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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약먹은인삼
작품등록일 : 20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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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작성일 : 16-07-11     조회 : 635     추천 : 0     분량 : 6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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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절로 났다. 과연 녀석의 뒤를 쫓으며 내가 본 것이 사실이기는 한 걸까.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해결할 수 있던 일이었는지, 태진이는 밤새 세 사람의 뒤를 쫓아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훔쳐버렸다. 그리고 이를 아무도 없는 골목 어둠 속에서 불태웠다.

 중요한 것은 녀석의 움직임이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조금 빠른 속도로 걷던 녀석이었지만 단둘이 된 상황에는 순식간에 상대를 기절시켜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단독주택 안으로 들어간 목표는 2m가 넘는 담장을 훌쩍 넘기까지 했다.

 그것은 평범한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위험했어.”

 동선만 파악하고 성륜의 주인이 어떤 이들인지 구경한다는 개념으로 뒤쫓았기에 망정이니 설피 따라붙었다가는 어떤 일을 겪었을지, 그저 모골이 송연할 따름이다.

 게다가.

 ‘막상 다가가서 본 성륜의 주인들도 평범했고.’

 기절했던 이를 깨웠더니만 멀뚱히 ‘왜 자는 걸 방해하느냐’던 이들이고 딱히 놀라운 능력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악마를 방해하는 퇴마사들이라기보다는 소매치기나 퍽치기를 당한 행인에 불과했으니까.

 ……제길.

 ‘뭔가 더 혼란스러워졌다.’

 아무튼, 모든 일을 마친 태진이가 성륜이라 ‘짐작되는 것’을 태워버렸고 그 남은 재라도 긁어 집에 온 것이 지금이다.

 ‘어쨌건 다행이다.’

 믿어본 바 없는 신에게 처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덕분에 알아낸 사실.

 태진이는 정도 이상으로 ‘강화된’ 몸을 갖고 있다. ‘정신’은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의 수준이다. 끝으로 녀석이 ‘성륜 3개를 제거한 것’ 같다.

 계약으로부터 안전하면, 함께 묶여있을지 모르는 나 역시 안전해진다.

 이제 비로소 한고비를 넘긴 것이다.

 “휘유.”

 긴장이 탁 풀리니 기분 좋은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재 뭉치를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어 이불 위로 쓰러져 그대로 잠들었다.

 

 

 * * * *

 3. 일상

 * * * *

 

 

 6월 1일.

 세상이 뒤집혔다. 대통령 당선일이 이럴까. 뉴스며 신문이며 온갖 방송에서 떠들썩하게 하나의 영상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것은 소리 없던 Z&F의 큰 도약. 세계 최초이자 불가능하리라 믿어지던 가상현실의 상용화에 관한 것이었다.

 대문짝만하게 실린 신진권 사장. 머지않아 회장이 될 그의 얼굴에 이어 방송 매체에서는 그의 과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알려주고 있었다.

 뿐만이랴. 온갖 유명한 학자들이 나와 이 엄청난 기술의 파급효과에 대하여 ‘새 시대가 도래’ 했음을 말하고 있었다. 또 불가능한 기적임을 역설하며 갑론을박 다투는 일이 허다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지.’

 지난 삶에서 겪었듯이 가상현실 기술은 단지 가상공간으로만 국한될 것이다. 그 기술이 현실의 삶에 다양하게 적용되어 패러다임의 혁신을 부를 것이라는 상식적인 발상은 묻히게 된다.

 단순한 도형에 불과한 악마의 문장을 내가 떠올리지 못하듯, 인류는 캡슐의 비밀과 가상현실 기술을 보아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즉, 지금 내게 가치 있는 것은 고공 행진을 하는 Z&F의 주식이 된다.

 ‘이쯤에서 손을 털어보고.’

 270원짜리 주식이 18만 원이 된 상황이다. 물론 이 주식은 더 뜰 것이나 나는 이쯤에서 매도하였다. 이익은 충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얻은 상황이니까.

