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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캄파나 여백작의 고민
작가 : 박레드
작품등록일 : 20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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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캄파나 백작의 고민 - 4
작성일 : 17-06-05     조회 : 295     추천 : 2     분량 : 5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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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저녁. 브리니는 해가 질 때까지 성 안을 들쑤셨지만, 침입자로 예상되는 움직임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마도사 중 하나로, 자신의 구역에서 알아채지 못 할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건이었다. 또한 처음 있는 일이기도 했다. 아캄파나 영지를 다시 관리하기 시작한 지가 벌써 10년. 제국의 극동 끄트머리에 걸쳐진 땅 아캄파나는 소위 말해서 촌동네와 다름없는 곳이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이라곤 늦은 저녁마다 우는 암탉과, 긴 장마에도 홍수 한 번 일어난 적이 강물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뒤늦은 교육을 통해 댐으로 홍수를 막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남아있는 미스테리라고는 밤마다 우는 암탉의 존재가 끝이었다. 그런 촌동네에서 브리니를 물 먹일 수 있는 생명체가 존재한다니? 진심으로 모를 일이다.

 만 하루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은 결국 메드울의 장난으로 결론을 맺었다. 사실보다는 강요에 가까운 결론이었고 때문에 메드울은 잔뜩 억울한 표정이 되어서 저택을 떠나버렸다. 로일은 걱정스런 얼굴로 브리니를 응시했지만, 정작 그를 쫓아낸 주범은 무관심한 어조로 입을 열 뿐이다.

 “어차피 또 네가 보았던 노란 지붕에 가있을 거야. 메드울은 거기서 제 욕구란 욕구는 다 풀거든. 위험한 장소니까 다시는 가까이 하지 마렴.”

 “욕구요?”

 “조금…… 아니, 굉장히 비주류인 것들에 대한 욕구지.”

 브리니는 더 이상 알면 위험하다는 듯, 소년을 방 안에 우겨넣었다. 저택 이 층에 준비된 자그마한 공간이었다. 앞으로는 로일만의 공간이 될 그 방문 앞에 브리니는 깔끔한 문패를 하나 걸어주었다. 적혀진 것은 숫자 ‘31’. 소년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의미였다. 뭐, 의미야 어찌 되었든 더 이상 로일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느꼈다. 그 어느 때보다 밝아진 어머니의 안색이, 그가 그리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

 

 다음날 역시 브리니는 저택을 나와 밀밭으로 향했다. 영지의 주인이 똥내 나는 농장 근처로 몸소 나서게 된 계기는 별 거 없었다. 단순히 그것 외엔 할 만한 짓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수확 철이 가까워짐에 따라 브리니는 더욱 끔찍한 무료함에 몸부림쳐야 했다. 그녀는 멍청했다. 얼마나 멍청했냐하면, 제 집사를 따라 도울 수 있는 일이 털끝만큼도 없을 정도였다. 기껏해야 문맹이라는 감옥을 탈출했을 뿐, 브리니에게 교욱과 학문이란 하늘처럼 먼 세상의 일이었으니까. 그나마 재능 있는 분야도 오직 극소수의 전문가끼리만 대화 가능하다는 마도 수식이 전부다. 허나 아캄파나는 마도의 ‘마’자도 모르는 인간들의 땅이었기에 그녀의 능력을 알아주는 자는 극히 드물, 아니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브리니는 그러한 점을 가장 외롭고 억울하다 생각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내려온 거야?”

 “그야 당연히 백작 님의 얼굴이 꼴도 보기 싫어서입니다.”

 “넌 나이를 코로 먹었어? 네 장난으로 정리해야 내 체면이 살고, 또 저택 아이들이 안심을 하지.”

 “안심을 하든 말든, 그런 일로 제 이름을 팔지 마시라고요. 이러다간 곧 제 이름으로 사채라도 쓰시겠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승질은.”

 그리 말하면서도 브리니의 발걸음은 유독 가벼웠다. 평소에 비해 빨라진 걸음속도. 그리고 하극상쯤 부드럽게 넘어가는 마음씨까지. 메드울은 오늘따라 브리니의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텅 빈 우편함 앞에서 다소 시무룩해진 얼굴을 확인했을 때.

 ‘편지가 도착했어야 할 날이었나 보군.’

 발신인은 아마 제국의 선황, 레인우드 1세 일 것이다. 그녀의 감정을 저리 요동치게 만들 사람은 오직 그뿐이 없으니까. 아캄파나 백작은 타 귀족에 비해서 쉬이 웃고 쉬이 신경질을 내지만, 실제 성정은 그리 역동적인 편이 아니었다. 오래전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러니까 선황제와 함께 있던 시절을 기억해보면 지금의 브리니는 마치 다름 사람과도 같다. 나이를 먹어 유해진 건지, 아니면 단순히 사람이 변한 건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본인부터 별 자각이 없는 것 같았다.

