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우화등선
작가 : 촌부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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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화
작성일 : 16-07-12     조회 : 685     추천 : 0     분량 : 6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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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화 총회합

 

 

 

 다음 날, 자소궁은 평소처럼 고요한 아침을 맞이할 수 없었다.

 도동들은 이곳저곳을 빗질한다고 난리를 피웠고, 도사들도 이날만큼은 연무를 멈추고 자소궁을 경비했다.

 소란이 깊어지고 마침내 오시(未時)가 되어서야 소란이 끝났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의미로 자소궁이 소란스러워졌다. 각 도관에 콕 틀어박혀 나오지 않던 진인들이 멀쩡히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노진인(老眞人)도 보였고, 다시는 깨지 않겠다던 은거를 깨고 나온 진인도 보였다.

 도사들은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진인들을 보자 수군수군대며 흥분했다.

 장터처럼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조용한 무당의 평소 분위기를 생각하면 도인들의 소란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었다.

 술시(戌時)가 되자 사람들은 모두들 침묵했다. 드디어 무당의 총회합이 시작되었다.

 자소궁(紫宵宮) 본전(本殿).

 원시천존과 태상노군, 영보천존이 놓인 삼청전(三淸殿) 앞에 장삼봉 조사의 상이 놓여 있었다.

 조사들의 상 앞에는 장문인이 앉아 본전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회의의 중대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만면에 짓고 있었다.

 본전에는 양옆으로 진인들이 사열하여 서 있었다.

 현평 진인은 오늘의 총회합에서 운혜의 이야기를 꺼낼 작정이 아니었다. 운혜의 이야기는 비사(秘事)로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혹여 무당에 정말 상상하기 싫은 경우지만 세작이라도 들어와 있다면 운혜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에서 춤추는 촛불이 되어버린다.

 때문에 현평 진인은 몇몇의 도사들에게만 운혜의 사실을 알렸는데 그 도사들 중 일부는 천주봉을 떠나 다른 도관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들만을 따로 불러 무당의 중대사를 논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도인들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세작이 의심을 품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평 진인은 그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총회합을 준비했다.

 지금의 것은 일반적으로 세상에 알려질 무당파의 총회합이지만 다음에 열릴 회합은 문파의 수뇌부만이 모인 진짜 총회합이 될 것이다.

 그를 위해서 지금은 웃음을 보여야 했다. 다른 진인들의 마음에 안정을 줄 수 있도록.

 평소와는 다르게 화려한 금관(金冠)과 금포(金袍)를 차려입은 현평 진인이 은은히 미소 띤 얼굴로 장문령부인 자반죽간을 들고 서로 부딪쳤다.

 딱― 딱―

 “지금부터 총회합을 실시하겠소.”

 사열하여 서 있던 진인들이 고개를 숙여 읍했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는데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많아서인지 서로들 안부 인사를 나누느라 바쁘다.

 “허허, 현수 진인(玄洙眞人)께서도 오셨군요. 이거 오늘의 회의에는 많은 사람이 보이는구려. 무량수불.......”

 “아, 현청 진인(玄淸眞人)께서도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하도 보이질 않아 우화등선하신 줄 알았답니다!”

 수군거리는 중에서도 우화등선이란 소리가 현평 진인의 귀를 파고들었다. 사실 우화등선한 사람이 여기 나올 예정이긴 하다.

 다들 입소문을 들어 알고 있겠지만 막상 보면 놀라게 될 것임에 분명하다. 현평 진인은 그 모습을 상상하며 웃음을 지었다.

 “본래 총회합을 결정한 것은 본 파에 대한 황제 폐하의 신임에 보답하는 방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 것이외다!”

 현평 진인이 말했다. 제법 큰 소리로 말했더니 떠들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현평 진인을 바라본다.

