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철혈무정로
작가 : 임준후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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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670     추천 : 0     분량 : 7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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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

 양가장

 

 

 

 

  다음날.

 우문 선생의 독습을 끝낸 관산호는 의창의 남문대로로 갔다.

 언제든 하고자 하는 일을 뒤로 미룬 적이 없는 그였기에 전날 생각했던 것을 바로 실행하러 간 것이다.

 창룡지존부라고 새겨진 물건을 그에게 팔았던 중년 여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노리개와 장신구를 팔고 있었다.

 자신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온 관산호를 한눈에 알아본 여인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떠올랐다.

 물건을 사간 손님이 다음날 찾아오는 경우는 반품이나 항의하러 오는 경우 외에는 드물다는 것을 그녀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찾아온 손님을 박대할 수는 없는 일.

 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짓고 관산호를 맞았다.

 "이곳에는 공자님이 찾으실 만한 물건이 없는데 다시 오시다니,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관산호는 그녀의 환대에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이 물건 때문에요."

 여인은 말과 함께 관산호가 꺼내 든 물건을 경계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자색이 은은한 패는 어제 그녀가 판 물건이 틀림없었다.

 "물건에 어떤 문제가 있나요?"

 여인은 자신의 예감이 적중했다는 생각에 반품은 절대 받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물었다.

 하지만 관산호의 대답은 그녀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패를 품에 다시 집어넣으며 말문을 열었다.

 "문제는 없습니다."

 그의 말에 조금 어벙한 표정이 된 여인이 물었다.

 "그럼 무슨 일로?"

 "이것을 주운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장소가 어딘지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남편 분이 주우셨다고 했는데 혹시 아주머니도 그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아!"

 관산호의 대답에 크게 안심이 된 여인은 나직한 탄성과 함께 다시금 처음의 환한 얼굴을 되찾았다.

 "색깔이 고와서 남편에게 자세히 물어보기를 잘했네요. 예,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럼 말씀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런데 그 장소는 왜?"

 "그냥 궁금해서일 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여인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관산호의 나이 때는 궁금한 게 많고 또 그것이 정상이다.

 "하남성에 다녀오던 남편은 지름길인 융중산을 넘을 때 산중에서 큰비를 만났다고 해요. 그 비를 피하기 위해 찾은 계곡의 동굴에서 아가씨와 공자님에게 판 그 물건들을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여인은 말과 함께 관산호에게 탁자 위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그 계곡의 위치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정말 자세히 알고 계시군요."

 관산호는 특이하다는 빛을 담은 눈길로 여인을 보며 말했다.

 "호호호, 제가 원래 기억력이 좋아서……."

 여인은 당황한 듯 어물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여인의 태도는 어색한 면이 있었지만 관산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속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관산호는 여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신형을 돌렸다.

 그의 나이답지 않게 넓은 등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가에 기이한 열기가 이글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여인과 헤어진 관산호는 의창의 북쪽 외곽으로 갔다.

 그의 걸음은 시내의 번화가가 끝나고 서민들이 사는 곳과 중심가가 경계를 이루는 곳에서 멈추었다.

 그곳은 허름한 단층집의 대문 앞이었다.

 그 집의 담은 여기저기 구멍이나고 기와가 부서져 내려서 쇠락한 느낌이 강했지만, 사방 백여 장을 둘러싸고 있어서 한때는 상당한 영화를 누린 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가장(楊家莊).

 

 세월이 흔적이 역력한 편액에 새겨진 글씨들은 자세히 바라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바래서 이 장원의 현재 상태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

 대문은 열려 있었다.

 관산호는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문에서 집까지는 오 장 정도 떨어져 있었고, 그 사이에는 폭 다섯 자쯤의 백석이 가지런히 깔려 있었다.

 하지만 담과 마찬가지로 백석들은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고, 백석들 사이사이에는 이름 모를 잡초들이 무성했다.

 "저 왔습니다, 아저씨!"

 대문을 들어서며 크게 소리를 지른 관산호는 여전히 큰 걸음으로 집 안까지 들어섰다.

 "귀청 떨어진다! 소리 지르지 마! 나, 귀 안 먹었다!"

 안에서 역정이 섞인 음성이 흘러나오자 관산호는 싱긋 웃었다.

