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은 등 뒤에 올라탄 소년을 배려해서인지 부드럽게 날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에 날갯짓까지 부드러운 것이 등 뒤의 소년에게 적잖이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청명은 학의 배려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음,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인사를 하고 내 소개를 한 다음 잠시 머물겠다고 하면 되나? 아니, 소개가 먼저고 인사가 나중인가?’
청명은 고민하고 있었다. 무려 백사십여 년 만에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니 어떻게 첫 만남을 이끌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것이다.
‘확실히 내 소개가 먼저인 것 같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학을 타고 내려오면 이상할 테니까.’
이상한 게 아니라 괴상한 거지만 어쨌든 청명의 고민은 계속됐다.
‘하지만 인사를 먼저 하지 않으면 예의가 바르지 않다고 볼 텐데. 분명 인사부터 하는 것 같은데.......’
밑의 사람들도 고민하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저기... 장문 진인, 아무래도 학 뒤의 저것은 사람이 맞는 듯합니다.”
“나도 아네.”
현평 진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지금은 사제와 운혜 사질에게 한눈을 팔 때가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학을 타고 날아오는 사람의 정체가 가장 문제이지 않은가! 야수맹의 조련사들이 동물을 다루는 데 익숙하다 했는데 그놈의 잡종들일까, 아니면 그냥 맘씨 좋은 학이 지나가던 사람을 태워줬을까? 아니면... 정말 신선일까? 제자라고 있는 것들은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고작 사람이 맞다는 소리라니....... 자신도 눈이 있어 그쯤은 알고 있다.
곧 학이 완전히 내려올 터, 그렇게 되면 무당의 장문인인 자신이 어떻게 말이라도 걸어봐야 한다.
하지만 워낙 신비로운 등장이니 뭐라고 말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주위의 도사들은 벌써부터 웅성웅성대고 있었다.
“신선이다! 신선님이 우리 도관에 오셨다!”
“아니야. 저건 선동이라고.”
“응?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사숙?”
“수염이 없잖아.”
현평 진인도 주위의 웅성거림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혹시 정체를 추측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하지만 오히려 수심만 더 가득해졌다.
‘정말 신선이라면 존댓말을 써야 하는가? 하지만 아니라면? 혹여 운혜를 노리고 온 마교의 인물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보다 꽤나 어려 보이는구나. 반로환동(返老還童)일까? 설마 정말 선동은 아닐 테지.’
어느새 학이 비행을 멈추고 착지했다. 그리고 한쪽 날개를 부드럽게 내리자 십칠, 팔세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학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주위의 웅성거림이 가라앉고 고요함이 좌중을 지배했다.
현평 진인은 자신이 앞에 나서야 될 시점임을 깨달았다.
‘자아, 일단 예법에 따라 정중히 맞이하자. 어떤 기인인지는 모르나 무례해 보이는 것보다는 나을 테지. 틀림없이 반로환동일 터, 인상이 선해 보이는 것이 악인(惡人)은 아닐 게다.’
현평 진인이 앞으로 나서자 학을 타고 내려온 소년이 현평 진인을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무량수불, 어떤 기인이......?”
“안녕하세요?”
말이 끊겼다. 게다가 정체를 물으려는 찰나에 상대가 인사를 하니 왠지 모르게 무뢰배가 된 느낌이다.
본래는 강호의 예법대로 ‘어떤 기인이 본 파를 방문하시었소?’라고 물어보려 했던 것이니 크게 실수한 것도 아닌데.
현평 진인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안녕합니다. 그쪽은......?”
현평 진인은 자신의 목소리가 멍청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육십 년간 도를 닦아오면서 마음의 평정을 항상 유지해 왔는데 너무 당황한 탓이다.
아무리 당황했다고 하지만 ‘그쪽은?’이라니. 갑자기 현평 진인은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청명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이쿠! 역시 내 소개부터 해야 하는가 보다.’
“예, 저는 무당의 십육대 제자로 도명은 청명이라 합니다.”
