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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약먹은인삼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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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969     추천 : 0     분량 : 6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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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장.

 

 

 오랜만에 찾아간 친구의 집에서 나는 녀석의 시신을 보게 되었다.

 아는 이의 죽음을 보고 있는 지금 내 기분은 뭐라 표현해야 할까.

 글쎄.

 마땅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정적과도 같은 시간 이후 비로소 딱딱한 한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죽었구나.”

 발을 내딛자 멎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흑백 세상의 텅 빈 감정여백으로 색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그것은 조금은 어둡고 음울한 푸른색이었다.

 다시금 인정한다. 내 친구 김태진은 죽었다.

 정확하게는.

 ‘게임을 하다 자살했다.’

 현실보다는 가상현실을 사랑한 놈. 아이템과 NPC를 사랑하던 녀석.

 퀘스트에 목매던 그 녀석은 가상현실에서의 실패를 못 이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싸구려 잡지조차 취급하지 않을 의미 없는 죽음이었다.

 “한심한 놈.”

 녀석의 건강상태는 썩 좋지 못했다.

 나이 39세. 키 178㎝. 죽기 전 몸무게는 40kg.

 NPC와 사랑하다 버림받고는 우울증에 걸려 굶은 결과다.

 정신 착란. 심각한 자기비하.

 녀석은 끊임없이 중얼거렸었다.

 -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주문처럼. 어리석은 염원을 담아 간절하게.

 헛것을 본 걸까. 자폐증 증상까지 보이던 그놈은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악마의 문장이라며 이상한 도형을 수천 번 그려대기도 했다.

 나로선 녀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사지 멀쩡하다. 자상한 부모부터 예쁜 여동생까지 화목한 가정이 있는 놈. 사무치게 가난한 가계도 아니었으니 어느 하나 부족할 것 없는 환경이다.

 그런데 이 한심한 녀석이 도심 속 무인도를 만들어 스스로 고립됐고 종국에는 자살해 버렸다. 가슴 아프게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 속 아바타가 입고 있는 옷과 퀘스트 따위를 미치도록 사랑하다가.

 “배부른 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뿌연 연기에 한숨을 담아 내뿜는다.

 미친 탓일까. 태진이는 게임 접속 캡슐 안에서 손목을 긋고 가슴을 난자한 채 죽어 있었다. 자신의 몸에 난자한 자국 역시도 멍하니 앉아 그려대던 이상한 문양과 똑같았다.

 ‘신문에 실린다면 사이비 교단에 빠졌다는 글귀도 추가되겠군.’

 나는 캡슐에 담뱃불을 짓이겼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을 덤덤하게 보며.

 “예, 사람이 죽었습니다. SL 오피스텔 4층입니다.”

 말을 이어갔다. 사인은 자살. 주소를 말하고 친구 관계임을 밝힌다.

 시체를 앞에 두고 하는 신고였지만, 목소리가 떨리거나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나는 비범한 놈이 아니다. 하지만 나이 서른아홉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며 가정이 있는 남자다.

 삭막한 현실을 몸으로 체득하고 일상에 찌들어 월말마다 각종 세금에 아이 양육비로 등골이 휘게 살아왔다. ‘인생, 죽지 못해 산다’고 말하는 어르신들에게 공감할 줄 아는 나이인 것. 그런 내게 이 정도로 곱게 자살한 시신을 보면서 비명 지르거나 넋 놓을 정도의 감수성은 남아있지 않았다.

 ‘이 일기장이 유일한 유서가 되겠군.’

 캡슐 팔걸이에 놓인 녀석의 일기장.

 언제부턴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태진이는 내가 일기장을 보려고 하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 한번 녀석이 화장실에 간 사이 몰래 본 적이 있는데 시시콜콜한 게임 이야기와 게임 속 연애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죽기 전 녀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사후경직조차 되지 않은 태진이의 손을 떼어내고 일기장을 들었다. 녀석의 주검을 만지며 손에 묻은 피가 일기장에 묻었고 흥건하게 고인 핏물에 내 발이 잘박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알고 싶었다. 뻔한 이야기가 있을 테지만 그래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나 같은 놈도 사는 현실을 왜 포기한 것인지를.

 우두커니 서서 읽었다.

 척척하게 젖은 겉장과는 달리 속은 상태가 양호하여 읽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녀석에게는 심각했겠지만 내게는 삼류 드라마와도 같은 이야기들이 쭉 이어졌다. 이윽고 마지막 장을 덮은 나는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한심한 놈 같으니.”

 내용은 예상 그대로였다. 게임을 하다 웃고 울다가 헛것을 보게 되어 과거로 돌아간다며 자살한 것. 정신병자가 쓴 것 같은 이 일기장에 유일한 특이점은 마지막 장에 그려진 악마의 문양뿐이었다.

 나는 혀를 차며 일기장을 팔걸이에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세상이 어두워졌다.

 

 

 

 

 

 * * * * *

 1. 파악

 * * * * *

 

 

 어둠 속에서 붉은 핏물이 글귀를 만들어냈다.

