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그 뒤로도 몇 시간을 반복했다.
그러자 더 이상은 힘들어서 사냥을 할 수 없었고, 서른 마리가 넘는 구울을 잡으며 눈알 열 개 정도를 더 모았다.
시아는 잠시 쉬고 다시하자는 생각으로 거울을 회수하고 그곳을 벗어나 중심부로 향했다.
사냥터 중심부에는 언데드 절반, 유저 절반이 뒤섞여 난리를 이루고 있었다.
'물 반, 고기 반이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군.'
그 속담을 몸소 체험하며 시아는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다녔다.
처음엔 사냥터 중심부 근처에만 돌아다닌 게 점점 외곽으로와 알 수 없는 지역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어느새 여기까지 온 거지?'
이상한 곳으로 왔다는 생각에 돌아서려는데 어디선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드득. 그분의 후임자를 정하려면 인간의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니까?"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위험성이 너무 커. 거기다 이곳의 인간들은 우리가 원하는 수준보다 강해. 그 기운이 너무 세서 안 된다."
말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간 시아는 이상한 장면에 놀라고 말았다.
그곳에는 대여섯의 스켈레톤이 빙 둘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
그 모습이 몬스터답지 않게 심각해 보여서 시아는 호기심마저 동했다.
"그르륵.. 이러고 있다간 우리의 주군께서 돌아가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릴 보내지 않았나. 빨리 움직여야 되네."
'스... 스켈레톤이 말을 하다니.'
달그락 거리는 줄만 알았던 스켈레톤들이 말을 한다는 사실에 시아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 충격도 호기심을 이기지는 못했다.
바스락-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몸을 앞으로 움직이려다 그만 앞에 있는 나뭇가지를 밟고 말았다.
"거기 누구냐!"
기대고 있던 나무에 검이 꽂힌 건 순식간이었다.
'허억.'
게임을 하면서 처음으로 공포란 걸 느꼈다. 저 검에 맞으면 즉사였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머리 바로 옆으로 검이 날아왔는데 안 놀랄 수가 없었다.
"누구냐고 물었다!"
'젠장.'
나가야 될지 도망가야 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나가면 죽을 것 같고 도망가도 죽을 것 같다.
'어차피 지금 벗어나는 건 불가능... 대화를 시도해보는 수밖에.'
시아는 눈을 질끈 감고 수풀 밖으로 나왔다.
"어? 인간?"
"거기다 마법사로군."
"저 기운은...... 이방인입니다."
"애송이로군."
"......죽일까."
"생명은 소중한 겁니다."
시아의 등장에 힘입어 여섯 스켈레톤이 저마다 입을 열었다.
그들은 시아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시아는 날아오는 것도, 고통도 없자 슬그머니 한 쪽 눈을 떴다.
하지만 이내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시아를 유심히 보고 있던 열두 개의 구멍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흐익! 고, 공포영화 인줄 알았네......'
실제로 공포영화를 본 것처럼 팔에 닭살이 돋았다. 거기에 등에서는 식은땀마저 흐르고 있었다.
"으음. 그분외의 인간은 처음이군."
"그러게요. 가까이서 보니 신기합니다."
"그치만 기운이 약해."
"매우 약하네."
"죽여 버리고 싶은 면상이군."
"생명은 소중하다니까요."
여섯 스켈레톤들은 말을 마친 뒤 하나같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냈다.
시아는 이 상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영업용 미소를 띄워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오. 말도 할 줄 아네."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난 또, 벙어리인줄 알았지."
'내가 벙어리로 보이냐!'
무시하는 듯한 대화에 욱하니 솟구쳤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아무리 몬스터여도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건 저절로 느껴졌고, 뭣보다 이런 곳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맛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인간. 이름은 뭐지?"
"시아라고 합니다."
"그래? 이름은 중요하지 않지만...... 묶어!"
'에엥?'
톡. 토옥.
차가운 것이 얼굴위로 떨어져 내렸다. 온몸이 갑갑하고 무겁다.
'으윽......'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시아는 온몸이 쑤시고 아픈 것을 느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만 보일 뿐.
'여긴 또 어디야.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다가 스켈레톤들을 발견했고 칼이 날아온 뒤에 인사를 했고, 그 뒤에 납치를...... 납치? 그럼, 나 납치 당한거야?'
한참이나 머리를 굴린 뒤에야 상황이 파악이 된 시아가 소리를 내질렀다.
“납치라니! 이 망할 놈의 해골바가지들!“
“해골바가지? 지금 우리 욕한 거지?”
어둠 속, 가까운 곳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아는 순간 놀래다가 이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벌써 깨다니. 내 기초마법 실력이 녹슬었나?"
"벌써 라니,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나?"
"알게 뭐야. 난 시간 때울 방법이 널리고 널렸다고."
"하여튼......"
정신을 차린 건 좋았는데 시아는 귓속이 앵앵 울리는 것을 느꼈다.
때문에 소리는 들리지만 정확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어쨌든 얼른 가자고. 그분께서 기다리니까."