무당의 십육대 제자? 현평 진인은 침묵했다.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소년의 모습인데 십육대 제자에 청 자 돌림이면 자신의 사부 배분이다.
정말 반로환동한 전대(傳代)의 기인이란 말인가!
장문인이 말이 없자 청명은 자신이 뭔가 실수했다고 생각하고는 의기소침해졌다.
“아, 물론 저는 안녕하고요.......”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끝의 ‘안녕하고요’는 들리지도 않았다. 청명의 얼굴색은 이미 붉어질 대로 붉어진 후였다.
도인들의 소란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가제일문(道家第一門)이라 불리는 무당파에 학을 타고 내려온 신비의 소년은 얼굴이 벌게져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주위 사람들은 벌써부터 절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괜히 따갑게 느껴져 청명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져만 갔다.
“그렇다면... 역시 반로환동하신 겝니까?”
“예? 아, 예. 그렇지요. 하지만 반로환동했다기보다는 새 육체를 입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해요.”
청명은 반로환동이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잠깐 버벅거린 다음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새 육체를 입었다 함은?”
“육신을 벗었지만 원시천존께서 명을 내려 잠시 인세에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아서요. 이 육신은 그래서 새로 주셨나 봐요.”
시해선(屍骸仙)!
현평 진인은 충격을 받았다.
보통 신선이 될 때는 속세의 범인들이 상상하듯 학을 타고 천상 선녀들의 춤추는 것을 감상하며 유유자적 올라가진 않는다.
도문에 몸을 담은 사람으로서 그런 경우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 외에 실제로 벌어진 바가 없어 허황되다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보통 도를 깨달은 사람은 육신만 남기고 평화롭게 떠나는데 그를 시해선이라 부른다. 육신을 벗고 선계로 등선하는 것이다.
지금 소년은 자신이 그 단계를 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육신은......?”
“아, 저기 취란봉(取爛峰) 아래에 있어요. 그곳에서 생활했었거든요. 그래도 이것저것 챙겨왔어요.”
소년은 몸을 뒤적뒤적거리더니 작은 거울과 도장을 꺼냈다.
그리고 패검하고 있던 검을 끌러 장문인에게 공손한 태도로 그것들을 넘기더니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저... 이건데요... 좀 낡았네요.”
“으음.......”
현평 진인이 침음성을 흘렸다. 이것은 삼보(三寶)로 무당의 제자가 되었을 때 받게 되는 세 가지 보물이다.
정식 제자가 되었을 때 이것들을 받게 되는데 배분과 도명이 적힌 도장과 거울, 검이 바로 그것이다.
과연 소년이 건네준 도장에도 ‘무당파 제십육대 전인 청명자 인(印)’이라고 적혀 있었다. 거울에 적힌 글귀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웅성거림은 더 더욱 심해졌다.
“들었어? 신선이래. 신선이 되신 우리 태사조님이 내려오신 거야.”
“우리 무당에도 검선(劍仙)이 나는구나!”
“검선이라......! 검선!”
도사들은 벌써부터 기뻐하는 눈치였다. 일단 본 파의 인물이 맞는 듯하니 예를 갖춰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하는 도사도 있었다.
현평 진인이 눈썹을 꿈틀댔다. 사숙 되시는 것이 정확하다면 예를 취함이 마땅하나 만약 아니라면?
현평 진인이 주변을 바라보며 일갈했다.
“갈(喝)! 선실(仙室)에서 소란스레 굴다니! 모두 입을 다물라!”
“.......”
주위가 조용해지자 현평 진인이 청명을 바라보며 공손하게 말했다.
“그럼 여기서 더 하문(下問)하시기 전에 일단 태화궁으로 가시지요, 사... 숙.......”
“네.”
“운풍은 들으라.”
“하명하시지요, 장문 진인.”
“청명 사숙을 장문인실로 모셔라. 사숙을 대함에 있어 예의를 잃지 말도록 유념하고.”
운풍자가 공손히 읍하고는 청명을 불러 태화궁으로 향했다.