 이후, 계획했던 기업의 주식을 매수하는 것으로 오전 일과를 마무리한 나는 하프 미튼(Half Mitten) 형의 패션 장갑을 낀 뒤 작은 교자상 위에 놓인 컴퓨터 선을 하나씩 정리했다.

 지난 약속이 잘 지켜진 답례로 컴퓨터를 선물할 요량이었다.

 스티로폼에 넣어 준비해 둔 상자에 담는다. 골목 너머까지 한 번에 들기는 어렵기에 우선 모니터를 나르고 본체를 들어 대문 앞에 가져다 놓았다.

 똑똑...

 “아저씨. 저 상현입니다. 안에 계시죠?”

 “그랴. 열려 있으니 들어와!”

 문을 열고 상자를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내 키 정도 되는 낮은 지붕으로 이어진 굴속 같은 작은 방이 보인다. 부엌을 지나 방과 방으로 이어지는 그 집은 계획적으로 지었다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얼기설기 시멘트로 만든 방이었다.

 그 한편에는 낡은 러닝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한 손으로 머리를 감고 있었다. 하얀 거품 탓에 눈을 희미하게 뜬 그는 비누칠을 마저 하며 내게 손짓했다.

 “이거만 감고 들어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 있거라.”

 “네. 먼저 설치하고 있을게요.”

 고개를 끄덕여 보인 그는 다시금 한 손을 움직이고 받아 놓은 물에 머리를 숙여 비누기를 씻어낸다. 그의 이름은 정상호. 외팔이다. 공장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다가 안전 소홀 때문에 팔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탓이다.

 잠시 그를 보던 나는 곧 방에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 보자.’

 여기저기 옷더미가 쌓여 있는 곳 너머로 유별나도록 휑하니 텅 빈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그가 준비해 둔 곳이다. 나는 가져온 컴퓨터를 꺼내 선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부팅을 완료할 즈음. 수건으로 머리칼을 닦아내며 그가 들어왔다.

 “아따. 거 좋아 보이는구나. 이게 미령이 준다는 컴퓨터인 게냐?”

 “네. 애당초 약속했던 거니까요. 어때요? 그럴듯하죠?”

 “좋다마다.”

 듬성듬성 난 수염. 주름진 얼굴로 환히 웃는다. 나는 차근차근 알려주기 시작했다. 부팅하는 방법. 그리고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는 방법 등을 말이다. ‘그래. 그렇구마.’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종이를 꺼내 받아 적는 열의까지 보이며 하나하나 되뇌었다.

 내용이 많지 않았던 터라 그가 암기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잊지 말 건요. 요즘 어지간한 건 애들이 더 잘 아니까, 슬쩍 알려주고 나서는 그냥 뒤에서 구경하시는 거예요. 팔짱 끼고 무게 잡으면서 ‘알아서 해봐.’ 하는 거죠.”

 “그거 정말 쉽구나. 하하. 알았다 알았어. 아… 이거 오늘 같은 날 막걸리라도 같이 해야 하는데 말이다. 마누라가 부침개를 끝내주게 잘하거든.”

 “전 아주머니한테 혼나기 싫거든요. 살려주세요.”

 사고를 겪은 뒤 보상으로 받은 돈을 이 남자가 술값으로 모조리 탕진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이 가정에는 생고생을 한 과거가 있었다. 내 핑계를 대면서 슬쩍 먹으려는 심산이 분명하다.

 뜨악한 내 표정에 그가 웃었다.

 “농담이다. 나야 먹으면 줄창 먹어대니까 말이지. 하지만 너한테는 뭐라도 사주고 싶구나. 고맙다.”

 “에이. 그런 말로 은근슬쩍 가지면 안 돼요. 이거 빌려준 겁니다. 언제라도 미령이가 피아노 그만두면 뺏어갈 거라니까요. 그때 안 주시면 쳐들어올 겁니다.”

 “고마, 걱정 말아라. 내가 고년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학원에는 보낼 테니까. 하하하.”

 “그런데 오늘은 일 안 나가세요?”