 “가끔씩 연락이 늦어지시나요?”

 메드울의 물음에 브리니가 고개를 돌린다. 그 짧은 사이에 우울했던 낯이 평소처럼 돌아와 있었다.

 “글쎄.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마 그랬었겠지?”

 “대답이 무슨 그럽니까. 벌써부터 건망증이 찾아왔어요?”

  브리니가 픽, 웃으며 성문으로 들어선다. 동시에 나란히 선 경비병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너도 10년 동안 이런 식으로 꾸준히 연락해봐. 그런 세세한 일까지 기억할 수 있을지.”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지 않다. 괜한 시비로 눈치가 보였는지, 메드울은 그녀에게 정원에서 조금 쉬다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덕분에 브리니는 제 방으로 들어서는 내내 혼자 길을 걸어야 했다. 텅 빈 중앙 홀에서도, 기다란 계단에서도, 인기척 없는 복도에서도.

 밀린 일로 바쁜 라슬란은 오늘 얼굴을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더라도 이 시간대에는 늘 브리니에게 잔소리를 내뱉으러 왔었는데. 성이 필요이상으로 조용하면 잠이 쏟아지게 된다. 퍼쉬울그에게 가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곧 다시 마음을 접고 욕조 문을 열었다. 그 예민한 드래곤은 이미 로일이라는 존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신경이 긁히고 있을 것이다. 저까지 나서 불 붙은 집에 부채질까지 해줄 필요는 없다. 괜히 삐치는 기간만 더 늘어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내일은 영지를 떠나는 날인데. 우물까지 찾아가야 덜 삐치지 않으려나.'

 브리니는 퍼쉬울그에 대한 고민만 삼십 분을 하다 욕조에서 빠져 나왔다. 결론은 없었다. 뭘 해도 퍼쉬울그는 그녀에게 짜증을 부릴게 분명했다. 젖은 머리 그대로 침대에 고꾸라진 몸이 둥글게 굽어진다. 하여튼 간에, 드래곤이란 족속들은 천 년을 살든 만 년을 살든 하나 같이 다 애 같다. 저 밖에 모르는 열 살짜리 어린애. 브리니는 그렇게 도착하지 않은 연락에 대한 아쉬움을 투덜거림으로 풀어내며,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저녁 식사도 않고 잠에든 탓인지 다음날은 이른 새벽이 되어서 눈이 떠졌다. 벌떡 일어서 방 안을 둘러보면 어느새 잘 싸여진 짐들이 문가에 나란히 놓여 있다. 그녀는 그대로 느릿하게 목욕을 마치고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백작의 집무실에는 파랗게 떠오르는 새벽 창가와, 그를 배경으로 한 라슬란이 공간을 매우고 있었다. 그가 말끔하게 정리한 남색 머리칼은 밤을 샌 상태에서도 단 한 올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비척비척 소파로 다가선 브리니가 찻잔 안의 홍차를 꿀꺽 넘긴다. 따라 놓은 지가 한참 된 차인지, 온기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블랙의 힘은 백작 님이 주무시는 사이에 제가 넘겨받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빠듯하니, 예상 일정보다 반나절 빨리 돌아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브리니가 짧은 고민에 빠진다. 고민의 대부분은 라슬란의 대한 걱정이었다.

 “어때? 몸은 좀 괜찮아?”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일인걸요. 이 정도야 저에겐 별 것 아닙니다. 그러니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잘 다녀오기나 하세요. 제발 큰 일 벌이지 마시고, 이상한 짓거리 하지 마시고, 또 본능에 따라 행동하지 마시고요. 무슨 말인지 아주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물론이지. 네가 하루걸러 내게 하는 말인걸. 가끔 꿈에서도 들려올 정도야.”

 라슬란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블랙의 힘을 맡겨 놓지 않으면 이 땅을 뜰 수가 없다. 그녀는 영겁의 세월 동안 아캄파니에 메여야 될 몸이었다. 그나마도 라슬란마저 없었다면 이와 같이 잠시간 외부로 나도는 일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잠시 제 할일을 정리하던 브리니가 문 밖의 시종을 불러 명했다.

 “버니니를 데려와.”

 그러나 그건 쓸모없는 행동이었다. 허리를 구부린 시종이 다시 문을 열자마자, 그 너머에서 기다란 인영이 뛰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브리― 아니, 백작 님!!”

