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두 마리를 더 잡았을 때였다.
[꿀꺽!]
누군가 음식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일까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발차기가 훌륭했던 사내와는 달리 말 그대로 평범하게 사냥하는 터라 내게는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
무의식중에 침이라도 삼켰나 보다.
나는 상태창을 열어 능력치를 분배했다. 이번에 받은 10의 포인트를 모두 지혜에 추가하자 새로운 능력치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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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Lv 2(전사)
힘 : 10 혈력 : 1
민첩 : 10 기력 : 1
지혜 : 15 마력 : 1
위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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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레벨까지의 필요 경험치는 40. 사냥할 토끼는 34마리다.
‘슬근슬근 톱질하듯이~’
어차피 랭커가 될 것도 아니고 지존이 될 생각도 없다. 지금처럼 천천히 안빈낙도 유유자적 사냥하면 충분하지 않으랴.
‘평범과 무난함이 겜생의 모토로다.’
보라. 인기인의 피곤함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가.
“님! 노하우 좀!”
“좀 알려줘요, 오빠~”
“그, 그게…… 에잇!”
주위 사람들에게 시달리다가 결국 숲 속으로 자리를 옮겨버리는 태권 사내에게 삼가 애도를.
‘레벨업하자.’
나는 다시금 오른손에 돌을 쥐었다.
왼손으로 토끼를 쥐고 돌로 때려잡는다.
퍽! 끽?!
퍽! 끽?!
거둬들이고 다시 잡고를 기계적으로 반복.
예상했던 시간이 흐르고 레벨은 3이 되었다. 예정대로 3. 3. 4의 분배를 한 뒤 토끼를 묵묵히 때려잡았다.
3레벨에서 4레벨로의 필요 경험치는 80. 4레벨에서 5레벨로의 경험치는 160이다. 근 100마리의 토끼를 잡아 5레벨이 된 나는 능력치를 분배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두 배씩 경험치가 늘어났다가는… 나중에는 어마어마하게 요구 경험치가 늘어나겠구나.’
실로 퀘스트의 보상 경험치가 없다면 레벨업은 진작 포기해야 정신건강에 좋을 터다. 태진이가 왜 NPC와 이벤트에 안달했는지 새삼 이해가 되었다.
그때 한 꼬마가 다가와 물었다.
“형. 매크로예요?”
“그게 무슨 말이지?”
“어쩜 그렇게 한결같은 자세로 똑같이 잡는지 신기해서 그래요. 토끼 94마리를 그렇게 잡다니… 헐. 형 진짜 끈기 짱.”
‘글쎄다.’
내 생각으론 그걸 지켜보며 숫자를 센 네가 더 끈기 있다 싶다만.
“고맙구나.”
“형. 잠깐만요.”
꼬마는 슬쩍 달라붙더니 은근하게 말했다.
“공격력 보니까 힘 능력치를 올린 마법사 같던데, 저한테 괜찮은 생각이 있거든요. 같이 해볼래요? 사람만 더 있으면 단숨에 랭커로 치고 들어갈 수 있는 필살 전략이 있어요.”
“처음 보는 나와?”
“원래 친구랑 같이하려고 했는데 실수로 엉뚱한 왕국을 선택해서 흩어져서 그렇죠. 이 전략이 혼자선 불가능하거든요. 헤헤.”
랭커라 함은 1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 중 상위 30위 안에 드는 이들을 말한다. 꼬마는 그 정도의 상위레벨에 들 수 있는 전략이라 자신하고 있는 것이다.
‘요 녀석 봐라.’
나는 꼬마를 다시 보았다.
10살쯤으로 보이는 소년. 푸른 눈에 금색 머리칼을 한 할리우드 아역배우처럼 잘생긴 소년은 개구쟁이 악동과도 같은 웃음을 지었다. 내게 슬쩍 무언가를 보여 줄락 말락 하며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말이다.
“그 좋은 걸 왜 나한테 제안하는 거지?”
