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포효강호
작가 : 조형근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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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765     추천 : 0     분량 : 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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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두툼한 문서를 꺼내 들었다.

 칠사귀의 내력이 적힌 책자로, 그중 추귀에 관한 내력이 적힌 곳을 들춰보았다.

 천귀나 살귀에 대해서는 그들이 받은 임무까지 두루 꿰고 있는 것과는 달리 추귀에 대해서는 선뜻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다른 칠사귀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한 탓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음…… 여기 있군. 추귀, 쫓는 귀신…… 암기를 즐겨 쓰고 임무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을 좋아한다라. 칠사귀 중 무공이 가장 떨어지지만, 임무 수행 능력만큼은 천귀와 살귀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구만. 또 유일하게 마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헌양자는 추귀의 내력을 줄줄 읽어 내려갔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왜?”

 “이틀 전에 마지막으로 복귀한 추귀가 이상한 것을 물어왔답니다. 그의 보고서를 기록하던 귀영(鬼影)에게 말입니다.”

 “…….”

 “공공도 아시겠지만 칠사귀는 자아를 통제당한 상태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의 기억을 제거하고 명령만 듣게끔 새로운 기억을 심어 놓은 자들이지요. 그런데 질문을 해왔습니다. 이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무슨 질문을 했다던가?”

 “자신의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답니다.”

 “고향? 그건 왜?”

 “그것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헌양자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혹시 사술이 깨진 것은 아니냐?”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사기역유상술(邪氣逆幽想術)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검증된 술법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너는 추귀가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아느냐?”

 “소, 소인의 생각입니다만…….”

 조호가 잠시 눈알을 굴리더니 말했다. 모습을 보아하니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는 듯했다.

 “예전부터 봐온 추귀는 다른 칠사귀와는 시작이 조금 달랐습니다. 다른 칠사귀는 임무를 끝내고 나면 무공을 익히는 데 반해 그는 온종일 강가에 앉아 있는가 하면, 산등성이에 올라 하늘을 보며 하루를 보내는 일이 주된 일과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행동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흐음…….”

 헌양자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도 몇 번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

 일곱 명의 사내들을 암동에서 꺼내는 순간부터 그들에게 최고의 비급을 하사했다.

 황실의 최고 비급뿐만 아니라 중원 전역을 뒤져 최고라는 비급을 전부 가지고 왔다.

 칠사귀 중 여섯 명은 망설임 없이 모두 마공을 선택했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생존경쟁을 통해 얻은 지독한 살심(殺心)에 의해 그들 스스로가 마공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추귀는 마공을 버렸다. 사공 같은 강력한 술법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신공 하나만을 택했다.

 그 때문인지 유독 암기 같은 보잘것없는 병기에 아직까지도 매달리고 있는 듯했다.

 “혈승은 어디에 있느냐?”

 “묘사각(墓社閣)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혈승을 불러오너라! 아니다, 내가 직접 가겠다.”

 헌양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꽤나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방을 나가는 그의 걸음은 빨라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큰일 났습니다.”

 한 사내가 들어오며 다급히 외쳤다.

 “무슨 일이냐?”

 “추귀가…… 추귀가 사라졌답니다.”

 

 ***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추귀는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무술을 익히기 전의 기억은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뿌연 안갯속을 거니는 것처럼 사람이 움직이는 형상만 떠오를 뿐, 자세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단서가 될 몇 가지는 또렷이 기억난다는 것이다.

 어릴 적 고향이 항주라는 곳이며, 성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름이 호연이라는 것, 그리고 서화문이라는 낯선 문파의 이름이었다.

 거기에 조금 특별한 기억 하나가 더 있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나타나는, 어떤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기억의 느낌으로는 왠지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듯했다.

 추귀는 알고 싶었다.

 왜 그 여인이 나타날 때마다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인지를.

 가슴 한구석이 꽉 막혀 숨을 쉬기가 거북할 정도의 기분은 대체 무엇인지를 말이다.

 마차를 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자신을 감시하는 귀영이라는 자의 뒤를 캐는 것보다 우선 그 여인을 찾아 이유를 묻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쿵!

 그때였다.

 마차가 흔들리며 추귀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 순간, 마차 안에 있던 네 사람도 제각기 몸을 비틀어댔다.

 “거참. 마부 양반, 격하게도 모는구만.”

 마차 바퀴가 흔들리는 순간 엉덩방아를 찧은 중년인은 인상을 구기며 투덜댔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노인이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동승해서 한 냥이라도 아끼지 않았소.”

 “암만 그래도 그렇지, 이토록 험하게 모는 건 절강을 통틀어 이 마부가 유일할 게요.”

 “그래도 그만큼 시간은 정확하니 뭐라 하기도 좀…….”

 쿵!

 “이런 육시랄!”

 또다시 마차가 심하게 흔들리자 마부의 편을 들던 노인이 곧바로 짜증을 냈다.

 그 모습에 중년인은 이때다 싶어 불평을 마구 쏟아냈다.

 “거, 내 뭐랬소? 지금 마부가 생각 없이 마차를 몰고 있는 거요. 생긴 것도 몰상식하게 보이더니 과연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던 것 같소.”

 중년인은 자신의 말이 맞는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다시 마차가 순탄하게 나아가자 그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댁들은 어디 가는 거유?”