"그러지 뭐. 로드가 될지도 모르니 조심 좀하고 데려가. 지난번에는 다 와서 죽였잖아."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헹."
'로드? 그분?'
스켈레톤들은 계속해서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
시아는 중간에서 어리둥절한 채로 다투고 있는 그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자신이 끌려온 이유는 무엇이며, 로드는 뭐고 그분은 또 누구냔 말인가.
"상황은 나중에 설명하고 일단 따라와야겠다, 인간."
"어서어서 가자고."
스켈레톤 하나가 시아를 일으키더니 한곳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대, 대체 어딜......"
뭐라 항의를 하려해도 스켈레톤은 그저 질질 끌고 가기만했다.
나름 발버둥을 쳐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시아는 말 그대로 끌려가는 자신의 신세가 애처로웠다.
‘아니, 뭔 뼈다귀들이 이리 힘이 넘쳐?’
순간, 스켈레톤들이 우뚝 멈춰 섰다. 그러더니 동굴 한쪽에 뼈다귀 손을 올려놓고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드르륵-
거짓말처럼 거대한 동굴의 벽면이 움직였다. 벽면이 움직인 자리에는 이상한 공간만이 남아있었다.
'이건 또 뭐야?'
놀라기보단 황당함이 가득했다. 벽면이 움직이다니, 너무나 고전적인 방법이 아닌가. 식상해서 놀랄 지경이었다.
"뭐 하냐, 인간. 따라 들어오지 않고."
어느새 공간 안으로 들어간 스켈레톤이 시아를 잡아 이끌었다.
-이름 없는 던전을 발견하였습니다. 명성100을 획득하였습니다.
-일주일동안 경험치 획득률, 아이템 드랍률이 두 배로 상승하며 던전은 일주일 후에 자동으로 공개됩니다.
'던전?'
갑작스레 들리는 알림 음에 의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무슨 이유에서인지 느긋하기만 하던 스켈레톤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붙잡혀 있던 시아는 영문도 모른 채 같이 달려야했다.
두두두두두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뒤에서 엄청난 몬스터 무리들이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같으면 저것들을 아작 내겠지만......"
"쳇, 마스터의 기운이 약해졌다고 날뛰는 꼴이라니. 파이어 월!"
선두에서 다가오던 일련의 무리들이 불에 지져져 타버리는 참담함을 겪어야했다.
"하지만 다행히 상층부는 통제가 되고 있어."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마스터가 돌아가시기 전까진 이 던전은 통제가 가능해. 하지만 돌아가시게 된다면... 우리조차 이 던전을 감당하기 힘들 거다. 윈드 스톰!"
마법사로 보이는 스켈레톤은 대화를 하며 마법을 날렸다. 그중에 간혹 시아를 쳐다보며 생긋 웃어 주기까지 했다.
"우리 중에 누가 더 달리기가 빠르지?"
"그야 당연히 너지. 난 허약한 마법사라고. 무식하게 힘만 쌘 너와는 질적으로 다르단 말이다."
"그래? 그럼 저 녀석들을 부탁하지. 난 갈테니."
그렇게 말한 스켈레톤은 숨이 막혀 헉헉 거리고 있는 시아를 어깨에 들쳐 업었다.
뼈다귀에 업혀 기분이 묘하긴 했지만 일단 숨이 차 죽을 것 같았기 때문에 시아는 가만히 있었다.
"뭐? 이 많은 것들을 나보고 다 처리하라고?"
"그래. 그럼 난 가겠다."
시아를 들쳐 맨 스켈레톤은 더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앞을 박차고 나갔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남은 스켈레톤은 자신의 앞에서 달려오는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에이잇! 다 쓸어버릴 테다! 더블 싸이클론!"
"하아... 대체 여긴 어딥니까?"
"음. 나도 모르겠다. 이런 곳이 있었던가."
한편, 시아와 스켈레톤은 끝없는 미로에서 헤매고 있었다.
몬스터 군단에서 겨우 벗어난 뒤 어딘가로 떨어지더니 계속 이런 상태였다.
"도통 모르겠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곳은 없는데."
'그럼 없던 공간이 생겨났다는 거냐!'
시아는 울컥하고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걸 속으로 애써 삼켰다.
납치된 것도 억울한데 이런 미로에 갇혀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분통터질 일이었다.
두두두두-
"으응?"
굉장히 큰 소리와 함께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미로에 떨어지기 전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으아악-."
굉음과 먼지의 선두에서 알 수 없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계속해서 불안감이 몰려왔다. 시아는 설마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뒤를 서서히 돌아보았다.
'이런, 젠장!'
불길한 예감은 적중한다고 했던가.
뒤에서는 아까 버리고 온 스켈레톤과 그새 더 불어난 몬스터들이 둘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안되겠다, 인간. 꽉 잡아라!"
옆에 있던 스켈레톤도 그것을 봤는지 다급하게 시아를 다시 들쳐 매고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