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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거울의 비밀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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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눈물의 의미 (기원편)
작성일 : 17-06-01     조회 : 83     추천 : 2     분량 : 7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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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주는 갓길에 차를 정차했다.

 안개는 좀전보다 더욱 자욱하고 진해졌다.

 당장 차를 세운 곳이 어디쯤인지 전혀 구분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선은 연호의 이상한 말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자, 한연호 말해봐 이제. 뭘 봤다는 거야 도대체?”

 “그 미라... 전에 봤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눈도 안 보이잖아. 근데 어떻게?”

 

 

 혜주는 아차 싶다.

 안 그래도 눈에 대해 예민한 연호다.

 그런 연호에게 대놓고 모욕을 가한 셈인데,

 그런데 연호는 평소와는 달리 아랑곳 하지 않는다.

 

 

 “꿈 속. 어젯밤 노고단 산장에서 꿈 꿨을 때 봤어.”

 “꿈 속?”

 “응. 네가 설명해준 2500년 전 옷차림 그대로의 전사 모습. 허리에 청동방울을 차고 있었어. 쓰개도 쓰고 있었고.”

 “지금 저 미라가 당신 꿈속의 그 인물이다?”

 “나도 알아.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거. 더군다나 난 눈도 안 보이지. 하지만..."

 "연호씨 말처럼 이건 말이 안돼!"

 "아니, 느낌이 분명해.”

 “뭐 느낌? 고작 막연한 느낌 때문에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좋아 솔직히 말할 게. 그 미라, 움직였어.”

 “허!"

 

 

 혜주는 기가 막혔다.

 

 

 "정말 하다하다... 좋아. 그런 느낌 있을 수 있어. 처음 보면 경외감보다는 두려움이 크고 심인적 요인 때문에 착각할 수 있어. 하지만 정말 그건 아니다 연호씨. 2500년 전 죽은 미라가 움직이다니... 그냥 어쩌다 한번 느껴진 느낌일 거야.”

 “한 번이 아니야. 세 번이나 움직였어.”

 

 

 혜주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연호를 물끄러미 보았다.

 이 남자, 왜 이렇게 이상한 소리만 하는 걸까.

 개안 수술 실패의 여파인가.

 오늘 괜히 미라를 보여준 게 아닐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난 지극히 정상이니까!”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은 연호는

 갑자기 화가 치미는듯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혜주도 다급하게 차에서 내렸다.

 

 

 “개안 수술 때문에 이러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점점 이상한 소리만 하잖아. 미라가 움직이다니, 게다가 꿈속에서 봤다니 도무지 말이 안 되잖아. 작년에 개안수술 받고도 그랬지. 소리가 들렸다고. 도대체 왜 그렇게 이상한 소리를 자꾸 하는데!”

 “다 사실이야. 거짓말 아냐!”

 “사실이라고 쳐. 그래도 연호씨 지금 정상 아냐. 그러니까 나랑 병원에 가자. 가서 상담 좀 받아보자.”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다.

 작년에도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연호가 말했을때

 혜주가 상담이야기를 꺼냈었다.

 그때 연호는 불같이 화를 내며 난리를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주는 오늘만큼은 물러서지 않을 심산이었다.

 

 

 “서울 너 혼자 가.”

 “뭐?”

 “당장 차 가지고 여기서 꺼져.”

 “야 한연호!”

 “그리고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마.”

 “지금 나한테 그게 할 소리야!”

 

 

 연호가 갑자기 뚜벅 뚜벅 안개 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 연호! 당장 거기 서! 거기 서란 말야!”

 

 

 혜주가 연호의 이름을 부르며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연호가 보이지 않는다.

 한연호! 한연호!

 혜주가 미친 듯이 연호의 이름을 불러도 소용이 없다.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이래!”

 

 

 혜주는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손가락을 갖다대도 터치가 안된다.

 

 

 “폰은 또 왜 이러는 거야. 미치겠네 정말. 전원도 안 꺼지고. 왜 이래 도대체!”

