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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무정로
작가 : 임준후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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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770     추천 : 0     분량 : 8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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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장

 창룡지존부(蒼龍至尊符)

 

 

 

 

 강풍양이 돌아온 다음날 아침.

 언제나처럼 무술 수련을 끝낸 후 식사를 마친 강씨 남매는 철사보의 직계와 가신들을 위해 마련된 연학당(硏學堂)으로 갔다.

 연학당은 철사보의 초대 보주였던 단중렴이 후손들을 위해 만들었다.

 연학당은 후손들이 무공뿐만 아니라 공맹을 비롯한 제반 학문의 수련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설립되었다.

 단가의 직계와 가신들의 후손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다섯 살부터 스무 살까지 매일 두 시진씩 학문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연학당의 수업은 관산호와는 상관이 없었다.

 그는 강풍양의 양자이기는 했으나 철사보 내에서 그의 직계로는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학업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연학당의 수업에 참가하지 않는 그를 위해 강풍양은 오전 시간 동안 그의 교육을 위해 초빙한 외부인에게 맡겼던 것이다.

 

 "이놈!"

 날벼락이 치는 듯한 외침에 의자에 앉은 채로 졸고 있던 관산호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코앞에 당장이라도 그의 이마에 꽂힐 것처럼 바짝 들이밀어져 있는 우문 선생의 섭선 끝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관산호는 멋쩍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다는 빛이 역력한 표정이다.

 자신보다 앉은키가 머리 하나는 더 큰 관산호가 꾸벅 머리를 숙이며 말하자 푸른색 학창의를 단정하게 차려 입고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던 우문상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섭선을 거두었다.

 우문상은 육십대 중반으로 다섯 자가 조금 넘는 왜소한 키에 깡마른 체구의 중늙은이였다.

 하지만 눈빛이 맑고 눈끝이 예리해서 체구와는 다른 엄한 기운이 풀풀 풍겼다.

 "네놈의 둔한 신경을 어찌하면 좋을꼬!"

 우문상은 깊게 탄식하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관산호의 정수리를 노려보았다.

 고개를 든 관산호의 눈과 우문상의 눈이 부딪쳤다.

 우문상의 시선에서 한숨과 같은 기운을 읽은 관산호의 얼굴에 송구스러워하는 기색이 더욱 짙어졌다.

 "그래두 한 시진은 깨어 있었습니다, 선생님. 어제보다 일각은 더 버텼다고요."

 관산호는 우문상을 위로하려는 마음에서 말했지만 그 말은 가뜩이나 열이 받아 있는 우문상의 신경을 더욱 긁어놓았다.

 "한 시진이라도 깨어 있었으니 다행이라는 말이냐! 이놈, 어떻게 네 신경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무뎌져만 간단 말이냐!"

 우문상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그의 태도에 관산호는 뜨끔한 기색이 되었다.

 "내가 늘그막에 너와 같이 둔한 놈을 제자를 두다니! 강 대협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의 말에 관산호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이 또 우문상의 부아를 돋우었다.

 "사내녀석은 허우대만 멀쩡하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네놈은 남보다 나은 용력과 배포가 있다! 하지만 용력이 있고 배포가 있으면 그것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머리가 있어야 한다! 왜 모르느냐! 학문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을! 이 어리석은 놈! 무예를 배우는 것도 아닌 놈이 학문마저 등한시하면 후일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우문상의 어조는 높았다. 하지만 그의 음성에는 노여움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한 안타까움도 녹아 있었다.

 학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할 뿐 관산호는 좋은 제자에 속했다.

 스승의 말을 높이 받들 줄 아는 심성이 있었고, 스승의 관심에 대해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자세도 있었다.

 문제는 그의 몸이 그런 마음가짐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입맛을 다신 관산호는 고개만 숙일 뿐 말이 없었다.

 우문 선생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문 선생이 그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다는 것도 잘 아는 그였다.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우문상이 관산호를 맡아 가르친 지 벌써 사 년째였다.

 하지만 관산호에게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강천기가 무예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처럼 관산호는 학문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우문상은 사 년의 세월 동안 관산호에게 학문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려 노력했지만 그 성과는 미미했다.

 그나마 관산호의 머리가 나쁘지 않아 사 년이 지난 지금 어지간한 서책을 읽는 것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라는 것이 그의 유일한 위안거리가 될 정도였으니까.

 "나가 보거라."

 우문상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관산호에게 말했다.

 수업을 시작한 지 두 시진이 다 되었다.

