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우화등선
작가 : 촌부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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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화
작성일 : 16-07-15     조회 : 676     추천 : 0     분량 : 7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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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무 진인이 꺼낸 이야기는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로 송나라 태종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 ‘태풍광기’라는 책에 적힌 설화였다.

 물론 민간에 널리 퍼져 많은 이들이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운혜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운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머,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냐! 둘이 하도 자주 만나니까 결국 옥황상제가 둘을 갈라놓은 게지. 그래서 견우와 직녀는 일 년에 한 번 까마귀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눈물이 흘러서 그만 은하수가 되었다는구나.”

 “너무 슬프다, 사부. 이제 견우랑 직녀는 일 년에 한 번밖에 못 만나?”

 “그렇지, 그렇지!”

 운혜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물론 이야기가 슬퍼서는 아니었다.

 사부가 혹여 자신이 재미없을까 긴장한 듯 말하는 것을 보니 눈물이 비어져 나온 것이다.

 그것을 보고 현무 진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핫! 이 사부도 이야기 실력이 없지는 않구나! 슬프더냐?”

 ‘슬프더냐?’ 하고 묻는 현무 진인의 목소리를 조금 떨리고 있었다.

 “응, 사부. 슬펐어.”

 운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무 진인이 기쁜 듯이 웃으며 운혜를 바라보았다.

 그때 밖에서 운혜를 부르는 운풍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혜 사매, 청명 사조께서 내려오셨네.”

 “.......”

 운혜가 소매를 들어 눈가를 훔쳤다. 현무 진인이 운혜를 따스하게 바라보았다.

 “자, 이제 가거라.”

 “...네.”

 현무 진인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운혜를 배웅했다. 운혜도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조금 걷다 말고 곧 몸을 돌려 현무 진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사부, 나 금방 올게요. 건강히 잘 계셔야 돼요?”

 “허허,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어린아이로구나. 너나 조심하거라, 사부는 괜찮으니.”

 현무 진인이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

 운혜가 몸을 떼고는 현무 진인을 바라보았다. 현무 진인이 턱으로 밖을 가리켰다.

 “기다리시겠다. 나가봐야지?”

 “...네.”

 운혜가 현무 진인을 애잔하게 바라봤다. 현무 진인이 미소를 지어주었다.

 운혜가 몸을 돌려 태화궁 밖으로 걸어나가자 현무 진인이 뒤에서 운혜를 불렀다.

 “운혜야.”

 운혜가 의아한 듯 몸을 돌려 현무 진인을 바라보았다.

 현무 진인이 조금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춥진 않으냐?”

 운혜의 눈에 다시 습막이 차 올랐다. 운혜가 소매로 눈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마저 떨려 나온다.

 “네, 네. 추워요.”

 “그러냐? 으하핫! 야, 운혜야, 여자는 몸이 따듯해야 된다더라. 강호에 나가거든 옷 꼭 챙겨 입어라, 두툼한 걸로. 알겠지?”

 현무 진인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 기쁨이 운혜에게도 전해져 와 운혜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운혜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나와요, 운혜 사손!”

 이번엔 청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혜는 마지막으로 사부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고는 태화궁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망막에 새기려는 듯 현무 진인은 끝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태화궁 밖에서는 현평 진인과 운풍자, 당허봉을 내려온 청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명이 모처럼 밝은 얼굴로 운혜에게 말했다.

 “운혜 사손, 얼른 가요!”

 청명은 몹시 기대하고 있는 상태였다. 세상 밖으로 나가면 사람도 많이 만날 수 있고 볼거리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

 어쩌면 멧돼지 고기를 먹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청명은 우울해하던 심사도 잊고 들뜬 얼굴로 운혜를 재촉했다.

 “운혜 사손이 너무 늦었어요. 저는 아까부터 기다렸는데. 저는 빨리 세상으로 가야 해요.”

 “...네, 이제 가요.”

 운혜가 눈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청명의 밝은 얼굴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사부에게 전해들은 사조님의 말씀대로라면 아마 자신은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언제든 무당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사부를 만날 수 있다. 지금의 이별은 이별이 아니라 잠시의 헤어져 있는 것이다.

 운혜의 미소를 바라보던 청명이 신이 나서 외쳤다.

 “그럼 가요!”

 “.......”

 운풍자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운혜와 청명을 바라보고 있던 현평 진인에게 길게 읍했다.

 “제자, 명을 받들어 사조를 모시고 강호로 나갑니다.”

 “그래, 제자는 조심하라.”

 그 뒤를 이어 운혜가 현평 진인에게 읍하며 말했다.

 “무당파 제십팔대 제자 운혜가 강호로의 출행을 고합니다.”

 “그래, 운혜야. 너는... 험, 아니, 되었다. 너도 몸조심하거라.”

 현평 진인이 말을 하다 말고 헛기침을 하더니 의례적인 인사로 말을 끝맺었다.

