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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약먹은인삼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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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641     추천 : 0     분량 : 6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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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모부다. 잘 있었냐?」

 “……나 이거야.”

 나는 허탈함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초인간적인 대상을 떠올리며 두려워한 내가 참으로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긴장이 확 풀리자 굳었던 생각이 술술 풀려나갔다.

 ‘아아. 그랬지. 그랬어.’

 그래. 이제 생각난다. 열심히 집에 출근도장을 찍던 고모부가 말이다. 아마 내 시절 중 이때가 가장 많이 또 자주 친척들을 보아왔던 때였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 사망하시고 난 이때에 분에 넘치도록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아아. 정정한다. 나보다는 더욱 능력 있는 친구에게 관심을 두었었다.

 ‘돈 말이지.’

 하긴 액수가 꽤 크긴 했다.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하셨다.

 과실은?

 상대에게 있다. 상대 측의 중앙선 침범으로 말미암은 정면충돌로 사망한 것이니 말이다. 사고 후 사망한 부모님과는 달리 상대 측 운전자는 살아있었는데 그에게서 결정적인 증거가 또 나온 것이다.

 그것은 바로 혈중알코올농도 0.136%.

 신호대기 중인 차량을 들이받은 교통사고 사망사고였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무보험 상태이거나 가계가 힘들어 쫄딱 망하거나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정말이지 다행스럽게도 그들 역시 알차게 보험 가입이 되어 있었고 꽤 상층에 속하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100퍼센트의 과실에다가 부모님께서는 작은 마트를 운영하고 계신바. 사업자 보험은 물론 당연하게도 운전자 종신보험에도 가입하셨다. 여타 기본적인 보험 등에도 가입되어 있었고, 이 모든 것의 수혜자는 나였다.

 ‘기억이 나.’

 아무래도 예지몽과 과거 회귀 중에서 회귀에 더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이때의 나는 어땠었나.

 부모를 잃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엉겁결에 돈만 많아진 사회 초년생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철부지 얼간이였어.’

 나는 그렇게 웃고 있다가 잠긴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말쑥한 차림의 고모부가 보였다. 그 얼굴을 보니 작은 DVD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부가적인 정보까지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러고 있을 줄 알고 찾아왔다. 녀석아.”

 그런 그의 옆으로 고모가 함께 있었다. 그녀는 반찬거리를 가져왔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기운 내야지. 이러다 등교 시간에 늦으면 어쩌려고 그러니.”

 다정하게 타이르며 안으로 들어와서는 신발을 정리한다. 뒹구는 쓰레기며 이불을 정리했다.

 “자자, 기운 내라.”

 고모부는 나의 어깨를 듬직하게 두드리며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런 위로를 받으며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 사람. 돈 빌리고 연을 끊었던 친척이지 않던가.

 “아직은 힘들겠지만 언제나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알았지?”

 부드럽게 타이르는 목소리.

 어쩜 저리도 말을 잘했을까. 저런 사람이 나중에 단물 쏙 빨아 먹고 돌아설 줄 어찌 짐작이나 할 손가. 심금을 울리는 대사에 위로. 손짓까지 완벽하게 하는 그들이었다.

 한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외로웠던 때에 매일같이 방문하며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신뢰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웃기는 것들.’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더욱 고개를 숙였다.

 그뿐이랴. 앞으로도 찾아올 온갖 친척들의 작태를 떠올리자니 미치도록 재미났다.

 아침마다 출근 도장 찍느라 얼마나 귀찮았을까.

 이런 헌신적인 노력과 관심을 받은 나는 이후로 저들에게. 또 친척들에게 ‘가족’이라는 이유로 적잖은 도움을 주었었다. 대출 이자 몇천만 원. 보증금 몇천만 원. 병원비 몇백만 원. 등등을 말이다.

 하나같이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무장한 그들의 간곡한 부탁을 어찌 가족으로서 거절하겠는가. 더군다나 가족끼리 차용증을 쓴다?

 어찌 가족끼리 그런 일을.

 ‘우리가 남이냐?’라는 그들의 말에. 안타깝기 그지없는 사연에 나는 그렇게 부모님의 피 값으로 받은 소중한 돈을 마구 퍼 주었었다. 사실 십 수억에 돈이 쌓여 있는 상황인지라 제대로 개념이 잡히지 않은 탓이 컸다.

 더군다나 부모로부터 빈자리를 저들로 채우고 싶었다는 작은 소망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실패한 나의 삶으로 귀결됐다.

 ‘변변치 않은 벌이 탓에 아내가 바람이나 피고 나는 근근이 풀칠하며 사는 신세가 되었지.’

 어설프게 쌓인 돈으로 고3.

 대학생활을 윤택하게 보낸 나는 그만큼 공부도 시원찮게 했었다. 그리고 대학은 그마저도 낮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후 쌓여 있던 돈마저 친척들에게 주고, 헤프게 쓰는 습관으로 모든 것이 거덜 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는 나에게 학벌이라는 이름의 만만치 않은 벽을 떡하니 보여줬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외면했다.

