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울은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한참을 갸웃거리다가 방 한 곳의 서랍장을 열었다. 그 안에는 갖가지 청소도구들이 있었다.
"그것들 이리 가져와봐."
구울은 청소도구들을 품에 안고 시아에게 다가왔다.
"이거 가지곤 모자르겠는데, 혹시 더 있냐?"
끄덕끄덕
말은 못하지만 이해는 하는 것 같았다.
"어디에 있는데?"
구울은 따라오라는 시늉을 하곤 3층의 모든 방에서 청소도구를 꺼내왔다. 수거해온 청소도구들의 양은 꽤 많았다.
"둘이서는 다 못 들겠네. 어이, 너! 그리고 너!"
시아는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구울 몇 마리에게 청소도구들을 안겨주고 같이 1층으로 내려왔다.
구울이 생긴 뒤에 더 심각하게 지저분해진 연회장은 도저히 사람이 들어올 만한 장소가 못되었다. 천장엔 거미줄로 가득했고 바닥은 끈적한 데다 먼지까지 수북했다.
'이게 다 저 구울 녀석들 때문이야.'
1층 연회장에는 그 어떤 층보다 많은 구울들이 있었는데 문제는 이곳에 있는 구울들의 위생상태가 심히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외모도 흉한데다 지저분하니 비호감이 따로 없었다.
시아는 연회장 가운데에 청소도구들을 내려놓게 하고는 크게 박수를 쳤다.
짝짝
"자, 모두 집중!"
그 소리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구울들이 모두 시아를 향해 시선을 모았다.
"모두 이리 와서 이것들을 하나씩 들도록."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내밀자 구울들은 느릿한 몸짓으로 받아들었다.
"너네는 그걸로 바닥의 먼지를 쓸고 벽면의 거미줄을 치우도록 한다."
그 소리에 구울들은 멍청하게 시아를 바라보았다.
'아, 이 녀석들은 청소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구나.‘
시아는 바로 옆에 있던 구울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뺏어서 바닥을 쓰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하란 말이야, 알았어?"
구울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흩어져서 느릿느릿 바닥을 쓸었다. 시아의 옆에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배급받지 못한 구울들만 남았는데 그들은 시아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너넨 둘씩 가서 이 통에 물을 퍼오도록. 물은 3층 주방에 가면 나올 거다."
나무로 된 물통을 쥐어주자 대여섯 마리의 구울들이 물통을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고도 스물 남짓의 구울이 남았다. 시아는 그 남은 구울들에게 대걸레와 손걸레를 넘겨주었다.
"조금 있다가 물통 가지고 간 녀석들 오면 물에 빨아서 바닥이랑 벽면 같은데 닦아."
얼마 지나지 않아 구울이 물통을 가져왔고 시아는 일일이 걸레들을 빨아 청소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답답하긴 했지만 꽤 열심히 하는 듯해 만족스러웠다.
'1층은 이것들한테 맡겨놓으면 되고 밖에 담쟁이 넝쿨이나 처리해야겠네.'
저택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한 담쟁이 넝쿨을 처리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마법 한 방이면 날라갈려나? 윈드 커터!"
-수도 내에서 3서클 이상의 공격마법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마법이 제지당하자 시아는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어이, 혹시 저택 안에서 가위 같은거 못 봤냐?"
시아에게 처음 청소도구들을 꺼내준 구울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럼 침대도 살 겸 나갔다 와야겠네. 더 필요한건 없으려나?"
시아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구울이 툭툭 치더니 밥을 먹는 듯한 시늉을 해보였다.
'허, 몬스터 주제에 밥도 먹어?‘
기가 찼지만 일단 알겠다고 대답한 시아는 저택을 나와 번화가로 향했다. 거리가 꽤 멀어 가는데 한참의 시간을 소비했다.
'가구점이 어디 있으려나.'
목수에게 침대를 직접 의뢰해 제작하는 게 돈이 더 싸게 들지만 그러려면 상당한 시간이 들고 배달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돈을 조금 더 주고 가구점에서 침대를 사서 배달을 시키는 게 낫다고 생각한 시아는 가구점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침대를 사러 왔는데요."
"원하시는 디자인이나 브랜드가 있으신가요?"
"아뇨. 그냥 푹신하고 편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 곰팡이가 잘 피지 않는 걸로요."
"크기는......?"
"1인용이면 충분합니다."
"잠시 만요.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점원이 한 편으로 사라지자 시아는 가게 곳곳의 가구를 구경했다. 책상과 서랍, 책장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어느새 다가온 점원이 방금 전 사라졌던 방향으로 안내했다. 점원이 데리고 간 곳에는 각종 침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 이쪽이 1인용 침대들입니다."
폭이 좁고 심플한 디자인으로 된 침대가 대부분이었다. 시아는 침대를 대충 훑어보고는 제일 푹신해 보이는 침대를 골랐다.
"배달은 되나요?"
"네. 주소를 적어주시면 오늘 안에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신속한 배달까지. 마음에 들었다. 시아는 침대 값을 지불하고는 가게를 나와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늘 그렇듯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호객행위와 물건 값을 흥정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리얼리티 하나는 참 높단 말이야.'
