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캄파나 백작의 저택에는 인적이 뜸하다.
라는 것이 저택에 대한 로일의 첫 감상이었다. 처음 백작이 보낸 마차를 타고 왔을 때엔 이보다 더 큰 건축물을 본 적이 없어 놀랐으며, 그 다음은 미친 줄 알았던 여자가 백작이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마지막으로는 이 커다란 저택에 사람 한 명 보기가 힘들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이곳은 매우 아름다웠다. 커다란 복도의 유리창에서는 여명의 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바닥에 깔린 카펫도 고양이의 털보다 부드러울 것 같았다. 때문에 소년에게 이곳은 마치 고요한 천국과도 같이 느껴졌다. 냄새나는 쓰레기 더미도, 병든 노인의 위협도, 배고픔에 굶주린 늦은 새벽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소년을 데려온 아캄파나 백작은, 이제껏 보아온 사람들 중 가장 멋있는 사람이었다. 까만 머리칼은 그림책에서만 볼 수 있던 고급 융단 같았고, 맑은 하늘빛의 눈동자도……”
“으, 으아아아―”
“애 좀 그만 괴롭혀. 메드울.”
브리니의 타박에 청년이 입술이 닫는다. 그 옆에서는 제 귀를 꽈악 막고 바닥에 웅크린 로일이 기이한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내가 사람 머릿속 함부로 읽지 말랬잖아. 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거야?”
“저는 단지 어디 잘 단련된 소년 자객이 들어온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읽어드린 겁니다.”
“그런 것쯤이야 노란 지붕 할아범인 네가 더 잘 알겠지.”
브리니가 로일의 양 겨드랑이를 잡고 일으킨다. 어느새 뒤꽁무니를 쫒아오고 있던 메드울 때문에 괜히 이동만 늦춰졌다. 안 그래도 드래곤을 보면 거품을 물고 기절하지 않을까 걱정 중이었는데, 메드울이 선 공격을 날려버린 덕에 배로 걱정이 늘어버린 셈이었다.
“그 어린 아이에게 드래곤을 맡겨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퍼쉬울그의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데.”
“네가 아직 뭘 몰라서 그래. 얼마 안 지나면 너보다 훨씬 친해질 걸?”
“그야 지금도 퍼쉬울그랑 내 사이는 고양이와 개보다…… 아. 맞아. 저 이거 찾아왔습니다, 백작 님.”
잊고 있던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메드울이 제 품 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낸다. 손바닥 안에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 오래되어 끝이 닳은 재질. 자세히 보니 누군가의 초상화저럼 보였다. 그림 안의 남자는 고풍스런 가죽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한다. 검은 머리칼과 황금색 눈동자. 제국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기이한 조합에, 사진을 들여다보던 로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이 분 알아요. 도서관에서 본 적 있어요. 그러니까 선황제 레인, 레인……”
“레인우드 1세. 물론 지금이야 우리 백작님의 이거일 뿐이지만.”
메드울이 제 천천히 새끼손가락을 들어 흔든다. 그러나 정작 로일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자, 브리니가 메드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가격했다.
“아니야.”
아주 살짝 친 거 같은데도 메드울은 허리를 고꾸라뜨리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아니긴요. 둘이 지지고 볶는 거 역사책에도 기록되어 있던데.”
브리니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그러나 그녀는 별다른 대답 없었다. 단지 메드울의 손에서 사진을 뺏어내 품 안에 갈무리할 뿐이다.
“어디서 찾았어?”
“재무대신 집무실에서요.”
“……누구 집무실이라고?”
눈썹을 까딱이던 브리니가 메드울의 멱살을 잡는다. 메드울은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그녀와 코 닿을 거리로 끌려 내려갔다.
“누구?”
“그― 재무, 대신이요.”
“설마 라슬란한테 국고 관련 기밀문서 가져다 준 것도 너냐?”
“아니, 뭐. 기밀까진 아닌 거 같던데.”
이후 메드울은 장장 삼 분이 넘는 시간동안 브리니로부터 압박을 당해야했다. ‘너 전부 다 불어. 거기까지 가서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온 거야?’,‘별 짓 안 했는데요.’,‘안 하기는!’ 로일은 알 수 없는 대화가 계속되자 창가로 다가서 저택 너머를 구경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건 산등성을 타고 올랐을 때 빼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두 시간을 쉴틈없이 달려왔다지만, 수많은 지붕들 중에 자신이 살던 땅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로일은 그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토록 지겹고 그립지 않은 장소가 또 없었으니까.
“백작 대리로 갔을 때는 얌전히 있으랬지. 너 내 얼굴에 똥칠하고 싶어?”
“그럴 리가요. 세상에 백작 님 얼굴에 똥칠할 만큼 간 큰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단하신 누구누구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는…….”
“시끄러!!”
메드울은 결국 브리니에게서 한 대 얻어맞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얼마나 얄밉게 지껄였었는지, 보는 루일의 가슴이 후련해질 정도였다.
셋은 그대로 저택을 벗어나 정원 사이를 가로질렀다. 장미가 가득 핀 화단 옆을 지나면 주변 풍경과 약간 동떨어져 보이는 우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복장을 다듬던 브리니가 곧 무너진 우물 옆의 자그마한 사다리룰 타고 내려갔다. 메드울마저 그 뒤를 따르자, 할 수 없이 로일 역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만 했다.