 “비록 당금 황후 마마께오서 불사에 관심이 많으시어 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신다 하나 황제 폐하께오서 우리 무당을 이렇게나 아끼고 계시니 그야말로 무당의 홍복이올시다. 특히 이번엔 장삼봉 조사께 통미현화 진인(通彌玄和眞人)의 칭호를 제수하시었소!”

 장삼봉은 무당파를 떠나 신선이 된 후에도 황제의 신임을 받았는데 그 신임이 얼마나 대단한지 대를 이어 새로운 칭호를 제수받고는 했다.

 이번에도 삼봉 조사께 새로운 칭호가 제수된 것이니 무당에 대한 황제의 신임이 결코 작지 않다.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진 여러 진인들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과연 그렇구려!”

 “어허헛, 역시 황상 폐하께오서 무당을 잊으실 리가 없지요!”

 현평 진인이 다시 자반죽간을 부딪쳐 소리를 내어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리하여 황제 폐하께오서는 우리 무당에 사람을 보내시었다오. 황제 폐하께서는 마음의 심려를 풀어줄 도(道)를 설파할 진인을 찾으시니 이에 관(官)으로 나가실 분을 찾고자 하는 것이외다.”

 진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문인을 바라보았다. 자반죽간을 다시 한 번 부딪쳤으니 조금은 진지하게 회합에 임해야 할 것이다.

 현평 진인이 말했다.

 “하지만 중대사를 논하기에 앞서 소개해 드릴 분이 있소이다!”

 다시금 진인들이 술렁거렸다. 지금에 나올 인물이야말로 오늘 총회합을 이렇게 북적거리게 만든 장본인이다.

 우화등선하여 신선이 된 무당파 최고 배분의 인물이 인세에 강림했다더니 역시 소문이 사실이었다. 진인들이 긴장하는 듯 현평 진인을 바라보았다.

 “본 파의 전대 기인께서 신선이 되셨다는 소식은 모두 들으신 줄로 아오. 바로 그분을 뫼신 것이외다.”

 현평 진인이 얼굴에 미소를 띠고 말했다. 만약 청명의 소개로 사람들이 들뜬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좋은 일이다.

 나중에 문의 수뇌부만이 모였다는 것을 들키게 되어도 청명에게 호기심을 가진 진인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청명의 소개는 조금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준비되었다.

 물론 특별한 것을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싫다고 칭얼대는 사백께 금관(金冠)과 금포(金袍)를 입혔다. 그리고 몰래 자소궁 밖에 세워두고는 이렇게 멋들어진 소개를 하는 것이다.

 “본 파의 십육대 제자이자 신선이 되신 청명 사백이올시다!”

 자소궁의 본전을 가로막고 있던 문이 열렸다. 그 뒤에는 청명이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서 있었다.

 만면에 미소를 짓고 진인들의 놀람을 즐기려 했던 현평 진인이 청명을 보고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청명이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옷 본새보다 훨씬 큰 옷을 입고 불편한 듯 몸을 배배 틀고 있다.

 ‘하필이면 운형자와 황우자에게 청명의 옷을 맡기다니! 나의 실수로다!’

 멍청한 녀석들이 사백께 옷 본새보다 훨씬 큰 옷을 찾아다가 입혀놓았다.

 사실 운형자와 황우자는 청명의 몸에 맞는 금관과 금포를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었다.

 하지만 어지간한 금관과 금포는 허우대가 좋은 장문 진인, 혹은 다른 진인들의 것밖에 없었다.

 새로 옷을 만들자니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구하자니 큰 옷뿐이다.

 결국 운형자와 황우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그것은 청명에게 입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문 진인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운형 이놈......!”

 분노한 현평 진인이 중얼거렸다. 중얼거림을 들은 몇몇 진인들이 의아한 눈으로 현평 진인을 바라보자 민망해진 현평 진인이 헛기침을 해 보였다.

 “험, 험, 아무것도 아니올시다.”

 현평 진인이 민망한 미소를 지르며 손을 휘휘 저었다.

