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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 나에게 온 달
작가 : KISS
작품등록일 : 20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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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난, 나에게 넌
작성일 : 17-06-07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5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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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년 전, 한(翰)국.

  휘이익, 빗나간 화살이 나무에 박혔다. 사슴이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렸지만, 빗자루에 탄 채, 하늘을 날고 있는 그들을 찾을 리 만무했다.

  “진짜 안 들키는 거 맞지?”

  “보면 몰라. 사슴이 안 도망갔잖아.”

  “오케이. 그럼 이번에야 말로 확실히!!”

  “야, 웃기지 마. 넌 다 쐈으니까, 이젠 내 차례야.”

  해랑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코웃음을 친 주 선은 다시 한 번 사슴을 향해 활시위를 겨눴다.

  그리고는,

 

  휘이익 퍽!!

 

  망설임 없이 화살을 날렸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던 화살은 목표물에 다다르지 못 하고 땅바닥에 박혔다.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한 눈동자에는 경계심이 어려 있었다.

  “넌 그거 하나 못 맞히냐? 무술 이런 거에는 하나도 소질 없구나.”

  “아버지랑 연습할 때는 잘만 맞췄어. 내가 아버질 이겼다고.”

  “그럼 지금은 왜 그러는 데?”

  “....”

  몰라서 묻나.

  주 선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였는지, 해랑과 같이 있으면 자꾸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뛰었다. 자신의 허리를 붙잡고 있는 그녀의 손길이 신경 쓰여서 사슴 따위한테 집중하지 못 했다. 억울한 것은,

  “야, 이제 내가 쏜다?”

  나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는 말이지. 해랑을 곁눈질했지만, 그녀는 오롯이 사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쳇, 뭐야. 진짜. 그가 속으로 투덜거리는 사이, 해랑은 활시위를 당겼다. 퍽!! 소리와 함께 사슴이 쓰러졌다. 해랑이 쏜 화살은 정확하게 머리를 꿰뚫었다.

  “봤어?! 내가 사슴 잡았...!!”

  소리를 치며 옆을 바라 본 해랑의 눈동자가 커졌다. 눈앞에 주 선의 얼굴이 있었다. 얼마나 가까웠는지, 높게 뻗은 콧대와 긴 속눈썹, 연갈색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사슴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데 나한테도 집중 좀 해 주라. 응?”

  “....”

  “알았지?”

  나른하면서도 섹시한 목소리와 함께, 주 선의 숨결이 뺨에 닿자 얼굴이 빨개진 해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

 

  21세기 한국.

  침대에 누워 있던 솔라는 눈을 번쩍 떴다. 주 선과 똑 닮은 놈을 만나서 그랬던 것일까. 모처럼 1000년 전의 꿈을 꿨다. 인간과 마녀가 서로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서로 친하게 지냈던 그 시절 말이다.

  하품을 하면서 침대에서 빠져나오려는데,

  “거기서 뭐하냐?”

  도둑 고양이마냥 자신의 지갑에 손 대고 있는 선영을 발견했다.

  “어? 그게...”

  솔라가 이렇게나 일찍 일어날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던 선영이 식은땀을 흘렸다. 하필이면 현장에서 딱 걸리는 바람에 뭐라고 변명을 해도 먹힐 것 같지 않았다.

  “너 진짜 죽을래? 왜 남의 지갑에 손을 대?!”

  싱긋,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표정과 달리 어조는 싸늘했고,

  “아악!!! 할머니!!! 마녀가 나 죽여!!!”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선영이 빼액— 비명을 질렀다.

 .

 .

 .

  “선영인 학교 갔나?”

  한바탕 소란이 있고 난 후, 1층으로 내려 온 솔라가 자수를 뜨고 있는 유 노인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네, 잔뜩 삐져서 갔습니다.”

  “삐지긴 왜 삐져. 그게 자기 돈도 아니고.”

  “오히려 솔라 님이 속 좁다고 그럴걸요. 지금 있는 돈만 가지고도 평생을 먹고 살 텐데, 또 일 하러 다니잖아요. 그 정도 쓰는 거는 괜찮다고 여기는 거 같아요.”

  “괜찮긴 개뿔. 걔가 쓰는 돈의 액수를 몰라서 그래.”

  안경을 벗은 유 노인은 투정을 부리는 어린 손녀를 바라보듯이 솔라를 쳐다봤다.

