는데... 그러고 나니 더 이상 만나야겠단 마음이 안 들더라구.”

 

 그리고는 침묵이 우리 둘을 감쌌다. 우리는 선박의 엔진프로펠러가 돌아가며 만들어내는 흰 파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얗게 부서지는 바다거품이 일렁이는 파도가 되고, 그 파도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며 나중에는 사라지는 일의 반복. 그게 우리가 만났던 과거의 사람들과의 관계 아니었을까. 처음 에 상대를 만나서 거짓말같이 불꽃이 튀고, 그리고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그 사랑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며 나중에는 애초에 없었던 관계마냥 사라져버리는 그 거짓말 같은 사랑.

 

 너도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런 기억이 있구나. 나는 아직 아파서 꺼내기 싫은데. 그래도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너는 그 기억 때문에 지금까지 고통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보구나.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눈이 너무 부셔서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나는 손으로 간신히 눈만 가리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에 내 어깨가 뜨거웠다. 그는 나에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객실로 내려갔다.

 

  그가 자리를 비우자, 대학생인 그와 이야기를 나눠서 그런지 내가 대학생일 때가 떠올랐다. 연애의 기억이라기 보단, 뭐 해먹고 살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찼던 그 때.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원치 않았던 대학교에 진학해서 대학 생활 내내 낙오된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나의 이십대의 기억이 나를 덥쳤다. 실패한 나에게 주는 형벌이라고, 그 예쁜 나이에 원피스 한 벌 사 입은 적이 없었다. 스킨, 로션만 바른 얼굴에 흰 티, 청바지, 운동화에 검은 가디건. 그리고 전공책만 가득 들은 가방 한 개. 그게 내 대학 생활의 전부였다. 그 때의 나는 모든 일에 부정적이었다. 겨우 대학 입시 하나에 실패한 것인데, 인생이 실패한 것 같았다. 친구를 만나기도 싫었고, 소개팅을 하는 것도 관심이 없었다. 내 자신을 꾸미고, 여가생활을 즐기는 것은 사치라고 느껴졌다. 저학년 때는 학기 중에 학과 공부만 하고, 방학엔 여행을 떠났다. 외국으로 나오면 현실에서 빠져나온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고학년 때는 취직 준비만 했다. 내가 살기 위해선 그래야 했다. 내가 아는 한, 다른 방도는 없었다. 그 때의 나는 지금도 예상치 못할 때마다 내 바짓자락을 잡았다. 지금은 그래서 행복하냐고. 그 때의 절망감을 기억하냐고.

 

 그 때 머리 위에 그늘이 지는 것이 느껴졌다. 위를 봤더니 흰 바탕에 남색 체크무늬가 그려진 남방이 내 머리를 덮고 있었다. 그리고 옆을 보니 은규였다. 그 남방을 나와 자기 머리 위에 덮어 씌운 것이었다. 내 얼굴이랑 팔에 떨어지는 뜨거운 햇빛이 가려졌다. 옷깃을 양 손으로 잡고 그애 자신과 나를 모두 가리려니 자연히 거리가 가까워졌다. 생각지 못하게 그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나는 당혹스러워서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그런 내 안색을 살핀 그가 말했다.

 

 “예쁜 얼굴이 타면 안 되잖아. 화장도 안한 거 같은데”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새삼스레 그의 얼굴에 나도모르게 눈이 갔다. 피부가 까무잡잡하구나. 쌍커플이 짙고 눈매가 날카롭네. 콧대가 높아서 남자답다. 앉아 있는데 올려다 봐야 하네. 아. 이 아이가 남자였구나.

 

 그는 나를 보다가 눈을 돌려 먼 바다를 보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어색한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되겠단 마음에 나는 그가 오른 손으로 잡고 있던 옷깃을 대신 잡은 후 간신히 말을 꺼냈다. 그의 손은 가만히 내 왼손 근처에 내려왔다.

 

 “상우랑 민정이가 우리 걱정하겠다. 너무 자리를 오래 비웠다고. 내려가자.”

 

 그는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아쉬운데...”

 

 그의 손이 내 얼굴에 가까워졌다. 두근. 뭐야. 그리고 그 손이 내 볼을 스쳤다. 나를 뚫어져라 보는 그의 눈길. 그의 손이 내 머리 뒤로 갔다. 어떡하지. 뭐하는 거야 얘. 지금 만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이 자리를 피해야하나. 어색하게. 어떡해. 나보다 한참 어린 게 뭐하는 거야. 동공은 흔들리고 가슴은 두근대고, 머릿속은 뒤죽박죽, 점점 더 가까워지는 그의 얼굴. 나는 눈을 감았다.

 

 

 “내려가자. 누나”

 

  뭐라고? 멋쩍어서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을 감은게 아니라 마치내 무릎을 쳐다보느라 아래를 본 듯 눈을 내리 깔았다. 그리고 당황스런 마음을 감추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애꿎은 치마를 손으로 털어냈다. 그는 내 손에 있던 옷을 잡아 그대로 내 어깨에 걸쳤다. 햇볕이 뜨거우니 해가 질 때까지는 자기 옷을 입고 있으라고 했다.

 

 

  객실에 내려오니 민정이와 상우는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도 자신들만의 세상에 있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내가 민정아, 하고 부르니 둘이 모두 우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상우는 물끄러미 나를 보더니 그의 눈길이 내 어깨에 닿더니 은규를 흘끗 보며 입을 열였다.

 

 “어? 그 옷 왜 누나가 입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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