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포효강호
작가 : 조형근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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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757     추천 : 0     분량 : 5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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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귀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재차 확인하는 듯 다시 물었다.

 “호법인가?”

 그 말에 송 호법은 어깨를 약간 으쓱하며 말했다. 상대가 자신의 존재를 이제야 알아본 듯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래?”

 추귀가 무미건조하게 내뱉자 송 호법은 기분이 나빠졌다. 적어도 무슨 반응이라도 보일 줄 알았는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스르릉-

 추귀가 그를 노려보며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그러자 송 호법 역시 기다렸다는 듯 도를 꺼내 들었다.

 ‘눈빛 하나만큼은 정말 날카롭군. 이렇게 쳐다보기만 해도 거북함이 느껴질 정도라니. 분노에 찬 눈빛은 과연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군.’

 상대의 눈빛은 살피던 송 호법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생각보다 굉장히 날카로웠다. 아니, 날카롭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송 호법이 본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전과 달리 추귀는 살심이 극도로 줄어든 상태였다.

 더구나 적색의 눈동자까지 없어져 외면은 일반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만약 이전처럼 적색의 눈동자였다면, 살심에 차 있었다면 날카롭다는 말 정도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지옥이 어떤 것인지 경험했을 테니까.

 추귀는 검을 꺼내 들고는 멍하니 서 있었다. 한 발을 슬쩍 내딛는 모호한 움직임만 보인 이래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상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의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자의 무공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초식 정도는 알아내야 한다. 그래야 의심을 피할 수 있다.’

 “이제야 겁이 나는가? 하지만 늦었다.”

 추귀가 여전히 반응하지 않자 송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송호법은 가슴 주위로 칼을 끌어안았다.

 그 뒤, 재빨리 발을 교차하여 목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도는 중평(中平)에서 머무르고 있다가 다리를 벌리는 순간 보법을 시전했다. 즉, 궁보(弓步)에서 연달아 거리를 좁히는 상보(上步)를 이용한 초식이다. 그런 뒤, 벽(劈)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쇄액-!

 송의 움직임에 따라 추귀의 눈도 빠르게 돌아갔다. 그것을 피해내면서도 상대의 도가 얼굴을 향해 쏟아지는 짧은 순간 동안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더구나 공격이 멎자 추귀는 곧바로 물었다.

 “무슨 초식인가?”

 “후후…… 궁금한가? 벽력거산(劈力巨山)이란 초식으로, 중원에는 잘 알려진 초식이지.”

 상대의 얼굴과 가슴에 스친 자국을 확인한 송 호법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첫 공격이 제법 먹혀들자 상대의 실력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송은 판단을 내렸다.

 상대는 하수다.

 물론 항주에서는 제법 고수 소리를 듣겠지만 자신에 비춰봐선 분명 하수였다.

 그랬기에 자신의 초식을 말해주는 거야 문제가 될 리 없었다. 곧 죽을 녀석이니까 말이다.

 솨솨삭-!

 잠시 기다리는 듯했던 송 호법의 검이 옆으로 퍼져 나갔다. 그 순간 그의 검에서 기류가 흘러나왔다.

 추귀가 재빨리 피하는 듯했지만 그의 기류에 옆구리를 일 촌(寸)의 깊이로 베이고 말했다.

 추귀는 또다시 물었다.

 “이건 무슨 초식인가?”

 “크크큭…… 뇌경만리(雷驚萬理). 거참…… 내 무공에 궁금한 게 참 많은 놈이군.”

 그가 도를 들며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사이 추귀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짧은 순간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뇌경만리는 허보(虛步)를 기초로 한다. 그리고 곧바로 전보(纏步)로 이어지며 발(拔)식으로 이어진다. 이것이었군.’

