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포효강호
작가 : 조형근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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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703     추천 : 0     분량 : 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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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화객잔 주인장 유현승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섬뜩했다.

 마치 칼날에 베일 정도였는데, 웬만한 무림고수라 하더라도 쉽게 접근하지 못할 만큼 강렬했다.

 그런 기분을 느꼈는지 영삼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머리를 쑥 집어넣어 가슴에서 바로 얼굴이 나올 것처럼 목이 보이지 않았다.

 “이 병신 같은 녀석!”

 딱-!

 영삼은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다시 몸을 움츠렸다. 무슨 변명을 한다고 해도 오늘 그의 화를 풀기는 어려울 듯했다.

 “그래서, 그놈에게 말도 못 붙였단 말이냐?”

 “주인님도 아시겠지만 보통 사내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묵은 방은 천장이며 바닥이며 벽에까지 구멍이 뚫려 있고, 온통 핏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둠의 세계에 있는 사람이 확실합니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우리도 크게 경을 칠 것이…….”

 쫙-!

 유현승은 또다시 영삼의 뒤통수를 후려치고는 곧바로 큰 소리로 외쳤다.

 “강호 신출내기 주제에 어디서 지레짐작을 해? 네놈은 누가 우리 뒤를 봐주고 있다 생각하느냐?”

 “그야 구, 구용문이지요.”

 “그래. 구용문이다. 구용문이 항주에서 몇 번째로 손꼽히는 문파냐?”

 “못해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든다 했습니다.”

 “그래. 천의문, 서화문과 함께 항주 삼대문파 중 한 곳인 구용문이 우리 뒤를 봐주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고작 낭인 무사 한 명에게 말도 못 붙였단 말이냐?”

 유현승은 곧 영삼이 죄송하다는 말을 할 줄 알았다. 이쯤 했을 때면 항상 자신의 잘못을 고해왔다.

 그런데 영삼은 평소와 다르게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제법 할 말이 있는 듯 열변을 토해냈다.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우리 뒤를 구용문이 봐준다는 얘기는 이 근방에 있는 자들이라면 웬만해선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나온다는 것은 그 사내에게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딱-!

 오늘따라 뒤통수를 많이 맞는 영삼이었다.

 “이놈이 서책을 무지하게 봤군. 일 끝나고 들른다는 그 책방에서 말이야. 대체 어디냐?”

 “예?”

 “그놈이 어디에 있냐고!”

 그 말에 영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시려고요?”

 “당연하지.”

 “아, 안 됩니다. 가면 어르신도 당한다구요. 그놈은 사람이 아닙니다.”

 또다시 손이 날아오려 하자 영삼이 급히 움츠리며 말했다.

 “앞장서거라.”

 “예? 제가요?”

 “정말 죽고 싶으냐?”

 “아, 아닙니다. 가야지요. 예엡.”

 영삼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직까지는 겁을 떨쳐내지 못했는지 따라오는 유현승을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이내 가자미눈을 한 그의 눈과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더니 다시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

 

 추귀는 아교와 교반수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인피면구에 가장 중요한 표피가 없었다. 아직 어떤 표피를 쓸지 정하지 않았기에 구해놓지 않았던 것이다.

 들어오자마자 그는 한쪽 벽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이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자정에 보고하고 장강까지 전력 질주하는 데 이틀이 걸렸다. 마차로 항주까지 도착하는 데 하루, 그리고 이곳에서 하루가 지났다.’

 보고 후 지금까지 소요된 시간은 총 나흘이었다.

 ‘보고가 끝난 다음 날에 내가 사라진 것을 알았을 것이다. 나흘에서 하루를 뺀다. 사흘이다. 그들이 곧바로 대책을 세운 뒤 수하들을 파견하기까지 적어도 반나절이 걸렸을 것이다. 사흘에 반나절을 뺀다. 이틀 반이다. 경신법으로 항주까지 이동하는 데 일류고수라면 보름, 절정이라면 나흘이다. 상대가 절정이라 생각하고 이틀 반나절에서 나흘을 뺀다.’

 하루 반.

 통상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들이 항주에 도착하는 시간은 하루 반이었다.

 물론 칠사귀를 보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이라면 적어도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절대고수라는 천귀나 살귀 정도면 이틀 안에도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추귀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자신에게 변화가 생겼다는 막연한 추측으로 임무 수행 중인 칠사귀까지 파견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여 정상적인 방법으로 보냈을 수하들 수준으로 계산했던 것이다.

 ‘내가 서화문에 잠입하기까지 그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고 보면 된다. 하루 반이란 시간이.’

 쪼르륵-

 추귀는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는 준비해온 두 양동이의 내용물을, 작고 가는 대나무 통에 교반수와 아교를 각각 구분해서 흘려 넣었다.

 그리고 그 끝을 무명천으로 몇 겹으로 동여 감쌌다. 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무언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급히 손을 들어 얼굴을 매만졌다.

 이곳에 온 이후, 처음으로 추귀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드러났다.

 눈.

 인피면구는 눈까지 가리지 못한다. 얼굴 형상만 복원해 낼 뿐, 눈동자는 변화시키지 못한다.

 자신의 눈은 적색이다.

 어떠한 것으로도 변하지 못한다.

 추귀는 급히 탁자 위에 놓인 면경을 바라보았다.

 변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다시 한 번 더 확인해 본 것이다.

