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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무정로
작가 : 임준후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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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770     추천 : 0     분량 : 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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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천무극진기 제일단공

 감응천인결(感應天人訣).

 혼천무극진기는 천지의 도(道)와 하나됨을 이루고 싶은 열망 속에서 창안된 것이다.

 무극진기의 첫 번째 단계 감응천인결은 천지의 흐름과 육신이 원활하게 소통될 때 완성된다.

 

 관산호는 육신과 영혼이 공기 중에 녹아버리는 듯한 기이한 감각에 빠져 있었다.

 방 안의 공기가 그의 몸을 자유로이 통과하고 있는 것이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혼천무극진기의 제일단공 마지막 열여덞 번째 자세를 취한 지 일 다경 정도가 지났을 때부터이다.

 그는 언제나처럼 마보세로 양손의 장심이 중단전과 하단전을 덮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관산호는 오전에 강풍양으로부터 전해 받은 아버지의 유언장을 읽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자시에 행해지는 혼천무극진기는 그 충격과 무관하게 평소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수련은 그의 의지의 통제 하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인지술의 두려운 점은 그로 인해 행해지는 일련의 행위에 행위자의 의지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의지와 생각이 피시술자의 것이 아닌 시술자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혼천무극진기의 일단공이 완성될 시점이 다가오면서 심인지술은 점차 약해져 가고 있었다. 물론 그 또한 시술자인 완안 노인이 의도한 바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혼천무극진기의 일단공이 완성되면 심인지술에 의한 강제적 수련 방식은 폐기되어야 했다.

 일단공이 완성되면서 겪게 되는 정신과 육체적 희열은 심인지술이 사라지더라도 피시술자의 자발적 수련을 끌어낼 것이 확실했다.

 그 이후의 수련은 심인지술로는 전수가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완안 노인의 안배는 어김없이 관산호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중이었다.

 심인지술이 약해지기 시작한 것은 약 오 개월 전부터였다.

 육체는 아직 관산호의 통제에 따르지 않았지만 혼천무극진기를 수련하는 중에도 관산호는 조금씩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생각만큼은 거의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그런 현상이 벌어진 이후 관산호는 더욱 혼천무극진기를 수련하는 자시를 기다리게 되었다.

 혼천무극진기를 수련하게 되면 전신이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가벼워지면서 전신의 감각이 극도로 개방되어 육신이 천지간에 흩어지는 듯한 기이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감각은 마치 폭포수에 전신을 씻어내리는 것처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상쾌함을 그에게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수련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순간 그는 평소 느끼던 감각보다 수십 배는 더욱 증폭된 예민한 감각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육체와 마음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기묘한 이질감에 빠져 있던 어느 순간 불시에 그를 찾아왔다.

 혼천무극진기의 수련에 따라 그의 육체는 점점 더 순수해지며 천지의 흐름과 맞추어가고 있는 반면, 오전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그의 마음은 커다란 괴로움 속에 빠져 육체와의 균형이 깨어져 가고 있었다.

 그런 부조화 속에서 혼천무극진기는 깨어진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욱 강하게 주위의 기운을 불러 모았다.

 그 강렬한 기운은 관산호에게 그동안 넘어서지 못했던 감응천인결의 마지막 벽을 넘어서는 힘을 주었다.

 마보세를 취하고 있던 관산호의 전신이 마치 학질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리며 격렬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긴 머리카락은 허공을 향해 올올이 곤두섰고, 전신의 혈관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 푸른 지렁이가 전신을 휘감고 있는 것처럼 변했다.

 우두둑우두둑!

 전신의 뼈는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쉴 새 없이 비틀리며 금방이라도 살가죽을 뚫고 튀어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그런 격렬한 뒤틀림이 반 각 정도 지났을 때였다.

 화아악!

 관산호의 전신 모공에서 거무스름한 빛의 안개가 뿜어져 나오며 그의 전신을 순간적으로 가렸다. 검은빛의 안개는 뿜어져 나온 직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할 만큼 그것은 찰나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전히 마보세를 취하고 있는 관산호의 전신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소처럼 안정되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고, 구릿빛으로 그을린 건강한 피부와 암벽처럼 단단하게 느껴지는 근육도 그대로였다.

 외관상 그에게서 변한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내부는 달랐다.

 그는 지금 믿을 수 없는 쾌감 속에 빠져 있었다.

 육신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두 발은 바닥을 딛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지만 바닥을 딛고 있는 그 자신의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새털처럼 그는 허공 속에 떠 있었다.

 아니, 녹아들어 있었다.

 그리고 환상처럼 그의 마음을 파고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아야! 축하한다. 이제 혼천무극진기의 일단공을 완성하였구나!

 

 목소리와 함께 그의 심상 속에 떠오르는 모습.

 완안 노인이었다.

 그런데 완안 노인의 모습은 지금까지 매일 보아오던 모습이 아니었다.

 평소 완안 노인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온화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완안 노인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마의가 아닌 눈처럼 하얀 백의를 걸치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지금 네 나이는 스물을 전후하고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늙은이의 심술을 견뎌내느라 고생 많았다.

 내가 직접 너를 가르칠 수 있었다면 이렇게 기이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런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구나.

 이 늙은이를 원망할 수도 있으리라.

 

 말을 잇는 완안 노인의 얼굴에서는 미안한 빛이 가득했다.