“형처럼 미련하게 사냥하는 사람은 처음 봐서요. ‘딴 사람은 할 테면 해라. 난 나대로 하련다~’하는 모습이랄까. 그래서 왠지 믿음이 가요. 어때요? 밑져봐야 본전인데 한번 같이 해 보는 건?”
대놓고 미련하다더니만 제안을 한다.
‘얘도 특이하네.’
피식.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단다.”
“뭐가요?”
“나는 힘 능력치를 올린 마법사가 아니라 지혜를 올린 전사거든. 마법사가 아니어도 될까?”
소년이 혀를 내밀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엑? 뭐에요, 무슨 전사가 지혜를?”
“지혜가 부족하면 책을 못 읽는다기에 올렸지.”
“형 게임 초짜에요? 무슨 능력치 분배를 그렇게… 아아. 잠깐만.”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소년은 내 손을 쥐고 흔들어 보았다. 슬쩍 몸을 밀어내 움직임을 느낀 소년은 이내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하더니 물었다.
“으메. 이거 체감도가 영 아닌데, 20? 10? 아냐 아냐. 조금 더… 분명 8이하.”
반동으로 움직이는 내 몸을 느끼고는 체감도를 추산해 내는 소년. 그러더니 다 늙은 어른처럼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어휴. 전사인데다가 체감도까지 이 모양이라니 헐~ 대박.”
그 말에 웃었다. 소년은 나를 보더니 답답한 듯 자신의 머리칼을 마구 흔들었다.
“에구. 미안해요. 그냥 없던 일로 하죠, 뭐.”
“괜찮다.”
소년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제임스다. 넌?”
“빈센트요. 이 게임은 있을 거 같으면서도 친추 기능이 없다니까요. 나중에 건의하면 생기려나?”
여타 온라인 게임에서 상대의 아이디를 등록하면 접속 상태를 알거나 귓속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 추가 기능이 아직 new century에는 없는 상태였다. 세세한 게임 내용은 잘 모르는 터라 나중에 생기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기능이 없으니 이렇게 인사하고 헤어질 따름이다.
“그럼 즐겜요~”
재미난 소년과 나는 그렇게 헤어졌다.
‘마을에 가야겠어.’
5레벨이 되었으니 이제 스킬을 익힐 차례다.
*
랭킹에 등록되는 레벨은 10.
스킬을 익히는 최소 레벨은 5다.
10레벨부터는 특수 NPC들을 무조건 피해야 하는 상황이니 지금 익힐 수 있는 기본 스킬이 내게는 평생 스킬인 셈이다. 다시 오지 않는 기회요 재산이니 가능한 한 모조리 익히기로 했다.
우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냥꾼 마터에게 향했다.
“무슨 일로 왔나?”
“여행자로서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하여 왔습니다.”
“그 수준으로?”
호감도 바닥에다 전사가 도둑의 기술을 익히고자 찾아온 마당이지 않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삐딱한 눈으로 나를 보던 그. 탐탁지 않은 기색을 역력히 보이며 품에서 양피지를 꺼내 툭 던졌다.
“내가 직접 가르쳐줄 수준이 안돼. 읽으며 기본이나 익혀라.”
말려있는 양피지를 펼치자 넓은 창이 생기며 백여 가지의 스킬이 푸른빛으로 반짝이며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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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Lv 5(전사)
힘 : 19 혈력 : 1
민첩 : 19 기력 : 1
지혜 : 27 마력 : 2
위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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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을 적용합니다.]
안내 메시지와 더불어 내가 가진 기력이 양피지에 투영됐다. 순식간에 푸른빛이 퍽퍽 꺼져버리고 남아있는 스킬은 단 3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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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 활성 : passive(Lv1)
지닌바 기력으로 신체를 활성화 시킨다.
효과 : 민첩 2 상승
습득조건 : 기력 1
도둑의 시야 : passive(Lv1)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효과 : 지도 인식 범위 2%증가
습득조건 : 기력 1
도둑의 본능 : passive(Lv1)
위기를 감지하여 치명적인 일격을 회피한다.