 

 

 몇 번이나 재부팅을 시도해도 핸드폰 화면은 정지상태 그대로였다.

 그런데!

 

 

 “헉! 이게 뭐야. 왜 시간이 그대로인 거지?”

 

 

 혜주의 핸드폰 시간이 아까부터 4시35분에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이다.

 혜주는 계속해서 핸드폰 화면의 터치를 시도했다.

 마침내 화면터치가 성공했다.

 혜주는 다급하게 연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한참 울리고 통화가 연결되었다.

 

 

 “연호씨! 지금 어디야! 당자 차 있는 대로 돌아와! 빨리!”

 

 

 [치리리리]

 

 

 “연호씨! 대답해! 연호씨!”

 

 

 혜주가 소리를 지르며 연호를 재촉하는 사이, 혜주의 발밑에 뭔가가 밟힌다.

 혜주가 허리를 숙여 더듬더듬 물건을 집어들었다.

 연호의 핸드폰이다!

 그런데 연호의 핸드폰은 꺼져있는 상태다!

 

 

 “뭐야 이거. 방금 전 누가 내 전화를 받은 거야!”

 

 

 혜주는 다시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여전히 연호와 통화중인 상태다.

 혜주의 손가락이 사정없이 떨렸다.

 어떻게 된 일이야. 전화는 꺼져있는데 왜 통화 연결중인 거지?

 종료터치를 하려는 순간.

 

 

 “여보세요? 혜주야? 어딨어 혜주야? 어딨어?”

 

 

 연호의 목소리다!

 혜주의 폰에서 연호가 말을 하고 있다!

 

 

 “아흑!”

 

 

 깜짝 놀란 혜주는 자신의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으억.

 무엇인가가 혜주의 허리를 사정없이 들이받았다.

 숨이 콱 틀어막혔다.

 혜주는 앞으로 더듬더듬 손을 내밀었다.

 다행히 혜주가 세워놓은 차다.

 혜주는 다시 더듬더듬 운전석 문을 열고 차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창 잠금 버튼을 얼른 눌렀다.

 

 이제 주위는 온통 하얀 벽으로 둘러싸여 꽉 막혀 있었다.

 혜주는 숨을 할딱이며 사방을 훽훽 둘러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천지 사방이 지독히도 하얗다.

 이게 정말 안개가 맞나.

 혜주의 몸이 계속해서 덜덜 떨리고 있었다.

 혜주는 히터를 틀었다.

 그리고 전조등을 켰다.

 여전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차를 움직일 수도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혜주는 떨리는 손으로 라디오를 틀었다.

 

 

 [뉴스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5시 57분경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뉴스속보를 알려드립니다. 방금 전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습니다. 치리리]

 

 

 “뭐야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혜주는 다시 라디오 채널을 돌렸다.

 

 

 [라디오 개국방송을 시작합니다. 여기는 HLKU부산문화 방송입니다. 오늘 대한민국 최초로 라디오 첫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치리리]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혜주는 라디오를 확 꺼버렸다.

 삼풍백화점 붕괴라니.

 1994년 일어난 사건을 마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보도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라디오 개국 방송이라니!

 한국 최초의 라디오개국 방송은 1949년에 일어난 일이다.

 

 혜주의 머릿속이 산란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걸까.

 나도 연호씨처럼 같이 미쳐가는 건가.

 그 순간!

 차창 문 유리창에 누군가의 얼굴이 나타났다.

 혜주는 비명을 지르며 혼절했다.

 

 

 

 * * *

 

 

 

 2500년 전

 맨 땅위에 짚을 엮어 휘장을 친 20평 남짓의 방안.

 가운데 화덕이 있고, 벌거벗은 아이들 둘 셋이 잠자고 있다

 그 옆에는 아낙(40대)이 무명옷을 입고서 반죽을 하고 있다

 방 끝에는 다양한 청동장식물이 보인다. 청동방울, 동경, 검, 허리띠.

 

 22세의 자운비가 휘장에 걸린 동경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동경 안에 한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바로 24세의 수리부족 전사, 수랑의 얼굴이다.

