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칠절무제
작가 : 서현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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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567     추천 : 0     분량 : 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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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마치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장 노인의 모습이 의아해 무혼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수적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픈가 봐. 나 같은 노인까지도 끌어들이는 것을 보니.”

 “수적이라니요?”

 “자네야 늘 이곳에 있으니 모르겠지만 요즘 혜안은 난리가 아니라네. 수적 놈들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니 새로 부임한 도지휘사사가 관병으로도 모자라 징용까지 해 가며 수적들을 토벌하려고 나섰다네.”

 수적이라면 나라에서도 골치 아픈 존재임이 분명했다.

 특히 복건성 인근 해안(海岸)의 중요성으로 따진다면 관리의 선택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나야 그렇다 치지만 아들놈이 걱정이야.”

 장 노인은 무엇보다 자신과 함께 징용된 아들이 걱정이었다.

 늘그막에 얻어 애지중지하는 그의 아들은 무혼도 꽤 아끼는 청년이었다.

 아버지를 닮아 얼굴의 선이 뚜렷하고 호목(虎目)을 가진 것이 사내로서 매력이 물씬 풍겨 나는 장부였지만 장 노인에게는 아직 어린아이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자를 동시에 징용하다니요. 처사에 문제가 있는 것 같군요.”

 무혼은 내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관병의 수가 모자라 징용을 한다지만 부자를 동시에 끌어다가 전투에 투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있는 집안의 놈들이 자식들을 내어 놓지 않고 그것으로 배를 채우는 놈들이 있으니 수를 채우려면 그리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 말에 무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 지금이나 가진 것이 있는 집안에서 그런 위험한 전투에 자신의 자식들이 징용이 되도록 두고 볼 리는 만무하였다.

 장 노인의 푸념 섞인 말이 혜안현과 당금의 세태를 잘 알려 주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자식을 걱정하는 장 노인을 바라보던 무혼이 말문을 열었다.

 “내려가시면 호기를 이곳으로 올려 보내십시오.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좀 전해 주겠습니다.”

 무혼의 말에 장 노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비록 무림과 무림인에 관해 자세히 아는 바가 없다고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치는 무혼은 여느 사람과는 분명히 달랐다.

 십여 년 전 자신이 중년의 나이일 때 보았던 무혼의 외모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그것을 알 수가 있었다.

 무림인들 중 절정의 경지에 이른 이들이 노화가 늦다는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은 적이 있는 장 노인이었기에 무혼이 무엇 하나라도 아들에게 가르쳐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내심 그러한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는데 무혼이 먼저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 주니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고맙네.”

 장 노인이 무혼의 손을 잡았다.

 세월이 만들어 놓은 투박한 노인의 손이었지만 따뜻한 기운이 무혼에게 전해졌다.

 “아닙니다.”

 

 ***

 

 장 노인이 내려간 다음 날, 무혼이 새벽의 연공을 마치고 초옥으로 돌아올 때 장호기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아저씨.”

 무혼을 마주한 장호기가 고개를 숙였다.

 “그래. 우선 앉아라.”

 “예.”

 장호기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주명산의 정상으로 급히 오르는 동안 체온이 내려가지 않아 그러할 수도 있었지만 호기에게는 나름대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네 처지는 이미 알고 있다. 보름이라는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과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 수적들과의 전투에서 그리 쉽게 목숨을 잃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해 보자. 보름이라는 시간이 넉넉한 시간은 아니다.”

 “옛!”

 무혼이 보는 장호기는 아비인 장 노인의 피를 받아 타고난 사냥꾼이었고, 또한 무공을 배운다면 그 성취가 가볍지 않을 청년이었다.

 이미 열여덟이라는 나이에 이르는 동안 주명산을 안방처럼 드나든 장호기의 몸놀림은 무림인이라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빠르기였다.