일단 담쟁이 넝쿨을 제거할 가위부터 사야했다. 정원용 가위는 공구점이나 꽃가게, 일반 잡화점에서 판매했다. 공구점에서 파는 가위는 날이 서고 성능이 좋긴 하지만 비싼 게 문제였다. 잡화점에서 파는건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뭐, 제초제도 사야하니까 꽃가게로 갈까나.'
시장에 꽃가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간신히 작은 꽃가게를 발견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꽃향기가 가득했다. 익숙한 꽃부터 처음 보는 신기한 꽃까지 매우 다양했다.
"어머. 손님이 오셨네."
가게 어디선가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나는 소린지 몰라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여기에요. 여기."
겨우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에?"
의외의 존재에 시아는 멍청히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날 처음 보면 다 이런 반응이란 말이야. 요정 무안하게."
시아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요정이었다. 손가락만한 크기에 앙증맞은 날개를 달고 있는.
"어서 오세요, 손님. 전 꽃의 요정 클레나라고해요."
-최초로 꽃의 요정을 발견하셨습니다. 매력이10, 명성이100 상승합니다.
"아, 전 여행자 시아라고 합니다."
클레나는 빙긋이 미소를 짓더니 가게 안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플로리아! 어서 나와 봐! 손님이 오셨어."
안에 누군가 있는듯했다. 잠시 후 플로리아라고 불린 한 여자가 눈을 비비며 걸어 나왔다.
"아,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손님."
플로리아는 배시시 웃었다.
"혹시 정원가위와 제초제가 있나요?"
"네. 잠시 만요."
플로리아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고 요정은 여전히 시아 주위에서 맴돌았다.
"이방인은 처음 봐요."
"저도 요정은 처음 봅니다."
클레나는 다시 웃더니 어느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꽃 위로 가서 앉았다. 클레나가 앉으며 꽃을 쓰다듬자 꽃은 동물처럼 기분 좋은 듯한 몸짓을 했다.
"저기, 그 꽃......"
무언가 이상해 시아가 입을 열자 클레나는 꽃에 얼굴을 비비며 쉿 하는 몸짓을 취했다.
"그건 식인 꽃이랍니다. 손님. 클레나가 기르는 꽃이죠."
식인꽃이란 말에 시아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걱정하지마세요. 아주 순하답니다."
'아니,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도 아니고, 식인 꽃한테 순하다니......'
시아는 플로리아와 클레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플로리아가 건네는 정원가위와 제초제를 받아들었다.
"총 70실링입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씨앗 몇 개를 드릴까요?"
"씨앗요?"
돈을 건네려던 시아는 멈칫했다.
"네. 식인 꽃 씨앗이요. 제가 반대해서 심지 못했던 것들이지요. 잘만 키우면 순하고 사람들도 잘 따른답니다."
공짜로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플로리아는 시아에게 70실링을 받고 조그만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화분이나 습기가 많은 곳에 심으시면 될 거에요. 물은 자주 주시고 간혹 가다 고기 덩어리를 주면 무척 좋아할 거에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제초제와 가위, 씨앗 주머니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잠깐만요! 이방인 손님."
가게를 나서려는데 클레라가 자기 몸보다 몇 배는 더 큰 물이 듯한 병을 내밀었다.
"어서 가져가요. 우리 꽃들 잘 키워줘야 해요? 훌쩍."
그 병을 받자마자 클레라는 날아갔고 플로리아가 웃으면서 시아를 배웅했다.
"이 병이 대체 뭐길 래...... 아이템 감정."
[요정의 눈물]
등급: 레어
옵션: 식물의 성장을 촉진한다.
제한: 없음
꽃의 요정이 흘린 눈물. 한 방울만으로도 죽은 꽃을 살리거나 식물의 성장을 매우 빠르게 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특별옵션: 죽은 꽃을 되살릴 수 있다. 단, 두 번 적용은 불가능하다.
크게 필요할 것 같진 않지만 일단 레어 아이템이라니 시아는 인벤토리에 넣고 정육점을 찾았다.
"어서 오십시요~"
'구울이 뭘 먹는지 알아야 말이지. 고기면 될 것 같긴 한데.'
"오늘 싱싱한 고기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살펴보십시오."
진열대 위엔 붉은 빛이 감도는 여러 고기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시아는 그 중에서 제일 붉어 보이는 고기를 가리켰다.
"이건 무슨 고기죠?"
"아, 그건 소고기입니다. 육질이 좋은 게 입에 착착 감기죠."
‘나도 못먹는 소고기를 고작 구울 따위한테 사줄 순 없지.’
"그럼 이건요?"
그 옆에 놓인 고기를 가리켰다.
"토끼고기입니다. 값도 싸면서 맛도 좋죠."
"그래요? 그럼 이걸로 주세요."
"예. 얼마만큼 드릴까요?"
던전에 있는 구울의 수를 짐작해 보았다. 대강 떠올려 보아도 너무 많았다.
'다 주지 말고 청소 잘하는 녀석들만 주어야겠어.'
"100g당 얼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