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소녀의 눈에 담긴 어두운 기운이 쉽게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였다.
“네 숙부라는 분은 걱정하지 말고 어서 먹어. 의원이 다녀갔으니 걱정할 게 없을 거야. 그 의원이 아주 유명한 사람이거든. 일어나시면 이것보다 더 좋은 음식을 대접할 생각이니까.”
소녀가 숙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음을 알고 냉북두가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다독여 주었다.
“예.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근데 우리 아가씨는 이름이 뭘까?”
“설수아예요.”
“예쁜 이름이구나. 난 냉북두라 한다. 앞으로 냉 오라버니라 불러라.”
징글맞은 표정을 짓는 냉북두의 얼굴을 곁에 앉아 있는 추몽이 눈을 가늘게 뜨며 쏘아보았다.
“아니, 나이 차이가 얼만데 오라버니입니까? 아저씨지.”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강호에 기본 예의가 있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눈살을 찌푸리며 냉북두에게 한 소리를 뱉고 난 추몽은 설수아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수아야, 이분은 냉 아저씨라고 부르고 난 추 오라버니라고 불러. 난 추몽이야, 추몽.”
추몽의 말에 냉북두의 눈이 과하게 찢어졌다.
“야, 이 더럽고 지저분한 거지발싸개 같은 놈아! 내가 어딜 봐서 아저씨냐. 어디를 가더라도 네놈보다 다섯 살은 어려 보일 것이다!”
냉북두가 소리를 질렀지만 추몽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저씨, 침 튀깁니다. 좋은 음식 앞에 두고 그리 침을 남발하면 우리 수아가 어떻게 음식을 먹겠습니까? 누가 거지 소두목 아니랄까 봐 더럽기는.”
“풋!”
두 사람의 말다툼에 수아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 소리에 냉북두와 추몽 두 사람이 동시에 수아를 바라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야! 수아 누이가 그리 웃으니 얼마나 예쁘냐? 앞으로도 그렇게 웃어. 알았지?”
냉북두가 호들갑을 떨며 수아에게 물었다.
“예.”
수아가 대답을 하자 추몽이 수아 앞으로 요리를 담아 둔 그릇을 내밀었다.
“어서 먹어. 배고프겠다. 그리고 자꾸 말 시키지 마셔. 음식 식으면 맛없으니까.”
수아는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세상을 아직 알지 못하는 나이에 죽음을 감수한 도주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두 사람은 마치 몇 년 동안 인연을 함께한 사람처럼 편하게만 느껴졌다.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세상은 서로 도우며 그렇게 사는 거야. 어서 먹자.”
수아가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추몽도 아귀처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마치 음식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입 속으로 마구 밀어 넣고 있는 추몽의 모습에 냉북두가 소리를 질렀다.
“추몽!”
“예.”
“천천히 먹지? 그러다 체할라.”
기묘한 눈빛을 만들어 내며 위협을 하고 있는 냉북두였지만 추몽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직 절 모르십니까? 쇳덩이도 소화해 내는 탁월한 소화력을 가진 제가 이 정도에 체하다니요. 걱정 마십시오.”
냉북두의 염장을 뒤집어 놓고 다시 음식을 입 속으로 마구 집어넣는 추몽을 바라보며 냉북두의 눈가에 살기가 어렸다.
“왜 그러십니까?”
추몽이 그 살기를 느끼고 묻는 동안 수아 또한 냉북두를 바라보자 급히 표정을 바꾸어 버리는 냉북두였다.
‘이놈이 죽으려고!’
냉북두는 수아의 눈치를 한번 살피고는 추몽의 얼굴도 보지 않고 전음을 보냈다.
‘너! 아침에도 개고기 한 마리를 뼈도 남기지 않고 씹어 먹고는 음식이 또 넘어가냐!’
‘아니, 그건 아침이고 이건 점심이지 않습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음식에서 손 떼고 알아보란 거나 알아봐! 알았어?’
냉북두의 공갈과 협박을 이겨 내지 못한 추몽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왜, 더 먹지 그러냐?”