 아마 제 사부가 충분히 강호에서의 대처법을 설명해 주었을 터, 굳이 다시 꺼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평 진인이 말을 맺자 청명도 읍했다. 마음이 급했는지 전에 없이 말이 짧다.

 “저도 가요, 장문 사질.”

 청명의 인사를 받은 현평 진인이 굳은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운혜는... 정말 죽지 않겠지요?”

 “그럼요. 운혜 사손은 죽지 않아요. 이제 가도 되나요?”

 청명이 건성건성 대답하자 현평 진인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사백께서 선술을 펼치는 것을 직접 보았다.

 도는 보이지 않지만[道無示] 늘 있는 것[道有恒]. 하물며 도를 이룬 사람을 직접 보았으니 못 믿을 게 무언가! 아마 사백의 말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시지요.”

 “네! 야아―!”

 현평 진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청명이 환호하며 태화궁 아래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달려가던 청명은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잘 있어요, 장문 사질!”

 “어이쿠, 사조님! 사조님! 같이 가요!”

 운혜가 소리를 지르며 청명을 쫓았다. 속도가 빠르지 않으니 금방 따라잡겠지만 왠지 저러다가 넘어질까 걱정되었다.

 운혜의 걱정스러운 외침에 청명이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운혜 사손이 빨리 와요!”

 “뒤를 보지 마시고 앞을 보세요!”

 운혜가 소리를 지르자 청명이 다시 앞을 돌아보며 달려갔다. 운풍자가 묵묵히 뒤를 좇았다.

 

 일 다경 후.

 청명과 운혜, 운풍자는 어느새 천천히 걷고 있었다. 힘차게 달려가던 청명이 태청관에 다다르기도 전에 지쳐 버린 탓이다.

 운혜가 한숨을 내쉬며 청명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뛰지 마시라니까요.”

 “하지만 운혜 사손, 나는 얼른 가고 싶어서.......”

 지친 듯한 청명의 목소리에 운혜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속도가 더 떨어졌잖아요, 사조님.”

 “후아! 운혜 사손, 나는 얼른 가고 싶은데 너무 힘들어요.”

 청명이 지친 표정으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무당산 밖을 바라보니 내려가는 길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다.

 저걸 다 걸어 내려가야 한다니 앞이 깜깜하다.

 한숨을 내쉬던 청명이 문득 운풍자를 바라보았다. 운풍자의 허리에 운검이 매달려 있었다.

 운검을 보고 청명이 해맑게 웃었다.

 “운풍 사손.......”

 “안 됩니다.”

 ‘운검을 타고 싶어요’라고 말하려 했던 청명이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운풍자가 굳은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며 검을 쥐자 이번에는 청명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사실 운풍자는 혹여 사조께서 검을 달라고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참이었다.

 무당이 아닌 곳에서 검을 타고 하늘을 나는 일이 벌어진다면 앞으로의 행보는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자칫하면 마교의 주목을 받게 되니 앞으로는 어떻게든 사조께서 능력을 보이시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던 운풍자가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생각해 보니 무당을 떠나긴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운풍자가 조용히 청명을 바라보았다.

 “사조, 저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네? 저는 몰라요.”

 청명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운풍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옆에서 걷던 운혜가 화가 난 듯 흥분해서 말했다.

 “아니,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계획도 없는 거예요!”

 “아, 저는 평범하게.......”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려던 청명의 머리 속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멧돼지를 먹으러 가자!

 “우리 멧돼지를 먹으러 가요!”

 “.......”

 운풍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청명을 바라보았다.

 황당해진 운혜도 입을 살짝 벌리고 멍하니 청명을 바라보았다. 설마 저런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다.

 운풍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거 외에는 계획이 없으십니까?”

 “...네.”

 운혜가 허탈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보니 자신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이다.

 저런 사조를 믿고 나가야 하다니! 아니, 처음부터 나가는 것을 허락하신 장문인이 문제였다. 어쩌면 장문인이 노망이 나셨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운풍자가 입을 열었다.

 “평범하게 산다고 하셨지요?”

 “네.”

 운풍자의 말에 청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운혜 사손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났다.

 그때 운혜 사손은 농사를 짓거나 점소이를 하거나 나무를 베어 파는 것이 평범하다고 했다.

 옛 기억을 떠올린 청명이 다시 해맑게 웃었다.

 “그럼 우리 농사지으러 가요!”

 “.......”

 운풍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농사 말씀이십니까?”

 “네.”

 “.......”

 운혜의 얼굴이 구겨졌다. 대무당파의 제자가 농사를 지으러 가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도 일대제자가! 운혜가 당황한 얼굴로 운풍자를 바라보았다.

 사형은 당연히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거부하겠지.

 운혜의 시선을 받으며 운풍자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하시지요.”

 ‘헛! 출발?!’

 “사, 사형!”

 운혜가 당황한 듯 소리를 지르자 운풍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운혜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조께서 뜻이 있으신 모양이다. 그러니 뜻대로 따라야지.”

