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우화등선
작가 : 촌부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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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화
작성일 : 16-07-08     조회 : 665     추천 : 0     분량 : 6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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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의 연무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도사들은 연무는커녕 비도 피하지 않고 맞으면서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고 운풍자는 청명에게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한 직후 장문인에게 가버렸다.

 청명은 신경도 쓰지 않는 일이었지만 운풍자는 스스로의 의심과 의혹, 믿음에 관해 생각하다가 사조께서 사조임을 믿지 못하고 의심했던 것에 죄책감을 느낀 것이다.

 결국 장문인께 죄를 고하러 직접 찾아가 버렸다.

 운풍자가 사라지고 남은 제자들은 대무당의 제자답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연무에 몰입하기는커녕 태사조를 둘러싸고 흥분을 풀어내기에 바빴다.

 “태사조님! 태사조님! 어떻게 하면 신선이 될 수 있나요? 아니지. 무공을 배우지 않고 어떻게 이기어검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태사조님, 대단하십니다!”

 “강호에 나가시는 것은 어때요? 훌륭한 강호인이 되실 수 있어요!”

 “태사조님, 때가 되면 언제 한 번 더 보여주세요. 호풍환우한다는걸요. 기왕이면 제 동생 앞에서 보여주면 더 좋고요.”

 마지막 말은 황우자의 말이었다.

 청명은 증사손들에게 둘러싸여 그만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너무 어지러워. 한 명씩 말해주면 좋겠는데.’

 하지만 생각해 보니 좋은 일이었다.

 그동안 할 말이 있어도 들어줄 사람을 찾지 못해 말을 잃고 살았는데 신선이 되고 보니 말의 홍수 속에서 살게 되었다. 과연 신선이란 좋은 것이다.

 청명이 웃으며 말했다.

 “네. 언제 시간이 된다면 동생 앞에서 한 번 더 보여줄게요.”

 “감사합니다, 태사조님! 정말 감사합니다!”

 황우자가 뛸 듯이 기뻐했다. 영약 같은 걸 먹어봤자 문파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니 동생은 할 말이 있어도 못하리라.

 청명이 황우자가 기뻐하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직접 보여주셔도 되잖아요?”

 “네?”

 황우자가 얼빠진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직접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백오십여 년 후에. 자신이 신선이 된다는 조건 하에 말이다. 지금은 당연히 할 수 없다.

 “에이, 제가 그걸 어떻게 합니까? 태사조님쯤 되니까 하실 수 있는 거지요.”

 “우하핫! 황우자가 호풍환우할 때가 되면 저는 천지창조를 할 수 있을걸요?”

 어느 황자배 도사의 농담에 주위가 모두 웃음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청명은 갑자기 심각해진 모양이다.

 “아, 저... 보통 사람은... 그걸 할 수 없나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이 행한 것이라면 자신은 벌써부터 원시천존의 명을 어긴 셈이 된다.

 평범하게 살아야 하는데....... 특별함을 보여선 안 되는데.......

 “당연히 할 수 없지요! 신선님이시니 할 수 있는 겁니다!”

 황우자가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청명에게는 치명타였다. 아니, 그럼 정말 보통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린 거잖아!

 “헛! 정말로 보통은 바람을 부를 수 없나요?”

 “그럼요. 보통은 할 수 없지요.”

 청명은 그만 크게 놀라고 말았다.

 “저기... 황우 증사손, 미안해요.”

 “네?”

 황우자가 멍청하게 청명을 바라보았다.

 “저,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어요. 그 약속은 취소할게요.”

 “무슨 소린지......?”

 청명이 약간은 서글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청명의 분위기를 파악한 도사들은 하나둘씩 입을 다물고 있었다.

 “황우 증사손의 동생에게는 다음에, 다음에 보여줄게요. 지금은 할 수 없어요.”

 청명이 의기소침해져서 말했다. 그리고 곧 주위를 둘러보며 하나하나씩 눈을 마주쳐 가며 인사를 했다.

 “저... 황우 증사손, 황선 증사손, 그리고 또... 여하튼... 저는 가볼게요.”

 아직 이름을 모르는 도사들이 많았다.

 그냥 한꺼번에 인사를 하기로 한 청명은 도사들을 바라보며 길게 읍한 다음 몸을 돌리고 걸어갔다.

 빗속을 뚫고 가는 청명의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저기... 이 비는.......”

 황우자가 사라지는 청명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중얼거리자 황우자의 목소리를 들은 청명이 걸어가다 말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청명이 하늘을 바라보는 시기에 맞춰 비가 멈추더니 먹구름이 서서히 떠나갔다. 다시 해가 비추고 안개가 끼었다.

 다시 한 번 펼쳐지는 신선의 호풍환우에 모두들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아... 다시 해가......!”

 “이건... 정말... 정말로......!”

 하지만 도사들의 감탄을 뒤로하고 걸어가는 청명은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앗! 큰일이다! 비를 그치게 해버렸어! 또 평범하지 않게 됐다!’