효과 : 회피율 2상승
습득조건 : 기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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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초라하긴 했지만, 이는 레벨이 낮으니 어쩌겠는가.
‘꺼진 스킬들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
구경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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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움직임 : Active(Lv1)
활성화된 기력으로 움직임을 가속한다.
효과 : 이동속도. 공격속도 15% 향상.
습득조건 : 기력 3 보유자. 기력 활성 Lv 2. 2000펜실
암습 : Active(Lv1)
기력을 집중하여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다.
효과 : 적중률 10% 하락. 공격력 20% 향상. 1초 경직 효과.
습득조건 : 기력 6 보유자. 기력 활성 Lv 3. 3000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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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좋은 건 좋은 값을 한다.’
그 외에도 암습시 공격력을 높여주는 스킬. 활을 다루는 스킬. 수리검 사용스킬 등등 여러 가지가 즐비했다. 투척 무기들과 관련된 스킬이 많았는데 이는 ‘도둑’이라는 직업의 특성 탓이었다.
구경을 마친 나는 창에 떠오른 3가지의 스킬을 익혔다. 그러자 마터는 양피지를 돌려받으며 내 손에 화살 모양의 도형을 그려주었다.
“미련한 놈에게 필요한 기술이지.”
[숙련도 활성을 배우셨습니다. 적용할 스킬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생소한 이름이다. 자세한 정보를 선택하자 추가 설명 창이 생겼다.
[숙련도 활성은 체감도 5% 이하의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시스템입니다. 정확한 동작을 취해야 성장하는 패시브 스킬들을 일상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당 % 지를 적용하여 점진적으로 성장시켜드립니다. 단, 적용 스킬이 많을수록 성장 포인트는 분할 적용되어 매우 느린 속도로 오르게 되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 주의 : 유료 패키지를 사용하여 체감도를 높이면 이 시스템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좋은 배려군.’
저체감도 게이머를 위한 좋은 시스템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은 대장간 차례.
“뭐하러 왔냐?”
“전사의 기술을 배우고자 합니다.”
“툭 치면 뚝 부러질 거 같은 몸뚱이군.”
대장간의 주인인 데닉은 귓구멍을 후비며 양피지를 던져 주었다.
수많은 스킬 중 내가 익힐 수 있는 것은 앞서와 마찬가지로 3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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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력 집중 : passive(Lv1)
지닌바 혈력으로 신체를 강화한다.
효과 : 힘 2 상승
직업효과 : 힘 5 추가 상승. 체력 20% 미만 시 공격력 5%. 공격속도 5% 증가.
습득조건 : 혈력 1
전사의 본능 : passive(Lv1)
빈틈을 감각적으로 감지한다.
효과 : 적중률 2 상승
직업효과 : 적중률 5 추가 상승. 체력 10% 미만 시 공격력 10% 증가.
습득조건 : 혈력 1
전사의 육체 : passive(Lv1)
두드려 강해지는 강철과도 같이 전사의 몸은 고통에 굴하지 않는다.
효과 : 1%의 물리적 피해를 감소한다.
직업효과 : 피해 5 감소. La 10 상승 시 신장 1㎝ 증가.
습득조건 : 혈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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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똑같은 기본 스킬이는 하나, 직업효과가 더해지니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효과가 있다.
“신장 1㎝ 증가가 무엇입니까? 제 키가 커진다는 그런 이야기인가요?”
“전사로서 성장하면 몸이 커지는 건 당연하지. 애송이, 너는 야생의 동물들이 처음 뭘 보고 견주는지 아나? 바로 몸집이 얼마나 큰지를 본다. 모름지기 전사라면 워 해머쯤은 휘두르면서 상대를 찍어 누르는 힘이 있어야 해!”
데닉이 꿈틀거리는 근육을 보이며 걸걸하게 말했다.
“마주치자마자 덤빌 엄두조차 나지 않는 힘! 이 모든 것은 강철 같은 육체에서 나오는 것이지. 불만 있나? 난쟁이처럼 몸이 작아졌으면 좋겠어?”
