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용모파기를 붙여 놓았습니다. 본 적이 있거나 위치를 알려 주면 은자 백 냥이나 준다고 포상금도 걸어 놓았구요.”
“은자 백 냥이나?”
“예.”
사실 오가장의 둘째 아들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사실은 속이 시원한 소리였다.
이곳 혜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오극이라는 그놈을 좋아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인물깨나 있는 여식을 가진 이치고 그놈의 행패에 속 한번 끓여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극악한 행패를 부리는 놈이었다.
‘누구인지 속이 시원하군.’
장 노인은 속으로 웃음을 지으면서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 붙은 방을 보았다.
“이런!”
용모파기를 확인한 장 노인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급히 용모파기를 품에 넣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장 노인의 뒤로 유씨에게 다가가는 몇몇의 사내들이 보였다.
“저 노인인가?”
“그렇습니다. 호기라고 아들 둘과 사는데 둘이 사용하기에는 넘칠 정도로 물건을 사 가곤 합니다. 또한 주명산에 사는 사냥꾼은 저 노인밖에 없습니다.”
“뭔가 있겠군. 따라가 봐.”
사내의 명에 두 명의 수하가 급히 장 노인의 뒤를 따랐다.
***
“아버지!”
바닥을 뒹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장호기의 입에서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루의 수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장호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만신창이가 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장호기가 급히 아버지를 품에 안았다. 무엇에 맞았는지 깨어진 머리에 선혈이 낭자했다.
“호, 호기야…….”
죽음의 그림자가 장 노인을 가득 덮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자꾸만 잠기어 감에 호기의 눈에서는 눈물이 더욱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 도대체 누가!”
이미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음에도 호기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 채 아버지의 얼굴만 뚫어져라 쏘아보고 있었다.
“……호기야.”
“아버지!”
장 노인은 의식을 잃어 가는 이 순간에도 호기의 주위로 다가온 사내들로 인해 마음이 불안했다.
저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몸으로 겪어 보았으니 불안한 마음에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도망쳐야 한다. 빨리 도망치거라.”
“아버지! 누가 이렇게!”
호기의 비명 소리를 타고 일원대의 대주 곡칠의 빈정거림이 들렸다.
“네가 호기라는 놈이군.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만 말하면 네놈과 네 아비는 살려 주마.”
하지만 곡칠의 말이 호기의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개새끼들!”
호기의 몸이 곡칠을 향해 쏘아져 갔다.
수적들을 상대하며 익혔던 전투 감각과 무혼에게 배운 무공에 대한 것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분노는 그 모든 것을 지워지게 만들었고 장호기의 머릿속에는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 이외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호기의 주먹이 곡칠의 목을 노렸다.
일권에 상대를 죽여 버리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호기의 주먹보다 빠른 것은 곡칠의 발길질이었다.
퍽!
곡칠의 발끝이 호기의 명치를 찍는 순간 호기의 등이 새우처럼 꺾였다.
“크헉!”
“애비나 자식이나 상황 파악 못하는 것은 똑같군.”
손에 들린 명천진경을 품에 넣으며 곡칠이 수하를 불렀다.
“적추!”
“예.”
일원대의 대원들 중 적추라는 사내가 곡칠의 부름에 앞으로 나섰다.
“반쯤 죽여 놔!”
“예.”
그때부터 장호기에게 시작된 것은 고통이었다.
아버지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에 정신적 공황에 빠진 상태에서도 느낄 만큼 엄청난 고통이 다가들었다.
“크아악!”
한 방, 그리고 또 한 방.
적추라 불린 자는 사람이 기절하지 않고 고통을 느끼는 부분을 모두 파악하고 그것을 위해 별도의 수련을 한 듯했다.
그의 주먹이 장호기의 몸을 파고들 때마다 호기의 비명이 주명산을 메아리쳤다.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호기는 왜 아버지의 비명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그것이 의아했다.
왜일까?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 감에도 불구하고 그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통보다 의문이 더 커져 갈 무렵, 장호기는 아버지가 비명을 지르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두려웠던 것이다.
자신의 고통이나 죽음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고 자신의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올 아들이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
자신이 죽음에 이르더라도 비명을 질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 그것이 이유였다.
악다문 입술 사이로 선혈이 흘러내리고,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의 주먹에 의한 눈물이 아니라 아버지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지 그것에 대한 눈물이었다.
“크아아아아!”
장호기는 두 가지의 고통을 울부짖음으로 토해 냈다.
“그래, 비명을 질러야지. 더 크게, 주명산의 골짜기까지 모두 들리게 비명을 질러라!”
곡칠은 장호기가 비명을 더욱 질러 대기를 바랐다.
보기당 일원대의 대주 곡칠이 오늘날 그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치밀함이었다.
만일 그가 사냥꾼 노인의 집에서 다른 이의 흔적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장 노인을 저토록 심하게 다루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또 다른 식구가 있음을 흔적으로 확인한 곡칠은 잔인한 손속을 사용하였다.
물론 그때까지 이제는 사냥도 하지 못할 만큼 늙어 버린 노인이 저토록 버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장 노인이 고통을 무릅쓰고 버팀으로써 곡칠의 생각은 더욱 확연해졌다. 오극을 만신창이로 만든 그놈과 필히 연관이 있는 이라는 것을.
‘나타나거라. 네놈 때문에 사람이 죽어 가고 있지 않느냐.’
어둠 속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는 곡칠의 비릿한 웃음이 달빛에 비쳐 선명해 보였다.