태연하게 말을 잇는 냉북두를 보며 추몽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배가 터질 것 같아서 더는 못 먹겠소! 터질 것! 같아서!”
“그래, 그럼 나가서 일 봐.”
추몽이 바닥을 무너질 듯 밟으며 돌아서자 냉북두는 수아를 바라보며 다시 웃음을 지었다.
“많이 먹어.”
말없이 음식을 먹던 수아는 냉북두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냉 오라버니.”
“응. 왜?”
“한 가지 여쭈어 보아도 될까요?”
“그럼! 두 가지 세 가지 막 물어보아도 돼.”
눈앞의 수아가 자신에게 무엇을 물어볼지 궁금증이 일어 냉북두는 수아를 바라보았다.
“오라버니는 개방의 사람이죠?”
“그래, 수아도 개방을 아는구나. 오라버니가 바로 의로 똘똘 뭉쳐 있는 개방의 사나이지.”
“개방은 천하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뭐든지 개방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다고.”
“그럼, 뭐든지는 아니지만 웬만한 것은 모두 알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지. 뭘 알아보고 싶은 거야?”
냉북두의 말에 잠시 망설임을 보이던 수아가 결심을 했다는 듯이 말문을 열었다.
“금무혼이라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이곳 복건성 혜안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금무혼이라고?”
“예.”
“처음 듣는 이름인데.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모르고?”
“예. 단지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이곳으로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 이 오라버니가 찾아봐 주지. 보기에는 이래도 오라비의 부하들이 늘어서면 저잣거리를 꽉 채울 정도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야.”
“예, 고맙습니다.”
“수아야, 오늘만 고맙다는 말이 세 번째야. 수아가 나를 오라버니라 부르고 내가 수아를 동생으로 생각하는 이상 그런 말은 하지 않아도 돼. 알았지?”
“예. 고…….”
다시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급히 막은 수아가 웃음을 지었다.
“수아야, 이제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볼까?”
“예.”
“그들이 너를 왜 쫓는 것이니?”
적자강이 의식이 깨어나면 물어보려고 했던 말이었지만 수아가 자신을 믿는 듯하였기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어보는 냉북두였다.
“그, 그게…….”
수하가 뭔가 난처해하는 듯하자 냉북두가 급히 말문을 막았다.
“곤란하면 말하지 않아도 돼.”
냉북두는 적자강이 깨어나면 알 수 있다는 생각에 굳이 수아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며 자신의 궁금증을 풀고 싶지는 않았다.
‘금무혼, 금무혼이라……. 어디서 들어 본 것도 같은 이름인데.’
제4장 검 끝에 묻힌 피는 지워지지 않고
운기를 통해 내상을 치료하고 있는 연무종을 보며 마종일은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린다는 말이 바로 이러한 상황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개방의 제자라는 것 이외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놈의 무위는 자신들의 예상을 초월했다.
삼 초 만에 연무종의 도가 부러지고 채 오 초가 지나지 않아 연무종은 각혈을 토해 내어야 했다.
연무종과 손을 섞는 모습을 본 마종일은 자신 또한 그 개방 제자의 십초지적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의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만일 분노를 억누르지 않았다면 자신 또한 연무종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상대가 손속을 멈추지 않았다면 지금 객잔의 내실에 들어 치료를 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었다.
상대의 정체와 차후 어떻게 행동을 할 것이며 상부에는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할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마종일이었다.
‘일단 알려야 한다.’
만일 그 개방의 제자가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면 지원을 받지 않고는 그들을 빼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우선 상부에 알려 지원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마종일은 점소이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이곳에서 급한 소식을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알려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호남이네.”
“인편으로 보내어서는 안 되는 급한 것이라면 비응방이라고 급한 서신을 전해 주는 곳이 있습니다.”
비응방(飛鷹房)이라면 마종일도 익히 알고 있었다.
매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해 주고 이문을 남기는 곳으로, 무림인들이 자주 이용했다.
