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철혈무정로
작가 : 임준후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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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646     추천 : 0     분량 : 7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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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천록을 친형처럼 따르는 관산호였기에 그에게는 숨기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양천록은 관현문이 강풍양에게 남긴 서신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양천록이 말을 이었다.

 "그럼 구체적인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결국 네 생일 이후여야 가능하겠구나."

 "……."

 관산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관산호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양천록이 불쑥 입을 열었다.

 "나는 관상을 볼 줄은 모른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오만 종류의 인간들을 만나며 생긴 안목이란 것은 있다. 너는 성격이 중후하고 진중하다. 한번 사람을 좋아하면 그 마음을 쉬이 바꾸지 않지. 다른 사람을 모셔도 목숨을 바쳐 충성할 성격이다. 하지만 눈이 높아서 네가 충성할 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정말 힘들 것이다. 내가 볼 때 너는 독자적인 네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그리고 모름지기 사내는 크든 작든 자신의 기업을 만들고 그것의 흥망성쇠에 따라 살다 가는 것이 최고로 멋진 인생이다."

 양천록의 음성에는 열기가 담겨 있었다.

 그 열기를 느낀 관산호의 얼굴에도 희미한 열기가 스쳐 지나갔다.

 양천록의 말이 이어졌다.

 "네 생일이 지나고 만약 무공을 익힐 마음이 생긴다면 꼭 나를 찾아와라."

 그의 말을 들은 관산호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무어라 물어보려고 막 입을 여는 것을 본 양천록이 손짓을 했다.

 묻지 말라는 표시였다.

 "묻지 마. 네가 무공을 익히지 않겠다고 하면 없었던 일이 될 테니까."

 양천록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묻는 것은 예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아저씨."

 관산호는 웃으며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갈게요."

 "생일 전에 들를 거냐?"

 "짬 나면요."

 싱긋 웃으며 말한 후 신형을 돌리던 관산호가 움직임을 멈추고 양천록에게 물었다.

 "그런데 누가 싸움을 걸어온 겁니까? 의창에서 아저씨 성격을 모르는 흑사회 사람이 아직도 남아 있었습니까?"

 흑사회에서 양천록의 별호는 철면인도(鐵面人屠)다.

 그리고 그는 의창 북부대로를 장악하고 있는 흑사회 도방(屠幇)의 창시자이자 현 방주이다.

 방회의 명칭에 짐승을 도축할 때의 도(屠) 자가 들어간 것으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것처럼 십오 년 전 도방은 북부대로의 유흥가를 장악하면서 냉혹하게 적들을 제거했다.

 그 후 도방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적들을 무자비하게 응징해 온 역사를 갖고 있었다.

 그런 도방의 역사는 양천록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으니 그의 성격이 어떠한지는 자명했다.

 그는 도방을 적대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푼 전례가 한 번도 없는 사람으로 의창에서는 무자비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관산호를 아끼는 것이나 관산호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의창 북부의 밤거리에는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만큼이나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것은 그가 도방을 경영하면서도 나름대로 세운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온 때문이었다.

 도방은 의창 북부대로에서 홍루 한 곳과 도박장을 직접 경영하기도 하고, 같은 업종의 수십여 곳을 보호(?)하면서 그들 말로 세금을 받았다.

 양천록은 그 세금을 무리하지 않은 액수로 책정했을 뿐만 아니라 받는 만큼 일을 확실하게 해주었다.

 밤에 운영하는 장사 대부분이 그렇듯 그런 곳들은 언제나 시비가 끊이지 않고, 이권을 노리고 만들어지는 흑사회 단체도 많은 지역이라 그런 시비에서 그들을 보호하는 도방과 그들의 관계는 상호 공생 관계라 할 수 있었다.

 "부두에서 일하는 자들 중 일부가 일을 그만두고 수년 전 의창 남쪽에 터를 잡으며 방회를 하나 만들었다. 청룡방이라는 이름만 그럴싸한 방회지. 들어본 적이 있느냐?"

 양천록의 음성에는 비꼬는 기색이 역력해서 그가 청룡방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삼척동자라도 모를 수 없을 정도였다.

 "없습니다."

 양천록의 질문에 관산호는 고개를 저었다.

 흑사회의 동정은 은밀해서 그쪽에 관심을 갖지 않은 일반인은 알 수가 없는 것이 정상이다.

 관산호의 태도에 양천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의 세가 조금씩 커지는 듯하더니 달포쯤 전부터 우리 영역에 그놈들이 간혹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탐색이지. 처음에는 어떤 의도인지 몰라서 지켜만 보았더니 그 수가 점점 늘어나더구나. 그래서 그제 나타났던 놈들 네 명을 반송장 만들어서 청룡방에 보내주었다."

 그의 말을 들은 관산호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가 좋아하는 양천록이었기에 양천록이 어떻게 일 처리를 하는지 잘 아는 그였다.