 

 ―혼천무극진기는 너도 알다시피 사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남은 삼 단계와 내가 너에게 혼천무극진기를 전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심인지술로 남기지 않았다.

 혼천무극진기의 이후 단계는 심인지술로 전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특별한 연공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게 혼천무극진기를 전수한 이유는 후일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이야기해 주마.

 내가 너를 보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네가 모든 것을 알게 되면 네가 너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호아야, 너와 나의 만남은 아득한 세월 이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

 너는 혼천무극진기의 예정된 주인이다.

 네가 일단공을 완성할 즈음이면 내가 직접 너를 찾거나 내가 보낸 사람이 너를 찾아갈 것이다.

 그때까지 혼천무극진기의 일단공을 수련하고 있으려무나.

 이단공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단공을 계속 수련하면 네 정신과 육체는 천지 기운과의 친화력이 더욱 강해진다.

 그것은 이단공으로 넘어갔을 때 수련의 진척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네 몸을 다른 사람, 특히 무공을 익힌 사람에게 진맥하게 하는 것은 가능한 한 피하도록 하거라.

 네게 혼천무극진기를 가르쳤지만 그것이 어떤 공능을 갖고 있는지 왜 안 가르쳐 주는지 궁금하겠지. 하지만 궁금하더라도 조금만 더 참거라.

 혼천무극진기의 공능에 대해서는 아직은 모르는 것이 낫다.

 그것을 알게 되면 호기심 때문에 네가 무리를 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한 가지만 주의하려무나.

 혼천무극진기의 일단공을 완성하게 되면 인체의 경락과 맥이 일반인과 많이 다르게 된다.

 그리고 무공이 높은 사람이라면 네 몸의 경락과 맥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그것은 네게 많은 번거로움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호아야, 이제 너는 심상 속에서 다시 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속이 후련하느냐?

 허허허, 다시 너를 만날 시간이 기다려지는구나.

 그때 네게 강제로 혼천무극진기를 가르쳤다고 이 늙은이를 구박하지는 않겠지?

 

 심상 속에서 이어진 완안 노인의 긴 이야기는 따스한 한마디와 함께 끝났다.

 관산호는 조금 멍한 시선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후련하느냐구요? 제가 후련할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어르신, 궁금증만 더 커집니다. 왜 제게 이런 방법을 새가면서까지 혼천무극진기를 가르치셔야 했는지, 그리고 무극진기가 대체 어떤 공능이 있는지 말입니다.'

 완안 노인의 모습이 마음속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진 후 관산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혼천무극진기의 일단공이 완성되면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자신의 몸을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혼천무극진기의 일천여 자에 달하는 구결을 되뇌이며 자신의 몸을 살펴본 관산호는 허탈해졌다.

 그가 느끼기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몸에 좀 더 활력이 강해지고 정신이 맑아진 듯한 느낌이 그가 당장 느낄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혹여 혼천무극진기가 천고의 절학이 아닐까 하는 일말의 기대가 허무감으로 바뀌는 데는 채 일 다경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어르신, 왜 시간을 그렇게 길게 잡으신 겁니까? 어르신 말씀대로라면 앞으로 어르신을 만나려면 적어도 오 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안배를 하셨다면 지금 제가 일단공을 완성한 것을 알고 저를 찾아오실 수는 없는 겁니까?'

 관산호는 완안 노인의 안배에 대해 강한 아쉬움을 느꼈다.

 그는 지금 무언가 신비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완안 노인의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관산호는 침상에 누웠다.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던 그는 오른팔을 들어 자신의 눈 위에 올려놓았다.

 조금씩 그의 뺨 양옆의 이부자리가 젖어들었다.

 그는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

 '아버지…….'

 언제나 침상에 누워 계시던 분.

 미안한 듯, 안타까운 듯 늘 자신을 따라다니던 시선의 주인.

 일각의 시간도 제대로 함께 놀아준 적이 없는 분이었지만 아버지를 묻고 의부의 손을 잡은 채 광동성을 떠나던 그날의 서러움은 관산호의 뼛속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의 바람을 따를 수는 없을 듯합니다. 무공을 익히겠습니다.'

 관산호는 팔뚝으로 눈가를 쓸었다.

 물기가 채 마르지 않았지만 천장을 올려다보는 그의 두 눈에서는 무시무시한 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그가 무공을 익히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다.

 항상 갖고 있던 궁금증은 풀렸다.

 유언장을 읽으면서 아버지가 왜 그런 바람을 가졌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를 했다고 해도 그는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할 생각은 없었다.

 무공을 익힐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그의 갈등은 짧게 끝났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는 언제나 고통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편안한 모습의 아버지를 본 기억이 없었다.

 그랬기에 편안한 모습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는 알고 싶었다.

 왜 자신의 아버지가 그렇게 사셔야만 했는지.

 왜 그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과연 아버지를 그렇게 살도록 강요할 만한 자격을 그들이 갖고 있는지.

 그리고 어머니…….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강해져야 했다.

 그것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해져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질문할 기회조차 얻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기에.

 아버지의 유언장에 적힌 그들은 그도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무가에서 자란 자라면 결코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자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가 그에게 무공을 익히지 말라고, 그들과 부딪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할 만큼 강한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 그는 강해져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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