 “안 그래도 지금 나갈 채비를 하던 중이었지. 그런데 미령이 오기 전에 조금 연습을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그러면 어차피 가는 길인데 제가 사모님께 아저씨 조금 늦는다고 말씀드릴게요.”

 “그려. 부탁하마.”

 그러며 마우스에 손을 가져가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였다. 나는 그를 일별한 뒤 밖으로 나왔다. 골목을 벗어나 작은 슈퍼에 들려 과자와 음료수를 산 뒤 대로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작은 교회로 들어간다. 교회의 창 한편에는 선교원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문패 역시 ‘교회’와 ‘선교원’이 함께 붙어 있었다.

 작은 쪽문을 열자 한 편에서 아이들이 흘린 음식을 닦고 있던 선한 인상의 남성이 나를 반겼다. 그는 개척교회의 목사인 장필모였다.

 “아. 상현이구나. 방금 아이들 간식으로 떡볶이를 한 참이거든. 어때, 생각 있니?”

 “에구. 간식거리 사왔는데, 한발 늦었네요.”

 그가 빙그레 웃었다.

 “그 헌금은 내가 뜻깊고 좋은 일에 사용할게.”

 “에에? 또 이렇게 뺏기는구나! 어쩔 수 없죠.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떡볶이 다 먹어서 본전 뽑아야지.”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내부는 말 그대로 정신없었다. 교회로 쓰고 있는 곳과 선교원으로 쓰는 장소가 같았던 이유로 아이들 장난감에서 책자는 물론, 저 한 편에는 예배 때 사용할 성경책과 찬송가가 가지런히 있었다. 사방의 책장에 있는 아이들 도서. 그리고 정면에는 강대상과 큼지막한 나무 십자가가 떡 하니 걸려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정신없었던 이 풍경도 이제는 익숙해지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방에는 한 여성이 플라스틱 그릇들과 작은 포크를 씻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떡볶이 먹으러 왔습니다~”

 “왔니? 그런데 이거 애들 용이라 케첩으로 만들어서 입맛에 맞으려나 모르겠네.”

 “저 가리는 거 없이 다 먹어요. 듬뿍 주세요.”

 “장갑은 벗고 먹지 그러니?”

 “하하. 이게 요즘 패션 아니겠어요? 아, 그리고요. 상호 아저씨가 조금 늦을 것 같아요. 오늘 미령이 선물이 와서 그러니까 조금만 이해해주세요.”

 담아준 떡볶이를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이들은 좋은 사람들이다. 종교를 직업 삼아 사리사욕을 위해 신을 팔고 복음을 강매하는 이들도 있지만, 눈앞에 목사 부부는 달랐다. 자신의 믿음과 신앙에 충실하다. 사모는 함께 봉사하며 선교원을 통해 외로운 아이들을 돌보았다. 장필모 목사 역시 아내의 일을 돕는 한편 간간이 인근의 홀몸노인들을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고 고충을 들어주며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기에 나 역시 간간이 이들을 찾아 일손을 돕는 중이었다. 물론, 이를 통해 내가 얻는 정보 역시 있었다. 그중 하나가 조금 전에 방문했던 정상호다.

 본래는 간단한 인적사항만 알고 지냈었다.

 팔을 다치고 실의에 빠져 술로 돈을 탕진한 정상호. 살림을 위해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그의 아내 장민주. 끝으로 초등학교 5학년인 딸 정미령이 있다는 정도 말이다.

 ‘그냥 그렇게 지냈지만.’

 가난은 왕도 구제하기 어렵다지 않던가. 비록 내 돈이 많기는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모든 이들을 도울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 목숨이 달려있다면 도왔겠지만 여간해서는 돈을 허투루 쓰지 말아야 했다.

 나는 그렇게 인사만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일손을 돕던 중 사모에게 넌지시 ‘재능 있는 아이’에 대해 묻자 그녀가 미령이를 알려준 것이다.

 ‘그 아이가 정말 하고 싶어 했었는데 사정이 안 돼서 말이야.’

 ‘요즘도 가끔 찾아와서는 몰래몰래 치곤 한단다.’