 청명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는 말끔하게 떠서 청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3화 순음지체(純陰之體)

 

 

 

 청명이 호풍환우와 평범한 인간과의 관계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을 때 운남성(雲南省) 외곽에 위치한 염마산(炎魔山)에서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유황 냄새가 가득한 그곳 염마산은 바로 마교(魔敎)의 본산이 위치한 곳이었다.

 마교(魔敎)!

 그 이름은 당금 강호인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이름이었다. 아직도 강호인들은 이십오 년 전의 혈사를 잊지 못했다.

 그때에 멸문당한 문파의 제자들은 문파를 재건하며 절치부심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그때에 살해당한 피해자의 가족들은 분루를 삼키며 가슴에 한을 쌓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마교에서도 그 피해는 적지 않았다.

 마교의 교주인 파월천마(破月天魔) 갈문혁(蝎文爀)이 성승(聖僧) 공진 대사(孔眞大師)와 함께 양패구상했고, 부교주 마중마(魔中魔) 설현귀(雪玄鬼)도 정파의 연합 공격에 밀려 사망하고 말았다.

 심지어 십이당주 중 네 명의 당주를 제외한 모든 당주가 사망했으니 멸문의 화를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큰 피해를 입은 곳이 바로 마교였다.

 어찌 그 피해뿐일까.

 무공이라고는 일초 반식도 모르는 순수한 교도들은 마교라는 이름 아래 사냥당하듯 척살당했고, 십만대산의 바로 코앞까지 정파의 세력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와 아낙들과 아이들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슬픔 속에서 피난을 떠나야 했다.

 도대체 정(正)이 무엇이관데! 마(魔)가 무엇이관데!

 양쪽 모두의 피해는 너무나 컸다.

 마교 본당(本堂).

 긴 회랑에 십이 인이 부복하고 있었다. 회랑 상석에는 태사의가 놓여 있었는데 흑마(黑魔) 서중희(曙重喜)가 근엄한 표정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당금 마교의 교주인 그는 갈문혁의 무위를 뛰어넘었다 평가받는 역대 최강의 교주다.

 하지만 그 무위만큼이나 잔인한 손속 때문에 마교도조차 그를 두려워하였다.

 긴 회랑의 상석에 위치한 태사의 옆에서 간사하게 생긴 중년인이 크게 외쳤다.

 “보고하라!”

 긴 회랑의 좌우에 시립해 있던 마교의 열두 당주가 긴장된 눈으로 서중희를 바라보았다.

 서중희의 한마디에 자신들의 생사가 갈릴 수도 있음이니 그 말 하나하나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서중희가 아니라 태사의 옆의 교수(敎首)가 두려움에 벌벌 떨며 서중희의 말을 대신 전할 뿐이다.

 제일 먼저 비화당주(秘花堂主) 마현희(馬弦姬)가 앞으로 나가 오체투지하고 머리를 땅에 세 번 박았다.

 어떤 사내라도 현혹시킬 수 있을 만한 아름다운 여인의 몸을 한 비화당주는 그야말로 서시가 부럽지 않은 미녀지만 서중희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던 다른 당주들은 그녀를 무심히 바라보기만 했다.

 “비화당주 마현희가 교주를 배알하오이다.”

 “.......”

 서중희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에 떨며 서중희를 바라보던 비화당주가 잠시 침을 꿀꺽 삼키고는 보고를 시작했다.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서중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第一), 음화신녀(陰和神女) 갈희연(蝎喜緣)의 행방.”

 낭랑한 목소리로 비화당주가 말했다.

 당주들의 시선이 비화당주에게 날아가 꽂혔다.

 아니, 교주께서 비밀리에 직접 내린 명이라기에 무슨 명인가 했더니 바로 저런 것이었구나! 알고 보니 교주는 음화신녀를 찾고 있었다.

 “일(一), 하남성 정주(河南省 鄭州), 무림맹의 금역(禁歷), 무림맹주 남궁현우(南宮賢優)의 모옥. 확인 실패.”

 서중희의 눈에서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이(二), 안휘성(安徽省) 합비(合肥) 남궁세가(南宮勢家). 확인. 갈희연 ... 무(無).”

 비화당주가 다시 침을 꿀꺽 삼켰다.

 “삼(三), 호북성(湖北省) 균현(均縣) 무당산(武當山). 확인... 실패.”

 “그렇다면?”

 처음으로 서중희의 목소리가 회랑을 울렸다.

 비화당주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하는 서중희의 심중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것이 더 두려웠다.

 저런 무미건조한 얼굴로 사형을 언도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세 장소 가운데 한 장소를 확인했습니다. 곧 나머지 두 장소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화당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합비에 잠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가서 난동을 부리는 게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마교의 이름을 세상에 알릴 수는 없는 노릇. 이번의 잠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아마 남궁세가에서는 자신들이 다녀갔다는 것도 모르고 있으리라.

