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송(宋)
“저자가 맞느냐?”
진가운의 말에 진천호는 선뜻 말을 내뱉지 못했다.
천화객잔에 들어온 순간부터 뛰기 시작한 가슴이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가빠지고 있었다.
송 호법이 옆에 있다는 생각에 잠시 진정이 되었다가도 사내의 모습을 보자 또다시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그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마, 맞습니다. 저놈이 맞습니다.”
“그래?”
진가운의 시선이 자연스레 방 안의 사내에게로 향했다.
그는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몇 마디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저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
진가운은 사내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송 호법을 바라보며 어깨를 들썩였다.
대충 행색을 보아하니 사내에게선 고수의 풍모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여 자신이 나서도 되겠느냐는 일종의 표시를 송 호법에게 보낸 것이다.
그의 행동에 송 호법은 고개를 저었다.
“고수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행동을 보건대 평범한 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 제가 나서겠습니다.”
“그리하시겠습니까?”
“예. 뭐, 금방 끝날 겁니다. 젊은 날에 꽤 싸움을 즐겨 했나 본데, 객지에서 배운 것과 정통무공은 엄연히 다르지요.”
스르릉-!
송 호법은 거대한 도를 꺼내며 추귀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진가운이 한 발짝 슬쩍 물러섰다.
“기대하겠습니다, 송 호법님.”
평소의 그의 성격이라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진가운 역시 어떠한 상대라도 자신이 있었고, 그런 자들을 양보할 만큼 도량이 넓지 못했다. 하지만 송 호법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누구보다 예의를 다했다.
문주만큼이나 그는 송 호법을 신뢰하고 있었다.
“…….”
추귀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상념을 멈추지 않았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의신공은 왠지 모르게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투로(鬪路).
여의신공은 늘 검이든 도든 병기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오직 세상에 펼쳐진 투로를 그리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그것은 늘 새로운 길을 알려주었고, 수련을 하면 할수록 높은 깨달음을 안겨 주었다.
추귀가 눈을 뜨자 그제야 네 명의 사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두 명은 낯이 익었고, 두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가장 왼편에 있는 사내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송 호법…… 호법이라.’
그를 유심히 보던 추귀의 눈에 이채가 일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생각한 듯 그에게 잠깐 시선이 머물렀다.
“이봐, 네가 누굴 건드렸는지 아느냐?”
송 호법이 자신감 있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바로 천의문의 진 공자님이시다. 항주에서 천의문을 건든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른단 말인가?”
추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그러자 송 호법은 사내가 겁을 집어먹었다는 생각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게 기회를 주겠다. 지금 바로 진 공자님의 가랑이 밑으로 개처럼 짖으며 기어가거라. 그리하면 편안하게 생을 마감시켜 주는 선에서 끝내도록 하지.”
‘기분 탓인 건가.’
송 호법의 행동을 지켜보던 진천호는 마음이 서서히 진정됨을 느꼈다.
엄청난 무위를 보였던 사내가 송 호법의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 호법은 계속 얘기했다.
“뭐 하는가?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빨리 막내 공자님께 가서 용서를……!”
와장창-!
그가 말하는 와중이었다.
추귀가 갑자기 돌발행동을 했다.
갑자기 창가로 달려가 창문을 부순 뒤 밖으로 몸을 내던진 것이다.
순간, 송 호법도 반사적으로 창가로 몸을 던졌다.
항주의 이름 있는 고수답게 재빠른 상황 판단을 한 것이다.
진가운은 그 모습을 보며 껄껄 웃어댔다.
“하하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나 보구나.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송 호법님은 단 한 번도 도망가는 적을 놓친 적이 없다!”
***
항주로 통하는 관도에는 하루에도 수십 대의 마차가 달린다. 제법 부유한 가문이거나 상단에 관련된 사람들, 또는 직책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다닌다.
성도의 최고 직책은 군사를 부리는 도지휘사다.
그들은 사두마차를 타고 다닌다. 연례행사가 있을 때는 육두마차를 타고 다닐 때도 있다.
육두마차는 정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타고 다니는 마차였다.
그런데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팔두마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거기다 휘황찬란한 금차(金車)는 더더욱 보기 어려웠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팔두금차 안에 있는 자들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쭈글쭈글한 얼굴의 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장년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바로 혈승과 조호였다.
“혈승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뭐가 말이냐?”
“추귀의 상태를 말입니다. 정말로 사술이 풀렸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입니다.”
“…….”
“사술은 완벽했습니다. 시술하고 난 뒤 추귀가 특이한 행동을 보이곤 했지만, 그 이후로 절대로 명을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단순히 자신의 고향을 물어본 것이라면 추귀는 돌아올 것이고, 그러면 구태여 우리가 찾을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음.”
그들은 추귀의 고향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수십 년 전에 모은 천여 명에 가까운 아이들의 고향을 일일이 알아 두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항주는 확실히 아니었다. 칠사귀의 기억 속에 심어놓은 고향은 석양이라는 곳이었다.