 "계셨네요."

 집 안의 복도를 조금 걸어 들어가자 너른 대청이 나왔다.

 대청의 한복판에 서 있던 사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들어서는 관산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는데 키가 관산호보다 한 자는 더 컸고, 덩치가 두 배는 큰 거대한 체구의 사내였다.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얼굴이 네모 반듯하고 이목구비도 큰 데다 눈빛은 불을 토하는 듯 강렬해서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위압하게 만드는 기세를 가지고 있었다.

 "싸움 있어요?"

 관산호는 중년인의 가슴을 보며 물었다.

 중년인은 거대한 근육으로 뒤덮인 상체를 온통 드러내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석 자 길이의 박도를 들고 있었다.

 중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힘든 상댄가 본데요? 아저씨가 이 시간에 수련을 다 하시고."

 "힘들 정도는 아니다만 만약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개망신당하고 은퇴하지 않으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지."

 "은퇴하시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관산호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중년인은 고리눈을 부릅떴다.

 "이 자식이 간만에 찾아와서 악담을 하네. 헛소리하려면 가, 임마!"

 "옳은 말 했다고 문전박대하시렵니까?"

 중년인의 역정 섞인 말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으며 관산호는 대청의 한쪽 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청은 사방 육칠 장 정도 될 만큼 넓었는데 관산호가 들어오며 본 다른 곳과는 달리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어서 허름하긴 해도 사람 사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왜 앉냐?"

 주저앉는 관산호를 보며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눈길로 중년인이 물었다.

 "아저씨 수련하시는 거 구경 좀 하려구요."

 태연하게 대답하는 관산호가 더욱 마음에 안 드는 듯 사내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갑자기 그 큰 입술을 벌리며 소리없이 웃었다. 그 표정을 본 관산호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이어 놀란 빛이 되었다.

 그의 신형이 퉁기듯 앉은 자세 그대로 뒤로 석 자를 물러났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밀어낸 것이다.

 슈욱!

 어느 틈엔가 그가 있던 자리로 바람처럼 다가선 중년 대한의 박도가 가슴 떨리는 거친 소리와 함께 번개처럼 훑고 지나갔다.

 시중에 흔한 횡소천군식이었지만 그 실린 힘은 맥없이 갈라진 공기가 진저리를 칠 정도였다.

 "왜 그러세요!"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관산호가 놀란 얼굴로 소리치자 중년 대한 역시 크게 소리지르며 달려들었다.

 "어린놈이 어른 하는 일을 광대 구경하듯 하겠다는데 그걸 그냥 두라고! 난 못하겠다! 간만에 왔으니 너도 한번 같이 놀아보자!"

 말을 하는 사이에도 한번 헛손질한 중년 대한의 박도는 거침없이 관산호의 머리로 떨어지고 있었다.

 쐐애액!

 역시 흔한 태산압정식이다. 하지만 그 흔한 칼질이라도 박도에 실린 힘은 무서울 정도여서 맞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여반장이었다.

 중년인의 체구는 거대했지만 그 움직임은 대단히 민첩해서 첫인상과는 전혀 달랐다.

 "아저씨, 사람 잡으려구 하는 겁니까? 그거 진짜 칼이잖아요! 박도에 힘 좀 빼세요. 맞으면 사망이라구요!"

 관산호 역시 큰 소리로 중년인의 말을 받으며, 바닥을 짚은 오른손에 전신을 실어 신형을 반 회전시켰다.

 그는 퉁기듯 왼쪽으로 한 자를 이동했고, 직후 번개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은 자세로 중년인의 박도를 계속 피하는 것은 한두 번은 몰라도 계속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일어서지 않으면 반격의 기회를 잡기도 전에 승부가 갈릴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좋구나!"

 흥겨운 음성으로 소리친 중년 대한은 태산압정식을 독사출동식으로 바꾸어 관산호의 가슴을 찔러갔다.

 수직으로 떨어지던 박도가 위로 솟아오르며 독사의 어금니 같은 기세로 다가들고 있었다.

 중년인의 움직임은 단순했지만 그 움직임 속에는 수십 년 동안 수련으로 완숙해진 자유로움이 숨어 있었다.