 그런데 이내 수랑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붉은 피가 그의 이마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자운비의 입에서 탄식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자운비가 얼른 한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막는다.

 

 [너의 신기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자운비가 얼른 뒤돌아본다.

 50대의 대족장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서있다.

 자운비는 얼른 머리를 숙였다.

 

 

 “아버님, 귀물을 함부로 범했나이다. 용서하소서.”

 

 

 대족장은 물끄러미 자운비를 바라보았다.

 흑단처럼 곱고 풍성한 머릿결이 반짝이는 자운비.

 투명하고 흰 피부에 더해 맑고 깊은 큰 눈동자.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은 죽은 어미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영기.

 그렇다. 자운비는 사람의 운명을 점칠 수 있는 신기를 가지고 있었다.

 

 

 “얘야. 네가 혜안을 가진 것은 불행한 일이로다. 그러나 더욱 불행한 것은 수랑을 사모하는 것이다.”

 “제가 보호하렵니다. 기필코 그분을 지켜 드릴 것입니다.”

 “말하지 않았더냐. 수랑은 너의 짝이 아니다. 하물며 그는.”

 “아버지 지금 제게 운명을 말하시는 겁니까?”

 “아가.”

 “전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나이다."

 "..."

 "아버지께서는 제게,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랬다. 대족장은 어린 여섯 살의 자운비를 떠올려본다.

 

 

 “아버지, 운명은 바꿀 수 없나요?”

 “운명은 바꿀 수 없다니, 누가 그리 말하더냐?”

 “샤멘 어매가 말했습니다. 운명은 바꿀 수도 거스를 수도 없다고요.”

 “아가, 저 하늘을 보아라. 하늘에 길이 있더냐?”

 “아니요.”

 “그런데도 별들은 겹치지 않고 저마다 빛을 내지 않더냐. 운명은 이미 만들어진 길이 아니다. 그것은 빛나기 위해 갈고 닦아야 할 길이니 곧 너의 의지가 운명을 만드는 것이다.”

 

 

 16년 전, 30대의 대족장의 생각은 그러했다.

 부족의 운명을 결정짓고, 자신의 삶을 생각대로 만들 수 있음을 굳게 믿었었다.

 그러나 샤멘이 점친 날 아내를 잃었다.

 그리고 샤멘이 예고한 날 두 아들을 잃었다.

 이후 대족장은 운명론자가 되었다.

 생각대로 세상을 굴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오만인가.

 그런데 이 아이는,

 미래를 보고 점을 칠 수 있는 이 아이는,

 그 위험한 힘으로 정해진 운명을 바꾸려 한다.

 거기에는 엄청난 대가가 있음을 왜 모른단 말인가.

 

 

 

 * * *

 

 

 

 자운비는 오전 내내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참다못해 공방실 문 앞까지 갔지만 다시 발걸음을 돌려 돌아왔다.

 기다려야 운명을 이긴다.

 시간을 참아내야 불운에 맞설 수 있다.

 

 공방실에는 일곱 명 남짓의 공인들이 땀을 흘리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가운데 타고 있는 큰 도가니.

 그 도가니 불구덩이에 공인 한 명은 숯을 넣는다.

 다른 한 명은 풀무를 이용해 바람을 불어넣는다.

 어떤 이는 진흙과 밀랍을 이용해 거푸집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공방실의 수장인 공방장(40대)은 세형단검을 들고 끝손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공방인들의 표정이 과히 좋지 않았다.

 

 

 “젠장. 지금 동검이 문제가 아닌데. 농기구가 더 급하단 말이지.”

 “어허. 작업 중에는 입을 열면 안 된다 했지! 바람이 들어가면 어쩌려고 하는가.”

 

 

 공인 한 명이 입을 놀리자,

 공방장이 재빨리 나무랬다.

 

 그 사이 눈썹이 굵고 비대한 40대의 호가가 들어섰다.

 그의 뒤를 따라 60대의 무당이 들어섰다.

 

 호가가 위협적인 눈빛으로 공방을 둘러본다.