그런데 추귀가 다른 곳을 자신의 고향이냐고 물었으니 혼란스러웠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말입니다.”
조호가 말을 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싶습니다. 추귀가 임무 수행에 능통하다곤 하지만 칠사귀 중 고작 한 명입니다. 거기다 가장 약한 자입니다. 그런 자를 상대로 우리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추귀가 칠사귀 중 가장 약하다고 누가 그러느냐?”
“예?”
조호가 잠시 머뭇거리다 혈승을 쳐다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동안 수행해온 보고서에 따르면 추귀는 이름 있는 자들을 상대한 적이 없습니다. 임무의 면면을 보고 칠사귀의 무공을 확인해도 그 능력이 낮은 것으로 조사되지 않았습니까?”
그의 말에 혈승이 불쑥 물었다.
“추귀의 무서운 점이 뭐인 줄 아느냐?”
“…….”
“바로 마공을 익히지 않은 것이다.”
조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반적으로 마공을 익히지 않았으니 가장 약하다고 말해야 했다.
그런데 혈승은 달리 말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물었다.
“천하제일의 마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약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만약 그가 마공보다 더 강한 무공을 발견한 것이라면 어떻겠느냐?”
“……!”
“우리가 구해온 수십 가지 무공들은 전부 하나같이 천하에 이름을 떨쳤던 무공들이다. 그런 무공 중 우리가 미처 몰랐던 대단한 무공이 없다고 어찌 장담하겠느냐?”
조호가 이해가 된다는 듯 은연중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왜 그의 이름을 추귀라 붙인 줄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임무 중 그는 원하는 것이 있었다면 결코 실패한 적이 없었다. 쫓고자 하면 상대가 누구든 쫓지 못할 자가 없었지. 만약 그가 마음을 먹고 우리에게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
“무슨 수를 써도 잡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회유해야 한다. 만약 회유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죽여야 하는 놈이기도 하지.”
조호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칠사귀는 살인귀들이었다.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하고 하는 것보다 칠사귀인가 아닌가가 더욱 중요했다.
한편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던 혈승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추귀는 다른 칠사귀와 다르게 자기 생각을 벗어난 자였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가 얼마나 강한지도,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도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조금 특이한 칠사귀 중 한 명으로, 임무 수행 능력은 상급, 무공은 하급으로 분류해 놓았을 뿐이다.
‘설마 그때 그의 말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말인가.’
칠 년 전…….
암동에서 술법을 시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일곱 명의 가신들과 함께 추귀 앞에 당도했을 때였다.
추귀는 자신과 함께 의식을 진행하는 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소리 질렀다.
그때의 말이 워낙 강렬해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내 너희를 반드시 기억하겠다!”
***
추귀가 서화문 안으로 숨어들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원하는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는 것에 있었다.
숨어서 하는 단순한 조사만으로 해결하기에는 자신이 가진 정보가 너무나 없었기 때문이다.
호연이란 이름을 아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그리하기 위해선 문파 내 모든 사람과 대면을 해야 했다.
설령 모든 사람을 조사한다고 해도 어떤 사정으로 인해 문파를 비운 사람들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럼 결과적으로 장시간 머물면서 조사를 해야 했는데, 그런 정보를 찾기는 시간상으로 매우 부족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곳이 천의문이었다.
소문으로는 천의문에서 서화문 쪽으로 대대적인 지원을 나선다고 했다.
또한, 호법이란 고수들도 파견 나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송 호법이란 사내도 간다고 봐야 했다.
만약 그로 변장해서 서화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잠입하는 것보다는 기억 속 여인을 찾는 게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추귀는 급히 달아나는 듯했지만, 산속으로 도망치는 사람답지 않게 동작이 매우 능숙했다.
몇 시진 전에 인피면구를 제작하면서 이곳 지리를 기억했다. 하여 야트막한 산이라도 행동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사실 한 번 보고 지리를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추귀는 달랐다.
과거 대수술로 인해 정상적인 범주의 사람을 넘어선 상태였다.
“게 섰거라!”
뒤에서 송 호법이 미친 듯이 뛰어왔다.
여간해서 거리가 좁혀지지 않자 그는 어느새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하수가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쫓아가던 송 호법은 전력을 다해볼까 하는 생각에 내공을 좀 더 끌어 올렸다.
그 순간, 도망가던 상대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제야 송 호법은 그와 거리를 좁히며 지척까지 다가갔다.
“흥! 도망갈 힘이 빠졌나 보지?”
뛰어난 경공술을 가진 상대였지만 송 호법은 아직도 상대가 자신보다 강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항주에서 근 삼 년 동안 자신보다 강한 자를 상대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추귀가 뒤돌아서며 천천히 송 호법을 쳐다보았다. 처음으로 송 호법과 시선을 맞추었다.
“송? 이름이 송인가?”
그의 목소리에 송 호법이 조금 당황했다. 갈갈하고 매우 낮은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눈빛도 그러했다. 전혀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눈동자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내가 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