 ‘정말 혼자가 됐어.’

 십 수억의 돈이 떨어진 지 넉 달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더는 짜내도 떨어뜨릴 단물이 없다고 인식된 지 딱 넉 달째였었다. 사회의 벽을 실감한 지 두 달째 되는 시점이었다.

 바로 그 두 달 만에. 돈이 없어진 나는 다시 버려졌다.

 그 많던 친구에게서도. 애정 어린 가족들에게서도.

 그렇기에 지금의 상황이 내게는 웃기기만 했다.

 

 돈을 목적으로 온 이들. 사랑이 없음을 나는 잘 안다. 나 역시도 직장생활을 하며 그리 움직였었으니까.

 그러니 마찬가지로 대우해주면 될 일.

 그렇게 통쾌하게 그들을 비웃으려는 순간이었다.

 “윽!”

 주먹을 움켜쥔 탓일까. 통증이 엄습해온다. 섬뜩하고 생생한 통증을 느끼자 머리끝까지 불태우던 흥분이 다소 가라앉았다.

 고통은 어떤 감정보다도 강렬했다.

 “아니, 손이 왜 이래? 여보! 약 상자 어디 있어? 얼른 찾아봐.”

 “네? 아이고. 가만… 내가 지금 옷을 다릴 때가 아니지.”

 고모부는 격려하던 것을 거두고 걱정스럽게 내 손을 보았다. 고모 역시 황급히 바르는 약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는 말 그대로 안쓰러움과 연민만이 보일 따름이다.

 허둥지둥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가식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지나친 억측을 한 건가?’

 조금은 침착할 필요가 있었다. 순간순간 화를 내고 주먹다짐하는 것은 어렸을 때면 충분하니까.

 “아니에요. 과일 좀 깎다가 베인 것뿐인걸요.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문을 잠근 뒤 세면대에 물을 틀어 수건에 적셨다. 이어 차갑게 적신 물수건을 얼굴에 덮어 열기를 식혔다.

 뜨겁게 달아오른 눈두덩이 서늘해지니 비로소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악마를 떠올리며 긴장하던 차에 그들을 봐서인가.

 너무 흥분했던 것 같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주문처럼 되뇌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오래전에 내렸던 결론을 다시금 되새겼다.

 저들이 범죄자들이고 위선자들일까. 불구대천의 원수인가.

 ‘상현아.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않더냐.’

 성숙한 자아가 젊은 몸뚱이를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저들 잘못이 아니다.”

 술에 취하여 쓸쓸히 퇴근하던 날 문득 내린 결론을 반추했다.

 그렇다. 저들은 속에 시커먼 흉계를 가지고 온 희대의 사기꾼들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사람들. 명절 때 한번 보고 어려울 때 작은 도움을 주며 자식 자랑을 하는 일반적인 부모에 불과했다.

 저들이 그런 흉계를 갖고 나를 속이기 위해 대사와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과한 억측이었다. 다만 피치 못 하고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저마다 있을 뿐이다. 내 가족을 위해 이기적으로 일해야만 했던 지난 미래의 나처럼.

 “멍청했던 게 잘못이지.”

 자조적으로 웃었다. 학교를 벗어나 겪은 현실이 나를 성숙하게 한 까닭이다.

 내 탓이었다.

 돈이란 것이 모으기보다는 쓰기 쉽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분수에 맞지 않게 씀씀이가 컸던 나의 잘못이었다.

 사실 친구 사이끼리. 가족끼리 모여서 저마다의 사정을 얘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중에 ‘요즘 경기가 어때?’ ‘제수씨는?’ ‘아파트 융자는 어떻게, 잘 되니?’ ‘처남이 사고로 다쳤는데 불쌍해서 어쩌지!’ ‘조카가 생일인데 말이야.’ 등등의 이야기는 숱하게 나온다.

 단지 돈 없고, 자기 주제를 아는 사람은 그런 일에 쉽게 나서지 않는다. 막말로, 당장 내가 먹고살기 바쁜데 감히 누구에게 신경을 쓰겠는가? 또한, 도와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자기 분수에 맞는 선물을 준다.

 그러나 나는 엉겁결에 갖게 된 어마어마한 돈이 있었다. 내 것이지만 내 노력이 아닌 그 돈들. 그렇기에 나는 착한 사람이 되어 그런 이야기 하나하나에. 능력 있는 사람으로서 오지랖 넓게 끼어들었다.

 ‘내 잘못은 맺고 끊는 것이 명확하지 않았고 빈틈을 너무 보였다는 거였어.’

 저들이 무조건 옳고 내가 무조건 어리석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저들의 탓을 하기에는 내 부족함이 너무 컸다는 자각일 뿐.