 한편 청명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옷이 자꾸 흘러내리는 것이 불편했다.

 만약 운형 사손이 이 옷을 꼭 입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입지 않았을 것이다.

 옷은 화려한 빛이 나는 데다가 또 너무 컸다. 청명은 얼른 벗고 원래의 도복을 입고 싶다고 생각했다.

 울상을 짓던 청명은 금포가 어깨를 넘어 자꾸 흘러내리자 어깨를 들썩여 흘러내리는 옷을 막았다.

 금관이 너무 커 머리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눈을 가릴 듯했다. 금관을 수습한 청명이 금포를 질질 끌며 본전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 민망한 등장에 몇몇 진인들은 체통도 잊고 실소를 지었으며 몇몇 진인들은 입가를 실룩댔다.

 현수 진인이 말했다.

 “푸, 풉! 저, 저분이 정말 우리 사백이 맞소이까?”

 청명보다 자신이 민망해진 현평 진인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소리를 질렀다.

 “현수 사제! 자네가 감히 기사멸조의 죄를 저지르는가!”

 현수 진인이 어깨를 움츠렸다.

 “죄송합니다, 장문 진인.”

 현평 진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현수 진인은 현평 진인과 같은 사부를 모시지는 않았지만 배분상 같은 항렬이었다.

 문파에 묶여 사제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역시 맘에 들지는 않았다.

 현평 진인이 한숨을 내쉬는 사이 청명이 현평 진인의 앞까지 걸어왔다. 스스로도 부끄러운 걸 아는지 얼굴이 벌게져 있다. 청명이 현평 진인에게 속삭여 말했다.

 “자, 장문 진인, 나가면 안 되나요?”

 “예, 안 됩니다. 조금 후에 나갈 수 있으니 기다리시지요.”

 현평 진인이 청명에게 속삭여 말하고는 좌중을 둘러보며 크게 외쳤다.

 “이분은 본 파의 기인이시자 신선이시니 문의 모든 제자들은 이분을 대함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오!”

 “무량수불.......”

 진인들이 머리를 숙여 읍했다. 이제부터 저 소년은 장문인의 사백으로 무당파의 최고 항렬이 되어 제자들과 인연을 맺게 될 것이다.

 현평 진인이 다시 한 번 자반죽간을 부딪쳤다.

 딱― 딱―

 “이제 본 안건으로 넘어가겠소! 의견이 있으신 분은 기탄없이 말하시오!”

 총회합이 진행되었다.

 현평 진인의 진행에 따라 한두 명의 진인이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황궁은 어느 시대나 복마전(伏魔殿)이었으니 아무 진인도 자신이 가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자칫 황궁에 갔다가는 권력의 암투에 휘말리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 그런 경우로 죄를 뒤집어썼을 때는 무당도 큰 힘이 되지 못했다.

 강호의 양대 산맥이라는 무당조차 제자를 지키지 못했으니 황궁의 힘은 무섭다.

 그때 현경 진인(玄鏡眞人)이 손을 번쩍 들고 크게 외쳤다.

 “본인은 현청 진인을 강력하게 추천하오! 그분의 도력이 하늘에 닿았으니 능히 황제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릴 것이외다!”

 “뭣이! 그렇게 말하는 현경 네놈이 가!”

 “누가 뭐래도 현청 사형이 배분이 높잖습니까! 어디 사제를 보내려고! 형이 원래 희생하는 것을 모르시오?!”

 “그렇게 따지면 장문 진인이 가야지!”

 “...험, 험.......”

 현평 진인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자연스럽지 못하고 딱딱하게 굳은 몸짓으로 수염을 쓰다듬는 걸 보니 화가 난 것 같았다.

 “죄송하오이다, 장문 진인.”

 현청 진인이 멋쩍게 말했다.

 반면 현경 진인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문인의 미움을 샀으니 아무래도 현청 사형의 미래는 곤란해질 듯하다.

 “다시 의견이 있으신 진인께서는 말씀하시오.”