  “왜? 너도 내가 속 좁게 군다고 생각해?”

  “전혀요. 오히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라 님이 아니었다면 저나 선영이는 없었을 테니까요. 이 집에서 살게 해 주시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건 내가 너희한테 고마워해야지. 구루마들이나 다른 마녀들한테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100년 주기로 죽었다, 환생해야 하는데 그 때마다 집 관리를 해 준 건 너희들이잖아.”

  “....”

  “그건 정말 고맙게 생각해. 진심이야.”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꺼내기 껄끄러운 주제인 듯 유 노인은 망설였다.

  “아직도 약 드시고 주무세요?”

  “....”

  수없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반복하면서 솔라는, 본인이 일반적인 리본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본이라고 해도 머리가 날아가거나, 심장이 부서지면 완전한 즉사다. 수백 번, 아니 어쩌면 수천 번일지도 모르는 상황을 겪으면서 알게 되자, 찾아온 것은 불면증이었다. 자려고 눕기만 하면 전생의 기억들이 썰물처럼 몰려왔고, 억지로 자기 위해서는 수면제 복용이 필수였다.

  전생이라도 잊혀 진다면 좋으련만, 과거의 기억들은 항상 그녀의 숨통을 조여 왔다. 때문에 솔라는 항상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친한 듯 보여도 상처 받지 않을 정도의 선을 유지했다. 그래야 견딜 수 있으니까. 남겨진 쪽이 힘들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응”

  “힘들진 않으세요?”

  “딱히.”

  유 노인은 알고 있었다. 힘들거나 불편한 상황일수록 솔라의 대답은 단답 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디 가세요?”

  “볼 일이 생각났어.”

  환히 웃는 것을 말이다.

 

 *

 

  솔라가 마녀가 아닌 구루마였다면, 적성에 딱 맞는 직업은 카레이서였을 것이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비행을 하던지 맞은편에서 오던 마녀들이 죄다 비켜 지나갔다.

  전부터 있었던 유일한 취미였다. 답답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속이 뻥 뚫릴 때까지 미친 듯이 날아다녔다. 그러다보면 그녀를 옥죄고 있던 전생들까지 전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아서 조금이나마 기분이 상쾌해진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 그나마 좋아진 것은 빽빽이 세워 진 빌딩과 아파트들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어찌나 스릴 있던지.

  본격적으로 비행을 시작하려는 찰나, 또 보였다. 그 녀석이었다.

  『그 마녀 진짜 예뻤는데에..』

  얼마나 술을 마신 것인지 혀가 제법 꼬여 있었고,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이러다 사고 날라, 솔라는 고개를 휘휘 저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리는 잔상을 내몰았다.

 .

 .

 .

 

  이자카야.

  이상했다. 호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기역(ㄱ)자로 구부러진 바의 끝에 앉아 있는 라휘를 바라봤다. 주문한 메뉴는 새우튀김과 맥주 한 병. 어쩐 일로 저 놈이 술을 먹는 건지.

  라휘는 술이라면 입에 대지도 않는다. ‘술’ 이라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쪽에 가까웠다. 시끄러운 술집 분위기를 선호하는 편도 아니었고, 알딸딸하게 들뜨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교 시절, 술과 여자라면 환장하는 남자 동기들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지적인 느낌의 카페를 좋아하는데다가,

  ‘스트레스 같은 거 어떻게 풀어?’

  ‘운동하면 되잖아.’

  심하게 건전하기까지 한 그는 별종으로 불렸었다.

  “히끅.”

  그러나 지금 눈이 반쯤 풀려 술잔을 잡으려다가 엎어버린 후,

  “너어, 그거 아냐? 내가 마녀를 봤어.”

  새우튀김을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

  “왜 대답을 안 해애!! 내애가 마녀를 봤다니까!!”

  새우튀김이니, 대답이 없는 것이 당연했지만 맥주 한 잔에 꽐라가 되어버린 라휘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었다. 급기야 젓가락을 들고 “얼른 대답 하란 말야.” 라면서 새우튀김을 쑤셔 대기 시작했다. 아이고, 머리야.

  “야, 저 남자 쫌 귀엽지 않냐?”

  “얼굴은 저만하면 반반하지. 진짜 술 약하다. 한 병도 다 못 마시지 않았냐?”

  “한 병이 뭐야, 한 잔 마시고 저리 된 건데.”

