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포효강호
작가 : 조형근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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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화
작성일 : 16-07-13     조회 : 738     추천 : 0     분량 : 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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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이 틀 무렵, 영삼은 늘 그렇듯 천화객잔 앞에서 마당을 쓸고 있었다.

 그는 새벽부터 일어났다. 그때의 일 때문에 게을러지거나 나태해지지 않았다.

 영삼은 누구보다 성실한 사람이었다.

 “이보게.”

 “어셔 옵셔.”

 누군가 자신을 향해 물어오자 영삼은 빗질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객잔 앞에서 말을 거는 사람이 주로 손님이라는 것은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영삼의 고개가 다시 올라가 상대를 쳐다보는 순간 특이한 복장의 노인과 사내 한 명이 보였다.

 “말 좀 묻겠네.”

 “아…… 예.”

 영삼은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깡마른 노인의 인상은 그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마치 많은 수하를 이끄는 제법 높은 신분의 노인인 듯했다.

 “이 근방에 눈동자가 특이한 사내를 본 적이 있나?”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영삼은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순간 스치듯 사내 한 명이 기억이 났지만, 그때 사내의 두려움 때문인지 본능적으로 기억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흠 그런가?”

 노인은 영삼의 지척까지 다가가며 말했다.

 “손 좀 내밀어 보겠나?”

 “예?”

 “내가 관상을 좀 볼 줄 안다네.”

 “…….”

 영삼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뭔가 두려웠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노인은 영삼의 손을 잡자 무어라 읊기 시작했다.

 “사마래원수사…….”

 노인은 뜻을 알 수 없는 법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노인이 뭔가를 중얼거릴 때였다.

 갑자기 영삼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자세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했는데 몸은 계속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때, 노인의 손이 자연스레 그의 머리로 향했다. 그리고 주술을 읊음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촤라라라락.

 그 순간, 놀랍게도 노인의 머릿속으로 영삼의 행적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일어나고 말하고 보던 모든 것이 투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영삼의 기억을 헤집던 노인이 미간을 찡그렸다.

 주마등처럼 흘러가던 기억을 살피던 중 특이한 사내를 발견한 것이다.

 노인은 자취를 따라 재빨리 추적하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노인이 영삼의 손을 놓았다.

 그러자 초점이 없던 영삼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는 좀 전에 일어난 상황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감사하오. 많이 도움이 되었네.”

 “예? 아, 예.”

 영삼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기분이 나빠 객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왠지 노인과 말을 하면 할수록 싸늘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영삼이 사라지자 장년인 한 명이 노인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수하인 조호였다.

 “무언가 찾으셨습니까?”

 “추귀가 이 근방에 있었던 듯하구나.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 뭘 하려 했는지는 모르겠다. 한밤중 꽤 소란이 인 것 같은데…… 우선 들어가 보자꾸나.”

 노인은 천천히 객잔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영삼의 기억에서 살펴본 대로 추귀가 묵었던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천의문에서 지내던 추귀는 이틀 뒤 공식적인 통보를 받았다. 예상대로 대공자를 보좌해 서화문으로 파견 나가는 임무였다.

 결국 송 호법으로 위장해 들어간 것은 좋은 판단이었다.

 서화문 안에서 거리낌 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뿐 아니라 문파 내 사람들이 자신에게 매우 협조적으로 나올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추귀는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대공자와 함께 서화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 시진 동안 선두에 서서 달리던 대공자가 말고삐를 끌어당기자 뒤따라오던 백 명의 검수대 대원들도 동시에 멈춰 섰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던 것이다.

 웅성웅성.

 서화문 정문에는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미리 소식을 들었는지 무사들도 보였고, 하인으로 보이는 여인들도 있었다.

 대공자는 인파들 중심에 서 있는 운귀천을 발견하고는 말에서 내렸다.

 그 후, 그에게 다가가 예우를 갖추었다.

 “천의문 첫째 아들 진가운이라 합니다. 작은 도움을 드리기 위해 이렇게 급히 달려왔습니다.”

 잘생긴 청년이 자신 앞으로 다가오자 운귀천이 반갑게 맞이했다.

 “작은 도움이라니, 당치 않소. 이렇게 많은 수하를 데리고 친히 이곳까지 왔는데 말이오. 오느라 고생이 많았소.”

 “먼 길도 아닙니다. 또한 우리 역시 서화문과 돈독해지는 기회이기도 한데 어찌 고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말씀 마십시오.”

 진가운이 예우를 다해 존대해오자 운귀천은 속으로 내심 감탄했다.

 자신의 문파가 어렵다는 건 그들 역시 알 터였다. 그런 이때에 자신의 문파를 낮추며 말해오자 호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문대로 의(義)를 아는 친구로구나.’

 그는 진가운의 첫인상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형식적인 대화가 오갈 때쯤, 진가운은 슬쩍슬쩍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문주의 뒤에 서 있는 여인을 의식했던 것이다.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서 있는 위치를 보건대 문주의 여식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진가운은 그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면사포가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다.

 순간 진가운은 그녀의 면사포가 너무나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듣기론 절세미인이라 했는데,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못 보니 죽을 맛이었다.

 ‘뭐, 언젠간 기회가 있겠지.’

 진가운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목소리에 좀 더 힘을 실었다.

 “저 역시 서화문에 이런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어 더없이 영광입니다. 문파의 고수들을 데리고 왔으니 분명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를 의식했기 때문일까.

 진가운은 ‘큰 도움’이란 부분에 힘을 주었다.