 길쭉한 아가씨가 브리니를 덮친다. 그녀는 제 숨통을 막는 풍만한 가슴에서 힘겹게 벗어났다. 그러나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자는 브리니의 뺨에 수없이 입을 맞추고, 가느다란 목을 꽈악 품에 안았다.

 “오늘 떠나시나요? 오늘 아캄파나를 떠나시는 건가요? 오늘 그곳으로 가시는 거예요?”

 “그래, 그래. 버니니.”

 브리니의 손바닥의 여자의 등을 살살 두들긴다.

 “우리는 두 시간 후에 제국 동부 아카데미로 떠날 거야. 가는 데에 만 하루밖에 걸리지 않으니, 아마 교환학생 환영식 보다 아주 조금 늦게 도착하게 될 거다.”

 그녀의 말에 여자, 버니니는 금방 울상어린 얼굴을 했다. 넘실거리는 금발 머리칼도 버니니의 기분에 따라 축 늘어진 것처럼 보였다.

 “아쉬워요. 일주일 동안 못 뵌다는 생각에 너어무 아쉬워요, 백작 님.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제 역할은 누가 대신 해주는 건가요? 패트릭 경? 커즈 경? 그도 아니면 혹시 백작 님이?”

 아쉽다는 말과 달리 버니니의 표정을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마치 조울증 환자와도 같은 모습이었지만, 브리니는 버니니를 향해 아주 상냥히 웃어주었다.

 “네 역할은 내 옆에 앉은 메드울이 대신 해줄 거란다.”

 버니니가 획 고개를 돌린다. 브리니의 말대로 소파 바로 옆자리에는 언제 왔는지도 모를 청년 한 명가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녀보가 조금 옅은 금발에, 화려한 청록색빛 동공. 얼굴만 보면 웬 귀공자 하나가 앉아있나, 싶을 법한 외향이다. 그러나 정작 청년의 인상착의를 확인한 버니니의 기분은 곧바로 식어버렸다. 그것도 완벽하게 실망한 얼굴이 되어서.

 “어이, 아가씨? 당사자를 앞에 두고 그렇게 싫은 티내는 거 아니야.”

 “하지만 아저씨가 내 흉내를 내면…… 그렇게 되면 버니니는 분명 사납고 정신머리 이상한 엘프라며 소문이 날 텐데…….”

 “넌 원래부터 사납고 맛이 간 여자아이였단다.”

 “이것 봐요, 백작 님! 이 아저씨는 이상해! 메드울이 날 대신하면, 분명 제국 동부에 경박한 엘프가 교환학생으로 왔다고 소문이 날 거예요!”

 브리니는 제 앞에서 난리 법석을 떨기 시작한 둘을 빠르게 뜯어 말렸다. 버니니와 메드울이 싸우면 귓등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시끄러워 질 것이다.

 “쉿. 조용히 해 버니니. 눈을 3초만 감았다 떠볼래?”

 분함에 부르르 떨던 몸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버니니는 브리니의 눈치를 보다 천천히 눈을 감고 셋을 셌다. 하나, 둘, 그리고 셋. 다시 눈을 뜨면 제 아래 놓인 결 좋은 흑발이 보인다. 분명 브리니의 것이 확실한 흑발이었다. 그런데 그 옆의 모습이 조금 달랐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메드울이 앉아있던 자리에, 풍성한 금발을 늘어뜨린 벽안의 미녀가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반듯한 콧대와 곱게 굽어진 아치형 눈썹 모양. 그리고 꽃잎처럼 청초한 입술까지. 아무리 봐도 브리니 옆의 여자는 버니니, 그녀 본인이었다.

 “세상에. 저, 정말 저 같아요! 누가 봐도 저예요! 코도, 입술도, 심지어 가슴 크기도…….”

 “크흠.”

 버니니로 변한 메드울이 크게 헛기침을 한다.

 “딱 거기까지만 말해. 나도 지금 어깨 근처가 엄청 무거워졌거든.”

 “―근데 속이 메드울이에요! 으아앙! 정말 끔찍하게 징그러워요 백작 님!!”

 

 

M.M 17-06-07 01:58
 
속이 메드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아앙 하고 우는 거 너무 귀여워욬ㅋㅋㅋㅋㅋㅋ버니닠ㅋㅋㅋㅋㅋㅋ이름마저 깜찍해욬ㅋㅋㅋㅋㅋ그리고 점점 더 궁금해지는 여주의 정체...! 단순한 백작이 아닌 것 같네요, 레인우드 1세와의 관계도 그렇고, 드래곤에 소드마스터....여주, 당신 대체 뭐야 ㅠㅠㅠㅠ 예쁘고 신비한 매력까지 겸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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