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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절무제
작가 : 서현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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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1,070     추천 : 0     분량 : 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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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장

 

 

 

 방립.

 챙이 넓은 방립을 쓴 사내가 손끝으로 방립의 챙을 올리며 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이 똬리를 튼 형상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기둥.

 그 기둥을 따라 올라가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지붕 아래에 자리한 현판.

 그 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백무련(白武聯).

 이미 구파와 오대세가라 불리는 세가들을 뒷전으로 밀어 놓고 단일 세력으로서 당대 제일의 자리를 확고히 굳힌 곳이 바로 이곳 백무련이었다.

 현 백무련의 련주이자 사마세가의 가주인 사마군이 이끌고 있는 백무련.

 그 현판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사내가 천천히 백무련의 담벼락을 따라 걸었다.

 한편으론 공허해 보이기까지 한 모습.

 그저 유유자적하며 걷고 있는 사내의 모습은 여유롭기만 했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걸음.

 태양이 기울어 있을 때 움직이기 시작한 그의 걸음은 석양이 밀려올 때쯤에서야 다시 백무련의 현판 아래로 그를 데려다 놓았다.

 사내의 걸음이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백무련의 규모가 얼마나 방대한지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사내는 다시 현판을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그 행동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

 한참이나 현판을 주시하던 사내가 다시 발걸음을 움직였다.

 이제야 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인가?

 사내가 처음으로 백무련의 문 앞으로 다가갔다.

 천천히 올라가는 사내의 손.

 말아 쥐지 않은 손바닥이 백무련의 정문에 닿았다.

 아주 천천히.

 크릉.

 곁에 있지 않다면 듣기조차 어려울 미성이 사내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왔다.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

 사내는 마치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몸을 돌렸다.

 백무련을 등지고 걸어가는 사내의 귓전으로 크지 않은 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크러렁.

 사내의 손이 닿은 문은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 소리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사마세가의 문과 연결된 담벼락에 균열이 일었다.

 쩌저적!

 한번 균열이 일기 시작하자 그 균열은 섬전보다 빠른 속도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사내가 두 시진 가까이 걸어왔던 백무련의 모든 담벼락에 균열이 생기자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쿠쿵.

 쿠쿠쿠쿠쿵! 콰콰콰쾅!

 거대한 장원을 둘러싼 담장.

 그 담장에 균열이 일고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채 반각도 걸리지 않았다.

 지진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일이 생겨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장원의 내부에 있는 전각은?

 전각은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기에 지진이라고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백무련에서 점점 멀어지는 사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를 흘려 내었다.

 “백무련, 너희들의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지막한 그 목소리를 들은 것인가?

 콰쾅!

 굉음이 일고 용 문양이 그려져 있던 백무련의 두 기둥과 현판이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제1장 한 방울의 눈물이 과거를 깨우고

 

 

 

 복건성 혜안.

 대륙으로 공급되는 소금의 삼 할은 이곳 혜안에서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염전이 자리한 지역이 혜안이었다.

 어디 소금뿐이던가?

 각종 수산물의 원산지인 이곳은 어느 곳보다 대륙의 각 지역에서 상인들의 출입이 잦았다.

 먼 길을 떠나기 전이나 먼 길을 걸어 이곳 복건성 혜안에 당도한 이들은 술을 마시고 여자를 품을 수 있는 기루를 찾기 마련이었다.

 수요가 많은 만큼 제공이 따르니 자연히 혜안에는 많은 기루들이 생겨났고 그중에는 꽤 먼 지역에까지 알려진 기루들도 있었다.

 화옥루(華屋樓).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혜안에서는 이름난 명소 중의 명소가 바로 이곳 화옥루였다.

 청등이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기예를 파는 청루임에 분명했다. 기녀들이 몸을 팔지 않고 기예만 팔면 상인들에게 큰 흥미를 주지 못했다.

 여인의 몸을 품고 싶은 것이지, 음률이나 듣고 기예를 관람하는 것은 상인들에게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안에 당도한 상인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이곳 화옥루를 찾았다.

 홍루가 아닌 청루.

 기예를 파는 화옥루에 상인들이 찾아 들어오는 이유는 한 명의 기녀 때문이었다.

 비연(比淵).

 그녀는 이곳 화옥루의 기녀였다.

 누구라도 그녀의 미모를 본다면 가히 천상선녀의 강림이라 생각할 정도의 미색이었다.

 또한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왜 청루인 이곳에 그토록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술자리를 하려는지 확연히 알 수가 있을 것이었다.