 허보는 두 다리를 굽힌 후 한 다리만 내미는 자세였다. 전보는 좀 더 빠르게 전진하는 것이고, 발식은 회전하며 쓸어치는 공격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추귀는 지금 남의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초식을 단 한 번 보는 것만으로, 그것도 이런 생사가 오가는 사이에 모든 움직임을 기억해낸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추귀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자 송 호법은 더욱 자신감이 붙은 채로 말했다.

 “크하하하. 노부의 무공이 놀라우냐? 너 같은 자들에겐 나의 무공이 신기처럼 보이겠지. 좋다, 네 너를 죽이기 전에 특별히 상승무공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다. 고명한 무공에 죽을 테니 불만은 없을 것이야.”

 그는 자신감이 떠나갈듯 소리쳤다.

 “이번에는 흑운차일(黑雲遮日), 만천도회(滿天刀回)로 이어지는 초식이다. 잘 보거라.”

 그의 신형이 공중으로 뜨더니 그가 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변초가 무수히 생겨나며 추귀의 몸으로 떨어졌다.

 솨솨아아!

 휘리리릭.

 검은 구름에 검이 가리는 초식이었던 흑운차일이나 무수한 변화가 일어나는 만천도회는 그 위용을 뿜어냈다.

 정말로 구름이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무수한 변화가 그런 착각을 들게 했다.

 수법도 상당히 교묘해 방어하던 추귀의 어깻죽지와 무릎, 정강이, 목으로 생채기를 내며 퍼져 나갔다.

 그 순간, 추귀의 몸보다 눈이 더욱 빠르게 돌아갔다.

 연속해서 쓰는 초식이 없었지만, 추귀는 초식을 허투루 흘리는 일이 없었다.

 일각의 시간 동안 송 호법의 초식이 계속해서 펼쳐졌다.

 그에 따라 추귀의 상처도 점점 커졌다. 무공을 익혀가며 방어했기에 완벽하게 피해내진 못했다.

 하지만 추귀의 눈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당황하거나 긴장하는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구우우웅.

 송 호법이 마지막 무풍난비(舞風亂飛)를 쏟아냈을 때, 추귀는 바닥에 쓰러졌다. 마지막의 초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쏟아졌고, 그만 무릎 주위를 베이고 만 것이다.

 그 모습에 송 호법이 공격을 거둬들였다. 잠시 대치상태가 된 순간, 추귀는 초식을 정리했다.

 

 벽력거산(劈力巨山).

 뇌경만리(雷驚萬理).

 흑운차일(黑雲遮日).

 만천도회(滿天刀回).

 선수회보(先手回步).

 개산황영(改刪幻影).

 무풍난비(舞風亂飛).

 

 송이 내민 초식이 어떤 초식이 일 초식이고 칠 초식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추귀가 아닌 다른 칠사귀라 하더라도, 아니, 그 어떤 자라 하더라도 한 번에 알 수 없었다.

 직접 운용하여 묘리를 터득하지 못하는 도법의 진의는 그리 쉽게 파악되지 않았다.

 추귀가 상처를 입고 쓰러지자 송 호법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상대가 꽤 잘 버텨서 만족스러웠고, 자신의 도법을 정리할 시간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는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피하는 것으로 보아 제법 재능이 뛰어난 듯하구나. 내 네게는 특별히 고통 없이 죽여주마.”

 그때였다. 추귀가 천천히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죽인다고? 네가?”

 그 말에 송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비실대던 상대의 말투가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인가? 더는 보여줄 초식이 없는가?”

 “뭐?”

 “없으면 끝내야겠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닥에 엎드려있던 추귀가 뛰어올라 그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

 

 갑자기 달려든 상대의 모습에 송 호법은 급히 물러섰다.

 그 순간 뭔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쐐애애액!

 ‘검을 던져?’

 송 호법은 검을 던지는 상대를 보며 의문에 휩싸였다.

 검을 던지는 것은 변방의 군사들이나 할 행동이다.

 병기를 목숨처럼 여기는 무인들은 절대로 무기를 던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내는 던졌다.

 강호의 무사는 아니란 뜻이다.

 캉!