 “.......”

 운혜가 청명을 흘겨보았다. 농사를 짓자니, 그게 도대체 어디서 나온 생각인가! 기왕 평범한 사람이 될 거면 평범한 강호인이 되면 좋을 것을.

 사실 자신이 한 말이지만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운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자신은 검으로 땅을 파야 할지도 모른다.

 운혜의 심사를 전혀 모르는 청명은 신이 나서는 외쳤다.

 “가요! 농사지으러!”

 신이 난 청명은 다시 기운이 나는지 경쾌한 걸음걸이로 무당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무표정한 얼굴의 운풍자와 우울한 얼굴의 운혜가 뒤따랐다.

 

 ***

 

 어느새 세 명의 무당 제자가 모습을 감추었다. 현평 진인이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제는 그만 나오게.”

 태화궁 입구 바로 뒤에서 현무 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혜는 괜찮겠지요?”

 조금 전부터 사제의 인기척을 느껴온 현평 진인이 한숨을 쉬었다. 현무 진인의 목소리에서 울음기가 느껴졌다.

 현평 진인은 자리를 비켜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사제의 심정은 말로 다 못하리라. 하지만 떠날 때 떠나더라도 한마디 말은 해주어야 했다.

 “사제는.......”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조용히 있지요.”

 현평 진인의 말을 끊고 현무 진인이 말했다. 이미 현평 진인의 심사를 모두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평 진인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청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현무 진인 역시 걸음을 옮겼다. 머리 속엔 운혜의 뒷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잘해낼까? 가서 사고를 당하진 않을까? 어느 놈의 눈먼 칼에 맞아 다치진 않을까? 실수로 누군가와 시비라도 붙으면 아니 될 텐데....... 어떤 놈팡이와 눈이 맞아 사고라도 치면 어쩌지?

 “허허헛.”

 현무 진인은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생각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 것이다. 그런 행복한 고민을 안겨준다면 화가 나도 화난 것이 아닐 것이다.

 팔이 없어 균형을 잡기가 힘이 든 현무 진인은 휘청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내공도 없고 팔도 없어 보통 사람보다도 못하게 된 체력이지만 과거 익혀두었던 무공의 덕택인지 산길을 걸으면서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현무 진인은 험한 산길을 오르고 또 내려갔다.

 눈앞에 작은 동굴이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보물을 놓아두었고, 어린 시절부터 무슨 일이 생기면 홀로 숨어들어 가 안식을 찾곤 했다.

 어지간히 머리가 굵은 다음에는 운혜가 만들어준 추억들을 놓아두고는 했다.

 현무 진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동굴로 향했다.

 동굴은 변함이 없었다.

 변함없이 작은 탁자에는 풀 인형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손때 묻은 작달막한 목검이 놓여 있었다.

 현무 진인은 미소를 지었다.

 “허허, 다시 봐도 정말 못 만들었다, 운혜야.”

 현무 진인은 무심코 풀 인형을 만지려다 팔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잘린 팔이 아직도 붙어 있는 것만 같아 자신도 모르게 팔을 내미려 했던 현무 진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현무 진인은 풀 인형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서 있기가 힘들어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은 현무 진인은 동굴 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운혜도 저 하늘을 바라보며 세상 밖으로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

 현무 진인의 눈이 씁쓸하게 변했다.

 운혜는 무사히 돌아올 것이다. 꼭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무사히 돌아온다고 한들 자신은 운혜를 안아줄 팔조차 없다. 팔이 없는 자신이 운혜에게 별다른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아 현무 진인은 고개를 떨구었다.

 “.......”

 잠시 동안 앉아 있던 현무 진인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자그마한 일이지만 운혜에게 해주고 싶은 일이 떠올랐다.

 “끙차!”

 현무 진인은 힘겹게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뒤쪽에 놓인 작은 서가로 걸어갔다.

 서가에는 이야기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허허허.......”

 현무 진인의 머리 속에 견우직녀 설화를 듣고 슬퍼 눈물을 아롱지었던 운혜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직 자신의 눈과 입은 건재하니 언제든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

 “...으흠.”

 다 컸는데 이야기를 좋아하긴 할까? 현무 진인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오늘 그 나이가 되어서도 이야기를 듣고 슬퍼 우는 걸 보니 아직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현무 진인은 서가에 다가가 멈춰 선 다음 고개를 힘겹게 숙여 입으로 책을 꺼내 들었다.

 툭.

 책이 바닥에 떨어졌다.

 현무 진인은 다시 힘겹게 책을 물어 올렸다. 다 물어 올리고 난 다음 책을 펴 든 현무 진인의 얼굴로 미소가 떠올랐다.

 안아줄 팔도, 무공을 가르쳐 줄 기력도, 전해줄 내공도 없지만 이야기를 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운혜가 좋아할지가 의문이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현무 진인은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고 책을 읽었다.

 동굴 밖으로 해가 져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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