 그런 비연은 지금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눈은 그녀의 외모 중에서도 과연 백미(白眉)였다.

 지금 그녀의 눈에 담긴 빛이 욕정이었다면 어떤 사내도 무너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 비연.

 오 년 가까이 눈 한 번 내리지 않았던 이곳 남부 지방이었지만, 그 눈의 아름다움을 대신할 여인이 혜안현에는 존재했다.

 비연은 술자리를 앞에 두고 잠든 사내의 얼굴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닮았어.’

 이 사내는 비연 자신이 알고 있는 그와 무척이나 많이 닮았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

 그 남자의 이름도, 그 남자가 어디에 있는지도 비연은 알지 못했다.

 잃어버린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 남자.

 단지 꿈에서만 한 번씩 만나고 정인처럼 느껴지는 그 남자가 지금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이 남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사내는 꿈을 꾸고 있었다.

 식은땀까지 흘려 가며 꿈을 꾸고 있는 사내를 비연은 깨우고 싶지 않았다.

 꿈에서 깨어나면 또 말없이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기 때문이다.

 간간이 신음을 지르는 사내.

 비연은 가능하기만 하다면 그 꿈속으로 자신이 들어가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

 

 호남의 동정호를 기반으로 호남성 패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교룡수채(蛟龍水寨)의 채주 모원영은 자신 앞에 서 있는 사내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봉문이 아니면 멸문이라. 어느 것도 선택할 것이 없군.”

 평소라면 이미 상대의 목을 베고도 남았을 모원영이었지만 그의 녹록지 않은 경험은 상대가 그리 만만한 자가 아니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교룡수채의 채주 모원영.

 그가 교룡수채를 오늘날 이 자리까지 끌어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비록 강력한 문파와 세가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교룡수채가 호남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였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가진 힘이 미약한 것은 아니었다.

 모원영의 무위가 호남에서는 손에 꼽힐 정도였고, 또한 교룡수채는 밑바탕부터 건실하게 기반을 다져 둔 곳이었다.

 그런 교룡수채에 단신으로 찾아든 사내라면 그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부터 급성장하기 시작한 사마세가가 백무련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다.

 물론 백무련과 교룡수채의 반목은 당연한 일이었고, 최근 심상치 않은 백무련의 움직임으로 인해 긴장을 가득 품고 있는 모원영이었다.

 그러했기에 사마세가가 어떤 암계를 사용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동안 사마세가의 행동에 비추어 보아 또 다른 세력을 둘 사이의 전쟁에 끼워 넣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사마세가에서 보냈더냐!”

 모원영의 물음에 사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봉문이 낫겠소. 굳이 원한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

 “감히!”

 일갈과 동시에 모원영의 강도(鋼刀)가 허공을 베었고, 그 속도만큼이나 빨리 사내의 검 끝에 달린 수실이 허공에 검명을 토해 내었다.

 두 시진 후.

 동정호 일대의 패자였던 교룡수채가 화염에 휩싸이고 있을 때, 한 사내가 나룻배에 몸을 실었다.

 사내의 어깨에는 긴 혈선이 그어져 있고 그 사이로 피가 적잖이 흐르고 있었지만 사내는 그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

 그곳에는 세상을 덮을 듯 화염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마치 과거를 떨쳐 버리려는 듯 몸을 돌리는 사내의 손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호패가 동정호의 수면 위로 떨어져 내렸다.

 

 금무혼(錦舞魂)

 

 호패에 적혀 있는 금무혼이라는 이름 위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사내는 그 얼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곧 동정호의 물결 속으로 사내가 빨려 들어갔다.

 

 “헉!”

 사내가 악몽을 꾼 듯 눈을 떴다.

 잠들면 늘 꾸는 꿈.

 오늘도 여전히 그 꿈을 꾸었다.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 했던 그때, 동정호의 물결 위로 흘러가던 자신의 호패와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이 자꾸만 겹치는 것이었다.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들이켰다.

 탁!

 유난히 청옥을 좋아하는 이 사내는 죽엽청을 늘 청옥으로 만든 잔에 담아 마셨다.

 그렇게 한 잔.

 그리고 곧 한 병이 비워지고 또 한 병이 비워졌다.

 비워진 술병이 탁자 주위에 가득했지만 사내는 그칠 줄 몰랐고, 그 모습을 보는 비연의 눈에는 걱정의 빛이 묻어났다.

 “가가, 과하십니다.”

 비연은 사내를 가가라 불렀다.

 이름도 모르는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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