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한다고 했는데 어느덧 소문이 돌기 시작한 모양이다. 역시, 사람 모이는 곳에서 비밀이 유지되기는 힘든가 보다.
“새터민 이춘남씨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론화 되지만 않았을 뿐이지 현재도 꾸준히 탈북자가 입국하고 있었다. 그 역시 많은 탈북자 중의 하나였다.
“목사님 생각은 어떠신대요?”
낯모르는 사람이 나를 찾을 때에는 단 하나.
돈이 필요할 때뿐이다. 아이들 후원도 하고 지내다 보니 어찌어찌 소문이 돈 모양이었다.
나름의 절박한 사정으로 무장한 채 나를 찾을 터.
“춘남 형제가 아직 정착한 지 2달뿐이 되지 않았거든. 사람 자체가 순박하고 아직 때가 덜 묻었으니 네가 기회를 주었으면 싶구나.”
대충 어떤 사연인지 알만했다. 내가 듣기로 춘남씨의 정착금으로 1900만 원을 지원받았다 한다. 이중 1300만 원은 주택마련에 쓰였고 나머지 600만 원은 나누어 지급된다.
이후 안정적인 직장을 얻을 때까지 정부에서 다달이 지급하는 금액은 40만 원.
훗날이면 모를까, 당장은 돈이 부족할 리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하나뿐이다.
씀씀이가 헤퍼서 분에 맞지 않는 사치를 부리는 경우.
“글쎄요.”
실제로 많은 새터민이 그렇게 돈을 쓰고 있었다.
고생고생하며 건너온 만큼 보상받아야 한다는 기이한 심리가 소비욕으로 작용한 탓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면 나를 잘 아는 장필모 목사가 이렇게 말을 걸어올 리 만무하다.
과소비가 아니라면 남는 추측은 하나.
“가족을 구하는 데 돈이 필요한 거군요. 중국 브로커인가요?”
“딸을 구하는 데 필요하다더구나.”
강을 건너고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북한을 탈출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 아들이나 딸을, 혹은 아내를 두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브로커는 연락이 끊긴 그들을 정착한 가족과 연결해준다. 당연히 지급해야 할 보수는 상당하다.
“굳이 도울 필요가 있을까요?”
들고 있는 봉투를 들여 놓은 뒤 거실에 앉았다.
장필모 목사 역시 마주 앉아서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새터민 식구들이 절대로 나쁜 사람들은 아니란다. 다만 자본주의와 맞지 않고 또 우리가 그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나쁜 물을 들였을 따름이지.”
“선택은 본인의 몫이지요.”
교육을 받고 정착금과 함께 사회로 나온 그들은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자격증이나 특별한 재주가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제 근로나 일용직, 비정규직이 된다.
여기에 꼬박꼬박 나오는 지원금이 사람을 애매하게 만든다. 어설프게나마 직장을 얻고 통장을 개설하는 등의 활동을 할라치면 지원금이 뚝 끊겨버리니, 차라리 한량처럼 일하며 한 몸 건사하며 지내는 삶을 대다수가 택하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땀 흘려 돈을 버는 정공법이 아닌 사회적인 허점을 노리는 편법을 익히게 된다.
‘보험사기.’
사회체계가 전혀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탈북자다. 그렇게 아직 돈에 대한 개념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정착금 덕에 애매하게 돈이 있는 실정이 되면 은근슬쩍 보험 설계사가 다가온다. 그리고 네댓 개의 보험을 들게 한 뒤, 석 달 뒤 앓아누우면 수백만 원을 챙길 수 있다고 종용한다.
탈북하면서 힘든 일을 겪은 그들이다. 알게 모르게 골병이 든 상태이니 이를 이용하여 받아 챙기는 방법을 일러주는 거다. 그래서 일자리도 없지만, 보험만큼은 4개 이상인 새터민을 나는 자주 여럿 보았다. 먹고살 돈을 빌려달라면서 보험금으로 몇십만 원씩 내는 이들을 말이다.
더 재미있는 건.
‘그 보험설계사들이 수년 전의 탈북자라는 사실이지.’
동향 사람이 다가와 ‘남한 사람들 믿지 말라우.’ 그러며 친분을 과시하고, 그럴듯하게 한 몫 챙기는 방법을 설명한다. 사실 이쯤 되면 대다수가 넘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탈북자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할 거라는 믿음 하에.
……한심한 일이다.
“저는 생각 없습니다.”
단칼에 거절하는 내게 장필모 목사가 말했다.
“조건을 거는 건 어떻겠니?”
“무슨 조건인데요?”
“보험은 하나만 놓아두고 모조리 해약하게 한 뒤 강소장님께 부탁해 배달사원으로 써달라고 말할 참이란다. 돈은 우유 배달월급에서 차감하는 방법으로 말이지.”
수고로운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만일 그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외려 보급소에 손해를 끼치게 된다면 그를 소개한 장필모 목사와 강 소장의 관계도 어색해질 우려가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남을 돕는다는 것, 이것은 이해는 할지언정 내가 걷지 못하는 길이다.