“크아아아악!”
다시 한 번 장호기의 비명이 주명산을 울렸다.
비명 속에 담긴 비통함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호기를 고문하고 있는 적추의 간담까지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 정도 소리에 달려오지 않는 것을 보면 저 노인이 말한 대로 이미 떠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적추의 말에 곡칠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일그러졌다.
“짜증나는군. 저놈들을 데리고 와!”
곡칠의 명을 받은 적추는 바닥을 뒹굴고 있는 장호기를 일으켜 곡칠 앞에 무릎을 꿇렸다.
“말하도록! 그렇지 않으면 네 아비를 죽이겠다.”
곡칠의 일갈과 동시에 적추의 검첨이 쓰려져 있는 아버지의 가슴에 올려지는 것이 보였다.
“안 돼!”
제5장 나를 부른 것은 너희들이 아닌가
쏴아아아!
피분수가 쏘아져 오르면서 일어나는 소리는 마치 한여름의 소나기 같은 소리를 만들어 냈고,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은 곡칠이 아끼는 수하인 적추의 머리였다.
적추는 어떻게 자신이 죽음에 이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무엇인가 자신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낀 것,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런!”
곡칠이 놀란 것은 적추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수하의 죽음보다 그를 두렵게 한 것은 적추의 목이 잘려 허공에 떠오를 때까지 상대의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고수다!’
곡칠이 상황을 판단하고 도파를 손에 쥐는 동안, 무혼의 검에 수하 세 명의 가슴이 갈라졌다.
순식간에 세 개의 피분수가 허공에 피어나고, 곡칠을 포함한 남은 일원대 대원들의 몸이 얼어붙었다.
상대는 더 이상 검세를 펼치지 않았다.
좌중을 한번 둘러보고는 몸을 돌려 묶여 있는 장 노인의 몸을 살펴보며 급히 점혈을 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네 명의 수하를 죽이고 자신에게 등까지 내보이는 상대에 믿기 어려운 두려움이 몰려왔다.
곡칠은 자신의 도파를 더욱 말아 쥐었다.
기습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지 않으면 얼어붙은 몸이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장 노인의 호흡을 확인하고 다시 천천히 일어나는 무혼의 모습이 느리게만 느껴졌다.
곡칠이 곧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는 일갈을 토해 냈다.
“쳐라!”
그가 이러할진대 수하들이라고 별다를 바는 없었다.
곡칠의 명에 정신을 차린 일원대 대원들이 무혼을 향해 쏘아져 갔다.
자신들의 무위와 숫자라면 저 한 명 당하지 못하겠냐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허망한 몸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촌각도 걸리지 않았다.
쿠릉.
검명이 일고 일검이 펼쳐졌다.
무혼의 검에서는 섬전이 일었다.
그 섬전이 스쳐 지나가고 남은 것은 싸늘한 동료의 시신뿐. 자신들이 상대할 이가 아니라고 판단을 했을 때에는 이미 명부에 이름을 적고 난 뒤였다.
복건성 최대의 세력 중 하나인 보기당.
그곳에서도 정예라 할 수 있는 일원대 대원들의 무위가 결코 가벼울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무혼을 상대할 때는 어떤 의미도 주지 못했다.
일원대의 대원들 중 단 한 명도 도세를 펼친 이는 없었다.
“크으윽!”
마지막 남은 대원 하나가 비명을 토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고통의 몸부림은 없었다.
고통을 느끼기 무섭게 숨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일다경, 아니 촌각의 시간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시간에 일원대의 모든 대원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 모습을 보는 곡칠의 눈이 벌어졌다.
상대는 검귀였다. 그것도 상대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잔인한 검귀.
도파를 잡은 곡칠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상대는 수하들의 가슴을 가르고 목을 베어 숨통을 끊어 놓으면서도 표정에 변화 하나 일지 않았고, 그 모습은 귀기스럽기까지 했다.
곡칠은 도파를 잡은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굳세게 말아 쥐었다.
한 걸음씩 걸어오는 무혼의 모습에 곡칠이 자신이 알고 있는 최상의 도세를 펼치려 했다.
“헉!”
하지만 손목을 움직이기도 전에 비명을 먼저 토해 내어야 했다.
치가 떨릴 만큼 지독한 쾌검.
검 끝에 어린 기운이 곡칠의 목젖을 찔렀다.
상대가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움직임에도 저승의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 곡칠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이유는?”
생기 하나 존재하지 않는 삭막한 목소리에 곡칠의 어깨가 흔들렸다.
짧은 물음이었지만 검만큼이나 두려운 목소리였다.
무혼의 물음에 곡칠은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질문은 자신이 하고 대답은 상대가 해야 했다. 그렇기에 상대의 물음도, 그 대답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놈 때문인가?”
이어지는 무혼의 물음에 곡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혼의 검첨이 그의 목을 찔렀지만 그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에 휩싸인 곡칠이었다.
일원대의 대주로 보기당에서도 높은 서열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이 단 일도도 펼쳐 보지 못한 것은 충분히 넋이 나가도록 만들 만한 일이었다.
“너희들이 누구든 오늘의 대가는 치를 것이다.”
그 말과 동시에 무혼의 검이 스쳐 지나갔다.
“크윽!”
피보라가 일고 바닥으로 떨어진 곡칠의 팔은 물 밖으로 뛰쳐나온 생선처럼 바닥에서 펄떡거리면서도 도를 놓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