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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거울의 비밀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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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보이지 않는 눈 (기원편)
작성일 : 17-06-01     조회 : 152     추천 : 1     분량 : 5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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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현재 지리산 세석정 인근

 

 놀랍게도 이곳에서 2500년 전 청동기 시대의 미라가 발견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라의 매장형태였다.

 미라는 관조차 없이 수직으로 세워져 구멍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작은 조약돌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한 마디로 미라는 돌무덤에 파묻힌 채 험하게 버려진 상태처럼 보였다.

 

 지난 2주간 미라 발굴 인원 스무 명이 돌무덤의 주변을 정리해왔다.

 미라 발굴에 앞서 주변부터 정리하는 전초 작업인 셈인데

 미라가 묻힌 돌무덤 주변을 먼저 샅샅이 훑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변에서는 단 한점의 고고학적 유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무튼 평범하지 않은 진기한 발견을 두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다.

 

 이 작업은 50대 후반의 고고학자 김박사가 전두지휘하고 있었다.

 김박사는 아주 신중했다.

 '도대체 왜 무덤에 묻힌 미라 외에는 관련 유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가.'

 몹시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김박사.

 한국 고고학과 문화인류학의 핵심 연구자인 그.

 지난 30여 년을 발굴현장에서 살아온 집념의 학자.

 한국의 고대사 유물에 대해서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석학이다.

 

 하지만 김박사에게는 건강상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인공심장을 가슴 속에 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고고학적 열정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오늘 오전.

 마침내 발굴현장의 전초 작업이 완료되었다.

 

 잠시 후, 본격적인 미라 발굴 작업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본 작업은 김박사와 그의 수석조수인 김혜주만 전담하게 된다.

 

 발굴 작업에 있어서 유물이나 유적과 직접 관련된 본 작업은 최고난이도의 어려운 작업이다.

 따라서 본 작업에는 오랜 경험을 가진 숙달된 전문가만이 참여할 수 있다.

 미세하고 섬세한 손놀림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조심해.”

 “네, 알겠어요.”

 “조각 하나도 유실되면 안 돼.”

 “걱정 마세요, 아버지”

 

 

 그렇다. 스승인 김박사와 제자인 혜주는 사실은 부녀관계다.

 이지적이며 침착한 성품의 김혜주.

 그녀는 고고학의 선두주자인 김박사를 쏙 빼닮았다.

 

 혜주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전국 곳곳을 누볐다.

 그리고 아버지의 발굴현장을 놀이터로 삼으며 성장했다.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지만 고고학적 지식은 아버지 못지않게 풍부했다.

 또 유연한 손가락 놀림과 풍부한 감성을 타고난 아이였다.

 그 덕분에 십대부터 미세한 작업의 보조역할을 능숙하게 해내고는 했다.

 

 혜주는 켜켜이 쌓인 돌멩이 한 조각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이어서 김박사가 미라주변의 흙먼지를 고운 붓으로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다시 혜주가 켜켜이 쌓인 작은 돌멩이를 하나 들어올린다.

 그러면 다시 김박사는 붓으로 흙먼지를 털어낸다.

 

 이처럼 작업은 더디고 느리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거룩하고 숭고한 과정이었다.

 

 어느 새 오후 3시

 작열하는 태양 아래,

 돌멩이를 들어내고 붓으로 터는 작업만 5시간째.

 

 전초작업을 끝내고 막사에서 지켜보던 보조발굴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대단한 부녀다.

 37도를 육박하는 무더위.

 땡볕이 쏟아지는 늦여름 따위는 아랑곳 않는다.

 귀청 터지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도 안 들리는 모양이다.

 두 부녀에게 쉼표는 없었다.

 단순하고도 지리한 작업에 마침표를 찍고자 그들은 정지된 그림처럼 몰두해 있었다.

 

 마침내, 혜주의 눈이 번쩍 커진다.

 미라의 얼굴과 몸통 다리 등, 희미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찰그랑]

 

 혜주가 무언가를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청동방울예요!”

 “그래. 허리춤에 차고 있었던 것 같다.”

 “이건 가죽장화 같죠?”

 “응. 머리에 쓰개도 쓰고 있구나.”

 “옷차림이 예사롭지 않네요. 게다가 청동방울이라니.”

 “방울은 신을 상징하는 소리였으니 지배계급의 신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렇게 험하게 묻히다니. 왜 고인돌 무덤에 안치되지 않았을까요?"

 

 

 혜주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고 미라의 머리를 덮고 있던 쓰개를 조심스레 벗겼다.

 

 

 “어마!”

 “이런!”

 

 

 혜주와 김박사의 입에서 동시에 단발마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미라의 머리카락!

 그 머리카락이 하나도 손실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아버지?”

 

 

 김박사가 미라의 얼굴에 다급하게 붓질을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있다면

 미라의 얼굴도 당대 그대로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의 다급한 손놀림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혜주도 미라의 몸 전체를 덮고 있는 흙먼지를 조심스레 털어내기 시작했다.