 "예, 선생님."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하고 관산호는 방을 나왔다.

 우문상은 호북성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학자로 사 년 전 강풍양의 초빙을 받아 철사보에 왔다.

 그를 초빙한 것만으로도 강풍양이 관산호에게 갖고 있는 관심의 정도를 알 수 있게 했다.

 그는 그동안 강풍양의 거처에서 백여 장 떨어진 외곽 쪽에 마련된 자신의 거처에서 관산호를 가르쳐 왔다.

 우문상의 거처를 나온 관산호는 양손을 뒷머리에 깍지 끼며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하지만 없는 관심을 억지로 불러일으키는 것은 체질에 안 맞습니다. 아버님께서 바라시는 것이기에 공부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학문은 제 길이 아닙니다."

 강풍양이나 우문상이 들었으면 당장 눈을 부라릴 말이었기에 행여나 누가 들을까 우려하는 그의 음성은 기어들어 가는 듯 작았다.

 하지만 말을 마치며 싱긋 웃는 그의 얼굴에서는 강한 고집이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는 얼굴이었다.

 거처로 돌아온 관산호는 연학당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강씨 남매와 두 명의 손님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을 보며 웃음으로 인사를 마친 그는 강천기의 옆에 있는 일남일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목례했다.

 "간만에 뵙습니다, 소보주님. 그리고 유화 소저."

 "그렇군. 너를 보는 것이 거의 삼 개월 만인 것 같은걸. 그동안 격조했다."

 관산호의 말을 받은 사람은 강천기의 옆에 서 있던 약관이 갓 넘은 듯한 청년이었다.

 훤칠한 키와 수려한 이목구비에 철사보의 상징인 철사자가 가슴에 수놓인 백의를 걸친 그는 군계일학이라고 할 만큼 인상적인 풍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당대의 철사보주 천성검 단규천의 독자이자 다음 대의 철사보주로 일찌감치 인정받고 있는 단무혁이었다.

 단무혁은 놀라운 무재(武才)로 호북 남부의 무림인들이 자신들의 성에서 후지기수의 서열을 매긴다면 그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라고 장담하는 걸 주저하지 않는 기재였다.

 "너는 볼 때마다 키가 크는 것 같구나."

 단무혁의 말이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 강예령의 손을 잡고 서 있던 소녀가 미소와 함께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십칠팔 세 정도로 보이는 소녀는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미소녀였다.

 관산호의 턱에 닿을 듯한 키니 여자 키로서는 작다 할 수 없었고, 이목구비가 그린 듯 단정해서 보는 사람을 취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녀는 아직 어렸지만 백옥 같은 피부에 흑백이 뚜렷한 눈동자로 똑바로 사람을 쳐다보면 녹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단유화.

 천성검 단규천의 딸로 벌써 호북삼대미인 중 일인으로 꼽히고 있는 소녀였다.

 "이 추세라면 산호 저놈, 스물이 될 때까지 한 자는 더 클 겁니다, 소저."

 관산호의 옆에서 강천기가 어깨를 으쓱하며 장난스럽게 단유화의 말을 받았다.

 "그 키에서 한 자가 더 크면 칠 척이잖아! 그렇게 크면 괴물 같겠다, 오빠."

 "뭐?"

 강예령이 귀엽게 입술을 삐죽이며 말하자 관산호가 그녀에게 눈을 부라리며 혀를 차더니 말을 이었다.

 "괴물이 뭐냐, 괴물이. 모름지기 사내는 중후장대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시는 분이 우리 아버님이신데, 잊었냐!"

 "흥, 중후장대는……. 남자는 능풍옥수라는 말이 어울려야 멋진 남자 소리릴 듣는 거야. 오빠처럼 길고 굵어서야 여자들이 좋아하겠어? 나부터 징그러워 죽겠는데."

 강예령이 관산호의 나이답지 않게 탄탄한 가슴과 팔뚝을 가리키며 놀리듯 말하자 강천기가 피식 웃으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령아가 아직 세상을 몰라서 그런다. 남자는 산호 같은 분위기가 있어야지. 너무 허여멀개도 못쓴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무혁이 인상을 썼다.

 "그 말,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은데?"

 "예?"

 강천기가 당황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형님, 무슨 말씀을. 형님이야 호북무림이 인정하는 청년고수인데 허여멀겋다는 말이 어울리기나 합니까?"

 "말이야 맞는 말이잖아. 소보주님이 좀 허여멀겋긴 하지. 그렇잖아, 형?"