 그러자 공인들은 재빨리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성깔이 불같고 잔인한 호가와 눈을 마주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공방장은 잘 듣게. 내 세형검은 제천의식 때 쓸 것이니 정성을 다해야 해!”

 “... 예.”

 

 공방장은 말끝을 흐리며 작게 대답했다.

 청동을 주무르는 공방실은 거룩한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는 대족장인 군장어른도 공방장에게 예를 갖춘다.

 하지만 일개 전사의 수장에 지나지 않는 호가는 제 멋대로 공방장에게 하대를 하고 있다.

 

 

 [공방장 어른께 예를 갖추셔야지요.]

 

 

 어느 새 자운비가 들어섰다.

 자운비는 호가를 가볍지만 차갑게 나무랬다.

 공방장과 공방인들이 모두 일어나 자운비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자운비도 공방장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아니, 대족장님의 따님께서 공방장엔 무슨 일로 납시었소?”

 “공방장 어른. 제가 부탁드린 것은 어찌 되었는지요?”

 

 

 자운비는 호가를 싹 무시한 채 공방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공방장은 순간 난처한 표정으로 호가를 바라본다.

 사실, 호가의 세형동검보다 자운비가 먼저 부탁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호가의 강압에 못 이겨 세형동검의 마무리 작업부터 먼저 시작했던 것이다.

 

 

 “이거 우리 자운비께서 장신구를 부탁하셨구만.

 이봐, 공방장, 자운비 것부터 먼저 완성하라.”

 

 

 호가가 너그러운 척, 부드럽게 공방장에게 명했다.

 

 

 “되었습니다 저는. 기다리지요.”

 “공방장 뭐하는 게야! 당장 자운비 것부터 완성하라.”

 

 

 호가가 계속 재촉을 하자,

 공방장이 다른 공인들에게 빠르게 눈짓을 건넸다.

 그러자 공인 하나가 공방장에게 거푸집을 가져와 내민다.

 별모양이 새겨진 거푸집이다.

 공방장은 자운비에게 주조된 거푸집을 내밀었다.

 

 

 “마음에 듭니다, 공방장 어른.”

 

 

 자운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방장은 거푸집을 고정대에 소중히 올려놓았다.

 그리고 공인에게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공인 두 명이 불에 달궈진 쇳물을 거푸집에 붓는다.

 

 신중하고 고요한 작업이다.

 청동쇳물은 신의 물방울.

 단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공인들은 최선을 다해 집중한다.

 

 호가와 무당은 궁금한 표정으로 공인들의 작업을 지켜보았다.

 도대체 자운비가 부탁한 물건이 무엇이길래 저토록 공을 들이나.

 그때 자운비를 지켜보던 무당의 얼굴에 근심이 서린다.

 어느 새 자운비가 거푸집 곁에 슬프게 앉아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주조의 윤곽이 드러나자 호가는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동경이구만. 별을 새긴 동경이라니. 자운비, 아주 멋진 것이 나오겠구려.”

 

 자운비는 답이 없다.

 다만 완성중인 거푸집을 슬프게 바라볼 뿐.

 그 순간, 자운비의 눈에서 뚝. 뚝.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물은 그대로 거푸집 안에 들어가 뜨거운 물이 되어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아이구, 아가씨. 제가 다시 주조를 해드리겠나이다.”

 

 

 깜짝 놀란 공방장이 거푸집을 치우려는 순간,

 자운비가 만류하였다.

 

 

 “되었습니다 공방장 어른. 모난 이대로 수랑님께 드릴 것입니다.”

 

 

 수랑이라니!

 수랑은 전사 중에 가장 아름다운 전사이나,

 전사의 제1수장은 호가이다.

 대족장이자 군장의 딸인 자운비는 전사의 제1수장인 호가와 결혼을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혼자를 위해서만 귀물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자운비의 상징인 별을 새긴 동경을 수랑에게 주겠다니.

 이는 수랑에게 마음을 주겠다는 공식적인 선포를 한 셈이다.

 

 호가의 눈빛이 뾰족해졌다.