 자신이 찍어 둔 발자국을 따라 몸을 움직이는 장호기를 보며 무혼은 십여 년간 가장 많은 말을 한 날이 오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호기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무혼이 장호기를 불렀다.

 장호기의 움직임이 빠르기는 하지만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 하고 이리 와 보거라.”

 “예.”

 장호기는 급히 발을 멈추고는 무혼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사냥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무림을 동경하는 장호기는 이미 아버지로부터 무혼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무혼을 아저씨라 부르며 아버지가 이곳 초옥에 이를 때 함께 온 적이 적지 않았지만, 그가 무림인이라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지 아버지가 좋아하는 아저씨 정도로 호기는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무혼의 모습은 가끔씩 볼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평소에 말이 없던 그가 많은 말을 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몸에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열정과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발자국을 다시 보거라. 중요한 것은 그 발자국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방향과 깊이를 통한 힘의 배분이다. 걸음을 걸을 때 발바닥의 어느 부위에 가장 많은 힘이 들어가는지 생각해 보고 저 발자국을 다시 보거라.”

 “알겠습니다.”

 장호기는 두 시진 가까이 자신이 밟아 왔던 발자국을 다시 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깊은 발자국을 만들 수 있을까?’

 호기는 무혼의 말처럼 발자국의 방향이나 힘의 배분을 생각하기 전에 인간의 힘으로 저리 발자국을 내어 놓는다는 것이 더 신기할 뿐이었다.

 마치 비에 젖은 바닥을 밟아 놓은 것처럼 뚜렷이 찍혀 있는 모양은 장호기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앞으로 보름.

 보름 후면 관병들과 함께 배에 올라 수적과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 했다.

 그런 그에게 지금 이와 같은 호기심은 사치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다시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이나 유심히 바라보던 첫 번째 발자국을 장호기가 밟았고, 그와 동시에 호기의 몸이 좌측으로 쏠렸다.

 좌측으로 몸이 쏠린다는 것은 깊이에 맞는 움직임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빠르군.’

 무혼은 호기가 타고난 무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여덟은 무공을 배우기에는 이미 늦은 나이라 할 수 있었다.

 근골이 굳어 버렸고 내력을 익히기에도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호기는 주명산에서의 삶 때문인지 몸이 유연하였고, 그 움직임도 상당히 감각적이었다.

 조금 더 일찍 무공을 접했더라면 일류에 이를 무공을 수련하기도 어렵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호기를 바라보던 무혼은 문득 그 옛날 아우들과 함께 지금과 같은 보법을 수련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랬다.

 처음부터 힘의 배분이나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면 당시 아우들은 더 빨리 보법을 익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혼은 처음부터 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스스로 이해하는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가늠을 하는 것이 무혼이 상대의 자질을 알아보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자질을 가늠하고 그에 맞는 수련 방식을 택해 주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 옛날 아우들이 그러했듯 장호기도 마찬가지였다.

 자질을 가늠해야만 보름 동안 그를 실용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헉헉!”

 장호기의 거친 숨소리가 무혼의 상념을 깨트렸다.

 “조금 쉬었다 하거라.”

 “예.”

 모든 무공에는 기초가 중요하다는 것을 무혼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혼은 지금 기초가 아닌 암투무영(暗鬪無影)이라는 꽤 고절한 보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궁보나 상보 등과 같은 기본의 보법을 익혀 근력을 기르지 않은 장호기에게 암투무영을 가르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보름은 기초부터 하나하나 다져 나갈 만큼 여유로운 시간이 아니었다.

 보름 동안 장호기에게 절정의 무공의 기초를 닦아 주는 게 아니라 최소한 상대의 병기에서 몸을 빼내어 상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야 했다.

 만약 장 노인이 아니었다면 장호기를 가르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 복건성에 닿아 주명산에 오르고 십여 년간 인간관계를 맺어 온 장 노인의 바람을 알고 있는 무혼이었다.