 그 말에 노인이 먼저 말을 받았다.

 “난 보타산(普陀山)에 가오. 관음보살에게 참배를 드릴 때마다 일이 잘 풀려서 말이오.”

 보타산은 항주 외곽에 위치한 군도의 한 작은 섬에 있었다. 이맘때쯤이면 참배객들 때문에 항상 붐비는 곳이었다.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있는 젊은 여인을 향해 물었다.

 “소저는 어디 가시오?”

 “송강(松江)에 갑니다.”

 “송강이라면 항주에 내려서도 백 리를 넘게 가야 하는 곳이 아니요?”

 “예, 부지런히 가야지요.”

 “여인 혼자서 괜찮겠소? 송강부로 가는 길목에는 시비 거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길도 험해 밤에는 아무도 가지 않는다고 들었소.”

 “괜찮습니다. 한 번 가본 길이라서요.”

 “허허허, 그러지 말고 좀 생각해 보시오. 곧 항주에 당도할 터인데 좋은 호위무사가 필요하지 않겠소? 이래봬도 내가 이 근방에서는 이름깨나 있는 사람이오.”

 중년인은 여인이 제법 맘에 들었던지 어깨에 힘을 주며 말을 했다. 덩치도 제법 크고 눈빛도 살아 있어 단순한 허세는 아닌 듯했다.

 여인이 살짝 웃어 보였다.

 “말씀은 고맙지만 괜찮아요. 그리고 저는 배편을 이용할 거라 그리 위험하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중년인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배편이라면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런 곳에서 무슨 일이야 있겠는가.

 더는 말을 붙이기가 미안했는지 중년인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 젊은이는 어디 가는 거유?”

 추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죽립을 눌러쓴 채 그저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처음부터 그랬다.

 항주로 가는 관도를 하루 온종일 내달렸는데도 단 한 마디 입에 올리는 법이 없었다.

 “저기 젊은이, 이렇게 사람이 묻지 않소?”

 “…….”

 “허허허. 거 젊은 사람이 예의가 없군. 이봐, 말 좀 해보시게.”

 거듭 물어보던 중년인의 말투가 조금씩 거칠어졌다.

 사내의 허리춤에 삐져나온 검자루가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좀 전까지 여인 앞에서 힘자랑했던 그였기에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는 추귀에게 팔을 뻗으며 한 번 더 대화를 시도했다.

 그 순간.

 추귀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쓰고 있던 죽립을 벗어들었다. 그리고 매서운 눈으로 중년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헉.”

 중년인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신음을 내뱉었다.

 큰 충격을 받았는지 입을 벌리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추귀의 눈은 보통 사람의 눈과 달랐다.

 동공이 튀어나올 듯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거기에 피부는 불에 그슬린 것처럼 불그스름했고, 볼과 귀밑에 커다란 자상이 나 있었다.

 만약 추귀의 무심한 표정이 아니었다면, 조금이라도 눈을 부라렸다면 맞은편의 중년인은 그 자리에서 분명 심장이 멎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내, 내…… 실, 실수…….”

 중년인은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도 무서웠다.

 놀란 가슴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중년인의 이상한 행동에 마차 안에 있던 여인과 노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따라 죽립의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밖에서 마부의 말이 들려왔다.

 “다 왔소. 내릴 준비들 하시오.”

 

 ***

 

 추귀는 마차에서 내린 뒤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동안 많은 임무를 처리해왔다고 자부했지만, 그것은 대부분 암습이나 기습을 통해서였다.

 그것도 낮이 아닌 한밤중에 말이다.

 그러니 이렇듯 밤도 아닌 낮에, 거기다 사람들로 가득 찬 곳에 서 있자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살기!’

 추귀는 본능적으로 재빨리 건물 사이에 몸을 숨겼다.

 어느새 그의 오른손은 검자루를 잡고 있었고, 왼손은 품속에 들어가 있었다.

 몸을 숨겨 상대의 눈을 속인 뒤 가까이 있는 적은 검으로, 멀리 있는 적은 암기로 상대할 준비를 마쳤다.

 “…….”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다툼이 조금 있는 것 같았지만, 주위는 여전히 평온했다.

 그리고 곧 다툼이 멈추자 살기도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감각.

 추귀의 이런 반응은 극도로 발달된 그의 감각 때문이었다. 그들에 의해 몸이 개조된 이후 그의 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그랬기에 작은 살기에도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을 했던 것이다.

 꼬르륵.

 몇 걸음을 걷던 추귀는 배를 만졌다.

 생각해 보니 이곳으로 오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다.

 오직 물만 마시며 이곳에 온 것이다.

 무엇이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추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구수한 냄새가 흘렀다.

 추귀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

 

 만두를 팔던 아낙네는 눈앞에 다가온 추귀를 보고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죽립을 쓴 추귀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복장이나 분위기가 그러했다. 추귀의 등 뒤로 언뜻 비치는 검자루도 그런 기분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추귀는 여인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무릎을 꿇더니 만두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말릴 새도 없었다.

 수십 개의 만두를 숨 쉴 새도 없이 그 자리에서 단번에 처리해 버렸다.

 삽시간에 수십 개의 만두를 해치운 추귀는 곧바로 뒤돌아섰다.

 “저기, 돈을…… 주, 주셔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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