 그리고 이내 똥씹은 표정으로 돌변하더니 코웃음을 쳤다.

 

 

 "자운비. 이게 무슨 짓이지?"

 "이 팔 놓으시오."

 

 

 호가는 자운비의 팔을 더욱 꽉 움켜쥐었다.

 

 

 "자운비, 나에게 도전을 하는가!"

 

 

 팔이 멍들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자운비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호가는 매섭게 자운비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자운비를 휙 밀치고는 휘장밖으로 나가버렸다.

 휘청하는 자운비를 공방장이 얼른 부축한다.

 

 

 “자운비님, 그 마음 바꾸셔야 합니다.”

 

 

 무당이 자운비를 엄하게 보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게요. 그러니 그대도 나한테 대적하지 마오.”

 

 

 자운비가 답했다.

 무당은 고개를 들고 눈을 지긋이 감았다.

 어쩌자고 이 작은 여인이 수리부족 전체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가.

 어쩌자고.

 고작 사랑 하나 때문에 얼마나 큰 사단이 날지 이 어린 여인은 알지 못한다.

 사랑이 순간이며 찰나라는 것을 이 작은 계집은 모른다.

 운명이 사랑을 이기고, 세상을 좌우한다는 것을.

 

 

 

 * * *

 

 

 

 철쭉꽃이 만발한 세적평전 평야.

 한 떨기 그림같은 남자와 여자가 앉아 있다.

 운명이니 사랑이니 세인들의 나불거림을 떠나서

 자운비와 수랑을 지켜본 자는 알 것이다.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며 영원한지.

 

 자운비는 수랑의 부상당한 어깨에 약초를 올려주었다.

 한바탕 전장을 치루고 돌아온 수랑.

 그는 심한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

 자운비는 이 또한 예정된 운명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16세에 첫 사냥에 나간 수랑.

 그때에도 흑표범의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을 뻔 했다.

 그러나 그는 살아 돌아왔다.

 이후에도 무수한 전장과 사냥에 나갔던 수랑.

 늘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돌아온 수랑.

 하지만 석달 달이 기울고 차면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그래서 자운비는 운명이 아닌 신념을 믿었다.

 수랑의 신념과 자신의 신념과

 그리고 둘이 교감하는 사랑의 신념을 믿었다.

 그가 상처를 입으면

 자운비가 치료해줄 것이다.

 

 수랑이 윗옷을 다시 입으며 자운비에게 미소를 짓는다.

 자운비는 품속에서 동경을 꺼내 내밀었다.

 곳곳에 눈물 자국이 패인 못난 동경.

 

 

 “그대처럼 곱구려.”

 “모양은 미흡하나 영험한 능력이 있나이다. 부디 소중히 하소서.”

 

 

 수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애틋하게 자운비를 본다.

 동경에 움푹 움푹 패인 이 자국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곱디고운 자운비의 볼을 타고 뚝. 뚝. 떨어진 눈물이 아니겠는가.

 그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자운비의 고집이며 운명이 대항이다.

 그것은 매번 돌아올 기약만 남긴 채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자신을 향한 자운비의 기다림이다.

 

 자운비가 동경을 수랑의 목에 걸어주었다.

 

 

 “이 동경의 주인은 오직 당신뿐이십니다.이것이 수랑님을 지켜줄 것이며 태양신도 함께 할 것입니다. 전장에 나가시면 필히 이것을 기억하소서. 태양신을!”

 

 

 수랑이 자운비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녀의 따스한 이마가 얼굴에 닿는다.

 수랑이 자운비를 꼭 끌어안았다.

 자운비의 귓가에 수랑의 가슴속 맥박이 요동친다.

 

 

 “어쩌자고 그대가 나를 선택하는가. 어쩌자고.”

 

 

 5화 끝 -

꿈몽 17-06-12 21:50
 
수랑과 자운비의 비극적 운명이 예상되지만 잘 됐으면 좋겠어요ㅠㅠ
최극 17-06-14 00:15
 
2500년이 지나면 비극은 사라지고 향기로움이 남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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