 초식이 변화하는 신속함은 무림의 고수들이 보아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중년인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웠다.

 자리에서 일어선 관산호의 상체가 버들가지처럼 휘청하더니 그의 상체가 직각으로 뒤로 꺾였다.

 그의 가슴 위 두 치 정도의 간격을 두고 쉬이익 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중년인의 박도가 스쳐 지나갔다.

 미간 위로 지나가는 박도를 보며 관산호의 오른 무릎이 앞으로 쏠린 중년인의 가슴을 찍어갔다.

 관산호의 임기응변은 적절한 것이었고, 날카로운 기세가 서려 있어서 감탄스러운 바가 있었다.

 "흐흐흐."

 하지만 중년인은 괴소와 함께 박도를 거두며 신형을 회전시켜 관산호의 무릎공격을 수월하게 피해냈다.

 직후 그의 몸이 관산호의 우측으로 접근한다 싶더니 어느 틈에 관산호의 목은 그의 굵은 왼팔에 휘감겨 있었다.

 "컥!"

 숨이 막힌 관산호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중년인의 손길은 인정사정이 없어서 장난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관산호의 표정과는 달리 중년인은 흥겨운 표정이었다.

 관산호의 움직임은 쓸 만한 것이었지만 목숨을 건 실전을 수백 차례나 겪은 중년인을 위협하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란 것이었다.

 중년인은 관산호의 목을 휘감았던 팔을 풀며 말했다.

 "요놈! 그동안 또 발전했는걸. 사 초씩이나 걸리다니 말이야."

 "아이 데리고 노는 게 그렇게 즐거우세요?"

 관산호는 잠깐 사이 벌게진 목을 어루만지며 투덜거렸다.

 "껄껄껄, 정식으로 무공을 배우지도 않은 놈이 내 손에서 삼 초를 견디는데 어떻게 재미있지 않을 수 있겠느냐? 게다가 너처럼 큰 놈이 아이라니 말도 안 돼지."

 중년인은 고개를 젖히며 웃더니 투덜거리는 관산호의 어깨를 감싸안고 말을 이었다.

 "이리 와라. 아침에 아령이 음식을 좀 가져왔다. 먹고 가거라."

 "아주머니도 정성이시네요. 삼 년이 넘도록 같이 살자는 말 한마디 안 하는 아저씨 어디가 그리 좋으시다고."

 여전히 투덜거리는 음성이었지만 관산호는 중년인이 이끄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중년인은 관산호를 데리고 대청을 벗어나 복도를 조금 걸은 후 나타난 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 또한 중앙에 있는 의자 네 개와 탁자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횅댕그렁했다.

 하지만 청소는 잘되어 있었고, 이십여 평이 넘는 공간이라 이곳이 번성했을 때는 수십 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하여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곳이었다.

 탁자 위에는 보자기에 덮인 음식이 있었는데 십여 가지가 넘는 반찬은 깔끔했고 술병도 두 개나 있어서 음식을 장만한 사람의 정성이 느껴졌다.

 관산호도 마침 출출했던 참이라 중년인이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그도 사양하지 않고 수저를 들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그들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어느 정도 양이 찼는지 음식에 가는 손이 뜸해질 무렵 중년인이 말문을 열었다.

 "고민이 있느냐?"

 "왜요?"

 "네 눈에 그렇게 쓰여 있다."

 중년인의 말에 관산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돗자리 깔으셔도 되겠습니다."

 중년인은 덤덤한 어투로 관산호의 말을 받았다.

 "아령도 가끔 그런 말을 한다."

 "이제 그만 은퇴하시고 아주머니하고 합치시는 게 어떠세요? 아저씨 나이도 있는데……."

 "내 나이 이제 마흔셋이다. 아직 한창이야."

 "흑사회 쪽에서는 은퇴해도 될 나이입니다. 어느 날 아저씨가 골목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기라도 하면 그때는 아주머니도 살려고 하지 않으실 겁니다."

 흑사회는 사파무림에 속하지만 사파와는 약간 다른 세계다.

 쉽게 말한다면 사파무림의 하부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속한 사람들은 대부분 무공을 모르거나 고수라고 해봐야 이류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곳 또한 사파무림처럼 독자적인 세계를 이룩하고 있었다.