 [나는 간다. 이제 간다. 모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일기장 마지막에 적혀있던 녀석의 글.

 피로 쓴 글이 오싹하게 다가왔다.

 뒤이어

 모든 것이 지워져 버렸다.

 * * *

 - 삑-! 삐비빅! 삑-! 삐비빅!

 아침기상을 알리는 단조로운 기계음이 귓구멍을 쿡쿡 찔렀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귀를 막았다. 그냥 어깨 한번 흔들어주면 일어날 텐데 저따위 구닥다리 시계를 가져놓다니, 아내한테 화가 치밀었다.

 그러다…

 문득 어제의 일이 뇌리를 스쳤다.

 ‘……그랬었지.’

 발끈했던 화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버렸다.

 씁쓸한 웃음이 새어나온다. 태진이나 나나 실패하기는 매한가지이지 않던가. 사회적으로는 물론 가정적으로도 완전히 패배한 자.

 그게 나였다.

 “한심하긴.”

 나는 신경질적으로 알람시계를 껐다. 그리고 베개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지금은 눈을 뜨고 싶지가 않았다.

 

 내 삶은, 나의 결혼생활은 참으로 무미건조했다.

 중매로 결혼한 사이라 서먹서먹하기만 했던 결혼생활은 가족에 관한 책임과 의무감으로만 지속하였다. 아내와는 성격에서부터 취미까지 삐걱거렸지만, 남들도 그러려니 하며 살아왔다. 내 맘에 쏙 드는 이가 누가 있겠느냐며 말이다.

 본래 부부는 서로 맞춰가는 사이니까.

 그렇게 출근하고 아내가 차린 음식을 먹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다시 출근하고 때론 야근도 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것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을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의 변곡점이 찾아왔다.

 아니, 느닷없다는 말보다는 너무 늦은 발견이라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일찍 퇴근하여 들어오게 된 그 날.

 현관에 놓인 낯선 이의 신발과 내 집답지 않은 화사하게 촛불이 켜진 실내. 끝으로 어느 남녀의 들뜬 신음.

 그랬다. 나는 내 아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적나라한 현장을 본 것이었다.

 ‘썩을.’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쳐들어가 때려눕히고 호통을 치고도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하지 않았다.

 누워서 침 뱉는 격일 뿐 이니까.

 모름지기 가장은 가정의 얼굴이자 기둥이다. 그 기둥이 시원치 않아서 저리되었다고 광고를 하는 셈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또한, 벌거벗은 채 있는 내 아내의 체면 또한 시궁창에 빠뜨리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화를 억눌렀다. 분노를 가라앉혔다.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재미없는 남편에 비해 ‘저 남자’는 그녀를 여자로 보고 행복하게 했을 것이다. 이를 잘 이해한다.

 그러나.

 ‘모두 이해하지만.’

 굴욕스러운 감정마저는 어쩔 수 없었다.

 줄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태우며 아파트 현관에서 계속 기다렸다. 이윽고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여에 접어들 때쯤, 나는 문 앞에서 나를 보며 당황하는 옆집 남자에게 담배 연기를 뿜어주고는 나직하게 경고했다.

 이후 들어가서는 어찌할 줄 모르는 아내에게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말한 것. 그것이 어제의 사건이었다.

 그러니 아침에 직접 깨우지 않고 알람시계를 두는 것을 나는 이해했다.

 ‘기분은 거지같지만.’

 탁!

 괜스레 구닥다리 시계를 때려서 껐다.

 “자업자득이지.”

 우리 두 사람은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부모를 일찍 잃은 나와 알코올 중독 아버지 덕에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공통점. 그 연민의 합치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달랐다.

 아내는 가정적인 여자였다. 아기자기하며 따스한 마음. 행운보다는 행복과 온기를 바라는 그런 여자.

 하지만 나는 달랐다.

 책. 영화. 음악. 취미. 취향도 모조리 달랐고 입맛도 맞지 않으며 돈도 잘 벌어주지 못하는데다가 재미도 없는 남편. 월말마다 대출이자를 막기 위해 이리저리 돈을 찾아다니고 마이너스 통장이 되는 일도 허다한 남자. 노력은 하지만 늘 성과는 미진했던 녀석. 자존심은 있어서 집안에서나마 큰 척, 센 척하고 싶어하는 못난 사내.

 그러니 바람이 난다 해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안다. 잘 안다.

 내가 고작 그 정도라는 것을.

 나는 아내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남자로서의 매력 역시 보여주지 못했다. 이 사실을 신경질 날만큼 너무도 잘 알았다. 그렇기에 더 괜찮은 남자를 만난다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법적으로나 함께 해 온 세월로 보나 엄연히 부부이고 아내는 한 아이의 어머니가 아니던가. 가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면 서로에 대해 매듭을 지은 뒤. 이혼한 뒤 사귀었어야 옳지 않겠는가.

 그 작은 원망이 숨죽인 가슴을 쿡쿡 쑤셔왔다.