 그러했기에 장 노인이 말을 꺼내기 전 무혼이 먼저 제안을 한 것이었다.

 사람을 사귀지 않되 최소한 인연이 닿은 사람의 바람은 다시 저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 무혼의 마음이었다.

 “궁보라는 것이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궁보야말로 무공을 배우는 이가 가장 먼저 익혀야 할 보법이다. 수적들은 검보다는 중병인 도를 선호한다. 특히 내려치는 도의 힘이 너의 무기를 자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충격만으로도 흔들릴 수가 있다. 상단에서 내려치는 도를 막을 때 충격을 줄이고 도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세가 바로 궁보다.”

 “예.”

 “암투무영보다 이것을 먼저 수련하는 것이 순서에 맞지만 난 암투무영을 너에게 먼저 가르쳤다. 궁보나 상보와 같은 기본자세들은 너 혼자서도 얼마든지 수련이 가능하니 집에 당도하면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마라.”

 “예.”

 “우선 자세를 취해 보거라. 자세를 보아 주마.”

 “예.”

 대답과 함께 장호기가 궁보의 자세를 취하였다.

 그렇게 반 시진.

 주명산의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단련된 장호기의 다리였지만 궁보의 자세로 반 시진이 넘어가자 그의 다리는 바람 만난 갈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의 해가 저물고 첫날의 수련이 끝나 가고 있었다.

 

 

 제2장 네가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간은 오묘하다.

 일각도 여삼추와 같이 길게 느껴지는 것이 시간인가 하면 열흘이란 시간이 바람처럼 지나갈 때도 있는 법이었다.

 지금 장호기에게 지난 열흘은 바람보다 더 빨리 지나간 시간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무림에 대한 동경이 존재했고 또한 절정에 이른 무인인 무혼에게 지도를 받는다는 것이 그 시간이 더욱 빠르게 가고 있음을 느끼게 만들었다.

 오 일 후면 징병이 된다는 사실에 조급한 마음이 한몫하기도 했다.

 무혼은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남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보았다.

 한시라도 수련에 박차를 가해야 할 장호기였지만 먹지 않고 수련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무혼은 직접 요리를 만들어 장호기를 살피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무혼은 굵지 않은 몽둥이 하나를 손에 들었다.

 “준비되었나?”

 “예.”

 장호기의 대답과 동시에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 일었다.

 후웅!

 무혼의 손에 쥐어진 몽둥이가 하늘을 향해 평으로 치켜든 장호기의 봉을 내리쳤다.

 딱!

 힘을 이기지 못한 호기의 두 팔이 잠시 굽혀졌다가 다시 펴지기도 전에 다시 한 번 더 내리쳤다.

 딱!

 ‘윽!’

 양팔의 관절을 통해 밀려드는 고통에 장호기가 내심 침음성을 만들어 내고 있을 때 무혼의 목도가 허리를 베어 들었다.

 후웅!

 생각지 못한 무혼의 공격에 장호기의 눈이 치켜떠지고, 급히 몸을 뒤로 움직이려 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허리에 닿기 전에 멈추어진 목도를 보고 장호기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는 동안 무혼의 말이 이어졌다.

 “머리를 노린 후 허리를 노리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초식이다. 한 번의 공방으로 인한 충격으로 너는 암투무영의 수법을 잊어버렸어. 지금은 연습이라 그렇다 하지만 수적들과의 싸움이었다면 이미 너는 싸늘한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입이 아닌 몸으로 말하도록.”

 무혼은 차디찬 겨울의 북풍과 같은 싸늘한 한 마디를 뱉고는 몸을 돌려 초옥으로 향했다.

 그의 뒤로 깊게 읍을 한 장호기는 다시 봉을 꽉 말아 쥐었다. 벌써 열흘을 연습하였지만 이어지는 공격을 대비하는 것에는 많은 허점이 있었다.

 ‘아버지를 지키고 내가 죽지 않으려면 연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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