 반송장을 만들어서 보냈다고 했으니 보낸 자들은 아마도 다음날쯤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관산호의 얼굴을 본 양천록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들도 내가 이렇게 나오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들이 부하들을 내 영역에 보낸 것은 나를 도발하는 것.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도발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의 도발에 내가 적당히 반응해 주었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복수전을 하러 올 것이다. 그것이 흑사회의 당연한 수순이지. 이기면 사는 것이고 지면 죽을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며 관산호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나이는 어렸지만 남다른 성장 과정을 거쳤기에 사람들 저마다 제각각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양천록의 삶이 거친 것이 그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비록 동감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언제쯤입니까?'

 "글쎄, 수삼 일 내로 부딪칠 듯하다."

 "이기세요. 살아 있는 모습을 뵙고 싶습니다."

 "흐흐흐, 그러마."

 양천록은 괴소를 흘리며 관산호의 어깨를 세차게 쳤다.

 관산호는 그런 양천록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신형을 돌렸다.

 

 

 

 

 

 제6장

 십오 세

 

 

 

 

 강풍양이 기다리고 있는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춘 관산호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의 어깨 위로 중천을 향해 달려가는 태양 빛이 황금빛을 뿌리며 내려앉았다.

 그의 눈빛은 다른 때와 달리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오늘은 그의 열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보름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 것이다.

 "아버님, 저 왔습니다."

 그가 정중한 음성으로 안을 향해 말하자 곧 안에서 응답이 왔다.

 "들어오너라."

 강풍양은 방 안 중앙에 놓인 탁자에 앉아 관산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와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는 관산호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온화한 시선이었다.

 "네가 이곳에 온 지 벌써 팔 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관산호를 바라보며 말문을 여는 강풍양의 음성에는 깊은 감회가 서려 있었다.

 반은 손을 잡고 반은 안다시피 하며 데리고 왔던 꼬마가 이제는 그보다 키가 한 치는 더 큰 장부의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관산호도 그의 음성에 어린 감회를 느꼈다.

 그의 약간 굳어 있던 얼굴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아버님."

 "이 녀석, 공치사 받고 싶지 않다."

 강풍양은 덤덤하게 말하며 그의 앞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빛이 바랜 누런 봉투를 관산호의 앞으로 밀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관산호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보는 것은 처음인 물건.

 그의 선친 관현문의 마지막 유언이 담긴 봉투였다.

 그가 강풍양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처음 한 것은 열한 살 때였다.

 강풍양은 당연히 그의 바람을 거부했고, 서운해하는 그에게 선친 관현문의 유언장에 대해 말했다.

 벌써 사 년 전의 일이었다.

 "이제 이것의 주인은 너다. 읽어보거라."

 강풍양의 음성에서는 시원섭섭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단할 것은 없었지만 친구가 남긴 마지막 유언장이다.

 긴 세월 동안 그것을 보관하기 위해 그가 쓴 심력은 만만치 않았다.

 그런 강풍양의 노력을 알고 있었기에 관산호는 봉투를 잡으면서 다시 한 번 강풍양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쓸데없는 소리."

 강풍양은 피식 웃으면서 팔짱을 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관산호가 다 읽을 때까지 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관산호는 봉인을 뜯어내고 봉투를 열었다.

 여러 겹으로 접혀 있는 서신을 붕투에서 꺼낸 그는 조심스럽게 서신을 폈다.

 

 

 오랜만이구나, 아들아.

 이렇게 서신으로나마 다시 너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

 …중략……

 

 흔들림없던 관산호의 눈빛이 조금씩 출렁이며 흐려졌다.

 진정 오랜만에 느끼는 아버지의 체취였다.

 비록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으며 살아왔지만 얼마나 그리워했던 체취던가!

 

 

 너는 나와 함께 있을 때도 자유로운 구름과 새를 좋아했던 녀석이니 크면서 그 성격이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풍양이와 함께 살면서 무공이란 것을 보았을 것이고, 아마도 그것을 배우고 싶어졌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풍양은 네 바람을 막았을 것이고.

 그것은 모두 내 뜻에 따른 것이다.

 풍양은 무언가를 감추는 성격이 아니니 네가 무공을 배우고 싶어했다면 그것을 막는 것이 내 유언에 따른 것이라고 네게 알려주었겠지.

 이제 내가 그런 유언을 남겼던 이유를, 그리고 네가 항상 그리워했던 네 어머니에 대한 것을 모두 말해주겠다.

 내 유언은 네가 이 서신을 모두 읽는 순간 그 효력이 끝난다.

 나는 네가 어떻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그것을 네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네가 지는 것이다.

 그것이 남자니까.

 

 관산호의 눈매가 거세게 흔들렸다.

 그의 시선은 서신의 한 구절에 못 박혀 있었다.

 어머니.

 어린 시절 몇 번 입에 담아보고는 결코 입 밖으로 내본 적이 없는 말이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그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서신을 읽어나갔다.

 이어지는 서신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나는 한족이 아닌 묘족이다.

 현재 묘족은 한족에 밀려 대륙 남부로 밀려나 있지만 원래 묘족의 터는 산동성과 강소성 지역이고, 비록 적은 수이지만 아직도 그곳에는 묘족이 살고 있다.