 비화당주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지금 마주한 문제는 그따위 것이 아니다. 바로 저 앞에서 형형한 안광을 빛내고 있는 교주가 문제인 것이다.

 “속하를 벌하여 주십시오!”

 비화당주가 땅에 엎드려 머리를 쿵쿵 찧었다. 서중희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한 달.”

 “...존명!”

 비화당주가 머리를 찧던 것을 멈추고 말했다.

 저것은 분명 나머지 두 곳을 확인하는 데 한 달의 기한을 더 준다는 소리일 것이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다음.”

 여전히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서중희가 말했다.

 비화당주가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가자 회랑에 도열하고 있던 무리 중 볼품없이 늙은 노인이 걸어가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세 번 찧었다.

 “염화당주(炎火堂主) 귀곡자(鬼曲子)가 교주를 배알하오이다.”

 다시 서중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염마당주는 조금 더 자신있는 목소리로 보고를 시작했다.

 “제이(第二), 소집령. 일(一), 본산의 남아 십칠 명, 본산의 여아 이십육 명 소집. 이(二), 중원의 남아 백이십이 명, 여아 백사십칠 명 소집.”

 서중희가 피식 실소를 지었다.

 “소집이 아닐 텐데?”

 늙은 노인이 헐헐 웃음을 지었다.

 “...송구하오이다, 교주. 헐헐.”

 늙은 노인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은 타 들어가고 있었다. 사실 이번에 새로 들일 제자들을 모집하는 데 서중희의 이름은 너무나 무겁게 작용했다.

 염마산의 본당이 염라전이 되었다는 소문이 팽배하게 나돌아 모두들 자식들을 꽁꽁 감춘 것이다.

 중원의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도 과거처럼 고아나 양민의 자식들을 모았지만, 많은 수의 아이가 모이지 않아 결국에는 납치를 시도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교주는 그것을 꼬집고 있다.

 “그만. 염화당주의 노력은 잘 알았어. 그리고.......”

 서중희가 무미건조한 몸짓으로 턱을 괴고는 턱짓으로 염화당주를 가리켰다.

 “네가 호북으로 가. 가서 비화당을 도와줘. 음화신녀가 있는지 알아봐야 되니까.”

 “존명!”

 염화당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제 호북까지 먼 길을 떠나야만 한다. 어쩌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누가 뭐래도 무당파는 당금 천하제일검파이니 무당의 도사들에게 잘못 걸렸다가는 밥숟갈을 놓아야 할지도 모른다.

 서중희가 말했다.

 “다음.”

 “환희불(歡喜佛)을 불러 올려라!”

 서중희의 눈치를 보며 태사의 옆의 교수가 소리를 질렀다.

 당주들이 회랑 끝의 거대한 문을 바라보았다. 곧 문이 소리없이 열리고 뚱뚱한 스님이 나타났다.

 얼굴에 살이 덕지덕지 붙고 눈이 작은 스님이 앞으로 걸어와 서중희 앞에 부복했다.

 “아미타불, 속하를 부르셨소이까?”

 “아미타불이라고 하지 마. 어울리지 않는다.”

 서중희가 보기만 해도 눈꼴 시리다는 듯이 말했다. 환희불이라 불린 중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더 보고 있기도 싫군. 가서 무림맹주를 암살하고 와. 괜찮으면 그 아들 목까지 따와.”

 “...존명!”

 “나가봐.”

 서중희가 손을 휘휘 저었다. 환희불이 파리한 얼굴로 뒷걸음질쳐 빠져나갔다.

 “저 자식은 살아 돌아와도 죽여. 그 일은 석마당주가 해.”

 근육질의 거한 석마당주가 웃으며 부복했다. 사실 환희불은 실제로 특명을 받아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마교의 여자들조차 간살하는 그의 행동을 못마땅해한 교주가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명을 내린 것이다.

 그저 자결하라고 말해도 될 것을 명분이 없어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서중희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이만 한다. 모두들 나가보도록.”

 교주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미륵 현세! 광명 천하!”

 당주들이 그 자리에서 부복하며 구호를 외치고는 회랑을 빠져나갔다.

 “멍청이들.”

 서중희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말해도 저 멍청한 녀석들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음화신녀를 잡아오지도, 마교의 무인이 될 동량들을 구해오지도 못했다.

 ‘간단한 심부름도 못하는 녀석들.’

 서중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몸에서 양강지기가 끓어오른다. 당주들이 없으니 마음껏 발산해도 괜찮으리라.

 서중희의 몸에서 열기가 솟아올랐다.

 ‘음화신녀 갈희연.......’

 어느새 서중희의 몸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옷이 조금씩 타 들어가고 눌어붙는다. 옷이 타는 냄새가 회랑을 뒤덮었다.

 ‘찾아야 한다.’

 서중희가 손을 들어 폈다. 손바닥에서 불꽃이 화르륵 타오른다. 서중희가 주먹을 쥐자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꼭.’

 서중희의 눈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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