 소매치기가 지나가는 경찰의 지갑을 터는 일 따위 일어날 리 없다. 그러나 만취하고 가로수 아래에서 잠들어 버린 취객의 지갑을 터는 일은 자주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상대가 그러게끔 충분한 빈틈을 보였다는 것에 있다.

 빈털터리가 된 나를 그들이 거부한 것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 내게서 너무도 큰돈을 받았기에,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갚기 곤란할 정도의 돈이었기에 그들은 나를 외면하는 길을 선택한 것.

 나나 그들이나 그저 그런 사람이며 삶이었다는 사실.

 그것이 전부였다.

 회귀 전. 결혼하고 가장이 돼 나도 그리 살았었다.

 저들을 이해했다. 용서한다. 하지만

 '잊지는 않겠다.'

 나는 한숨과 함께 마음속 찌꺼기를 토해냈다.

 “봐요. 멀쩡하죠?”

 걱정스레 보는 그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별것도 아닌 걸로 걱정 끼쳐드려 외려 죄송하네요.”

 “그래도 인석아. 약은 발라야지. 이리 손 다오.”

 고모는 그렇게 말하고는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아, 그런데 고모부. 교복은 어디 있죠? 이거 더 늦으면 지각일 거 같은데요.”

 “여기 있다. 네 고모가 대충 다려놨지.”

 “여보, 아직 바지를 덜 다렸는데…”

 “이 사람하고는. 애가 학교에 늦는다잖아.”

 티격태격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나는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와이셔츠에 단추를 채우고, 바지를 입어 허리띠를 감은 뒤 겉옷을 입는다. 그러다가 나는 놓여 있는 넥타이를 보고는 웃었다. 은근히 있을 거는 다 있는 교복이 재미났던 것이다.

 가방에 아무런 교과서나 적당히 넣어 맸다. 머리칼은 짤막하여 빗질할 필요조차 없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인연을 맺고 끊는 것.’

 그것은 최악을 피하고 최선을 위한 현명한 결단이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더없이 진지하게. 이전의 내가 보인바 없던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아침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탁할게요. 내일부터는 찾아오지 말아 주십시오.”

 어투를 바꾸면 친하던 사이도 서먹하게 느껴지는 법.

 바뀐 나의 모습과 난데없는 말에 그들이 당황해 했다. 나는 그들이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외려 손으로 제지하며 내 할 말을 이어갔다.

 “충분히 생각했고 스스로 이겨내고자 합니다. 더불어, 이제는 제 일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네요. 이것이 그동안 고민하며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예의가 아니지만 제 뜻을 존중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하, 하지만…”

 너무도 당황했는지 횡설수설하는 그들이다. 그나마 정신을 수습한 고모부가 내게 말했다.

 “그래도 엄연히 우리는 남이 아닌 가족이란다. 아침에 오는 것 정도는 별것도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어.”

 “그래. 어차피 찬거리 만든 거에서 조금 덜어오면 되는 거란다.”

 “제가 성인으로서 내린 첫 결정입니다.”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리 말하고는 가만히 서 있을 뿐.

 잠시 정적이 머물렀다.

 “흠. 흠.”

 헛기침하고 머리를 긁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낯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침묵의 시간 이후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언제라도 힘들면 찾아오너라.”

 그녀도 붕대를 들고 있는 채로 서둘러 반찬거리를 냉장고에 넣었다.

 “건강 조심하고, 밥도 꼭 챙겨 먹고. 알았지?”

 그들은 걱정과 당부의 말을 몇 마디 더 하고는 나갔다.

 나는 배웅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는 모습에서 저 밑에서 걸어가는 모습까지 내려다보았다

 ‘이제 첫발이다.’

 과거와 다른 나의 하루. 그리고 인생의 시작이었다.

 

 * * *

 

 아릿한 통증을 벗 삼아 정신을 가다듬는다. 이제 어떻게 내 삶을 고칠지 더욱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었다.

 어떤 삶이 성공일까? 나는 어떤 성공을 바라고 어떠한 행복을 갈망하는가?

 하나씩 정리하고 찾아간다.

 ‘내게 많은 친구는 필요 없다.’

 말이 많으면 영혼이 빈곤해진다.

 지난날. 짧게나마 흥청망청 돈을 쓰며 내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곁에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나’라는 인간에게 관심을 두고, 언제고 내 곁에 있어준 이는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원한다. 간절히 바란다.

 ‘언제라도 내 곁에 있어 줄 사람을.’

 기쁨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가 아닌 슬픔을 나누어 짊어질 수 있는 진짜 벗.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런 면으로 보건대, 지난 내 삶에서 나는 친구도. 진실 된 사랑도 없었다. 그나마 근접한 것이 캡슐에서 죽은 친구였지만 ‘그 역시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3월 23일이 무슨 날인지 생각난 덕분이다.

 진짜 친구.

 “이번 삶에선 찾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의 삶이 이전의 삶보다 현명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가자.”

 이제 진실을 확신하기 위해. 녀석의 의미를 보기 위해 학교에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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