 자신이 도움을 주고 있다는 느낌을 조금이라도 강조하면 그녀가 자신을 좋게 보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어긋났다.

 운소령은 얼굴을 찌푸렸기 때문이다. 큰 도움이란 말에 진가운의 의도를 읽은 것이다.

 ‘이자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

 나이 어린 운소령이었지만 사람을 보는 눈썰미는 매우 뛰어났다.

 어릴 때부터 당해왔던 나쁜 경험들이 사람의 인성을 파악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운소령은 대공자란 사내에게 크게 실망을 하며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뒤에 조금 떨어져 있는 중년인에게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늘 해오던 습관처럼 상대의 눈빛을 살폈다.

 ‘아?’

 중년인의 눈을 보던 운소령이 나직한 탄성을 터트렸다.

 상대의 눈빛과 얼굴이 너무나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얼굴에는 매우 굳은 심지 같은 것이 엿보이는 데 반해 눈빛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초점도 맺혀있지 않는 듯했는데, 그 모습이 누군가를 살피는 모습 같기도 했고 무엇을 생각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호기심을 느끼자 운소령의 눈길은 그에게 머물렀다.

 대공자 뒤쪽에 서 있던 추귀는 서화문 문주와 대공자가 대화하는 동안 가슴이 천천히 뛰고 있었다.

 머릿속에 늘 그려왔던 여인이 이곳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씩 흥분이 되었던 것이다.

 눈동자를 굴리지 않았지만 추귀의 눈은 사람들 면면을 빠짐없이 살피고 있었다.

 보는 순간 머릿속에 확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생각은 기우였다.

 얼굴을 봐도 기억나는 건 없었다. 종과 하녀들도 살폈지만, 기억 속 여인의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장내가 들릴 듯한 문주의 말에 추귀가 상념에서 깨어났다.

 대공자를 비롯한 무사들이 서화문 안으로 들어섰다.

 

 

 第六章 서화문

 

 

 

 문주가 마련한 방에는 모두 일곱 명이 자리했다.

 서화문 쪽 사람들은 운귀천과 운소령, 수(首) 장로와 양(陽) 장로, 그리고 화주대(華主隊)를 이끄는 대장 서문기(西門忌)였고, 천의문 쪽에는 진가운과 추귀 둘뿐이었다.

 모두 모이자 운귀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괜한 일로 이리 도움을 청해 미안하게 생각하오.”

 “아닙니다. 사실 아버님도 오시고 싶어 하셨지만 문파 내의 사정 때문에 발걸음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소. 요 근래 천의문은 여러 방면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지 않소.”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진가운은 거듭 예의를 표했다.

 “그나저나 이곳으로 온 검수대들의 숫자가 적지 않던데, 대체 어느 정도 온 거요?”

 “백 명 정도가 왔습니다.”

 “오…….”

 검수대는 천의문을 대표하는 부대였다. 삼백 명에 달하는 고수들 중 전력의 삼할 이상을 보내준 것이었다.

 “흑련문이 보통 문파가 아닌지라 최대한 병력을 지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소?”

 그 말에 운귀천은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꼈다.

 이 정도 병력이라면 흑련문이 쳐들어온다 하더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숫자였다.

 그러니 납치 따위 같은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문주님, 실례가 안 된다면 옆에 계신 분들의 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아, 제가 늦었구려.”

 운귀천은 주위를 보며 차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있는 여인은 내 딸인 줄 알 거요. 그 옆에 단의를 입은 자는 우리 화주대를 이끄는 서 대장이고, 그 옆으로는 수 장로와 양 장로라고 하오.”

 문주의 말에 다들 짤막이 인사를 해왔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늦었습니다. 제가 누구인지는 아실 테고, 제 옆에 계신 분은 송 호법입니다. 저희 아버님을 호위하는 삼대 가신 중 한 명이지요.”

 “……!”

 진가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화문 사내들의 눈들이 커졌다.

 그들도 익히 아는 이름이었다.

 항주에서 그를 모르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송 호법은 유명한 자였다.

 “그간의 소문은 많이 들어서 알고 있소. 이리 와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소.”

 문주는 진심이었다.

 그만큼 현재 그의 비중은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것이 아닌 숨어 있는 적을 상대할 때는 절정고수의 역할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추귀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할 수 없으니 이런 행동으로 그들의 반응에 답례한 것이다.

 하지만 그 행동의 여파는 컸다.

 주위의 표정들이 삽시간에 변하기 시작했다. 웬만해선 표정에 변화가 없는 운소령조차도 미간을 찡그릴 정도였다.

 “아, 최근에 송 호법님이 어떤 일로 인해 목을 다쳤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양해를 부탁합니다.”

 진가운이 사태를 파악하고 진화에 나섰다. 자칫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변명에도 서화문 사람들의 표정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분위기가 좋지 않음을 느낀 진가운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운 문주님, 저희 천의문의 병력 배치에 대해 생각해 놓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운귀천 역시 분위기를 바꿀 필요성을 느끼고는 곧바로 대답했다.

 “아직 생각은 하지 못했소.”

 “아시겠지만 상대는 흑련문입니다. 일전에 서화문을 공격했던 흑도 무리들과 격이 다른 자들이지요. 단순히 경계만 해서는 운 소저의 안위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소만…….”

 운귀천이 답변을 유보하자 진가운이 말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우리 검수대를 운 소저의 거처 외관에 배치하고 저와 송 호법님이 운 소저의 별관에서 호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별관이라면?”

 “이를테면 운 소저 건물 내에서 호위하는 방법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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