 ‘허탈했지. 외롭기도 했고.’

 술 한 잔이 너무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담 없이 만날 친구를 찾아갔다. 혼자 가상에서 줄창 살아가는 부담 없는 친구를. 내가 뭐라고 떠들어도 웃어넘기는 죽마고우를.

 하지만 친구의 집에서 내가 본 것은 녀석의 시체였다.

 ‘아내는 바람피우고 친구는 죽고.’

 실소가 절로 나온다.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이다.

 나는 엎드려서 가만히 주먹을 쥐었다. 눈을 감고 뜨거워진 눈가가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사니까 사는 것이다. 숨을 쉬니까 살고 있다. 죽지 않으니 사는 거다.’

 되뇌며 스스로 위로했다. 삶은 살아지는 것이라고. 그 뒤 나는 짜증과 공허함을 뒤로 한 채 몸을 일으켰다.

 “……어?”

 눈을 비볐다.

 “여기는…”

 수차례 눈을 다시 감았다가 떴다.

 천장의 벽지부터 주위의 모든 물건이 달랐다.

 ‘분명히 지금은 10월인데?’

 벽에는 봄철 3월임을 알려주는 달력이 걸려 있었다. 9일에는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달력에 가위표가 처져 있다. 수없이 볼펜으로 낙서해서 9라는 숫자가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나는 머리맡에 놓여 있는 구닥다리 폴더형의 휴대전화를 열었다.

 오늘의 날짜는.

 [3월 23일]

 ‘…뭐지? 날짜 설정이 잘못됐나?’

 꿈에서 아직 덜 깼나 싶었다. 10월이 분명한데 오늘이 3월 23일이라니.

 “가만.”

 그러고 보니 바닥이 너무도 딱딱했다. 침대 매트리스의 느낌이 아니었다. 둘러보니 한 장의 전기장판과 방바닥에 깔린 이불이 보였다.

 침대가 아니었다.

 혹시, 납치라도 당한 걸까?

 나는 순간 잠이 싹 달아났다. 황급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난장판이 된 방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먹다 남은 과자봉지.

 캔 음료수가 돌아다니고 학습지와 교과서가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나의 눈은 학습지 겉면에 쓰여 있는 주소와 이름을 보고 크게 떠지고 말았다.

 - 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 문제집. 고3 보충 자료집. 집 주소…

 “설마!”

 달력을 다시 보았다.

 [3월 9일]

 황급히 일어난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보았다. 전등을 켜자 갑작스러운 빛으로 눈이 부셨지만, 실눈을 뜨고 거울을 노려보았다.

 거울 속에서는 짧은 머리 모양의 청년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꿀꺽.

 침을 삼켰다. 바로 차가운 물을 틀어 세면대에 받아 얼굴을 처박았다가 들었다.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어 어지럽다 못해 아플 정도까지 만들었다.

 실눈을 뜨고 어질어질함을 이겨내며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이 다시 보였다. 낯설지만 놀라우리만큼 익숙한 얼굴.

 그것은 다름 아닌 과거의 나!

 “내가 미쳤나?”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그런데 지독하게 현실적인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데자뷰? 예지몽? 자각몽?

 ‘도대체 뭐지?’

 황당하기만 한 판국에 실소가 나왔다. 그때 언뜻 자살한 친구의 일기장이 떠올랐다.

 마지막에의 그 기이한 체험과 글귀가 이러했던 것 같다.

 [나는 간다. 이제 간다. 모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하하…… 말도 안 돼……”

 멍청하게 거울 속의 청년이 읊조렸다.

 하지만 충격과 고민도 잠시일 뿐. 몇 차례 꼬집고 나를 다시 보노라니 이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와 닿기 시작했다.

 꿈치고는 모든 감각이 너무나도 몸서리치게 제대로인 까닭이다.

 

 ‘진짜일까? 정말?’

 시간을 거스른다니. 과거로 돌아왔다니.

 차라리 내가 지독하게도 실감 나는 꿈을 꿨다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을 것이다. 깨고 나면 언뜻 생각나지만 채 30분도 되기 전에 어른어른해져 버리는 한바탕의 꿈을.

 하지만 꿈이건 현실이건 무슨 상관이랴. 이미 내 현실은 최악이었다.

 지금이 꿈이면 잠시 즐길 뿐이고 현실이면…… 그 역시도 나쁘지 않았다.

 “정말 좋은 일이겠지.”

 얼토당토않음에 킥킥 웃으며 나는 망상을 한 번 이어보기로 했다. 미래를 경험했고 이를 모두 알고 있는 상태로 회귀했다. 만일 그러하다면 어떻게 내 인생이 달라질까?

 시험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복권과 부동산, 주식투자로 쏠쏠한 이익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학생 때는 평범했지만 10년 뒤 정말 성공하는 친구나 아름다워지는 여자 친구에게 미리 호감을 살 수도 있을 것이고, 잘못했던 이들에게 감사를 전할 수도 있게 된다.

 한마디로 ‘멋들어지게 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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