사다리 아래의 우물 바닥에는 거대한 지하 동굴이 펄쳐 있었다. 얼마나 높고 넓었다면, 쉼 없이 떠드는 둘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메아리 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안에 ‘그게’ 있었다.
가장 먼저 붉은 가죽이 보였다. 횃불에 일렁이는 빛 때문에 그 가죽인 선명한 붉은색인지, 아니면 석양에 가까운 따스한 색인지는 구분이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건, 거대한 몸집을 뒤덮은 빨간 윤기가 굉장한 위압감을 자랑한다는 점이었다. 브리니는 바짝 굳은 로일을 지나쳐 더 깊은 내부로 들어갔다. 드래곤의 덩치는 브리니와 로일이 마주했던 그 언덕보다 두 배는 커 보였다. 너무 커서 소년의 눈 안에는 겨우 담길 정도로.
“퍼쉬울그.”
훅―드래곤의 콧김에 기다란 머리칼이 펄럭인다.
“몸은 괜찮아?”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곧 닫혀있던 눈꺼풀이 들어 올려지고, 그 아래에 루비처럼 붉게 반짝이는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 옆에 나란히 선 메드울이 입을 열었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내가 저 새끼는 끌고 오지 말랬지.]
으르렁이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허공을 울린다. 로일은 직감적으로 그 목소리가 드래곤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음. 그럼 간식으로라도 먹을래?”
“하하하. 백작님? 농담으로 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저건……”
순간 드래곤의 입이 쩌억 벌려졌다. 깜짝 놀란 로일은 뒤로 넘어가다 엉덩방아를 찍었다.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동굴이 메드울을 향해 다가기 시작한다.
“장난치는 걸 보니 괜찮아졌나 보네.”
[전혀. 조금만 더 움직이면 어제 먹은 걸 도로 쏟아내 버릴 것 같아.]
브리니가 드래곤의 주둥이 근처를 슬슬 매만진다. 덕분에 열심히 뒷걸음질 치던 메드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가 한숨을 쉬든 말든, 로일은 사다리 앞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동화책에서나 나왔던 드래곤이 제 코앞에서 숨을 쉬고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토마토를 떨어뜨린 그 때 그 순간부터, 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그게 확실했다. 꿈이 아니라면 그 작은 우물아래 드래곤이 누워있을 수가 없다.
“로일? 이리로 와.”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스럽게도 극심한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로일은 용기 있게 한 발을 내딛어 브리니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잔뜩 겁에 질린 걸음을 인내심 있게 기다려 주었고, 곧 제 곁까지 도달한 소년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인사해. 이 아이는 네가 당분간 돌봐줘야 할 드래곤이고, 이름은 퍼쉬울그야.”
“아, 아, 안녕, 안녕하세요!”
로일 정수리가 꾸벅 숙여진다. 자신이 누구 앞에서 무엇을 하는 지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첫인사는 해야겠다 싶었다.
[필요 없어. 도로 데리고 올라가.]
“로일. 오늘부터 딱 10일만 퍼쉬울그를 돌봐주면 돼. 지금은 조금 피곤해 보이지만, 10일만 지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올 거야. 이후 네가 할 일은……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자.”
“네!”
[브리니.]
퍼쉬울그의 목소리에는 짙은 짜증이 배어 있다. 그러나 브리니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퍼쉬울그. 알다시피 난 이틀 후 영지를 비워야 돼. 그것도 무려 일주일이나. 그러니 너 혼자 버틸 수 있다는 말은 하지 마.”
[난 너 없이 백 년은 버틸 수 있어. 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지?]
“다 내 애정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채 마치기 직전, 일그러진 표정의 브리니가 허공을 응시한다. 마치 그 자리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듯, 오묘하고 딱딱한 표정이 되어서. 그리고 그 반응은 비단 그녀만이 보인 것이 아니었다. 천천히 숨만 내쉬던 퍼쉬울그 역시 땅에 처박고 있던 주둥이를 천천히 들어 올린다. 드래곤의 코가 천장 근처에서 예민하게 움직였다.
[낯선 냄새.]
“방금 침입자가 들어왔어. 그것도 결계 마법을 뚫고.”
퍼쉬울그의 머리가 다시 바닥에 처박혔다. 아주 잠시 흥미롭게 반짝이던 눈동자도, 곧 천천히 내려앉아 무료한 감정을 담아낸다. 브리니가 눈을 얇게 뜨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을 동안 등을 돌린 메드울이 사다리를 타고 우물 위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확인해봐야겠네.’ 작게 중얼거린 그녀가 로일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나 얼굴은 그가 아닌 드래곤을 향해있었다.
“내가 무슨 말 할지 알지? 먹지 말고, 괴롭히지 말고, 놀리지 마.”
정작 충고를 들은 퍼쉬울그는 브리니에게서 아예 고개를 돌려버린다. 덕분에 우물 안에는 다시 드래곤이 내뿜는 커다란 숨소리만이 채워졌다. 차가운 지하의 공기와, 그보다 더 냉랭한 셋의 분위기. 둘 사이에서 우물쭈물 입술만 씹어대던 로일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조금만 더 있다 가도 될까요?”
브리니는 다소 놀란 얼굴로 소년을 바라봤다. 기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 스러운데, 심지어 로일은 한 발짝 더 앞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부디 쓸모 있는 자를 데려오라던 집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녀의 낚시질이 꽤나 성공적이었던 것 같았다. 쌩한 퍼쉬울그의 반응을 생각하면 걱정이 일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로일의 부탁을 거절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때문에 브리니는 상냥한 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