청명은 여전히 자신을 주시하는 수많은 눈동자가 부담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수그린 상태였다.
부끄러운 듯 몸을 배배 트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산골에서 갓 올라온 순박한 소년이었다.
현평 진인이 그 모습을 주시하며 사제에게 말을 걸었다.
“사제,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장문 사형께서는 삼보를 보셨을 터, 사형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현평 진인은 잠시 고민했다.
그 도장은 잔뜩 낡아 있긴 했지만 분명히 무당의 것이었다.
근래에는 자신이 직접 주재하여 내리는 삼보이니 그 모습을 몰라볼 리가 없다.
하지만 혹여 진실이 아닐 경우를 대비해 제자들의 인사를 막은 것이다.
“진짜 같았네.”
“그럼 진짜겠지요.”
현평 진인이 ‘이런 실없는 놈을 봤나’ 하는 시선으로 사제 현무 진인을 바라보았다.
“...자넨 삼보만 믿자는 겐가?”
현무 진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선을 돌려 맑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학을 타고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그것만이라면 모르되 삼보를 지니고 있는 데다가 지금은 안개가 끼기 시작하잖습니까?”
“안개?”
그러고 보니 오늘 무당산에 안개가 없었다. 해가 뜨기 시작하는 오전의 하늘이 기묘할 정도로 맑았던 것이다.
사시사철 안개가 낀다는 무당산에서는 희귀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도명이 청명이라 하셨지요?”
“그러했지.”
정말 도명처럼 맑은 하늘이었을까? 그가 인세에 강림하자마자 평소처럼 안개가 끼는 것을 보니 과연 신비로운 일이다.
현평 진인과 현무 진인은 말을 잃었다.
잠시 뒤 현평 진인이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총회합 때 논할 주제가 하나 더 늘었구먼.”
“총회합이라니요?”
“으음, 나중에 말해줌세, 일단 가서 다시 그분을 뵈어야겠으니. 역시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구먼.”
“험, 그럼 그리하시지요.”
현평 진인이 사제를 잠시 바라보고는 자리를 떴다.현무 진인은 떠나는 현평 진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더 큰일이 나타나니 역시 오늘의 사고는 바로 잊혀지는구나. 다행히 꾸중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자네는 있다가 운혜와 함께 찾아오도록 하게.”
현무 진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장문인실에서는 청명이 멋쩍게 서 있었다.
운풍자는 장문인의 선방에서 조용히 읍하고는 ‘그럼 잠시 쉬고 계십시오’라고만 하고 나가 버렸다.
그는 앉아서 쉬라는 건지 서서 쉬라는 건지 말을 해주지 않았다.
청명의 고뇌가 또다시 시작되었다.
‘편히 쉬라는 뜻은 말 그대로이니까 앉아도 되지 않을까? 음,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알기로 빈객이 먼저 앉는 법도는 없다던데.’
청명은 과거에 마음을 보내어 세상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때 예의가 바르고 엄격한 장소를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손님이 먼저 자리에 앉는 법이 없었다.
다만 주인이 자리를 권할 때에야 앉을 수 있는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예의와 속세의 법들을 무시하겠으나 자신은 인간에 대해 배워야 한다. 그러니 어찌 예의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약 반 각 동안이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청명은 예의보다는 일신의 편안함을 택했다.
‘그래, 편히 쉬라고 했으니 자리에 앉아도 될 거야. 게다가 나는 원래 손님도 아니잖아? 장문인이 오시거든 다시 일어나면 되겠지.’
사실 장문인 앞에서 앉아 있는 제자가 더 버릇없는 것이지만 그것까지는 알 턱이 없는 청명이었다.
청명은 장문인이 늘 앉아 차를 마시는 의자를 꺼내어 자리에 앉았다. 밖의 소란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에휴!”
그때 현평 진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저... 사숙.”
청명은 당황했다.
문이 열려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리에 앉자마자 장문인이 들이닥치다니 어지간히 운도 없다.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난 청명은 고개로 읍하면서 장문인에게 말했다.