 그곳에도 사람은 있으니까.

 "흐흐흐, 그런 건 어린놈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렇게 죽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이 아니고."

 중년인의 말에 관산호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떨구었다.

 "할 말이 없게 만드시네요."

 "말 돌리지 말고, 무슨 고민이 있느냐?"

 중년인이 정색을 하고 말하자 관산호도 자세를 바로 했다.

 그가 중년인 양천록을 알고 지낸 지는 삼 년째였다.

 양천록은 흑사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절도와 기품이 있는 사내여서 관산호는 그가 흑사회에 몸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내심 존경하고 있었다.

 "보름 후면 열다섯이 됩니다."

 "알고 있다. 아령이 그날을 학수고대한다. 맛난 것 잔뜩 먹이겠다고."

 양천록의 말에 관산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령의 정식 이름은 장연령이다.

 그녀는 북부대로 변에서 가장 큰 청루인 산화루에서 기녀들을 관리하는 여자로 양천록과 비공식 부부와 마찬가지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손이 크기로 인근에 유명해서 음식을 하면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는 기본에 속한다.

 그녀가 먹이려고 작정하고 있다면 며칠은 굶어야 그녀가 준비한 음식을 반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아버님은 제가 철사보에서 일을 배우고 그 안에서 자리를 잡는 것을 바라십니다."

 "그런데?"

 "아저씨 생각은 어떠십니까?"

 대답은 하지 않고 반문하는 관산호의 눈을 찬찬히 바라보던 양천록이 말문을 열었다.

 "나쁘지 않은 일이다. 비록 네가 강 대협의 양자 신분이긴 하지만 단씨 가문은 능력이 있는 사람은 신분에 관계없이 중용하기로 유명한 곳이라서 네가 능력이 있다는 것만 검증된다면 그곳에서 충분히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철사보는 하북남부무림과 상계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이니 그 안에서 자리잡는 것도 괜찮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너는 생각이 나와 다른 모양이구나?"

 "…예."

 "흠… 말해봐라."

 "아저씨 말씀처럼 철사보는 큰 곳입니다. 그곳이라면 평생을 몸담아도 후회가 없을 곳이죠. 하지만 저는 어느 한곳에 매이는 것이 싫습니다. 그곳이 철사보라 해도 말입니다."

 "흐흐흐, 뱀의 머리는 될 수 있지만 용의 꼬리는 되고 싶지 않다 이 말이로구나."

 "뱀의 머리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철사보가 용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짧게 끊어지는 관산호의 말에 양천록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고개를 젖히고 한참을 웃던 그가 웃음을 멈추고는 눈을 부라렸다.

 "요놈 보게! 호북무림에서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철사보가 성에 안 차는 것이로구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일세! 껄껄껄!"

 미소가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양천록은 물었다.

 "사내라면 배포가 있어야 한다. 네가 더욱 마음에 든다. 하지만 배포와 지닌 바 능력은 다른 것이다. 배포가 아무리 커도 능력이 뒤를 받쳐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개꿈이지. 그리고 목표가 분명해야 그것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알 수 있는 법. 너는 평생을 통해 이룩하고 싶은 목표를 정했느냐?"

 질문이 끝날 무렵 양천록의 눈빛은 쏘는 듯이 변해 있었다.

 그 눈빛을 정면으로 받던 관산호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빛이 떠올랐다.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아직입니다."

 "왜 아직이냐? 뱃속에 구렁이를 댓 마리씩 키우는 너인데 생각해 둔 것이 없단 말이냐?"

 "생일이 보름 남았잖습니까."

 "강 대협이 갖고 있다는 네 선친의 마지막 유언 때문이냐?"

 "예."

 "흠… 네 선친은 왜 그런 유언을 남겨서 어린놈이 무엇을 할지 결정도 못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유언을 남기시지야 않았겠지. 하지만 이유가 있다 해도 답답하긴 마찬가지구나."

 양천록은 굵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양천록과 나이 차이가 많았지만 관산호는 그를 알게 된 후 친형처럼 따랐다.

 그것은 양천록이 일반적인 상식을 파괴할 만큼 대범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대범함이 관산호가 그에게 끌린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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