 

 마침내 미라의 전신이 드러난 순간.

 발굴장 전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미라의 상태는 완벽히 온전했다.

 거칠지만 소실되지 않은 덥수룩한 머리카락.

 준수한 용모에 구리 빛 피부와 다부진 눈썹과 고운 얼굴선.

 한쪽팔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부진 골격의 젊은 남성이었다.

 

 그는 쓰개와 가죽장화로 무장하고,

 허리춤에 청동방울을 단 청동기 시대의 전형적인 전사의 모습이었다.

 도무지 2500년 전의 미라라고 볼 수 없을만큼 생동감 넘치고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운 것은 미라의 입가였다.

 2500년 전 죽은 이 젊은 전사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손 대지 마!”

 

 

 아버지의 제지에 혜주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린다.

 어느 새 자신의 손이 미라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다니!

 

 ‘후. 이토록 잘생긴 청년이라니. 나도 모르게 함부로 손을 뻗었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완전하게 보존된 거지?’

 

 

 

 * * *

 

 

 

 “자, 긴장 푸세요, 한연호씨.”

 “... 네.”

 “제가 지금부터 천천히 붕대를 풀겠습니다. 혹시 중간에 통증이 느껴지거나 빛과 관련된 이물감이 느껴지면 바로 손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의사가 천천히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연호의 눈을 감고 있는 붕대 뭉치가 한 줄 두 줄 풀려나기 시작했다.

 

 

 [똑. 똑]

 

 

 병실문 노크소리에 붕대를 풀던 의사의 손길이 멈췄다.

 그리고 느닷없이 병실 문이 활짝 열리더니

 쇼커트의 보이시한 아가씨가 꽃다발을 툭 내민다.

 

 

 “짜잔! 팀장님 개안을 감축 드립니다! 콩그레츄레이션~~우후후~~”

 “누구냐 넌.”

 

 

 적막감이 감도는 병실에는 연호의 차가운 목소리가 무겁게 깔린다.

 순간, 꽃다발 아가씨는 얼어붙은 표정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지수. 소송, 송지수입니다 팀장님!”

 “그게 누군데?”

 “예? 아, 저는 이번에 새로 입사한 신입 인턴”

 “나가.”

 “선배님들을 대신해서 개안 축하 꽃다발을”

 “나가.”

 “저...”

 

 

 연호의 입술이 차갑게 일자가 된다.

 그 입술만 봐도 지수는 숨이 멎는다.

 완고하고 냉정한 느낌이 확 풍긴다.

 

 지수는 꽃다발을 병실 테이블에 재빨리 올려놓았다.

 그리고 뒷걸음질을 쳐서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왔다.

 

 

 ‘심장 떨려. 완전 까실까실 밤송이네.’

 

 

 지수는 아차 싶다.

 그러고 보니 어제 선배들의 행동이 아주 수상했다.

 일주일간 입원중인 팀장에게 갑자기 병문안을 가라고 하질 않나,

 게다가 화려한 꽃다발을 사서, 덥썩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것도 입사하진 5일도 되지 않은 자신에게.

 

 지수는 자신의 머리를 콩콩 쥐어박는다.

 어이구 이 등신아.

 신입 인턴에게 팀장 병문안을 혼자 가라는 게 말이 돼?

 완전 까칠 대마왕 츤데레잖아.

 그런 사람 앞에서 꽃다발 내밀고 춤을 추고 싶냐!

 

 

 [안 돼! 이럴 순 없어! 안돼!]

 

 

 “뭐야?? 방금 전 그 팀장 목소리잖아!”

 

 

 병실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가보다.

 연이어 쿵, 하며 뭔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병실문에 다가서던 지수는 깜짝 놀란다.

 벌컥 열린 문에서 의사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는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흥분하고 있었다.

 

 

 "서, 선생님! 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나 참! 흠!!"

 

 

 의사는 지수가 뭐라 더 묻기도 전에 후다닥 도망치듯 사라졌다.

 

 

 “뭐야??”

 

 

 지수의 심장이 쿵쾅거린다.

 어떻게 할까.

 

 5센티만큼 열려진 병실문.

 그런데 병실은 무지하게 조용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떡하지. 들어가 볼까.

 아니지, 그러다가 의사처럼 마빡에 금가면... 아플텐데.

 게다가 팀장이라는 그 작자, 하이에나처럼 으르렁거리던데.

 

 그냥 튈까. 의사처럼?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한 거야?

 

 

 [언제까지 거기 서 있을 거야]

 

 

 흐억!

 지수는 두 손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저 인간 소머즈야? 육백만불 사나이야? 나 여기 서있는 거 어떻게 알지?’

 

 

 [당장 들어와, 김혜주]

 

 

 “혜, 혜주? 전 송지수 인데요.”