“자, 장문인, 그러니까 제가 먼저 앉은 것은 예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편히 쉬라 하기에.......”
“아, 사숙, 앉아 쉬셔도 괜찮답니다. 응당 그리하셔도 무방하고말고요.”
현평 진인이 너그럽게 말하자 청명의 마음이 편해졌다.
‘역시 앉아도 되는 거였어!’
그래도 약간 부끄러운지 청명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왠지 오늘은 하루종일 얼굴이 달아올라 있는 느낌이었다.
“그럼 잠시 몇 가지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어느새 자리에 앉은 현평 진인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예, 물론이고말구요. 뭐든지 여쭤, 아니, 하문하세요.”
“아, 예. 그럼... 사승 관계가 어찌 되시는지요?”
청명이 잠시 버벅거리더니 곧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승 관계가... 아, 사부님이 누구냐는 거구나. 황허(黃虛) 사조의 제자이신 일현 진인(日玄眞人)께서 제 사부님이셨어요.”
“일현 진인이라 하시면......?”
강호 문파로서의 무당 제자들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현평 진인이다. 검을 들고 강호를 횡행하는 무당의 제자들은 도사이면서 동시에 무인이며 자신 또한 도문의 장문인이면서 강호 문파의 문주다.
하지만 무공을 배우지 않고 도가 전통의 연단(煉丹)과 선술(仙術)에 매진하는 도사들에 대해서는 미진한 감이 적지 않다.
삼십삼 군 건축물에 칠십이 개 암묘로 이루어진 이 넓은 도문에는 숨겨진 기인도 많았는데, 그들도 무당의 제자이긴 하지만 그쪽까지 모두 알기는 힘든 것이다.
“예, 취란봉 아래에 있는 운현관에서 연단을 하시다가 뜻을 달리하시고 서예로서 도를 이루신 분이신데요, 한... 두 갑자 전에 등선하셨어요.”
현평 진인은 새삼 놀란 듯이 청명을 바라보았다.
이 소년이 진짜 신선의 경지라면 당연히 그 연배가 적지 않을 것인데 외모에 치우쳐 마냥 어리게만 보았던 탓이다.
갑작스레 두 갑자(약 백이십 년) 전의 이야기가 나오니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럼 사백께오서는 연세가......?”
“아, 저는 영락(永樂) 13년에 태어났대요.”
영락제(永樂帝)가 몇 대 전 황제였더라?
현평 진인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한... 백삼, 사십 년쯤 전의 황제 같다. 이쯤 되면 도첩(道牒)을 뒤져 보지 않는 이상 확인하기도 힘들게 됐다.
“그러하시군요.”
현평 진인은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아 이내 새로운 질문을 꺼내어 들었다.
“그러하시면... 무공은?”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만약 무로서 도를 이루었다면 그야말로 무당의 홍복이다.
검선의 출세인 것이다.
“예, 무공은 일초 반식도 모르는데요.”
“.......”
부끄러운 듯이 청명이 말했다.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청명의 모습에 장문인은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험험.”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잔기침이 나와서.......”
“아, 예. 그러시군요. 저... 그럼 등이라도 두드려 드릴까요?”
신선이 등을 두드려 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잠시 장문인은 ‘그래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고픈 유혹과 싸워야 했다.
“아, 괜찮습니다. 이미 가라앉았습니다. 한데 선계에 오르셨다면 어찌 인세에 다시......?”
“원시천존께서 한 가지 명을 내리셔서요.”
현평 진인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원시천존의 명이라.......
“여쭈어도 될는지요?”
“네. ‘자연지도를 깨달았으나 인간지도를 배우지 못했으니 인세를 경험하고 오너라’ 하고 쫓아내셨어요.”
“험, 험.......”
현평 진인이 민망해했다. 쫓겨났다는 어감이 그다지 좋지 않은 탓이다.
“역시... 등 두드려 드릴까요?”
벌써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두드릴 채비를 갖추는 청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