“그건 아니지만, 너무 커지면 생활이 불편하지는 않을까요?”
“용기가 쥐 좆만 한 놈이군. 네가 승급시험을 마칠 때마다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테니 그딴 걱정은 말아라. 대신 나처럼 이런 문신이 생기겠지. 흐흐.”
그의 팔뚝에서 포효하는 사자의 문신이 근육과 같이 꿈틀거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의 몸이 20㎝나 커지며 나를 내려 보는 것이 아닌가.
“이러면 문신의 힘이 활성화되어 능력이 향상된다.”
데닉의 말에 따르면 저것은 50레벨 때마다 한 번씩 있다는 승급을 마치면 얻게 되는 문신으로서 각각의 동물마다 다른 부가 효과를 주는 ‘칭호’이자 아이템이었다.
늑대, 사자, 곰, 용, 독수리, 부엉이, 전갈, 원숭이, 말, 들소의 10가지 동물을 선택해서 새길 수 있는데 능력치는 물론 스킬 숙련도마저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같은 문신을 새길지. 다른 문신을 새길지는 플레이어의 자유였다.
“전사만 가능한 건가요?”
“물론!”
자신의 몸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린 그는 목을 까딱이며 말을 이었다.
“몸이 커지는 건 전사만의 고유능력이다. 대신 다른 직업은 문신을 딴 데 새기지. 도둑은 옷에, 마법사는 지팡이에 말이야.”
“정말 좋군요.”
“당연하지. 하지만 조심할 부분도 있다.”
그가 말한 유의점은 다음과 같았다.
승급하기 전까지 전사는 몸이 커진 만큼 더 많이 먹어야 하고 도둑은 방어구의 내구도 감소속도가 증가하기에 장비에 신경 써야 하며 마법사는 지팡이의 무게가 무거워져 이동 및 공격속도가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강해지는 만큼 손상도가 커지는 원리였다.
“양날의 검이네요.”
“쓰기 나름이지.”
그렇게 스킬을 익힌 나는 40펜실의 돈으로 몽둥이 하나를 구매할 수 있었다. 데닉이 개를 때릴 겸 심심풀이로 대충 만들었다는 이 몽둥이는 공격력이 7~11이나 되는 물건이었다.
“애송아. 그따위 장작만도 못한 걸 살 바에는 내 심부름이나 하고 저걸 가져가라니까?”
“몽둥이랑 저 검이랑 차이가 있습니까?”
“녹슨 걸 봐라. 저게 말짱해 보이냐? 다만 몽둥이는 돈 주고 사는 거고 저건 공짜라는 차이가 있지. 심부름을 3개만 더하면 제대로 된 검을 주마. 어때?”
“전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나는 꾸벅 인사한 뒤 남은 한 곳으로 향하려 했다. 그때 데닉이 나를 불러 세웠다.
“이봐! 전사 지망생. 내 한 가지 충고하지.”
돌아보자 그가 불쾌한 낯으로 말했다.
“진짜 전사가 되려면 지금처럼 병신같이 웃지 말고 인사도 적당히 해라.”
“예?”
“너, 처음부터 지금까지 실실 웃고 광대처럼 인사했다. 대체 약 올리는 거냐, 방심시키려는 기만술이냐? 뭐가 됐건 그딴 건 도둑들이나 쓰는 거다. 전사는 당당해야 해. 이걸 잊지 마라!”
호통을 쳤다. 아무래도 체감도 1% 탓에 몽롱하게 움직이는 나를 보고 지적한 듯싶다.
그러나 크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둔한 감각에 꿈결에 듣는… 아니, 구경하는 정도의 욕설이니까. 나는 내게 충고를 해 주었다는 사실과 의도만을 인식하고 그에게 다시금 인사했다.
“충고 감사합니다.”
“어휴. 그래, 네 인생이니 그렇게 살아라. 내가 말을 말아야지! 퉤!”
침을 탁 뱉는 데닉을 뒤로 한 채 마법사의 스킬을 배우고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