 송 호법은 민첩한 움직임으로 재빨리 검을 쳐냈다.

 그때였다. 지척으로 다가온 추귀의 손이 일자로 펴지며 자신의 목을 노리고 공격해 들어왔다.

 ‘권법가?’

 송 호법은 다시 한 번 의문에 휩싸였다.

 상대는 손가락을 검처럼 날카롭게 세워 공격했다. 그것도 손가락 끝에 일점(一點)을 집중시켜 목을 노렸다.

 일반적인 장공을 쓰는 검법과는 달랐다.

 파파팟!

 송 호법이 몸을 강하게 비틀어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침착한 대응과 더불어 뛰어난 반사신경이 그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뭐지?’

 피했다는 생각에 잠시 동작이 느려진 순간, 그는 상대의 손가락 밑에서 무언가가 번쩍하며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마치 뱀처럼 휘어지며 날아오는 검.

 너무나 날카롭고 빨라 그것이 무엇인지 송 호법은 알아채지 못했다.

 추욱.

 가늘고 기다란 검은 그의 목으로 박혀 들어갔다.

 자검.

 추귀의 소매 사이에 숨겨져 있는 암기였다.

 그 자검이 송 호법의 목을 일순간에 관통해버린 것이다.

 일격필살.

 정확히 말하면 세 번의 공격이었지만 그 과정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검으로 상대의 시선을 빼앗는다.

 권법으로 동작을 무너뜨린 후, 숨겨진 암기로 공격한다.

 무림인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거기다 상식 밖의 암기가 더해지자 절정고수 송 호법이 무력하게 당해버린 것이다.

 “바보는 아니었군. 자검까지 쓰게 만들 줄이야.”

 추귀는 쓰러진 송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시간이 없었다.

 인피면구를 제작하는 데 아무리 빨라도 반 시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천의문 사내들이 기다리고 있을 이때에 시간을 끌면 괜히 곤란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그때, 추귀가 잠시 머뭇거렸다.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여인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에 당도할 때까지 나타나던 여인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살심이 줄어들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사술이 풀려서?’

 잠시 고민을 하던 추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추귀는 준비해놓은 아교와 교반수를 내려놓고 그의 얼굴의 살을 떼어내며 작업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추귀의 얼굴은 점점 송의 얼굴이 되어갔다.

 처음에는 색이 바랬지만 거듭 교반수를 덧바르자 본래 송의 얼굴처럼 피부색이 돌아왔다.

 송의 시체와 자신의 칼을 수습하고는 재빠르게 그의 옷을 벗긴 뒤 자신이 입었다.

 물론, 그 전에 자신의 옷을 찢어 송에게 당한 상처에 매듭을 해 두었다.

 그들에게 몸속 상처를, 정확히는 암기가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추귀는 송의 칼과 칼집을 꺼내 허리춤에 매었다.

 그런 뒤 자검을 꺼내 자신의 목청 부근에 찔러 넣었다.

 핏-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행동은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다.

 목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추귀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외모는 인피면구로, 무공은 조금 전 익힌 것으로 해결된다지만, 목소리는 다르니 이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찌익.

 추귀는 목 위로 흐르는 피를 무릎 쪽 천을 찢어 닦으며 지혈시켰다.

 의복이 젖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사소한 것이었지만 추귀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임무를 통해 이런 사소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귀는 자리에 서서 자신의 몸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마지막 순간에도 추귀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송 호법에게 상처를 입는 순간에도, 목청에 자검을 찔러 넣는 순간에도 단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약간의 망설임도 없었을뿐더러 상처를 입을 때 신음 한 번 내는 일이 없었다.

 그렇다.

 사실, 추귀가 잃어버린 건 미각뿐이 아니었다.

 고통을 느끼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그들은 추귀를, 칠사귀를 완벽한 살인귀로 만들기 위해 방해되는 조그마한 요소들까지 모두 제거해 버렸던 것이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추귀는 마을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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