 소란이 시작되었다. 진인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

 

 진인들의 소란이 시작될 무렵 상청궁(上淸宮)에서는 현성 진인이 차를 들어 입가로 가져가고 있었다.

 현성 진인은 어두운 눈으로 탁자 옆에 놓인 침상을 바라보았다. 벌써 하루가 지나가건만 운혜는 깨어나지 않고 있다.

 현성 진인의 옆에 서 있던 현무 진인 역시 무거운 얼굴로 운혜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운혜를 바라보고 있던 현무 진인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제, 운혜는?”

 “아직입니다.”

 현무 진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상청궁으로 달려오며 적잖은 기대를 했건만 아직이라니 걱정과 동시에 실망이 된다.

 “이유가 뭔가, 사제?”

 “죄송합니다. 아직은 이유를.......”

 현평 진인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곧 깨어날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됐으니 사형이 자신을 뭐라 탓해도 할 말이 없다.

 현무 진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핫! 괜찮아, 사제. 설마 내가 어제처럼 또 그럴까 봐?”

 현무 진인이 현성 진인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웃는 모습이 무당의 도인답지 않게 경박했지만 현성 진인은 개의치 않고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형.”

 “괜찮아. 운혜는 죽지 않아.”

 현무 진인이 굳게 말하고는 운혜를 바라보았다. 운혜의 몸은 별 이상이 없었지만 옷과 침상에는 성에가 끼어 있었다.

 “사제, 그런데 저거, 저렇게 놔둬도 돼? 뭐라도 해야지.”

 “...곧 의식을 불러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백회에 침을 꽂고 양기를 뇌로 이끌 생각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양기가 충분히 퍼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현성 진인이 설명했다.

 본래 어제의 대법에서는 크게 필요치 않다고 생각해 양기를 이끌어내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조금 부족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양기가 뇌에 침투하지 못해 음기가 가득 차 있으니 의식을 잃은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현무 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침음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음.......”

 그 모습을 보며 현성 진인이 미소 지었다.

 “허헛, 사형이 수염을 쓰다듬으니 어째 어색한 느낌입니다?”

 “왜?”

 “말투고 뭣이고 도인 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수염을 쓰다듬으니 어울리지 않잖습니까.”

 “에라, 이놈아!”

 현무 진인이 실소했다. 그리고는 현성 진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쯤 시작해야 되지 않아?”

 “예.”

 현성 진인은 차분하게, 하지만 말꼬리를 늘여가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침통을 들고 운혜에게 걸어갔다.

 운혜를 들어앉힌 현성 진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조용히 하시고 호법을 서주십시오. 이곳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아니 됩니다.”

 “그래.”

 현무 진인의 대답을 들은 현성 진인이 침통에서 세침(細鍼)을 꺼내어 운혜의 머리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손길로 백회혈에 세침을 꽂았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운혜의 머리를 오고가자 이번엔 명문혈에 장심을 들이댔다. 현성 진인이 눈을 감고는 입술을 일(一) 자로 굳게 다물었다.

 현무 진인은 무겁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혜의 몸에는 예상외로 양기가 흐르고 있었다.

 음기에 비해 그 양은 터무니없이 적지만 그래도 백회부터 용천까지 머무르지 않고 흐르는 것이 안정적이었다.

 그런데도 왜 의식을 차리지 않는 것일까.

 현성 진인이 양기를 뇌로 이끌었다.

 그때였다. 순순히 가라앉아 있던 음기가 갑자기 일어나 명문으로 몰려왔다. 깜짝 놀란 현성 진인이 신음성을 흘렸다.

 “으으음.......”

 조용히 현성 진인을 바라보던 현무 진인이 놀라 현성 진인에게 다가갔다.

 지금 말을 걸었다간 현성 진인조차 위험하니 말도 걸 수 없다. 그저 조용히 지켜봐야 하는데 갑갑한 마음만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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