 

 

 그때, 누군가가 지수를 옆으로 밀어내고는 병실로 들어갔다.

 

 여자다.

 아마 병실 복도에 아까부터 지수와 함께 있었던 모양이다.

 

 지수는 열린 병실 문을 은밀히 들여다보았다.

 검은 머리를 질끈 묶은 청바지 차림의 이지적인 스타일의 여자.

 저 여자는 또 누구지?

 

 

 미라 발굴현장 일을 끝마치고 혜주는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왔다.

 오늘만큼은 꼭 연호의 개안수술이 성공하기를 간절히 소망했었다.

 

 하지만 혜주가 병원에 도착했을 즘, 연호는 이미 분노하고 있었다.

 역시나 실패였던 모양이다.

 

 병실에 들어선 혜주가 연호 앞에 가만히 섰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있는 연호를 바라본다.

 

 붕대를 푼 연호의 눈은 언제나처럼 신비로운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차갑고 공허했다.

 

 

 “또 ... 보이지 않아.”

 

 

 연호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응. 밖에서 들었어.”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연호가 절규하며 주먹으로 벽을 쳤다.

 

 

 “이러지마 연호씨. 나랑 다시 이유를 찾아보자 응?”

 “그놈의 원인불명 지긋지긋해 이제!”

 “찾을 수 있어 우리. 그리고 연호씨 반드시 보게 될 거야.”

 “아니, 영원히 불가능한 꿈이야. 난 볼 수 없어. 볼 수 없다구”

 

 

 연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 이 남자.

 3번째 개안수술도 실패라니.

 

 혜주는 연호의 머리를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어느 새 연호는 아이처럼 혜주의 허리를 안고 머리를 기댔다.

 

 의사들은 매번 말했다.

 새롭고 건강한 망막만 씌우면 되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지만 새롭고 건강한 망막은 연호에게만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선천적으로 보이지 않는 눈을 갖고 태어났다는 연호.

 원인불명의 실명.

 모든 것이 멀쩡한데 도무지 왜 보이지 않는지.

 아무도 그 원인을 규명해주지 못했다.

 

 

 “집에 가야겠어.”

 “그러자.”

 

 

 혜주는 두 말 없이 연호의 옷을 갈아입혔다.

 그리고 연호를 부축해 병실문을 나섰다.

 

 복도에는 송지수가 여전히 엉거주춤 서있었다.

 이대로 돌아서서 모른 척 할지 고민중인 상태였는데

 그만 타이밍을 놓치고 만 것이다.

 

 혜주는 별 상관없이 송지수를 지나쳐갔다.

 그런데, 연호의 눈길이 잠시간 송지수를 싸늘하게 본다.

 

 지수는 흠칫 놀랐다.

 방금 전까지도 개안 수술이 실패해 난동을 부리던 연호였다.

 그런데 마치 사람의 심장까지 꿰뚫을 것처럼 자신을 쏘아본 그 눈길은...

 

 ‘으유 무서워’

 

 지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혜주의 차에 탄 연호는 생각에 침잠된 채 말이 없었다.

 

 

 “진짜 미안하다. 내가 오늘은 정말 안 늦으려고 했는데...”

 “뉴스 들었어. 미라가 발굴 됐다면서”

 “응! 근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어. 2500년이나 된 시신이 거의 그대로야. 머리카락이랑, 치아, 옷, 장신구... 마치 그 당시를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았어. 어떻게 미라가 됐을까. 보존처리 된 흔적이 전혀 없거든.”

 

 

 혜주는 들떠서 미라발굴에 대해 한참을 지껄였다.

 하지만 연호에게, 혜주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개안수술의 실패.

 한 번도 두 번도 아닌 세 번째마저 실패했다.

 그렇다면 이건 실패가 아니라 운명의 저주가 아닌가!

 

 연호는 미치게 괴로웠다.

 보이지 않는 눈을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아무도 모른다.

 

 시작은 1995년 6월 29일 그날부터였다.

 열 살의 연호는 여전히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였다.

 

 연호의 엄마는 그날, 연호를 데리고 외출을 했다.

 눈이 보이지 않아 친구가 없는 연호.

 엄마는 연호에게 멋진 선글라스를 사주기로 약속했다.

 연호는 들떴다.

 그 선글라스만 있다면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5시50분 경.

 강남에 자리잡은 럭셔리한 백화점 앞에서 연호는 엄마에게 뺨을 맞았다.

 연호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며 버티고 울부짖었다.

 

 엄마는 너무나 화가 났다.

 고집이라고는 없던 아이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아이는 백화점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속을 긁어대는 것이었다.

 

 모자는 백화점 입구에서 그렇게 10 여 분간 실랑이를 벌였다.

 그리고 5시57분.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엄마는 그날 이후 밖을 나가지 않았다.

 엄마는 그날 이후 연호 옆에도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눈이 보이지 않는 연호가....

 다른 것을 본다고...

 

 1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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