 그녀가 말하기를 미령이라는 아이는 어떤 소리라도 피아노로 음계를 찾아 칠 정도의 귀를 가졌고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능수능란하게 피아노를 다룰 줄 안다 했다.

 이건 타고난 재능이다.

 단지 음악적인 그 놀라운 재능이 감춰진 이유는 산동네에서 피아노를 가진 가정이 교회 외에는 없었고, 어릴 적 만취 상태인 부친 탓에 주눅이 들어 소극적인 성격이 된 터라 학교에서도 나서지 않은 탓이라 한다. 아이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아이가 악기를 연주하는 용기가 생길 리 없으니 말이다.

 여하간, 이를 들은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지만 마땅히 일이 없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정상호와 친해졌고 점차 가족과 안면을 익혔다. 그리고 마침내 만난 미령이에게 장난삼아 청음을 시험, 목사 부부의 말이 전적으로 옳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는 간단했다.

 아무리 내가 돈이 있다고 하지만 내 나이는 아직 20살이 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내가 어른에게 돈을 건네며 돕는다면 자존심상 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드물 것이 자명한 일. 나는 대리인으로 쓰고자 다시금 교회를 찾았다.

 덕분에 봉사하는 ‘근면 성실한 젊은이’였던 나는 ‘사연 있는 부자 젊은이’로 각색되었고 목사 부부는 포장된 내 이야기를 들은 뒤 놀라워하면서도 내 돈을 받아들였다. 돈의 사용처를 반드시 내게 알려준다는 단서 조항을 달긴 했지만.

 적은 월급이나마 두 사람의 선교활동을 도우며 정상호가 교회 일을 돕는다. 이를 본 나는 슬쩍 다가가서는 친해지며 ‘미령이가 피아노를 즐기는지 아닌지.’ 확인한 뒤 핑계를 대며 선물을 준다.

 “미령이는 어때요?”

 매콤한 맛은 배제된 새콤달콤한 떡볶이를 먹으며 물으니 그녀는 자기 일처럼 즐겁게 말해 주었다.

 “네 덕에 또래 아이들이랑 같이 학원에 다니고 있잖니. 거기서 미령이가 실력발휘를 하니까 친구도 많이 사귀게 되었다고 하더구나. 학교에 소문도 나서 교우관계도 굉장히 좋아졌어.”

 사실 대상은 미령이 하나였지만 그 아이만을 보내는 방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소극적이고 가정형편마저 어려운 탓에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아이가 아니던가. 고립된 상황에서 자칫 실력만을 키웠다가는 아집에 빠지기에 십상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공통분모를 만들어 줄 겸. 사정이 어려운 또래 친구들을 같이 후원하는 방식으로 학원에 보냈었다.

 “얼마 전에는 가요를 클래식처럼 변주시켜서 치는 걸 보여주던데, 정말 대단하더구나. 피아노 원장님도 굉장히 의욕적이시고 말이지. 피아노 경연회에서 쓸 작정으로 요즘 맹연습 중이라며 자기 일처럼 반기고 있어.”

 “다닌 지 한 달밖에 안 된 아이를 콩쿠르에 내보낸다고요?”

 “그렇단다. 마침, 한 달 뒤에 경연회가 있다고 하거든.”

 자신의 제자 중에 뛰어난 이가 배출된다면 이는 제자는 물론 스승의 명예이기도 하다. 그러니 저토록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다.

 하지만 좋지 않았다.

 “미령이 실력이 좋긴 한가 보네요.”

 “또래에서는 비할 아이가 없을 정도라던데? 이미 선생으로서 가르칠 건 없을 정도 라더구나. 그저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보여주고 기회를 주는 것이 전부일 정도라 하며 어찌나 즐겁게 웃으시던지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단다.”

 주목받는 것도 차근차근 이어져야지 저토록 단시간에 관심을 받게 되어 버리면 상대적으로 콩쿠르가 마무리되었을 때. 혹은 화젯거리가 없어졌을 때의 상대적 박탈감도 커지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뛰어난 아이에게 형식을 강요하는 것은 상상의 폭을 제한하는 의미뿐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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