나는 나 하나 살자고 멀쩡한 고양이를 괴롭히기를 망설이지 않는 놈이다. 반면, 장필모 목사는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부축하고 길까지 안내해주는 격이니 이 좋은 사람에게 이 정도 선물을 못하겠는가.
“차용증 대상은 목사님인 거 아시죠?”
“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어날 때였다.
반짝.
우연하게 들어온 햇살 탓일까. 열린 문 사이로 교회 한편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일순, 바퀴의 형태로 반짝이는 빛.
나는 홀린 듯이 안으로 걸어갔다.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나무 십자가. 중앙에 새겨진 둥근 형태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가만히 이를 보고 있노라니 장필모 목사가 말해 주었다.
“그 목걸이 재미있지 않니? 안에 있는 바퀴가 도는 것 같은 착시효과를 주더구나.”
“그러네요.”
손에 쥐고 이리저리 돌리며 확인했다. 오른손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간과하기에는 바퀴의 환영이 너무도 또렷하다. 나는 넌지시 물었다.
“이거 누구 것인가요?”
“주인은 없더구나. 골목 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주웠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것 같아 닦아 놓은 거거든.”
“그냥 길에 떨어져 있었나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저리 꼼꼼하게 살피는 나를 보며 장필모 목사가 말했다.
“관심 있는 것 같은데, 가지려무나.”
“괜찮으시겠어요?”
“물론. 안 그래도 이번에 성경 퀴즈를 내고 맞힌 사람에게 줄 참이었거든.”
“감사합니다.”
나는 목걸이를 주머니에 넣으며 인사했다.
* * *
혹시 성륜은 아닐까 싶어서 가져온 목걸이.
나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솔직히 반신반의하는 중이었다.
“내 착각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 간과하고 넘어가기엔 착각으로 보았던 바퀴의 환영이 너무도 인상 깊었다. 나는 나무 십자가를 두고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우선 떠오르는 방법 하나.
단순 무식하긴 하지만 태진이 앞에 이를 들이미는 것이었다. 녀석의 동선에 슬쩍 물건을 두면 뭐라도 반응을 보일 테니까. 그러나 그가 속해있는 악마가 낌새를 알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는 기다리는 것.
아는 사람에게 준 뒤 태진이가 찾아오는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었다. 또는 비밀 장소에 놓아두고 태진이가 오는지 찾아오는지 감시해도 된다.
그러나 이 방법이 첫 번째보다 좋기는 하지만 단점은 있었다.
언제 찾아올 줄 알고 24시간 감시하겠는가. 더불어 내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일이 일어난다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마무리된다면 애꿎은 단서만 날리고 헛고생을 할 수도 있었다.
‘가만.’
장필모 목사가 진열해 놓았었는데도 불구하고 태진이가 오지 않았다는 건 누군가 직접 소지해야 파악이 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점점 구체적으로 보인다.”
나는 막연하기만 했던 존재들에 대해 감이 잡히는 것을 느꼈다.
이용택 관장의 말을 되뇌어 보자. 그의 말대로 의지가 약한 사람에게 성륜이 작용한다면 장필모 목사가 가지고 있을 때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는 사실도 이해가 된다. 그 역시 다른 방법이기는 하지만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니까.
하면 세 번째 방법이 있다.
“태워버린다.”
가장 안전하지만 ‘성륜이라는 것이 이런 형태구나.’ 하는 단서 외에는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를 사용하거나 들고 게임에 접속할 수 없는 나이기에 최적의 선택일 수도 있었다.
나는 아침에 온 신문을 펼쳤다.
딱딱딱…
가스레인지의 불이 화르르 점화되고 곧 신문이 타올랐다.
그 불꽃은 나무 십자가로 옮겨갔다.
느릿느릿하게 불꽃이 옮겨붙는다. 그리고 그 뜨거운 재를 식혀 오른손의 장갑을 벗고 마구 만졌다.
지루할 정도로 문대고 만지기를 10분.
나는 마지막으로 흙과 함께 재를 꽉 움켜쥔 뒤 싱크대로 가 물을 틀었다.
검은 물이 뚝뚝 떨어졌다. 비누를 가져와 한 손으로 문대고 씻었다.
아픔에 이를 악물고 박박 문대고 닦은 결과.
변화는?
‘……없다.’
긴장이 탁 풀렸다.
일그러진 성륜은 여전히 3개였다.
“아침부터 완전히 생난리네.”
어처구니없음에 피식 웃을 때였다.
상처가 나지도 않은 오른손이 욱신욱신 아려왔다.
밑에서 불룩불룩 거리며 튀어나오듯, 손바닥의 색이 변하고 있었다. 손 전체가 검게 물드는가 싶더니 길쭉하게 모여들어 문신의 형태를 이루고야 만다.