  주변에서는 귀엽다면서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호민이 라휘를 말리려는데,

  “여기 주문 좀 받아주세요.”

  주문이 들어왔다.

  “주문이요.”

  “네, 알겠습니다.”

  라휘를 향한 불안한 시선을 거둔 호민은, 서둘러 주문을 받으러 갔다.

  “내가 마녀를 안다니까.”

  “....”

  “그 마녀 진짜 예뻤는데.”

  라휘는 여전히 새우튀김을 향해 말을 거는 중이었다. 또 보고 싶을 정도로, 라는 뒷말을 내뱉으려는 그때,

  “예쁘다고 해 주니까 고마운데, 새우튀김에 대고 뭐하냐?”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보이는 것은 쇄골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채, 빗자루를 들고 있는 솔라의 모습이 보였다. 또 나타났다. 이거 환영인가? 라휘는 고개를 휘휘 흔들고는,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이번엔 솔라가 두 명으로 보였다. 역시 환영이야. 환영 맞아.

  “환영 아니야.”

  가볍게 이마를 미는 손길이 느껴졌다. 어라? 환영이면 실체가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때? 진짜 맞지?”

  다시 고개를 들자 보이는 것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솔라였다.

  그 질문에는 대답해주지 못 했다.

  “우욱, 우웨웩.”

  입을 떼려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느꼈고, 전부 다 게워내 버렸다.

 

 *

 

  라휘가 정신을 차린 것은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으아악!! 이게 뭐야?!”

  하늘을 날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발밑으로는 건물들과 고층 빌딩, 한적한 도로와 가끔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보였다. 정신을 차린 후, 용케도 떨어지지 않은 것은 사람 형상을 한 무언가를 덥석 끌어안았기 때문이었다.

  “야, 너 뭐하는 거야?!”

  시원한 민트향이 풍겼다.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 자체에 충격을 받은 라휘로써는, 자신이 껴안은 것이 남자인지, 외계인인지, 괴물인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몰라. 안 놔. 못 놔. 놓으면 떨어지잖아. 절대로 안 놓을 거야.”

  “안 떨어져!! 네 허리랑 내 허리랑 묶어놓은 거 안 보이냐? 안 떨어지니까 좀 놓으라고.”

  “어떻게 믿어?! 안 놔, 절대로 못 놔.”

  순간, 빗자루가 크게 출렁이더니 밑으로 뚝 떨어졌다.

  놀란 라휘가 앞에 앉아 있던 솔라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솔라 역시 미칠 노릇이었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 빗자루 운전에 집중해야 할 판인데, 뒤에서는 무섭다면서 껴안고 있으니, 빗자루가 제대로 날아가는 게 신기할 노릇이었다.

  얼마나 꽈악 껴안은 것인지 탄탄한 가슴 근육이 그대로 느껴졌고, 떨리는 숨을 내쉴 때마다 알코올의 잔향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야, 너 진짜 놓을 생각 없냐?”

  “몰라, 무섭다고.”

  얼씨구, 이젠 아예 눈까지 감아 버렸다.

  아랫입술을 짓이긴 솔라는 빗자루 방향을 휙 틀더니, 고층 빌딩건물에 착지했다.

  “내려.”

  실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딱딱한 옥상 바닥이었다. 이에 안도한 라휘가 냉큼 빗자루에서 내렸다. 몸의 떨림이 진정되고 난 후 생기는 의문은,

  “왜 나랑 있냐고 물어보고 싶은 모양인데, 진상 부리는 너를 데려다주겠다고 한 거야. 물론 네 친구한테 허락 받았고.”

  솔라의 말 한마디에 해소되었다.

  “그건 그렇고 진짜 겁 많은 새끼네.”

  “내가 겁 많은 게 아니라, 눈 떴을 때 하늘을 날고 있으면 누구나 그래.”

  “난 안 그러는데.”

  “너랑 나랑 같냐.”

  “그래서 어땠어? 얼결에 하늘을 날아 본 소감은?”

  “끝내줬어.”

  이건 진심이야.

  “또 탈 수 있을까?”

  보고 싶을 것 같다는 속내를 감춘 채, 그렇게 물었다. 그 모습이 마치 1000년 전,

  ‘또 빗자루 탈 건데?’

  ‘너랑 있으면 괜찮아. 뭐든지.’

  주 선을 연상하게 했고, 1000년 만에 처음으로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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