 관산호가 단무혁의 얼굴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관산호의 눈빛과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한 단유화와 강예령이 고개를 숙이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잠시 농담을 주고받던 그들은 탁자 주위로 둘러앉았다.

 철사보는 보주인 단가와 다섯 명의 가신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문파였다.

 초대 보주인 단중렴과 다섯 명의 가신은 의형제 사이여서 그들의 후손들도 친형제처럼 성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리고 단가도 권위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가문이라 그러한 관계는 철사보의 전통처럼 되었다.

 때문에 초대 보주와 가신들로부터 사대 후손들인 단무혁과 강천기 등도 형제처럼 자라서 사적인 자리에서는 그들 사이에 허물이 없었다.

 덕분에 관산호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는 그들과 더 친밀했다.

 "여행은 어땠습니까?"

 자리에 앉은 후 이어지는 강천기의 질문에 단무혁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런 단무혁의 표정을 본 강천기의 얼굴도 덩달아 굳어졌다.

 삼 개월 동안 단무혁과 단유화는 호북성 곳곳을 여행했다.

 보 안에서만 있어 답답해하는 단유화를 위해 단규천이 허락한 것으로 단무혁의 견문도 쌓는 것을 겸한 여행이었다.

 여행의 의미가 단순했던 만큼 단무혁이 통상적인 강천기의 질문에 얼굴이 굳어질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수려한 외모와는 달리 단무혁은 강단이 있는 외유내강의 성격이어서 감정 표현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얼굴이 강천기의 단순한 질문에 눈에 뜨일 정도로 굳어졌으니 그를 잘 아는 강천기의 얼굴도 굳어진 것이다.

 하지만 신경이 약간 둔한 편인 관산호는 강천기와는 달리 여전히 태평한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강천기가 묻자 단무혁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문을 열었다.

 "장강에 인물이 났다는 소문이 조금씩 강호에 퍼지고 있다."

 "장강에요?"

 강천기가 눈살을 찌푸렸다.

 단무혁이 말한 장강은 장강수로연맹을 뜻한다.

 비록 육십 년 전 휴전한 후로 철사보는 장강수로연맹과 큰 마찰 없이 지내오고 있었지만 다른 문파들과의 관계와는 달리 서로 예민하고 긴장된 관계가 형성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강수로연맹이 삼십여 년 전 맹주 수룡왕 유철환의 사후 십팔 채의 채주가 맹주위를 노리고 권력 투쟁에 들어가며 분열된 것은 너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단무혁이 강천기와 관산호를 보며 말하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강호상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단무혁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런 장강의 분열이 조금씩 봉합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본 보의 정보망에도 그런 첩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고."

 말을 하는 단무혁의 눈빛이 강해졌다.

 "이번 여행 중에 그런 소문과 첩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

 강천기와 관산호가 의아한 눈빛으로 단무혁을 주시했다.

 단무혁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태평한 얼굴이던 관산호의 얼굴에도 조금씩 긴장감이 떠오르고 있었다.

 "삼협에 근거를 두고 있는 비연채의 인물들을 장강 유역에서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호북 남부의 무림인들도 수 개월 전부터 비연채의 인물들이 눈에 띄지 않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더군."

 "인물이 났다고 해도 일을 하지 않으면 그 많은 식구가 굶어 죽을 텐데요?"

 강천기가 묻자 진지하던 단무혁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장강수로연맹의 주 업이 해상 도적질이긴 하지만 그들도 사업을 한다. 도적질을 하지 않으면 호사를 누릴 만한 자금을 만들지는 못할 테지만 그래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없을 정도의 돈은 그들도 벌어."

 대륙을 동서로 관통하는 장강은 대륙의 젖줄이다.

 그래서 관에서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길고 넓은 강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관으로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곳은 장강수로연맹이 지배한다.

 그 세월이 벌써 삼백 년에 달했다.

 장강의 낮은 관이 지배하지만 밤은 장강수로연맹이 지배한다.

 이것은 수백 년간 무림에 회자된 금언으로 이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기도 했다.

 "비연채에 속한 도적들은 그 식구들까지 합하면 천오백이 넘는 수로 알고 있습니다. 그 수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면 해석은 두 가지로밖에 할 수 없겠군요."

 강천기의 음성이 차분해졌다.

 "네 생각을 한번 말해봐라."

 단무혁의 말에 강천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문을 열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누군가에 의해 강제되었을 경우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움직여서는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죠."

 "첫 번째는 그렇다고 해도 두 번째는 어떤 상황을 예상할 수 있을까요?"