일그러진 검은 톱니는 본래 있던 성륜들 가운데로 모여 둥글게 말려 바퀴의 형태를 이루었다. 입속에 또 입이 있는 형국이다.
……아니기를 바랐는데.
“깝깝하구먼.”
이럼 골치 아파진다.
(3)
나는 종이를 꺼내 지금까지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했다.
-<하나> 악마와 초월자는 대립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
그것은 바로
- 그들은 직접 나서지 못하고 있다.
‘다음.’
-<둘> 그 존재들은 각자의 계약자를 통해 일을 진행하고 있다.
태진이와 성륜의 주인들이 대리자라 하겠다.
-<셋> 악마는 회귀를 조건으로 태진이에게 성륜 3개를 없애라고 했다. 그리고 태진이는 제대로 이를 처리했으나 장필모 목사는 성륜 하나를 줍게 된다.
고로.
- 성륜은 최소 3개 이상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더불어
‘특별히 주인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가설도 세울 수 있지.’
일찍이 없앤 3개는 주인이 있는 상태였다는 뜻도 된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성륜은 그 자체로서는 힘이 없고 사람을 만나야만 효용성을 얻게 된다는 사실까지도 도출된다.
‘이렇게 되면 줍는 놈은 행운아인 건가?’
소심한 사람만 주인의 자격이 있는 성륜. 이를 줍고 new century를 한다면 그야말로 사기성 스킬을 갖고 가상현실 게임을 하는 셈이 된다.
복권당첨이나 진배없을 것이다.
‘……뭔가 유치한 발상이야.’
이토록 허술한 구성일 리가 없으니 내 가설이 잘못됐으리라 생각해 본다. 하지만 다른 정보가 없으니 마땅히 추론할 것도 없었다.
‘우선 일단락 짓기로 하자.’
다음!
-<넷> 그들의 대립은 new century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근거는 이렇다.
게임 달인이라는 타이틀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쓸모없는 태진이를 악마가 선택한 점.
비록 일그러지긴 했지만, 성륜이 new century 속에서 반응을 보였다는 점.
이 두 가지로 미루어 볼 때 가능한 예측이었다.
‘마지막’
쓱쓱.
부드럽게 볼펜이 움직였다.
-<다섯> 이 정보들을 태진이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조각조각을 모아서 전체를 짐작해야 하는 나와는 달리 녀석은 직접 악마와 계약을 맺은 입장이다. 더불어 성륜을 찾아 없애고 나설 정도로 교감하는바.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아울러 녀석은 게임 내에서 충분히 최고가 될 준비를 해 놓았으리라 생각한다. 말 그대로 자기 삶이 그 안에 있으니까 필사적일 밖에 없을 것이다.
“최종 결론은.”
꽤 돌긴 했지만, 결론은 처음과 같았다.
- 지금처럼 생활하며 단서를 모으되, 간간이 녀석의 동태를 살핀다.
속 보이는 짓이지만 간간이 전화해 녀석의 안부를 물어야겠다.
* * *
한 상 거하게 차려진 해물 찜을 먹고 돌아온 그날.
세 번째로 접속한 new century의 세계에서 나는 물컹거리는 것을 밟게 되었다.
발이 깊게 빠져들었다.
[진흙에 붙잡혔습니다. 제거 전까지 이동속도와 공격속도가 50% 감소합니다]
‘또 걸렸네.’
지도에도 없다가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는 이것은 진흙 인간이었다. 땅에서 튀어나올 때까지는 보이지도 않다가 그륵 구룩 거리는 소리를 내며 발을 움켜쥐는 몬스터.
레벨 12. HP 3000. 공격력은 겨우 1.
심하게 편차가 높은 몬스터다. 그런고로 이 녀석 하나로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대신 굉장히 귀찮을 뿐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팀플레이가 시작되니까.”
흙더미의 손이 내 발을 붙들고 늘어짐과 동시.
“쿠워어!”
울부짖음과 함께 거대한 앞발이 내 얼굴을 후려쳤다.
뽀송뽀송한 베개가 얼굴에 닿는 1%의 체감.
- 곰에게 공격당했습니다.
- ‘전사의 육체’로 인해 피해 10이 감소합니다.
체력이 120이 뚝 떨어진다.
“살벌하군~”
진흙 인간에게 붙들리면 항상 곰이 등장한다. 18레벨짜리 몬스터인지라 앞발로 한번 휘저을 때마다 공격력은 가히 살인적이다. 나 정도쯤은 두 대만 맞으면 마을 행인 셈.
레벨 차이가 너무도 심해 내 공격은 잘 먹히지도 않는다.
그러니 어쩌랴. 남의 손으로 잡을밖에. 여기저기 몬스터가 산적해 있으니 이를 이용한다.
우선 곰을 밀쳐냈다.
“쇼크웨이브.”
손해는 전혀 없지만 시원스럽게 밀어내는 파동.
곰이 주춤하는 순간 나는 길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키득거리며 12마리의 서치가 달려들었다.