 나는 산동성의 화전민 마을에서 태어나 스물세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내가 스물세 살이 되던 해 우리 마을을 덮친 역병으로 네 조부모님을 비롯한 마을 사람 구 할이 죽었다.

 나도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지.

 고향을 떠난 뒤로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이십삼 년 동안 밭을 일군 시골 총각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

 게다가 한족도 아닌 묘족 청년이.

 삼 년여를 그렇게 떠돌았을 때 인연이 닿아 무공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비록 그 인연이 짧아 일 년 정도밖에 배우지 못했지만 그것으로 내 몸 하나는 호신할 수 있었고, 그 무공 덕분에 개봉에 있는 천일표국에서 일을 하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풍양 그 친구를 만나 사귀었고.

 풍양은 내가 묘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차별없이 나를 대한 드문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한족들은 내가 묘족이라는 것만으로도 나를 백안시했기에 나는 내가 이민족이라는 것을 숨기며 살았다.

 하지만 풍양은 달랐다.

 그는 민족을 떠나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줄 아는 사내였다.

 표국에서 일한 지 오 년째 되던 해 나는 한 여인을 알게 되었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내가 운명의 상대자를 만났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네 어머니다.

 …….

 …….

 …중략……

 이제 너도 내가 풍양에게 그런 유언을 남긴 이유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무림의 명망있는 고수인 풍양에게 너를 맡기며 무공을 배우게 하지 말아달라고 한 내 부탁이 무리한 것이라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너를 맡길 만큼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풍양이 유일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음을 이해해 다오.

 그리고 네 어미를 원망하지 말거라. 네 어미는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으리라.

 비록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사무치지만 이 아비에게 복수심은 없다.

 그들은 미워할 수는 있어도 증오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 아니겠느냐.

 떠나기 얼마 전 완안 어르신께서 너를 가르치고 싶다는 제안을 해왔다. 하지만 나는 그분의 제안을 거절했지.

 완안 어르신은 범상치 않은 분이셨고, 그런 분이 너를 데려다 가르치고 싶다 하시는 것을 내가 거절한 것은 노파심 때문이었다.

 나는 네가 높은 무공을 익히고 그들, 그리고 네 어미를 찾아 나선다면 그로 인해 벌어질 일이 어떠할지 상상하기도 두려웠단다.

 네가 무공을 배우는 것을 막아달라고 아비가 풍양에게 간곡히 부탁한 이유를 이해하겠느냐?

 설령 네가 기연을 만나 천하를 독보할 수 있는 초강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 힘으로 그들을 징계하는 것은 더 가슴 아픈 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들아,

 이제는 너도 네가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할 나이가 되었다.

 어떤 선택이든 나는 그것을 존중하겠다.

 그것이 설령 내 뜻과는 반대로 무공을 익히고 그들을 찾아가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네가 선대의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

 인생은 웃으며 행복하게 살기에도 짧은 것이다.

 한과 슬픔을 가슴에 담고 사는 삶은 불행하다.

 나는 네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단다.

 그럼에도 내가 지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네가 혹여 어미를 원망하며 살아가지는 않을지, 또 후일 영문도 모르는 채 그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 불행한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아들아,

 내가 어떤 것을 바라든 그것이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는 걸 난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네 길을 선택할 때 이 아비의 바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한 번쯤은 돌아보아 주었으면 좋겠구나.

 아들아,

 네가 어떤 길을 가든 나는 너를 믿는다.

 그리고 사랑한다.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은 모습으로 석상처럼 앉아 있던 강풍양은 맞은편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색에 눈을 떴다.

 눈을 뜬 그가 제일 처음 본 것은 관산호의 두 뺨에 흘러내리는 굵은 눈물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본 것은 찢어질 듯 부릅뜬 관산호의 붉게 물든 눈이었다.

 그는 놀랐다.

 관산호를 철사보로 데리고 온 후 그는 관산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관산호는 심지가 강하고 어떤 일에도 쉽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간혹 나이에 비해 감정이 너무 메마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감상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런 관산호가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신의 내용이 무엇이든 그것은 관현문이 관산호에게 남긴 것이었다.

 관현문이 죽어가며 관산호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 그것을 보도록 해달라는 부탁을 들었을 때부터 그 내용이 범상치 않을 것이라고는 이미 예상했던 터다.

 관산호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그가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개입해도 되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지금 관산호가 직면한 문제는 그가 개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강풍양이 눈을 뜬 후 일각여가 지났을 때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소매를 들어 눈물을 쓱 훔친 관산호는 말과 함께 강풍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두 눈은 아직 충혈되어 있었지만 표정은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그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강풍양이 말문을 열었다.

 "물어도 되는 일이냐?"

 "죄송합니다."

 관산호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한 후 굳게 입을 다무는 것을 본 강풍양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관산호의 전신에서는 서신의 내용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단호한 느낌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거라."

 "예."

 짧게 대답을 마친 관산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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