 “헉!”

 그 순간 추귀가 신음을 토해냈다.

 눈동자가…… 적색이 아니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새빨갰는데 지금은 달랐다.

 “어찌 된 건가……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추귀는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굵은 상처들이 여기저기 보여 표면상으로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느껴진다.

 변화가 생기고 있다.

 확실하진 않지만 자신의 몸에 작은 변화가 일고 있었다.

 ‘혹시…… 사술이 풀리면서 오는 변화인가?’

 추귀는 한참 동안 고민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살심이 조금 줄어든 정도, 그 이외에는 딱히 추측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는 이내 고민을 거뒀다. 적어도 나쁘지 않은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은 확신했다.

 추귀는 윗옷을 벗었다.

 창가의 빛을 통해 중원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암기들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손가락부터 손등으로 이어지며 팔목을 감싸고 있는 얇은 두 개의 날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자검(刺劍)이었다.

 끝이 뾰족하고 기다란 장침처럼 보였지만 손등에 가려서 언뜻 보기에 반지를 착용한 것처럼 보였다.

 추귀는 암동 안에서 시술을 거친 후 지금까지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 자검은 첫 임무에 성공하고 얻은 암기였다.

 과거 첫 임무를 성공한 칠사귀는 철장로(鐵匠老)라는 노인에게 원하는 병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 받았던 것이다.

 추귀가 왼쪽 팔을 움직였다.

 그러자 팔목에 매어져 있는 세 개의 둥그런 팔찌가 보였다.

 탄혈주(彈血珠)였다.

 이것도 그쯤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추귀는 철장로를 몇 번이고 찾아갔다.

 근거리인 자검과 중거리인 탄혈주의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 또 다른 암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금 어깨에 나선형으로 메어져 있는 원대(圓帶) 안에 박힌 암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세필 굵기의 쇠침으로, 양쪽에 날이 있는 원기둥처럼 생겼다. 이것은 점혈침(點穴針)이라 불리는데, 멀리 있는 상대를 효과적으로 상대하기 위해 만든 병기였다.

 추귀는 길고 가느다란 암기들을 점검하며 마지막으로 복대에 두른 연검처럼 얇은 원반을 쳐다보았다.

 이것은 철장로가 만든 암기가 아니었다. 이것은 임무 수행 중 정말 우연히 얻은 암기였다.

 일 년 전, 사파의 거두라는 흑혈신마를 죽인 적이 있었다.

 당시 흑혈신마라고 하면 중원을 대표하는 사파 고수였는데, 칠사귀 전원이 투입될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다.

 어렵사리 그를 죽일 수 있었고, 그의 거처를 조사하는 와중에 발견한 것이다.

 암기 옆에 써진 글귀 때문에 자신이 집어 들었던 기억이 났다.

 

 암혼탈영표(暗魂奪影鏢)를 다룰 수 있는 자.

 천하 위에 군림할 것이다.

 

 무림인들이라고 해도 암기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한다고 해도 비수나 단검 같은 흔하고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것을 사용한다.

 당문이 주력으로 사용하긴 하지만 추귀같이 독특한 암기를 가지고 돌아다니지 않는다.

 칠사귀는 더욱 그랬다.

 그들은 역시 마공을 대성한 후 다시는 암기에 의존하지 않았다. 검과 도, 그리고 창은 효용성이 크기 때문에 몇 명이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것 이외에는 어떤 무기에도 의존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추귀는 확실히 다른 칠사귀와는 달랐다. 그는 절정에 올라서도 어렸을 때 익혔던 십팔반무예를 잊지 않고 있었다.

 십팔반은 실팔기라고도 불리며 열여덟 가지 병장기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무예는 그 무기를 부리는 기술이란 뜻으로, 하나같이 크고 다루기가 어려운 무기들을 익히는 기술이란 뜻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배운 십팔반무예의 참 뜻은 만병기(萬兵技)를 다룰 수 있는 살인기술이었다.

 병기든 암기든, 무엇이든 살인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십팔반무예였던 것이다.

 추귀가 검 외에 다른 병장기를 들고 있지 않은 것은 바로 이 효용성 때문이었다.

 병장기들은 흔히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손에 맞는 병기를 찾기는 힘들었다.

 추귀는 암기들을 최종 점검하며 잠시 빼두었던 검을 허리에 찼다.

 그러고는 햇살이 은은하게 비치는 창가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최근에 떠오른 기억들이 전부 사실이라고 한다면 언젠가 칠사귀와 부딪치게 될 터였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겠지만 분명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두 손 놓고 당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자신을 이렇게 만든 그들의 얼굴은 보고 죽어야 하니까.

 추귀는 가부좌를 틀었다.

 여의신공.

 애초에 어디서 시작된 무공인지 모른다. 어디로 흘러왔는지, 누가 창시했는지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 책의 화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자인지 말하지 않았다.

 우습게도 검식에 대해서도, 초식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일상과 생활에 대해 담고 있었을 뿐이다.

 

 검(劍)은 하나의 병기일 뿐이다.

 도(刀) 역시 그러하며, 창(槍) 역시 그렇다.

 그대는 지금 무엇에 얽매여 수련하는 것인가.

 투로를 그려라.

 믿고 따른다면 분명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추귀가 한동안 여의신공의 구절을 떠올릴 때였다. 계단에서 인기척이 들리다 누군가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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