 말없이 대화를 듣고 있던 단유화가 눈을 빛내며 강천기에게 물었다.

 강천기의 시선이 단유화를 향했다.

 그녀를 보는 강천기의 눈빛에 미묘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 자리에서 그것을 눈치 챈 사람은 관산호밖에 없었다.

 "복잡할 것은 없습니다. 전쟁에 직면하면 군도 밖에 나가 있는 병사들을 소집하고 안에 있는 병사들이 외부로 나가는 것을 금합니다. 후자는 그런 경우 외에는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장강에 과거의 수룡왕에 버금가는 인물이 났다면 반드시 수로연맹의 통합을 시도할 테고, 그것은 지금까지 분방하게 살았던 각 채 사람들의 커다란 반발을 사게 될 테니 충돌은 불가피하죠. 규모가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통합을 위해서 내부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비연채의 움직임이 그러하다면 그것은 전쟁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듯합니다."

 "흠……."

 단무혁이 나직한 헛기침과 함께 팔짱을 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내 생각도 천기와 같다. 첫 번째의 경우라면 수로연맹은 이미 통합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반년 전까지도 비연채가 해상 도적질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니 수로연맹이 통합되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네가 말한 두 번째가 가능성이 크지. 하지만 수룡왕의 사후 수로연맹에 속한 열여덟 개의 채는 기강도 함께 무너져서 사도무림의 초강세에서 장강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었다. 비연채가 지금 내부 단속을 한다 해도 그 힘이 예전 고조부님과 투쟁하던 시절의 그것이 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거야."

 잠시 입을 닫고 생각을 정리하던 단무혁의 말이 이어졌다.

 "어쨌든 속단은 금물이다. 중요한 것은 장강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고, 그 여파는 멀지 않은 장래에 그들과 각을 세우고 있는 우리에게 밀어닥칠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준비를 해야겠군요."

 강천기의 안색도 단무혁만큼 진지해졌다.

 "그래, 귀보한 직후 아버님을 만나 말씀드렸더니 아버님도 이미 수로연맹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다. 장강은 거대하기에 수로연맹에 인물이 났다고 해도 단기간에 사분오열되었던 맹을 통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거친 힘이 통합되면 우리에게도 대단한 위협이 될 거다. 다음 세대의 보는 우리가 지켜야 돼. 우리도 긴장하고 좀 더 정진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단무혁과 눈을 마주한 강천기가 무거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단무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관산호에게 시선을 향했다.

 철사보 내에서 관산호에 대한 평은 무난했다.

 외모는 나이답지 않게 조숙하고 몸집이 컸지만 무공을 배우지 않았으니 그 자질을 알 수 없는 일이고, 학문에는 특별한 자질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고를 쳐서 주목을 끄는 편도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그가 강풍양의 양자라는 것 외에는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작은 일에 매이지 않는 대범함과 말수가 그리 많지 않은 과묵함 정도가 그에 대해 알려진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관산호가 강풍양의 양자이기에 단무혁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관산호에 대해 무예에 소질이 있어 보이는 소년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너도 무공을 익혔으면 한다. 네 자질은 아버님도 인정하셨던 것이니 후일 보에 큰 힘이 될 수 있을 거다. 네가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이유는 나 또한 알고 있지만 네가 좀 더 심사숙고해서 결정했으면 한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소보주님."

 관산호는 조금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공을 배우지 않는 것은 선부의 유지 때문이다.

 관산호의 성격이 대범하다고 해도 그것을 어긴다는 것은 심적 부담이 너무 큰일이기에 그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이유 없는 일은 결코 시키지 않는 분이셨다. 그분께서 내가 무공을 배우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어. 그것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무공을 배우고 싶다고 해도 무공에 정식으로 입문할 수 없다. 평생을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을 품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니까.'

 관산호의 눈빛이 깊어졌다.

 '의부께서는 열다섯의 생일에 아버님이 남기신 마지막 유품을 건네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때 내가 무공을 배워야 할지, 배우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게 해주겠다고 하셨어.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관산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탁자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대화는 통상의 것으로 돌아가 있었다.

 강예령은 단유화에게 여행이 어땠는지 묻느라 정신이 없었고, 강천기는 단무혁이 여행 중일 때 철사보 내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장강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았지만 아직 그 위협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단무혁을 제외하고는 젊다는 말을 듣기도 어려운 나이였다.

 그 나이의 세상은 사실보다 좀 더 단순하기에 더 즐겁기도 한 것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단무혁도 다른 사람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방금 전의 진지했던 분위기를 벗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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