변방의 도시인 이곳 복건성 남부까지 비응방의 분점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는 하지만 그것은 마종일에게 있어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곳이 어디에 있나?”
“서쪽으로 이십 리만 가시면 됩니다.”
“알겠네.”
마종일은 점소이에게 구리 문을 던져 주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응방(飛鷹房) 남해일분소(南海一分所).
입구에 걸려 있는 현판을 바라보고 안으로 들어선 마종일을 반갑게 맞이하는 이는 비응방의 남해분소를 맡고 있는 염진평(廉眞萍)이라는 사내였다.
“어서 오십시오.”
“전서를 보낼 곳이 있소.”
“잘 오셨습니다. 어디로 보낼 것입니까?”
“호남의 각현이요.”
호남이라는 말에 사내의 얼굴에 더욱 웃음이 짙어졌다.
“아주 먼 곳이군요. 급한 것입니까?”
“그렇소.”
“그럼 전서구보다는 비응을 이용하시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전서구로 보내자면 시간이 아무래도…….”
“비응으로 보내 주시오.”
“다섯 냥입니다.”
꽤 비싼 값이었지만 가격으로 실랑이를 벌일 때가 아니었기에 마종일은 품에서 다섯 냥을 꺼내어 놓았다.
“정확한 위치만 설명해 주시면 닷새 내로 도착시켜 드리겠습니다.”
닷새라면 다섯 냥이 아니라 열 냥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과연 비응방이라는 소리가 절로 일 만큼 대단히 빠른 속도에 마종일은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정확한 위치를 설명하고 있는 마종일의 뒤로 이곳 주인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염가야!”
“아이고, 저놈 또 왔나?”
안으로 들어오는 이가 누구인지 확인한 염진평이 얼굴을 일그러트리자 마종일이 뒤를 돌아보았다.
‘개방!’
개방의 거지라면 치가 떨리는 마종일이었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개방 거지의 행동을 주시하였다.
“염가야, 이거 아주 급하니까 비응으로 빨리 보내라.”
“허구한 날 공짜로 보내면서 웬 비응이냐? 전서구로 보내면 되지.”
“그거야 그렇지만 이번에는 분타주의 특별 지시야.”
분타주 이름을 팔아먹는 개방도의 말에 염진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럼 할 수 없지. 먼저 온 손님이 있으니 기다리거라.”
“뭘 기다려. 여기 두고 갈 테니 늘 보내던 그곳으로 보내 줘. 알았지?”
“알았다, 이놈아!”
염진평이 대답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는 개방 거지의 뒷모습을 보며 마종일의 눈에 알 수 없는 빛이 떠올랐다.
“이리로 보내 주시면 되오.”
“예. 두고 가시면 처리해 두겠습니다.”
“아니, 발신되는 것을 보고 갔으면 좋겠소.”
‘중요한 물건인가 보군.’
중요한 서신을 보내는 이들은 서신이 출발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염진평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럼 여기에 직접 담으시지요.”
대나무를 잘라 만든 가는 통을 내밀어 마종일에게 전해 주자 마종일이 전서를 그 안으로 집어넣어 봉하고는 염진평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염진평은 방금 전 개방의 방도가 놓아두고 간 전서를 서랍 속에 넣어 놓은 뒤 뒷문을 열고 비응을 가지러 가자, 마종일은 급히 몸을 숙여 서랍을 열고 그 전서구를 펼쳐 보았다.
하지만 내용은 개방의 암호로 적혀 있었다.
마종일이 그것을 알아볼 리는 없었지만 마지막 발신자의 이름은 암호로 기입되지 않았기에 확인할 수 있었다.
‘냉북두!’
급히 다시 서랍 속으로 전서를 말아 넣은 마종일은 옆에 놓인 종이를 챙겨 자신들만의 암호로 다시금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두 냥이라는 돈을 더 얹어 주고 내용을 바꾸어 호남으로 서신을 보내고 돌아서는 마종일의 얼굴에선 긴장감이 가득 흘러나왔다.
“평지풍파개 냉북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